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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하늘과 땅 사이에서
§1. 전쟁하는 국가들
춘추시대로부터 전국시대로의 이행은 광범위한 사회경제사적 변화와 정치적-군사적 변화 그리고 사상적-문화적 변화를 동반했다. 이런 와중에서 맹자, 장자, 순자의 사유를 포함해 동북아세계의 대표적인 철학체계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
Ⅰ. 사회경제적 변화
①상(은)시기, 석기에서 청동기로 본격적 대체되기 시작-상고세계의 삶은 원초적인 생존과 신분사회 구조하에서의 ‘권력의 의지’로 요약되며, 청동기의 쓰임은 한편으로는 생존의 도구로,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을 위한 도구로 양분된다.(302p)
②춘추시기, 청동기로부터 철기로의 이행-철기가 도입, 문명의 이기 일반화.
이런 흐름은 두 가지 큰 변화를 낳았다. 철기를 사용한 농업발전은 생산력을 크게 증가시켰고 이로써 사회적 변화가 등장하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 철제 무기의 대량생산이 군대조직과 전쟁의 양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③전국시기, 상공업에서 생산력 또한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상공업자들의 발언권이 크게 강화. 국가간 무역 활성화, 전국 규모의 유통망, 거상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되면서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중원의 폐쇄적 경계들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천하통일이 있기 전에 먼저 삶의 저변에서의 거대한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이 과정은 화폐경제의 발달과 도량형의 정비를 동반, 천하통일을 위한 기호적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Ⅱ. 정치-군사적 변화
전국시대의 정치적 변화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영토국가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종법제와 봉건제를 비롯해 혈연과 종교를 기반으로 했던 귀족국가들, 도시국가들이 무너지고 광대한 영토와 그것을 다스리는 관료들을 기반으로 하는 영토국가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306)
‘국가’라는 것이 본격화되면서 ‘군현제’가 등장, 지방 말단에서부터 재상에 이르는 관료조직의 피라미드가 완성된다. 각 국가의 재상들은 ‘변법’을 통해 부국강병책을 구사 이의 성패에 따라 국가의 존망도 좌우되었다. 아울러 전국시대는 외교와 유세의 시대이기도 했기에 이 또한 국가의 존망을 좌우했다.
전국시대가 되면 보병이 발달해 전투의 양상이 달라진다. 군대의 규모가 기만에서 기십으로 변하고 전투의 기간도 1년을 넘기게 된다. 전쟁은 공성전 양상을 띠고, 점차 잔인해지고, 국군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전투를 치르고, 수십만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철기가 일반화 되면서 무기가 강력해지면서 전투의 잔혹함도 증폭되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이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쟁 자체를 사상의 수준에서 논하고 개념화하는 수준에 달했다는 점이다. 병가사상이 그것이다.
->위(魏) 문후(BC425년)는 ‘계몽군주’로 여러 학자를 위나라로 불러 문화 대국을 만들고자 했다. ->이회의 ‘변법’실시로 농지의 생산력을 높였다. 이후 전국시대 변법의 원형이 된다. 『법경(法經)』저술, 이후 율령으로 쓰임.
->전씨의 제나라에서도 변법이 이루어짐
=>힘을 비축하던 양국의 격돌->BC353년 계릉전투(전제(田齊)의 승리)->BC343년 마릉전투(전제의 승리)->BC330년 진(秦)이 중원으로 진출하기 시작(BC359년, 350년 두 차례에 걸쳐 상앙의 변법 시행)->BC285년 장평전투(진(秦)의 승리)->BC221년 마침내 진의 천하통일.
Ⅲ. 사상적-문화적 변화
1.언어상의 변화
갑골문-금문-붓과 먹의 사용, 죽간, 목간, 백서 등-‘책’이 등장.
춘추시대이래 공통의 문자들이 형성되면서 중원 전체에 걸쳐 사상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공통의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동북아 공통의 담론세계가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제자백가’의 언어적 토대가 되었다.
2.사상과 교육의 일반화
한계는 있었으나 특권계층에 국한되었던 교육과 문화가 일정 범위의 독서층으로 확장되고 사교육이 확대되었다. 이런 흐름에 공자는 교육을 일반화하고 ‘지식인’이라는 개념/이미지를 만들어냈으며, ‘학파’, ‘스승과 제자’라는 개념/이미지를 확고하게 창조해낸 인물이다. 묵가는 ‘능력본위’ 사상의 기저가 되었다.
