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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극단의 형상들
제국의 시대와 광신
광신에 맞선 노예 소유주들
언뜻 보기에, 개인의 소극적 자유보호, 시민사회의 자율성, 정부의 특권에 대한 제한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라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평등한 권리 및 자유의 박탈 행위 앞에서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의 비판적 역사 연구가 강조하고 있듯이, 지적·정치적 정점에 있던 시기에 자유주의 지지자들은 대개 노예제도도 옹호했다(p. 50).
고전적 자유주의는 주인-인종(혹은 주인-계급)을 위한 민주주의로 발전했다(p. 51).
자유주의 대항 역사를 쓴 로수르도의 작업에서 주요한 인물들 중의 하나는 미국 남부 출신 정치사상가이자 미합중국 부통령을 두 차례 역임한 존 C. 칼훈이다. 칼훈의 다양한 저술과 연설문에서, 특히 노예제를 “명백한 선”으로 묘사했던 1837년 2월 미 상원에서의 악명 높은 연설에서,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모습은 되풀이되어 ‘광신자’로 나타난다(p. 50-51).
칼훈의 정치적 원칙은 분명하게 관신을 위기와 연결시켰다. 노예제를 유지할 남부의 ‘자유’를 수호하려는 칼훈의 주장은 광신자들의 “폐지의 정신”과 금융가들의 “예측의 정신”을 구분하는 에드먼드 버크식 고리를 동반한다(p. 53).
“맹목적 광신자들”에 대한 비판이 궁극적으로 다다른 곳은 그들의 요구가 가지는 무조건적 성격이다. 이야말로 제도화된 차이의 질서와 남부가 기대고 있는 사회적 관습의 기초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레이튼(『북부 노예 폐지론자들의 반역과 광신으로부터 남부인을 옹호함』의 저자)은 광신을 인지 능력의 결함으로 암시한다(p. 54).
드레이튼의 단언들 중 핵심은 우리가 이미 광신 논쟁의 핵심 요소로 파악했던 바로 그것, 곧 ‘관념’이다. 『남부인을 옹호함』에서 우리는 놀랍게도 정통 철학 영역의 바깥에 있는 광신 개념이 반평등주의적(그러나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주의적이기도 한) 정치사상의 여러 공격적 수사법들 중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관념의 정치인 광신은 그 무조건적인 성격(“결과는 고려하지 않고”)과 조정이나 절제에 대한 거부로 인해 지탄받게 된다(p. 56).
버크가 선견지명으로 인식한 바에 따르면, “노예제 폐지의 최초이자 가장 헌신적인 지지자들”이었던 프랑스 혁명가들은 “결과는 고려하지 않고” 관념적 권리를 무한정 확장할 것을 천명했고, 그것은 오싹한 정치적 효과를 낳게 될 것이었다(p. 57).
『남부인을 옹호함』에서 우리는 끈질기게 남아서 현재에도 널리 퍼져 있는 광신 담론의 몇 가지 주요한 측면들 ― 평등주의적이며 보편주의적인 관념에 대한 경고, 종교적 흥분의 위험성, 정치 영역 전반을 가로지르는 유비들, 병리학의 대상이자 치료의 대상으로서의 광신자, 여성의 역할 등 ― 을 관찰하게 된다(p. 58-59).
노예제에 맞선 광신자들
자신이 ‘열성의 비판 이론’ ― 여기서 광신에 대한 고찰은 자유주의 정치 이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역할을 한다 ― 이라 이름 붙인 이론을 정립하는 데 굉장한 기여를 한 조엘 올슨이 최근 책에서 보여 주는 바에 따르면, ‘광신적/광신자’(이)라는 명칭은 노예제 폐지 운동의 급진파들 사이에서는 자랑스러운 훈장 같은 것이었다(p. 60-61).
노예제 폐지론의 정치적 스타일은 맹목적 집착이나 ‘애매한 관념’보다는, 타협에 대한 윤리적 거부와 더불어 노예제를 철폐하는 문제에 있어서 숙의의 정치가 가지는 전략적 취약성에 대한 냉철한 평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p. 61).
만약 우리가 정치적 협의를 위한 일련의 기준을 적용해 본다면 말할 것도 없이 반자유적이고 불관용적이지만, 광신은 기존의 정치의 틀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필수 불가결한 해방적 기능을 수행한다(p. 62)
정치적 폭력의 정당화라는 관점에서 파악되는 광신은 대개 고통받고 억압당하는 자들과 자신을 강력히 동일시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 과정에서 공감은 존재론으로 변모하는데, 이 존재론은 정치적 주체들 및 연대 당사자들의 존재 자체에 적대가 기입된 형태를 띤다(p. 63).
