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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유대인들은 편협함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었나?
유대인들의 편협함: 우상숭배, 무지하고 잔인함(p. 156-129).
유대 민족의 역사를 통틀어 너그럽고 관대하며 자비로운 면모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유대인의 기나긴 역사 전체를 덮고 있는 그토록 끔찍하고 야만적인 구름 사이로 관용의 빛이 널리 퍼져 나간다(p. 160).
우상 숭배 자체가 용인되었다면 그들의 실제 신앙 생활에서는 얼마나 많은 차이가 용인되었을 것인 가!(p. 162)
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하느님이 모든 이민족을 너그러이 받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살피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째서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가!(p. 165)
13장 유대인들이 누린 율법 해석의 자유
모세의 시대, 율법학자들의 시대, 왕들이 통치하던 시대에도 여러분은 관용의 사례들을 볼 수 있다(p. 177).
사두개파는 사후와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두개파는 그들의 형제인 유대 민족의 한 지파로 남아 있었다(p. 179).
유대교를 좀 더 면밀히 검토할수록 우리는 가장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커다란 관용을 보인 그들에게 놀랄 수 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모순이다. 피비린내 나는 율법과 유연하고 너그러운 태도가 공존했으니, 모순이라도 이러한 모순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 아니겠는가!(p. 180)
14장 만약 예수그리스도가 편협한 태도를 가르쳤다면...
예수그리스도가 잔혹한 율법을 만들고, 편협한 태도를 가르치고, 종교 재판소의 지하 독방을 만들게 하고, 화형 집행인들을 임명했는지 살펴보자. 박해자들의 편협함, 달리 말해 억압을 합법적인 것으로 주장할 수 있는 구절이 복음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p. 191).
예수는 심지어 자신을 배신할 유다에 대해서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는 베드로에게 결코 검을 사용하지 말라고 명한다(p. 196).
마침내 예수는 시기심의 희생자가 되어 죽는다. 우리가 감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성과 속 그리고 예수와 인간을 비교한다면, 예수의 죽음과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유사한 점이 아주 많다.
예수는 진정한 힘, 진정한 위대함은 우리의 본성이 이겨내기 힘든 고통을 극복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무릅쓰는 극단적인 용기를 보여준 것이다(p. 197).
예수는 인간으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성스러운 행동을 하였다. 그래서 성인이라고 한다. 그의 태도는 우리가 가치가 있고 견지해야 할 바이나, 과연 우리가 따라갈 수 있겠는가? 보통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오히려 예수를 배신한 유다나 베드로에 가깝다. 볼테르의 예수의 인용은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관용의 불가능성으로 비춰지지는 않는가? 어쩌면 볼테르의 인간에 대한 태도와 이해는 너무 낭만적이고 안이한 것은 아닌가?
유대인들의 반란을 이미 한 번 겪었던 빌라도는 자신에 대해 일어난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예수를 단죄해야 할 정도로 심약한 인간이었다. 빌라도에게는 훗날 베스도 총독이 보여줬던 것과 같은 관대함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당신에게 묻겠다. 관용과 편협함 가운데 어느 것이 하느님의 법인가? 만일 당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담고자 한다면 박해자가 아닌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p. 199).
전반적으로는 볼테르의 의견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으로서는 1) 가치로서 관용과 편협함 중에서 관용을 선택하고 행위를 하기 보다는 2) 빌라도처럼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택하고 보니 그것이 편협함이라는 가치를 선택하게 되고 마는 상황이 더욱 일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러한 편협하기 쉬운 인간이 어떻게 관용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가 하는 가이다.
15장 편협한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증언들
우리는 믿음이란 설득으로 얻어지는 것이기에 명령으로는 얻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다(p. 204).
종교도 사랑과 마찬가지다. 명령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고 강압으로는 더욱 불가능하다. 사랑하고 믿는 것보다 더 자유로운 것은 없다(p. 206).
우리가 매일같이 입에 올리는 이론의 실천을 거부한다면 이는 대체 무슨 불운한 사태이며 모순이란 말인가? 행동이 도덕을 못 본 체 하는 것은 우리가 배운 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해야 그나마 약간의 이익이라도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고 그들이 우리를 증오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p. 207).