또한 직하학궁에 다양한 학자군이 공존하였다. 도가 사상은 존재론적 어위를 제공, 법가적 사유는 후대 큰 영향을 끼쳤으며, 맹자는 민본사상을, 명가 학자들은 논리학적. 언어철학적 연구들을 진행, 후기 묵가인 송견. 윤문, 순자 등 전국시대 최대의 학궁답게 다양한 사상을 종합하는 사상을 세워 천하통일의 길을 예기했다.(313)
3.전국시대는 지식인들이 특히 중시되던 시대였다.
이 시대 지식인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전략’은 10만 군사를 능가하는 힘이 있었다. 외교의 성패-소진의 합종책, 장의의 연횡책-는 ‘천하경략’의 핵이었다. 이 시대 전략가인 유세가들의 활약은 논리와 언어에 대한 관심이라는 거대한 변환을 가져왔다. 후기 묵가의 논리학에 대한 관심, 명가의 언어에 대한 철학적 분석 등. 이런 배경은 ‘무’보다 ‘문’의 우위를 가져왔다.
고대 동북아 ‘사(士)’는 문무를 겸비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전문화되면서 무사와 문사가 구분되었고, 동북아 문명을 특징짓게 되었다. 동북아 문명은 군사와 종교보다 정치와 철학이 우위를 점한 보기 드문 문명이 되었다.
=>전국시대 거대한 변환에 “도대체 하늘의 뜻은 무엇일까?”라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라고 철학자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넓고 깊은 사유들을 전개하기 시작했다.(315)
§2. 학파들의 시대
전국시대 사상가들은 ‘학파’를 형성했으며 훗날 ‘~가(家)’로 정리된 형태를 띠었다. 제자백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들이 다루었던 문제들은 현실적이고 절박한 것이었기에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였다.
두 극단: 병가와 농가
한쪽은 현실에 완벽하게 ‘적응’하려 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한쪽은 현실을 완벽하게 탈피/‘부정’하려 했다는 점에서 양자는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병가는 전쟁에 대한 사유를 『주역』을 토대로 전개함으로써 단순한 전투 기술 이상의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손자의 『손자병법』, 오기의 『오자병법』, 손빈의 『손빈병법』이 대표적 작품이다.
농가는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삶을 “원래의” 양상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였다. 허행, 진상 등의 사상은 왕도 쟁기질하고 왕후도 길쌈을 하는 ‘신농의 법’을 이상으로 삼았으며, 지금까지 쌓인 문명의 폐단과 찌꺼기를 모두 걷어내고 삶의 본연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병가는 전쟁의 시대에 전쟁을 정치한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로써 그 시대를 직접 돌파하려 했고, 농가는 삶의 본연으로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현재의 삶 전체를 근본에서 반성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논리와 언어의 분석
명가는 원래는 ‘변사(辯士)’ 또는 ‘변자’라 불렸다. 이들이 논리와 언어를 치밀하게 분석한 것은 전국시대라는 시대에 대한 응전으로, ‘언어’라는 존재가 당시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였기 때문이다. 당시를 언어와 실재가 흩어져 생긴 병리로 보았기에 이것을 바로잡는 것을 중차대한 시대적 과업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시대에 대한 진정한 길을 내놓지 못했고,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혜시의 10사(事)와 공손룡의 ‘백마비마론’, ‘견백론’, ‘지물론’이 유명하다.
언어에 대한 관심은 묵가에서도 발견된다. 묵자 사후 묵가는 송견, 윤문처럼 묵자 본연의 관심을 이어간 갈래와 논리와 언어의 문제에 전념한 다른 갈래로 나뉜다. 이들은 『묵경』에서 명실론과 윤리학, 자연과학, 논증 네 과목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묵가라는 학파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음양의 형이상학
동북아에서 ‘음양’은 자연철학의 개념이기도 했지만 형이상학의 개념이기도 했다.
3세기 중엽 추연을 대표로 하는 음양가 사상은 ‘천인감응’의 생각을 음양의 형이상학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음양이론과 오행이론이 결합되어 음양오행론이 정립되었고, 추연이 오덕종시설의 역사형이상학을 제시함으로써 천하통일을 전후한 시대에 영향을 끼쳤으며, 진한제국의 통일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기에 이른다.