제국의 영토, 특히 대영제국의 권역에서는 종교에 기반을 둔 정치적 저항을 다루는 인종주의 이론이 전개되면서 반식민 정치를 관리하는 데 ‘광신’을 핵심 용어로 활용하게 된다. 유럽의 맥락 속에서 이런 경향은 근본주의적 사회 개혁 운동을 병리화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는데, 그 주요한 대상은 아나키즘이었고, 막 등장하던 페미니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p. 64-65).
제국 지배하의 광신
종교 집단의 무장 투재에 맞닥뜨렸을 때, 인도 서북부 변경주에 있던 식민지 관료들은 이들의 용맹과 힘에 공포와 경외가 뒤범범된 느낌으로 “힌두교 광신자들”, “열정주의자들”, “마호메트를 따르는 옹고집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p. 65).
와하비파가 위협적으로 가누된 주된 이유는 그들의 규모나 전략 때문이 아니라, 무조건적 비타협성과 “두려움 없는 발언”으로부터 나오는 엄청난 권위 때문이었다(p. 66).
특수한 정치적 국면에서 특정한 이들을 통치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의해 명백히 좌우되긴 했지만, 식민지에서 광신의 개념이 이용된 사례에는 변치 않는 특징들이 많이 나타난다(p. 67).
‘광신적’인 반식민주의 폭력에 대한 자연화와 인종화로 인해 영국 병사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놀랄 만한 잔인함을 불가피한 일로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광신 개념은 종종 심원에 도사리고 있는 모방 충동을 이끌어 낸다. 즉, 상대가 광신자이기 때문에 나는 내 자신의 광기로 그의 광기에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 그의 잔인함이 나를 찾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쳐야 한다는 것이다(p. 69).
‘근본 원인들’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는 것과 같은, 광신에 대해 인과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대체로 식민지 대리인들 사이에서(광신을 단지 적대시하거나 근절하려 하기보다는) 개혁주의적인 또는 정부 중심적 접근이 존재했음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탈식민주의 이론과 서발턴 연구에서 나온 많은 주장들은 식민지 봉기의 종교적 의식을 사회경제적 차원 등 다른 원인으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p. 70-71).
구하에 따르면, 종교를 기만이나 선동의 문제로 바라보는 일은 “봉기한 군중 자체의 의지를 부정하고 이들을 어떤 다른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도구로 재현”하는 것과 같으며, 따라서 이는 “봉기자들의 정신을 오로지 세속주의적인 방식으로만 개념화할 수밖에 없었던 얄팍한 급진주의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이다(p. 71)
전복자들의 인상학
종교적 광신과 정치적 광신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롬브로소의 비유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p. 75)
우연, 격정 모방, 빈곤 때문에 정치범이 된 이들에 대한 유일한 교정법은 그 나라의 경제적 불안을 교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경제적 불안이 아나키즘의 진정한 근원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정치적 광신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경제적 광신이 있다. 우리가 과거에 정치적 광신과 맞서면서 입헌 정부와 대의제 정부를 만들고, 종교적 광신에 대해서는 예배의 자유를 허락했던 것처럼, 경제적 광신에 대해서는 경제 개혁을 통해 광신이 빠져나갈 출구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p. 76)
타르드가 가장 독창적으로 분석하는 대상은 신문의 시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집단, 곧 ‘공중’이다. 군중이 신체적 근접성과 군집적 행동으로 생겨난 격앙된, 그러나 비교적 짧은 전염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공중 ― 혹은 “정화된 군중” ―은 그보다 훨씬 무거운 존재다(p. 77-78).
타르드 역시 광신을 일종의 정치적 편집광, 곧 과도한 신념을 가진 환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사회적 “최면”이라는 형태이다. 확고함과 비타협성보다는 조작과 감염이 타르드의 주된 분석 도구이다(p. 78-79).
타르드의 작업은 또한 내가 이미 언급했던 광신의 성차gender 요소를 드러낸다.
