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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장 칼라스 사건> 개요
1762년 3월 9일, 툴루즈 법원은 정의라는 이름을 지닌 양날의 검으로 칼라스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p. 33).
죄 없는 가장 + 광신에 의한 재판 + 변호 수단 X + 재판관의 오판에 의한 사형
→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게 됨.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법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안녕을 보장받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다들 한목소리로 복수를 요구하기 위해 모여들 것이다(p. 34).
장 칼라스 사건(p. 34-46)
장 칼라스는 훌륭한 아버지로 신교도였음. 아들이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했지만 생활비를 보조했음. 다른 아들인 장남 마르크 앙투안은 우울한 기질의 성향을 가진 문필가였음. 가족 모두가 카톨릭 신자임을 증명해야 변호사가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음. 평소 자살을 결심하고 주변에 알렸음. 노름판에서 돈을 잃은 날 자살을 실행에 옮김.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음.
부모의 통곡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음. 이들이 거주하는 툴루즈는 이단 4,000명을 학살한 날을 축제로 기념하는 도시임. 구경꾼 무리 중 광신도들이 장 칼라스가 자신의 아들을 목매달아 죽였다고 소리침. 하나둘씩 이 외침을 따라 하다가 누구도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음. 부모가 아들을 살해한 것은 아들이 개종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므로 바로 이러한 신교도들의 신앙이 문제라고 탈루즈 전체가 믿게 됨.
툴루즈의 행정관 다비드는 소문을 듣고 흥분하여 규칙과 칙령에 어긋나는 절차를 밟으며 칼라스를 감옥에 가두었음. 한편, 백색 수도회는 마르크 앙투안 칼라스를 대상으로 순교자들에게 행하는 장중한 장례식을 치러 주었으며, 그는 거의 성인으로 대우되었음. 장 칼라스는 사형을 판결 받고 바퀴에 묶여 처형되었음. 장 칼라스의 아내는 파리로 가서 탄원을 요청하였으나 법관들은 칼라스 가족이 법관의 명예를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음.
가장 성스러운 종교를 남용한 결과 커다란 범죄가 빚어졌다. 따라서 종교가 너그러워야 할지 혹은 잔인해야 할지를 검토하는 일은 인류에게 유익한 일일 것이다(p. 47).
2장 <장 칼라스 사건>에 대한 나의 입장
사람들은 모든 수도회를 존경한다. 그들이 삶의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수도회가 국가에 아무리 커다란 이익을 가져온다 한들 과연 그들이 낳은 끔찍한 해악에 비할 수 있을까?(p. 52)
왜 이렇게 편을 갈라 다른 시민들과 구별하려 드는 것일까? 자신들이 더 완벽하다고 믿었던 것일까? 그랬다면 그것은 다른 프랑스인들에 대한 모독이다(p. 52-53).
수도회의 복장 → 경계심과 무장 유발 → 내전 → 국왕과 각료의 현명하지 못함 → 재앙을 초래하는 폭동(p. 53)
여기서는 종교개혁이 야기한 전쟁과 참화 그리고 프랑스에서 그와 같은 분쟁이 일어난 원인을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p. 53).
3장 16세기 종교개혁에 대한 이해
인간의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하던 문예부흥 시기에 사람들은 악습 전반에 걸쳐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모두가 그 비판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다(p. 58).
교황 알렉산드로 6세와 율리우스 2세, 레오 10세의 사례
설령 신교도들이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그들 덕분에 오랫동안 지독한 야만 속에 매몰되어 있던 인류의 정신이 발전할 수 있었음을 못 본 체 하지는 말자(p. 59).
독일의 군주들은 종교개혁가들에게 돈을 주면서 신교도들을 보호했지만, 파리에서는 국왕이 종교 행렬의 맨 앞에 서서 행진하다가 나중에는 행렬에 참가했던 많은 신교도들을 처형했다.
화형대의 불길과 사형 집행자의 칼날 아래에서도 신교도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그들은 상대가 보여준 잔혹함을 그대로 따라했다. 아홉 번의 내전이 프랑스를 살육으로 뒤덮었다(p. 60).
자비와 관대함,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끔찍한 일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자비가 관대함, 신앙의 자유가 실제로 그와 같은 재앙을 초래한 적이 언제 있었단 말인가?(p. 61)
4장 신앙의 자유가 위험하다면 과연 그것을 허용한 나라가 있었겠는가?
어설픈 프랑스어로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리는 길 잃은 형제들에게 우리가 아버지와 같은 관대함을 베푼다면, 그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 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p. 65).