추연의 핵심적인 사상은 역사형이상학 즉 오덕(토. 목. 금. 화. 수)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그때마다 각 덕에 일치하는 정치적 상황이 도래한다는(뒤의 왕조가 앞의 왕조를 무너뜨리면 성립함을 함축한다) 생각에 있었다. 이러한 사변은 당대 사람들 나아가 동북아 사람들 일반이 역사를 보는 눈을 모양 지었다.
진이 통일한 후 오덕종시설이 이 통일 제국의 존재론적 기초로 자리 잡는다. 전국시대 말 순자 등은 ‘천인지분’을 역설하며 추연류의 사변을 극복하고자 했지만, 천하통일 이후의 상황에서 거대한 통치이데올로기를 세우고자 했던 동중서는 ‘천인상감’의 생각을 재도입해 공. 맹의 유가사상과는 성격이 다른 사상을 구축하고자 했다.
동중서는 인간을 하늘 및 땅과 나란히 놓았으며, 천지와 인간 사이에 상응체계를 세움으로써 인간을 소우주로 생각했다.(329)
§3. 맹자와 유교 도덕형이상학의 정초
공자이후 유가 사상가들은 예. 악. 형. 정을 체계화하고자 했고, 특히 예악을 이론적 수준으로 다듬어내고자 했다. 또한 효(孝)를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로서 정립하고 그 위에서 구체적인 인간사의 관. 혼. 상. 제의 형식을 구축하고자 했다.
유학자들은 예악과 형정의 이론을 다듬어냄으로써 유교적 인성론과 정치철학의 기초를 세울 수 있었고, 이러한 이론적 기초는 한대(漢代)이래 확고하게 굳어져 한자 문명권의 토대로 자리 잡게 된다.
유학자들은 이런 이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작업만이 아니라 이를 실제 생활에 적용해 관혼상제의 매우 구체적인 틀을 만들어냈다. 유학은 이 ‘생활 코드’를 만들어냄으로써 지배자가 누구로 교체되든 또 다른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쉽게 바뀌지 않는 동북아적 삶을 지배할 수 근간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구분되는 갈래의 유가사상이 맹자에 의해 창조된다.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계열의 유학자에게 배웠다고 하며, 『시경』과 『서경』 및 『춘추』공양학에 통달했다고 한다. 맹자는 공자의 길을 잇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삶과 사상을 전개한 인물이다. 『맹자』를 제자들과 썼으며, 그의 정치철학은 왕도와 민본사상이며, 그 철학적 기초로서 성선설을 역설했다. 이 개념은 이후 성리학 시대(12세기)가 되면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른다.(334)
유가 정치철학의 정초: 인정(仁政)
맹자는 천하를 약 15년간(BC320년~305년, 53~68세) 주유하면서, 양혜왕, 양양왕, 제선왕, 추목공, 등문공, 노평공 등을 만나 유세했다.
내용상으로 맹자가 역설하는 것은 ‘인의(仁義)’이다. 공자에게서 포괄적인 가치였던 인(仁)은 맹자에 이르러 가족이라는 원초적 질서에 배당되는 덕으로 축소되며, 인(仁)과 짝을 이루는 의(義)는 국가라는 핵심적 질서에 배당되는 덕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훗날 충효(忠孝)로 정식화된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분위기에 맹자의 사상은 너무 우활(迂闊)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맹자의 논변은 매우 현실적인 주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국가가 진정 튼실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내부적 동요가 없어야 한다는 안정(安定)의 여부를 쥐고 있는 열쇠는 군주에게 있고, 군주가 인정을 베풀어 상하관계가 원만해져 안정되면 타국과의 관계도 잘 헤쳐갈 수 있다. 그러나 맹자는 단지 현실적 맥락을 말한 것이 아니라. ‘이익의 추구’ 그 자체가 담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 이익의 세계가 아닌 인의의 세계를 강조했다고 보아야 한다.
맹자가 말한 ‘인의’로 다스려지는 국가는 바로 민본(民本)의 국가이다. 백성의 뜻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세상을 그린 급진성의 근거를 맹자는 『서경』에서 찾는다. 즉 탕과 무가 걸. 주를 주살하고 나라를 세운 것은 백성이 그것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맹자의 사상을 실현한 나라는 사방 50리의 등나라였다.