최초로 발생한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인해 ‘여성 군중’이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던 시기에 글을 쓴 타르드는 집단행동에 나선 여성들의 사납고 ‘광신적인’ 성향을 특히나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극단의 시대와 광신
정치의 강렬함
오늘날 광신에 대한 일반적 논의의 초점은 유일하게 종교적 광신,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춰져 있다. 종종 이와 같은 논의 이면에는 또 다른 주제가 숨어 있으니, 곧 침체되고 해체되어 가는 자유민주주의의 수동적 니힐리즘이 그것이다(p. 81).
오늘날 전투적 열정에 대한 관심은 시민들의 급증하는 정치적 무관심 및 탈 정치화와 연관되어 있고, 이로 인해 몇몇 이들은 탈정치 혹은 하위 정치의 발흥이라는 관점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불어 ‘관념에 대한 집단적이고 변혁적인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종종 폭력적인) 열정’으로 정의되는 광신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촉발되고 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p. 81-82).
왈저에게 우리 시대의 난제는 이것이다. 즉, 종교 근본주의, 민족주의를 비롯한 ‘광신’의 형태에 대한 오늘날의 논쟁이 정치에서의 격정의 자리가 어디인지에 관한 기본적인 질문에 의해서 추동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자유주의자라면 모든 형태의 정치적 격정을 무매개적 몰두나 집단적 동일시로 인식할 것이고, 이것은 그 핵심 정서와 매개 요소가 (상업적) 이해관계에 있는, 숙의와 타협이라는 냉정한 정치와는 섞일 수 없는 방식이다(P. 83).
격정적 신념에 대한 왈저의 설득력 있는 사례들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광신의 목록과 겹쳐 있다. “청교도의 억압, 프랑스혁명의 공포정치, 스탈린의 숙청, 나치의 학살, 오늘날 민족주의의 살육과 추방이 과거나 지금이나 격정적으로 강렬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독단적 확신, 분노, 시기, 원한, 편협성, 증오와 같은 그들의 격정이 최악의 것이라는 점을 누가 의심할 수 있는가?(p. 85)
위 사례들의 주요한 원인이 격정 자체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
20세기의 문제
20세기 주체의 특징과 난국에 대한 바디우의 해석은 어떤 의미로는 광신, 즉 기존 사회에 맞서 급진적인 변혁성과 명백히 적대적인 임장을 단호히 견지하는 무조건적이고 격정적인 주체의 신념과 전적으로 연관되어 있다(p. 86)
강력한 정치적 신념들을 추방하는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이 복고주의는 정치적 격정의 안락사이자 동시에 이해관계의 신격화이기도 하다. 즉, 바디우의 텍스트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면 20세기의 문제는 광신의 문제인 것이다. 비록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세기』의 중심 개념은 20세기의 주체들을 규정하는 정동이며 자극인 “실재에의 격정”이다.
구체적으로 ‘실재에의 격정’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광신의 네 가지 핵심 차원 ― 재현[대의, 대표]의 거부, 세계의 부정, 주체성에 구성적인 것으로의 적대, 폭력과 잔혹함의 우세 ―을 20세기의 ‘내재적’ 탐구 속으로 결합시킨다.
네 차원들 중 첫 번째는 광신을 비난하는 핵심 근거로 이용된다. 재현의 거부는 인간의 제한적 인식능력 너머에 있는 신, 존재, 무한성 등에 대한 직접적 접근을 부정하는 입장 ― 이는 광신자들, 열정주의자들, 그리고 모든류의 ‘몽상가들’에 맞선 전통 철학의 비판이었다 ― 이 매개, 제도 혹은 (의회에서의) 대의 등을 토하지 않고 관념 원칙(평등, 덕, 윤리 등을) 집합적 삶 속에 체화하려는 특정한 정치적 광신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짐으로써 특히 표적이 된다(p. 86-87).
공포정치에 대한 헤겔의 설명을 표본으로 할 뿐만 아니라 과인에 대한 헤겔의 입장을 함축하고 있는 ‘실재에의 격정’은 현실 자체가 가진 제한적이고 부적절하며 궁극적으로는 기만적인 성질 때문에 추동된다.