잔인함에 대한 반발이 너그러운 태도에 대해서도 똑같이 일어날 것이라 우려해야 할 것인가?(p. 66)
독단적인 사고와 어설프게 받아들여진 그리스도교 신앙의 남용이 가져오는 광기는 독일과 영국 심지어 네덜란드에서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신앙의 차이는 아무런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다(p. 67).
종교와 자매지간인 철학, 오직 철학만이 그토록 오랫동안 맹신의 피로 물들었던 인간의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환각에서 비로소 깨어난 인간의 이성은 광신에 휩쓸려 저지른 폭력의 결과를 보고 경악했다(p. 68).
알자스가 프랑스 국왕의 영토가 된 이래로 사소한 종교 분쟁 때문에 이곳의 평화가 깨진 적은 없었다. 그것은 바로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박해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p. 68-69).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스무 개 부족을 평화롭게 다스린다. 술탄은 그리스의 섬에 로마카톨릭 주교들을 임명하는데, 이때 술탄은 “키오스 섬에서 그들의 옛 관습과 그들의 정해진 의식에 따르며 주교로 살 것을 이 사람에게 명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p. 70).
중국에서 가장 현명하고 관대했던 옹정제가 예수회 선교사를 추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옹정제가 관용을 베풀지 않아서가 아니라, 반대로 예수회 선교사들이 관용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p. 71). 그러나 돌려보낼 때도 어찌나 친절하게 배려를 했던지, 선교사들이 귀국길에 비웃음이나 모욕을 당하지 않도록 아버지와 같은 세심함을 보이지 않았던가! 선교사들을 돌려보낸 일마저 관용과 인류애의 본보기가 되었다(p. 72).
일본은 세계 모든 나라들 중에서도 가장 관대한 나라였다(p. 72).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편협함을 공포해서도 안 되며 실행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p. 73).
요컨대 관대한 곳에서 분쟁이 일어난 적은 없다. 반면에 편협한 곳에서는 살육이 땅을 뒤덮는다(p. 74).
5장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면 좋은 점
종파가 늘어날수록 위험성은 줄어든다. 종파가 다양해야 종파들 간의 관계가 좋아진다. 어느 종파든 요란한 집회나 다른 종교를 모독하는 행위나 폭동을 금지하는 법으로써 견제된다. 이 같은 법은 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p. 80).
광신도의 수를 줄이는 훌륭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광신이라는 정신병을 계몽된 이성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이성은 온화하고 인간적이며, 관대함을 불러일으켜 불화를 잠재우고 미덕을 강조하기에 법의 준수를 강요하기보다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법을 따르게 만든다(p. 81).
냉소는 모든 광신도들의 괴상한 언동에 대한 강력한 억제책이다. 과거란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같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 우리가 있는 또한 모든 나라들이 도달한 지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낡은 것을 거부하는 시대, 보다 정확히 말해 이성의 시대가 바로 공공의 안녕이 보장되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p. 83).
6장 자연이 인간에게 편협함을 가르친 적이 있는가?
자연법이란 자연이 인류에게 가르쳐 주는 법이다. 인간의 법은 어떤 경우에라도 이 자연법을 토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법과 인간의 법은 이 세상 어디서나 ‘당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p. 86).
잔혹한 법은 어리석고 야만적이다. 그것은 호랑이들의 법이다. 호랑이는 먹기 위해서만 물어뜯지만, 우리는 말 몇 마디 때문에 서로를 학살했으니, 편협한 법은 더 끔찍하다(p. 87).
7장 고대 그리스인도 박해를 겪었을까?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민족들에게 종교란 모두를 한데 연결시키고 묶어 주는 일종의 매듭과도 같았다. 그렇게 해서 인류는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인류와 마찬가지로 신의 세계에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관습법이 있다고 믿었다(p. 89).
이성이 발달한 민족들이 ‘생각의 자유’를 제한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 민족 모두 종교를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인간을 대하듯 신을 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가진 종교는 하나뿐이었지만 수많은 개별적 방식들을 허용했다(p. 90).
소크라테스의 경우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유일하게 개인의 의견을 문제 삼아 사형을 선고한 경우였다. 그것이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사형 당한 원인이었다면 관용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그처럼 불명예스러운 일도 없다(p. 91).
아테네인들은 낯선 신들과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신들을 위해서도 제단을 세웠다. 그들이 이민족들에게 관대했을 분만 아니라 그들의 종교 역시 존중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기에 이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p. 92)
8장 로마인들이 보여 준 종교적 관용
로마의 시조인 로물루스 시대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로마 제국의 신관들과 논쟁을 벌이던 시대에 이르기까지 로마인들 가운데 자신의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았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p. 95).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의 대원칙은 “신에 대한 불경은 신이 처리할 문제다.”라는 것이었다(p. 96).