유가적 도덕형이상학의 정초: 성선(性善)
도덕 형이상학은 도덕의 성격을 띤 형이상학 또는 형이상학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도덕이다. 맹자의 도덕형이상학의 핵은 ‘성선(性善)’이다. 맹자적 도덕형이상학의 출발점은 도덕의 ‘실마리(단서(端))’라는 개념이다.(344) 즉 인간에게는 누구나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실마리가 발견된다고 믿었다. 그의 지론인 ‘성선’이 성립되려면 모든 인간의 (도덕적 차원에서의)평등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345)
맹자는 인간에게서 인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네가지 마음(심(心))을 덕성의 실마리로 삼았다. ‘심’개념은 인간이 다른 존재들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능력들- 즉 지성. 의지/욕망. 감정-이다. 처음 마음은 심장을 뜻했으나 지성, 의지, 감정 등이 능력으로 의미가 또렷해지자 철학적 논의 거리가 되었다.
전국시대의 논의 대상이었던 ‘기’는 맹자의 도덕능력으로서의 ‘마음’과 연계된다. 이를 잇는 매개는 지(志)로서, 맹자는 ‘기’는 그 자체로서는 의로움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반드시 의지의 매개를 거쳐야 한다. 역으로 의로움도 의지의 매개를 거쳐야 ‘기’의 차원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맹자에게 도덕이란 초월적 존재에 의한 정초의 문제나 추상적 명법의 문제이거나 마음의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도덕은 신체 더 나아가 생명의 문제 요컨대 ‘기’의 문제이기도 했다. (348)
맹자에게 의로움은 내면에서 생동하는 기의 힘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무엇으로, 친친(親親-가까운이를 친하게 하다)의 인으로부터 시작해 넓혀갈 때에만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맹자에게 도덕이란 추상적인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생명/ 기의 차원과 맞물려 이루어지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 차원을 끝없이 넓혀가서 천하에 두루 미치는 경지까지 나아가야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전국시대 사상가들은 성을 중요한 논의 주제로 삼곤 했다. 고자는 인간에게는 선(善)이나 불선(不善)이라는 본성은 있지 않다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바깥에서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있다고 보았다면, 맹자는 인간은 본래 선(善)한 존재로서의 싹을 품고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싹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고자가 생각하는 본성의 내용은 식색으로, 인성과 물성을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렇기에 식색과 자연스러운 인정만이 내면에서 오는 것이요, 의 같은 가치들은 모두 외면에서 오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 맹자는 존재론적 층위에서의 본성이란 인간 본성의 고유함을 역설하는 것으로, 의도 인간 본성에 심어져 있음을 역설한다. (354)
맹자가 인도 의도 내면적임을 역설한 이유는 1)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전혀 다른 존재이며, 2)인성 안에는 애초에 인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선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맹자의 이런 생각은 그 논변의 정당성에서나 결론의 타당성에서 많은 논쟁거리를 안고 있다. 성의 미규정성을 주장한 고자나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 등에 비해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355)
그러나 훗날 유가사상이 동북아세계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그의 입장은 유가사상/유교의 기본 입장으로 자리 잡게 된다.
§4. 장자와 ‘천하’질서로부터의 탈주
맹자가 전국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깊이 응시하면서 정치철학과 인성론을 펼쳤다면, 장자는 시대를 넘어 삶 자체에 대해 절박하게 사유하고 그 질곡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존재론과 삶의 철학을 펼쳤다. 맹자에게 삶의 힘겨움은 매우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들, 민중들의 헐벗은 삶에서 발견된다면, 장자의 경우는 그 어떤 삶이든 띠게 되는 비극적 성격에서 발견된다.
허(虛)의 존재론
장자의 사유는 ‘허’의 존재론을 주춧돌로 하고 있다. 어떤 지식을 제시하거나, 어떤 실천적 강령을 제시하지 않는다. 세계와 삶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바꾸기를 제안한다. 그때 세계와 삶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일종의 회심(回心)의 철학이다.