20세기의 광신은 매우 특이한 형태가 된다. 재현과 그 한계에 결코 만족할 수 없으면서도, 술책과 가상으로 가득한 현실에 맞서야만 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광신은 헤겔이 이미 예견했듯이 의심과 정화의 형식을 취한다. 이는 광신이 재현을 초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광신이 재현을 끊임없이 부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연적 절대성 속에서 드러나는 실재는 가상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실재적이지는 않다. 실재에의 격정 역시 필연적으로 의심이다. 그 어떤 것도 실재가 실재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오직 허구의 체계 속에서 실재의 역할을 하는 것만이 있다. 혁명적 혹은 절대적 정치라는 모든 주관적 범주들 ― ‘신념’, ‘헌신’, ‘덕’, ‘계급적 위치’, ‘당에 대한 복종’, ‘혁명적 열정’ ―은 실재라 간주되는 그 범주 자체가 사실은 가상일 뿐이라는 의심에 의해 오염되어 잇다. 따라서 범주와 그 지시물 사이의 상관관계는 언제나 공공연히 숙청, 곧 정화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에 비판받았던 종교적 광신과 달리 또 반 전체주의 정치 심리학이 기계적으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20세기 광신은 확신을 가진 광신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지식을 상정할 수 있거나 영감을 끌어낼 수 있는 초월적이고 신성한 ‘현실’과는 달리 20세기 아방가르드의 ‘실재’는 판단을 가능케 하는 내재적 기준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부정은 파괴적 니힐리즘을 수반하게 된다. 정화하려는 의심은 손길 너머에 있는 유일무이한 것은 무,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p. 89).
바디우는 매개와 재현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진리와 실재를 오직 끊임없는 정화를 통해서 얻으려는 정치가 수반하는 의심과 파괴라는 파국적 기제의 먹잇감이 되지도 않는 어떤 절대적 신념을 형식을 사용하기 위해 ‘실재의 격정’이라는 20세기 광신을 끌어들인다(p. 91)
역사가 종말을 거부할 때
바디우는 매개와 재현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진리와 실재를 오직 끊임없는 정화를 통해서 얻으려는 정치가 수반하는 의심과 파괴라는 파국적 기제의 먹잇감이 되지도 않는 어떤 절대적 신념을 형식을 사용하기 위해 ‘실재의 격정’이라는 20세기 광신을 끌어들인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의 주장 곧 자부심이나 욕망이라는 전투적 걱정들을 일컫는 그리스 용어인 시모스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 변혁이라는 지평은 자유주의를 뜻으로 다쳤다는 동지를 최근들어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p. 92).
후쿠야마는 적수가 사라진 미국을 상황에 최적인 시대적 비전을 창출하기 위해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해겔주의 해석을 이용하는 노력을 하던 중 주류 정치 이론에 인정을 향한 욕망이라는 역사적 힘을 사유하는 시도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 했다.
각각 우월하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우울 욕망)과 대등하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대등 욕망)을 일컫는 이 티모스적 욕망들은 지금까지 대개 사회적 악으로 여겨졌다(p. 93)
탈정치화된 대등 욕망과 우월 욕망을 혼합한, 만연되어 있는 마취제와도 같은 자유주의-자본주의는 광신적이라 정의되는 평등을 향한 열정과 대비된다(p. 95).
평등을 향한 열정은 자연에 반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야말로 반광신 및 반 평등주의 담론의 핵심 논지이다. 후쿠야마에게 비타협적인 평등주의에 대한 이런 ‘자연적’ 비판은 격정의 역사적 기능에 대한 설명과 결합되어 있다.
“귀족적 지배자의 인정 욕망이라는 티모스적 격정이 역사의 진보를 촉발했고, 수 세기에 걸친 전쟁과 갈등을 통해 역사를 끌어간 것도 종교적 광신과 민족주의라는 티모스적 격정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역사의 종언은 티모스가 가진 정치적·역사적 역량이 명백히 소진될 때 시작된다(p. 96).
정치는 티모스에 대해 격정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정확하게 배치하는 계산이라는, 임상적이고 실행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슬로터다이크 역시 호전적 격정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패배했다는 점을 시인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록 상습적으로 재발하는 종교적 광신으로 인해 불안해하긴 하지만 어쨌든 완료된 자유주의의 특징으로 알려진 무관심에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시대 역사의 지적 임상의 무리에 속해있다.
니체에게서 영감을 얻은 게 분명한, 보편성이라는 질병에 대한 진단을 제시하는 슬로터다이크의 최근 저작들은 “고전적” 광신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p. 99).
그는 보편주의가 “만약 자신들의 목표를 절대화하려는 열성파들의 욕구를 제어하는 비판적인 기구를 결여하고 있다면, 통제 불능의 상태로 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그와 같은 절대화는 급속히 “선한 자들의 파시즘”으로 변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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