16장 죽어가는 사람과 교리에만 밝은 사람의 대화
죽어가는 사람 V.S. 교리에만 밝은 사람(잔인한 사람)
17장 어느 예수회 신부가 르텔리에 신부에게 쓴 편지(1714년 5월 6일)
이 것은 최고의 선을 얻느냐의 문제이므로, 약간의 좋지 않은 여파가 따를지라도 떠들썩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p. 222).
우리는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몰리니스트들이 천국에 간다는 사실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리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거열형이나 교수형에 처하거나 혹은 갤리선으로 보내는 형별에 처하는 것이 옳은지는 검토해 보아야 한다.
18장 관용이 필요 없는 예외적인 경우
국가가 사람들의 잘못을 처벌한 권리가 없기 위해서는 그 잘못이 범죄가 아니어야 한다.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때에만 잘못이 범죄가 된다. 광신을 불러일으키는 순간, 그 잘못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용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광신적이어서는 안 된다(p. 228).
덴마크 어느 종파의 광신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모든 아이들은 지옥에 떨어지고, 세례를 받은 직후에 죽은 행복한 아이들은 영원한 축복을 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소년들과 소녀들을 만나면 만나 죄다 목을 졸라 죽였다. 아마 그것이 아이들에게 그들이 해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축복이었을 것이다(p. 229).
19장 중국에서 벌어진 논쟁에 대한 보고서
강희 황제 통치 초기에 광둥에서 어느 고위 관리의 이웃집에서 일어난 일(p. 233-237)
덴마크 동인도 회사로부터 파견된 신부, 인도네시아에서 온 네덜란드 신부, 예수회 소속의 프랑스 신부가 논쟁을 벌임.
예수회 신부는 항상 옳은 판단만 내리는 자신이 항상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을 상대하자니 정말 괴롭다고 대답함. 다른 두 신부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논쟁을 벌임.
중국 관리는 “만약 중국인들이 당신들의 교리를 용인해 주길 바란다면, 여러분이 먼저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고 상대방에게서 용인을 받도록 하라고 함.
서로 욕설이 오가는 상황을 중국 관리가 수습함.
그 후 예수회 신부와 도미니크회 신부는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이어져 결국 중국 관리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됨.
20장 차라리 미신을 믿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인간이란 본래 나약하고 은혜를 모르는 존재이다. 따라서 맹신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믿음 없이 사느니 차라리 온갖 종류의 맹신에 사로잡혀 사는 편이 나아 보인다(p. 242).
따지기 좋아하고 난폭하며 위압적인 무신론자는 살육을 일으키는 맹신자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재앙의 씨가 될 것이다.
맹신과 종교의 관계는 점성술과 천문학의 관계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딸과 매우 현명한 어머니의 관계와 비슷하다. 맹신과 점성술은 오랫동안 지구를 지배해왔다(p. 242).
종교가 이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이윽고 도래 했지만 수많은 맹신들의 잔재는 여전히 대중들에게 남아 있었다(p. 243)
프랑스에서 이성은 나날이 귀족들의 저택으로 그리고 상인들의 가게로 점차 스며들고 있다. 따라서 이성의 열매가 아예 열리지 못하게 할 수 없다면 그 열매를 가꾸어야 한다(p. 244).
‘교육을 받아 생각이 깬 사람들’
자신의 종교를 근거로 하여 이웃을 증오하는 태도야말로 맹신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맹신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형제를 증오하고 박해하는 것보다는 성스러운 배꼽, 성스러운 음경 포피, 성모마리아의 젖과 옷을 숭배하는 편이 훨씬 덛 합리적이지 않을까?(p. 245)
21장 너그러운 마음이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교리의 수가 적을수록 논쟁은 줄어든다. 논쟁이 줄어들수록 불행한 일도 줄어든다(p. 250).
종교는 우리가 이승과 저승에서 행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저승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승에서 행복하려면 인간의 부족한 본성이 허락하는 한 무엇이 필요한가? 너그러워야 한다.
형이상학에 대해 말하자면, 모든 인간이 천편일률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광기의 극치일 것이다. 한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보다 차라리 무기로 세상 전체를 굴복시키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다.
알렉산드르 주교와 아리오스인지 아리우스인지 하는 이름의 신부가 벌인 성부로부터 로고스가 발현되는 방식에 관한 논쟁(p. 250)
이 논쟁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성서 구절을 둘러싼 궤변론과 칼로 부장한 분노를 낳았고, 이 분노는 다시 인간으로 하여금 분별력을 잃고 잔인해지도록 만들었다. 이후 유럽에 등장한 훈족, 헤롤리족, 고트족 그리고 반달족이 가져온 재앙은 이 논쟁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다. 이들이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운명을 가르는 이와 같은 논쟁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이다(p. 252).