장자에게 ‘세계’란 인간이 자신의 그물을 던져 만들어낸 매우 인간 중심적인 것으로, 인간은 그렇게 형성된 ‘세계’에 살아가면서 문화, 입장, 편견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주관(성심(成心))에 사로잡혀 갖가지 가치들을 투영해 사물들을 위계화하고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식과 가치 전체에 비판을 가하고, 해방된 세계를 바라보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그물을 걷어 버리고 객관적인 인식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 허심(虛心)으로 살아가아가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 철학이다. 존재론적 도그마를 경계하고 도그마로부터 해방된 경지에서 드러나는 도를 추구할 뿐이다.
도에 비추어 각종 미망(迷妄-일의 이치를 가리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이명(以明)’이라 한다. 이러한 경지에 들기 위해서는 어떤 초월적 차원에 올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재적 차원에서 어떤 아무-것도-아님의 위치에 서야 한다. 비워져 있는 곳으로서 한가운데-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그런 차원이다. 장자는 이곳을 道樞(도추), ‘도의 지도리’라고 부른다.
이 차원은 각종 ‘물’들을 가능케 하는 기와 도-잠재성-의 차원이다. 기와 도의 차원은 개별자들 사이의 온갖 차이들이 해소되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차원이다. 이 차원은 오로지 시비의 가름을 넘어서는 위대한 균형-천균(天鈞)-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며 또 시비 모두를 포용함(양행(兩行))으로써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깨달음의 차원에서 보는 이 세계는 개별자의 차원에서 보는 세계와는 판이한 세상이지만 하나의 세계이다. 장자는 이런 깨달음에 입각해 우리가 삶에서 집착하는 것들에 대해 초연하기를 권유한다.
우리가 삶에서 부여하는 숱한 사회적-문화적 가치들이 과연 얼마나 절대적인 것일까? 이런 점에서 장자는 문화세계/이화(理化)세계를 구축하려 한 공자와 대비적이다.
장자가 말하려는 것은 ‘모든 사물들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상대성이 무화(無化)되는 제동의 경지를 뜻한다. 그것은 내가 타자가 되려는 비상한 노력을 동반하는 실천적 수양이다. 즉 ‘제동-되기’는 실재적 되기이다. (364)
장자의 철학은 지식을 다투는 철학이 아니다. 모든 지식은 어떤 ‘세계’, 어떤 패러다임/에피스테메, 어떤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진리를 주장하지만, 진리란 어떤 ‘세계’안에서 성립하는 것이고 그 세계를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통하는 것’이고, 그 세계의 언어에 익숙해져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가지고 다른 믿음을 적대하고 자신들의 잣대로 타자를 매도하고, 한줌의 지식을 가지고 오만하게 군다. 누구나 어떤 잣대로 타자를 대한다. 그 잣대가 하나일 때 독단과 미망이 싹튼다.
장자가 추구하는 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요, 어떤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니요,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문제가 된 것은 더 큰 타자성들이었다. (366)
모든 사람들이 거대한 권력의 그물망에 포획되어 부국강병의 부품들로 화하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천하통일이라는 주술에 걸려 전쟁으로 내몰리던 시절에, 오히려 그물망에 포획도지 않는 ‘무용(無用)’의 장소에서 소요하는 것, 인간이 만들어놓은 작위의 틀에서 벗어나 ‘도-자연(自然)에서 노니는 것이야말로 자유와 해방의 길인 것이다. (368)
맹자의 사유와 장자의 사유는 전국시대 변법의 질서에 대한 두 상이한 응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인-되기
장자는 지배의 그물망으로부터 탈주하는 철학을 전개했다. 장자는 맹자처럼 현실에 직접 다가서는 대신에 삶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삶이 질곡에서 탈주할 수 있는 에티카를 여러 각도로 제시했다.
장자에 의하면 인간은 하늘로부터 떨어져 나와 작위의 세계를 이루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표상을 통한 관계에 익숙해졌다. 그 결과 자연은 인간이 대상화해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되면서 인간은 불행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하늘과 합일해야 하며, 자연과 화해해야 한다.
이때 인간이 하늘에 내재해 있던 잠재성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인은 천-인의 하나-됨도 긍정하고 또한 동시에 천-인의 구별됨도 존중한다. 하나-됨의 차원은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이며, 구별됨은 차원은 인간의 고유한 측면에 부합하는 경우이다. 자연에 흡수되지도 않으며 자연을 이기려고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장자적 의미에서 천인합일이다. (371)
§5. 종합적 사유의 출현
천하통일이라는 상황은 곧 종합적인 철학을 요청. 이러한 종합적 사상을 유가적, 도가적, 법가적이라는 세 갈래를 변별해낼 수 있다.