로마인들은 모든 종교를 신봉하지도, 공인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모든 종교를 허용했다(p. 96-97).
9장 순교자
그 후에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 순교자들이 어떤 이유로 처형 당했는지 정확히 알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p. 108).
로마 황제들의 치하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취조가 있었다는 말, 다시 말해 황제가 보낸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집으로 찾아와 그들의 신앙에 대해 취조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신앙 문제 때문에 유대인도, 시리아인도, 이집트인도, 음유시인도, 드루이드교 신자도, 철학자들도,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p. 110).
로마의 법으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엄중하게 다스린 첫 사례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의 일이다. 그러나 그 조치란 것도 1년을 채 넘기지 못한 추방형이었다(p. 111)
교회사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3세기 동안 모두 56회에 걸쳐 종교 회의가 열린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누린 자유와 광기에 가까운 박해를 나란히 놓고 말하는 건 무리이다. 물론 박해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박해’란 것이 흔히 말하듯 그렇게 가혹한 것이었다면, 기존의 모든 다른 종교에 대해 그토록 단호하게 반대하는 글을 쓴 테르툴리아누스가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p. 112)
10장 순교와 박해에 관한 거짓 전설의 위험성
너무나 긴 시간 동안 거짓이 사람들을 속여 왔다.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의 시대 이래로, 로마인이 아닌 다른 고대 민족의 역사는 대개 꾸며낸 이야기들의 베일로 가려있다.
오늘날 법률이 본보기로 삼고 있는 로마인들, 그 진지하고 엄격한 로마인들이 그리스도교의 양가집 규수들에게 벌로 매춘을 시켰다는데, 어떻게 그런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p. 129)
성 로마누스, 성 펠리시타스와 그녀의 일곱 아들의 사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순교 이야기들을 보면 거의 언제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무리를 지어 자유롭게 순교자가 갇혀 있는 감옥에 와 처형장까지 그의 뒤를 따르고, 흘린 피를 수습하고, 그의 시체를 땅에 묻고 그가 남긴 유골로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해 받은 이유가 단지 종교였다면, 처형 당한 형제를 돕고, 순교한 시체의 유골로 주술을 부리면서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선언한 이들 역시 처형되지 않았을까?(p. 133)
박해자이자 사형 집행인이자 살인자였던 사람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다. 누구를 박해하고 죽였는가? 바로 우리 형제들이다(p. 134).
로마인들이 단지 종교를 이유로 들어 수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죽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맹렬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우리도 똑같은 불의를 저지르고자 하는 것인가? 우리가 박해자로 비난하는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가?(p. 135)
진정한 기적들로 얻은 믿음을 흔들어 놓는 이 모든 거짓 기적들, 당신이 복음서의 진리에 덧붙여 놓은 그 모든 터무니없는 전설들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신앙심이 사라지게 한다(p. 136).
우리가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토록 많은 죄를 저지른 이 짧고 덧없는 삶이 끝나고 나면, 하느님께서는 그 끔찍한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종교 때문에 일어났던 전쟁들, 피를 흘렸던 마흔 번에 걸친 교호의 분열, 의견의 차이 때문에 불이 붙었던 풀 수 없는 증오, 종교에 대한 그릇된 열정이 낳은 온갖 해악,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보건대, 사람들은 이 생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옥을 맛본 것이다(p. 137).
11장 종교가 박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다들 자신의 이성만 믿고, 옳던 그르던 간에 이성이 가리키는 것들만을 생각하도록 해야 하는가? 그래야 한다. 단, 질서를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그러하다. 믿고 안 믿고는 의무가 아니지만, 자기 나라의 관습을 존중하는 것은 의무이기 때문이다(p. 144).
우리의 종교가 아무리 신성한들 증오, 분노, 추방, 재산 몰수, 투옥, 고문, 살인 등의 행위가 곧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논리로 유지되어야 하겠는가?(p. 145)
이 끝없는 논쟁 속에서 우리를 인도해 줄 누군가에게서 배워야 한다면 그들은 분명 사도들과 복음서 저자들이다. 성 바울과 성 베드로 사이에는 격심한 교회 분열을 가져올 정도의 견해 차이가 있었다(p. 147).
사도들 사이에서는 어떤 대립이나 불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이 불일치는 여러 교부들에 의해 적정선에서 조율되었다. 자비심은 상처를 입지 않았고 평화도 지켜졌다. 논쟁을 벌이면서도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겸손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이 어디에 있는가!(p. 148)
우리와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이 성스러운 행동이라면 이교도들을 가장 많이 죽인 자들이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성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p.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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