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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수단」 조르조 아감벤

 

11. 이 망명지에서-이탈리아 일기, 1992∼94년 2020.8.9. 바다사자

 

 수용소는 실로 근대성이 개시된 장소이다. 수용소는 공적인 사건과 사적인 사건, 정치적 삶과 생물학적 생명을 엄밀히 구분할 수 없게 된 첫 번째 공간이다(131).

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스펙터클 사회의 법칙들 중 하나는 권력이 심각한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미디어 통치는 자신이 그 일부로 통합된 체제로부터 겉보기로는 떨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체제를 향한 항(134)의가 혁명으로 번지지 않도록 통제하고 감독하기 위해서이다.

 눈멀고 귀먹은 국가는 자기와 더불어 자기의 신민들 역시 몰락시킬 것이라는 사실은 아랑곳없이 종말을 향해 더듬거리며 나아가고 있다(138).

 진리는 처음부터 도덕과 법의 애매한 타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윤리-종교적 범주와 법적 개념을 극도로 혼동하는 것만큼 모든 윤리적 경험의 불가피한 몰락을 더 명백하게 보여주는 징표도 없다. 도덕에 대해 말하는 곳에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법적 범주만 입에 달고 있고, 법이나 소송을 다루는 곳에서는 반대로 윤리적 개념을 릭토르의 도끼처럼 사용한다(140).

 예외상태가 오늘날 정치권력의 정상적 구조인 것처럼, 위기가 현 단계 자본주의의 내적 동력원임을 안다. 영구적으로 되어버린 위기는 제3세계 인민들이 항상 더 가난해져야 할 뿐 아니라 산업사회에서 주변부로 쫓겨나고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시민들의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고 요구한다(143).

 오늘날 소위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인간의 비참을 대량으로 양산하는데 완전히 타협하지 않은 국가는 없다(144).

 법과의 지속적인 타협을 끝내면서 교회는 메시아적 사건을 마비시켰다. 그에 따라 세계가 심판의 권력에게 넘겨졌는데, 교회는 약삭빠르게 죄 사함과 회개를 통한 면죄의 형태로 이 권력을 행사하곤 했다(145).

 지성의 완전한 부패는 오늘날 진보주의라 불리는 기만적이고 양식을 갖춘 형태에 도달했다(131). 혁명은 자본·권력과 타협해야 하고 하곤 했다.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주의의 전략을 이끌던 좌우명이 그런 식으로 조금씩 형태를 갖춰갔다. 모든 것에 양보해야 한다. 반대파와 모든 것을 화해해야 한다(148).

 우리는 신체와 장소, 외부와 내부, 말하지 못하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노예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 필요와 욕망의 이런 혼동 속에서 생각하고 글 쓰는데 익숙해져야 한다(149).

 오늘날 우리는 다른 정치, 다른 신체, 다른 말로 이르는 길을 찾아야 한다(150).

 우리 세기의 전체주의는 실로 역사의 종언에 대한 헤겔-코제브적 관념의 이면을 구성하게 됐다. 인간은 이제 자신의 역사적 목적지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경제의 군림을 무조건 펼치거나, 최고의 정치 과제가 되는 생물학적 생명에 착수함으로써 인간 사회를 탈정치화하는 것밖에 없다(151).

 정치는 인류의 본질적인 무위에 상응하는 것, 인간공동체의 근본적인 일-없이-존재함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할 일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고유한 작업에 의해서도 정의될 수 없기 때문에 정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동일성/정체성이나 소명으로도 고갈시키는 게 불가능한 순수 잠재성의 존재이다. 본질적인 무위와 잠재성이 역사적 과제가 되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방식, 정치가 인류의 일-없음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모든 과제에 대한 인류의 창조적인 무관심을 전시하고 오직 이런 의미에서 정치가 행복에 전적으(152)로 할당되는 방식, 바로 이것이야말로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오이코노미아의 전 지구적 지배를 가로지르고 넘어서 도래하는 정치의 주체를 구성한다.(131).

 

목적없는 수단 3부11장(20.8.9).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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