유가적 종합
순자의 사상은 직하의 다양한 사상을 유가적 관점을 핵심으로 폭넓게 수용하였다.
「수신」편에서는 기를 다스리고 마음을 수양하는 기예에 대해 논하면서도 예를 따르는 것과 스승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며,
「권학」편에서는 사물들의 의미/가치는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자리에 의해 성립함을 역설하면서도 법가적 이론보다는 군자론으로 향해있으며,
「성악」편에서는 묵자와 같은 ‘자연상태에서의 성악’을 이야기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겸애’가 아닌 ‘예와 의’를 역설하고,
「악론」에서는 바르지 못한 음악을 비판하면서도 묵자의 ‘비악’사상을 공격한다.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이란 외부적인 제약/조형 없이 내버려둘 때 ‘자연상태’에서는 악한 존재임을 말하며, 시간적으로는 태어난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할 경우 악한 존재임을 말한다.(381) 즉 순자에게 선하다는 것은 정의롭고 이치에 맞아서 공평한 치세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악이란 편벽되고 음험해서 일그러진 난세가 도래하는 것이다.
순자는 인간이란 그 본성이 바로 이렇기에 ‘예’를 통한 교화에 의해서만 선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382)
문명/문화가 인간을 선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장자와 대조적이다. 그러나 순자가 생각하는 문화세계는 상대적으로 내면적이고 인문적인 공자의 것에 비해 외면적이고 사회적이다. 즉 예를 통해 자신을 바꾸어감으로써 군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소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순자는 맹자를 비판한다.
본성이란 하늘이 주는 것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작위로서의 예의란 창조해낸 것이며, 따라서 사람이 배워서 행할 수 있고 만들어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본성과 작위의 구분이다.(383)
순자에게 중요한 것은 (맹자처럼) 원래의 선함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순자에게 교화는 적극적인 의미를 띠며, 발명과 창조라는 의미를 머금게 된다. 이러한 작위의 핵심은 학문에 있다. (맹자가 본성의 회복을 역설한다면 순자는 작위 특히 학문에 매진할 것을 역설한다.(386)
은주(殷周) 교체기로부터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천(天)’을 두려움과 절대복종의 존재가 아닌 인간 삶의 배경과 정초로서 변환시켜온 과정이 순자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음을 뜻한다. 순자는 천인지분을 역설하면서 자체로 선이 아닌 천, 즉 인간 삶에 선한 것이 되려면 ‘예’로써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흔히 동북아 사유/문화에서 인간은 자연에 귀속되어있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순자에게서처럼 자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사상도 과학기술의 철학적 기초로서 면면히 내려왔다고 할 수 있다.(387) 그렇다고 해서 순자가 하늘의 의미를 파기한 것은 아니다. 하늘은 하늘의 일이 있고 사람은 사람의 일이 있기에 서로의 직분을 다투지 않고 서로 화합하는 것이 순자의 이상이다.
순자의 사유는 ‘순수한 유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다분히 배척되었다. 그 핵심적 이유는 성악설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도가적 종합
황로지학은 어떤 분명한 학파라기보다는 황제와 노자를 근간으로 천하통일을 위한 청사진을 짜려 한 학자들의 ‘연구 프로그램’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황로’라는 개념은 한대 학자들이 전국시대 사유의 어떤 경향을 사후적으로 구성한 것이라 해야 한다.(391)
황로지학은 법가사상과 얽혀 있지만, 양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법가사상은 ‘국가’라는 이름-자리의 체계를 구축하고 그 중심에 왕이라는 기표를 놓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황로지학은 세계를 ‘일기(一氣)’의 총체로서 파악하고 그 중심에 왕의 신체를 안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법가사상도 노자의 사유를 전유해서 국가철학의 존재론적 기초로 삼았지만, 황로지학은 어디까지나 총체적 생명철학을 추구했고 그 전체 장 안에 정치를 위치짓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391)
황로지학은 우주론적 생명철학을 근간으로 하며, 최고 범주는 도와 기이다. 도는 자연법칙이다. 감각으로 접할 수 없지만 삶/ 생명에서는 느껴지는 존재이며, 현실적으로 확인되는 존재가 아님에도 세계의 모든 일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존재이다(自本自根-자기원인). ‘큼’, ‘하나’, ‘허’, ‘무명’등으로 표현되며, 도의 성격은 ‘항(恒)’/‘상(常)’으로 표현된다.