22장 보편적 관용 –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중요함을 증명하는 데에는 대단한 기교나 유창한 언변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여기서 조금 더 멀리 나아가, 모든 사람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p. 255).
지구는 하나의 작은 점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수많은 천제들과 마찬가지로 우주 공간에서 회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무한한 공간에서 길을 잃었다(p. 256)
우리가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이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라고 확신한다면, 그런 사람과 어떻게 거래를 할 것이며, 또한 어떻게 시민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겠는가?(p. 258)
나와 함께 갑시다.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고, 각자가 한 일에 따라 하느님이 보상을 내려 주시는 그날로 갑시다. 과거 수백년 동안 죽어간 이들과 오늘날에도 죽음을 맞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자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현명하고 덕망이 있는 공자에게, 입법가 솔론에게, 피타고라스에게, 잘레우쿠스에게, 소크라테스에게, 플라톤에게, 숭고한 안토니우스 황제에게, 선량한 트리야누스 황제에게, 인류의 기쁨인 티투스 황제에게, 에펙테투스에게, 인류의 귀감이 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거라 괴물들아! 가서 끝없는 지독한 형벌을 받아라, 너희의 고통은 나의 존재처럼 영원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장 샤텔, 라바야크, 다미엥, 카르투슈 등은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죽었으니, 내 오른편에 앉아 나의 왕국과 나의 기쁨을 영원히 누리리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라 당신은 확신합니까?(p. 259)
23장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
무기력한 육신을 덮고 있는 의복들 간의 사소한 차이, 불충분한 언어들 간의 사소한 차이, 모든 우스꽝스런 관습들 간의 사소한 차이, 우리의 모든 불완전한 법률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 우리의 당치않은 의견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 우리들 눈에는 불평등하지만 당신 앞에서는 아주 평등한 우리의 모든 조건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 같은 존재들을 구별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계기가 되지 않게 해주소서(p. 264).
24장 덧붙이는 말
사람들을 더욱 관대하고 더욱 온화하게 만들겠다는 단 하나의 일념으로 내가 이 글을 쓰고 잇는 동안, 어떤 사람은 정반대의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썼다. 각자가 자신의 견해를 갖고 있는 법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p. 266).
한편에서 본성이 부드럽고 자비로운 목소리를 들려줄 때, 다른 한편에서는 본성의 적인 광신이 포료한다. 평화가 모습을 드러낼 때, 편협함은 자신의 무기를 벼리고 있다. 국가의 결정권자이자 유럽에 평화를 가져왔던 당신들, 이제 평화와 전쟁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시오!(p. 273)
25장 글을 마치며 – 편협함에 희생된 장 칼라스를 위하여
편협한 정신이 죽인 장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하여 우리가 관용에 대한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갈 때, 우리의 정신은 오직 정의, 진리, 평화로 충만했음을 하느님은 알고 계신다.
무고한 사람을 가장 먼저 박해한 사람이 툴루즈의 시행정관인 다비드씨였으니, 참회의 본보기를 보여야 할 사람 역시 그다. 그는 처형대에서 죽어가는 어느 가장을 모욕했다. 그 잔인함이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하시므로 우리도 잘못을 속죄하는 그를 용서해야 한다(p. 266-267).
자연은 인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연약하므로 서로 도와야 한다. 너희는 무지하니 서로를 가르치고 용인해야 한다. 너희 모두의 의견이 같을 경우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단 한 사람이 반대 의견을 가지는 경우에는 너희가 그를 용서해야 한다.
너희들이 걸핏하면 일으키는 그토록 잔인한 전쟁, 오류와 우연과 불행의 영원한 무대인 전쟁의 와중에서도 설령 너희들이 원치 않더라도 서로의 필요에 의해 다시 결합하도록 만들 수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연 뿐이다(p. 281).
외계에서 우주인들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우리는 현재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군비 경쟁의 당위성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코스모스, p. 531)
사람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와 조금이라도 다른 성격의 사회를 믿을 수 없는 기괴한 존재로 간주하며 심히 혐오하고는 한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으면서 말이다. 외계 문명인에게는 인류 사회의 차이가 유사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인간은 이 지구에만 있다.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수천억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코스모스, p. 548-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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