황로지학은 도와 기의 형이상학을 배경으로 해서, 마음과 생명에 대해 깊이 천착해 들어가고 그 기반 위에서 정치를 논하는 것이 핵심 특징이다. 즉 군주가 허정(虛靜)한 마음을 유지할 때 거기에 도가 깃들게 되며, 마음이 빌 때 몸이 편하듯이 군주가 ‘무위(無爲)’함으로써 백관이 ‘유위(有爲)’할 수 있다. 황로지학은 군주의 내업, 심술, 백심을 통해 무위지치의 정치철학을 정초하고자 했다.(394)
이 구도를 기(氣)중심으로 표현할 수 있다. 황로지학에서 생명은 ‘정기(精氣)’로 표현되며, 이 생명을 지키는 양생술이 핵심을 이룬다. 도/기를 몸 안에 축적하고 보존하고 발달시킬 때 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군주가 허·정한 마음을 마음 깊숙한 곳으로 내려갈 때 정기, 영기, 신명, 기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무위지치가 가능하다.
황로지학은 천하통일의 배경하에서 황제와 노자를 중심기표로 삼아 거대한 양생술적 제왕학을 구축하려 했고, 한 제국의 초기에는 통치철학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치철학의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자연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이었다. 그래서 곧 유가와 법가에게 통치철학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제왕들에게는 매력적이었기에 왕가의 관심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법가적 종합
전국시대의 질곡을 끝장내고 천하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지식인들 대부분이 생각한 바였다. 법가 사상가들은 이 상황에 가장 직접적으로/즉물적으로 대응한 인물들이었다.
인간이란 본래 악한 존재가 아닐까? 이와 같은 흐름에서 ‘예’로부터 ‘법’으로의 전환이 도래하기에 이른다.
법가사상은 제자의 종합을 꾀한 책들인 『관자』, 『덕도경』, 『여씨춘추』등을 이론적 자원으로 삼았다.
고대 동북아 정치에서의 ‘법’이란 근대적 법 개념과는 다른 철저하게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실정법이었다. 법은 사실상 군주가 내리는 ‘명’/‘령’과 ‘형’이었다.(402)
서주가 되자 법이 완화되고 ‘예’가 그것을 대체했다.
전국시대가 전개되면서 ‘예’가 속절없이 무너져가자 법가 사상가들은 상고시대의 법 개념을 부활시킴으로써 부국강병과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들에게 공(公)개념은 왕의 권력에 상관적인 것이고, 사(私)는 귀족의 권력에 상관적인 것으로 보아, 법이란 곧 왕의 의지가 귀족들을 누르고 “평등하게”적용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법가 사상의 요체는 형명지학 또는 신상필벌에 있다. 유가사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삶의 모든 차원을 농업과 군사로 환원해서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부가 되도록 했다. 연좌제를 실시,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써만 천하를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법가사상에는 ‘세(勢)’와 ‘술(術)’도 중요하다. 이는 신도의 사상으로 정치의 핵심인 권력은 바로 이름-자리에서의 권력관계-명령과 상/벌을 내릴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고 보았다. 이러한 자리의 체계는 종법적 구도에서 끌어왔다.(가족질서인 ‘예’와 사회적 질서인 ‘법’)
한나라의 재상 신불해는 술(術)의 사상을 펼쳤다. 술이란 군주의 통치술을 말한다.
법가사상을 가장 투철하게 구현한 인물은 상앙이다.
법가사상은 천하통일 후에도 이런 흐름을 계속한다. 진의 법가적 통치는 ‘공포에 의한 평화’를 가져왔다.
한나라는 재통일이후 ‘무위’를 역설하면서도 동시에 ‘법’의 존중을 설하는 황로지학이을 대안으로 삼았다. 한 제국이 안정되면서 유가가 제국의 통치술로 채택되었다.
유가사상이 국교의 지위를 점한 이후에도 법가사상과 도가사상은 긴 생명력으로 동북아 역사를 관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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