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순수이성비판 칸트 / 초월적 감성학 / 20.09.14 / <화니짱 발제>

순수이성비판- 제1편 초월적 감성학 (20.09.14).hwp
0.08MB

발제 목차

1편 초월적 감성학

§1

1절 공간에 대하여

§2 이 개념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설

§3 공간 개념에 대한 초월적 해설

이상의 개념들로부터 나오는 결론

2절 시간에 대하여

§4 시간 개념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설

§5 시간 개념에 대한 초월적 해설

§6 이상의 개념들로부터 나오는 결론

§7 해명

§8 초월적 감성학에 대한 일반적 주해

초월적 감성학의 맺은말

 

1편 초월적 감성학

§1

p239 : 우리가 대상들에 의해 촉발되는 방식으로 표상들을 얻는 능력(, 수용성)을 일컫어 감성이라 한다. 그러므로 감성을 매개로 대상들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감성만이 우리에게 직관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성에 의해 사고되며, 지성으로부터 개념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대상에 의해 촉발되는 한에서, 대상이 표상능력에 미치는 결(240)과가 감각이다. 감각에 의해 대상과 관계 맺는 그런 직관은 경험적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경험적 직관의 무규정적 대상을 현상이라 일컫는다.

현상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것을 나는 그것의 질료라고 부르며, 그러한 현상의 잡다한것과 일정한 관계에서 질서지어질 수 있도록 만다는 것을 나는 형식이라고 부른다.

모든 현상들의 질료는 단지 후험적으로만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것들의 형식은 그것들을 위해 모두 마음에 선험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따라서 모든 감각과 분리해서 고찰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안에서 감각에 속하는 것을 아무것도 마주치지 않는 그런 모든 표상을 초월적 의미에서 순수하다고 부른다. 그러니까 감성적 직관들 일반의 순수 형식은 마음에서 선험적으로 마주치는 것이고, 그 안에서 현상들의 모든 잡다는 일정한 관계에서 직관되는 것이다. 감성의 이 순수한 형식 그 자신도 순수한 직관이라고 일컬어진다.

 

1절 공간에 대하여

§2 이 개념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설

p243 : 공간과 시간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실재하는 것인가? 그것들은 단지 사물들의 규정 내지는 관계이되, 사물들이 직관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사물들에 속하는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은 오직 직관의 형식에만 부착해 있는 것이어서, 이런 성질이 없다면 이 술어들은 결코 어떤 사물에도 부가될 수 없는 것인가?

-> 실체:뉴턴, 속성:아리스토텔레스, 관계:라이프니치, 직관의 형식:칸트

 

p244 : 공간이라는 표상은 경험을 통해 외적 현상의 관계들로부터 얻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외적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오로지 이 표상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245) 공간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물들 일반의 관계들에 대한 어떤 논변적인 또는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 순수한 직관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 하나의 공간만을 표상할 수 있을 뿐이며, 그래서 우리가 많은 공간들에 대해서 얘기할 때, 우리는 그로써 오로지 단 하나의 동일한 공간의 부분들을 의미할 뿐이다.

공간은 무한한 주어진 양으로 표상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개념도 무한하게 많은 서로 다른 표상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고, 그러니까 이 많은 표상들을 자기 아래에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긴 하지만, 어떤 개념도 그 자체로서 무한하게 많은 양의 표상을 자기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인 양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공간은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근원적 표상은 선험적 직관이지, 개념이 아니다.

 

§3 공간 개념에 대한 초월적 해설

p246 : 초월적 해설이라는 말을 나는 한 개념을 그로부터 다른 선험적 종합 인식의 가능성이 통찰될 수 있는 원리로 설명함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면 어떻게, 객관들 자신보다 선행하며, 거기에서 객관들의 개념이 선험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외적 직관이 마음에 자리잡을 수 있는가? 그것은 명백히 다름아니라, 외적 직관이 주관 안에, 객관들에 의해 촉발되고 그럼으로써 그 객관들에 대한 직접적인 표상, 다시 말해 직관을 얻는 그런 주관의 형식적 성질로서, 그 자리를 갖는 한에서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외감 일반의 형식으로서이다.

 

p247 : 공간은 다름아니라 외감의 모든 현상들이 형식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 공간은 그 아래에서만 우리에게 외적 직관이 가능한, 감성의 주관적 조건일 따름이다. (248) 우리의 해설은, 우리에게 외적으로 대상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과 관련해서는 공간의 실재성(다시 말해, 객관적 타당성), 그러나 동시에 이성에 의해 그 자체로 사념되는, 다시 말해 우리 감성의 성질을 고려함이 없이 취해지는 사물이 있다면, 그런 사물들과 관련해서는 공간의 관념성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가능한 외적 경험과 관련해서 공간의 경험적 실재성을 주장한다. 비록 동시에 그것의 초월적 관념성, 다시 말해, 우리가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내버리고, 공간을 사물들 그 자체의 기초에 놓여 있는 어떤 것으로 취하자마자, 공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말이다.

 

p250 : 공간에서의 현상의 초월적 개념이 비판적으로 환기시키는 것은, 공간에서 직관되는 어떠한 것도 도대체가 사물 자체가 아니고, 또한 어쩌면 사물들 자체에 고유할 터인 사물들의 그런 형식이 아니라는 것, 우리에게 대상들 그 자체는 전혀 알려지지 않으며, 우리가 외적 대상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것의 형식이 공간인 우리 감성의 순전한 현상들뿐이라는 것, 그러나 그것의 진짜 대응자, 다시 말해 사물 그 자체는 그로써 전혀 인식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나 이것에 대해 경험에서는 결코 묻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2절 시간에 대하여

§4 시간 개념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설

시간은 어떤 경험으로부터 추출된 경험적 개념이 아니다.

시간은 모든 직관의 기초에 놓여 있는 필연적인 표상이다.

시간은 오로지 하나의 차원을 갖는다.

시간은 논변적인, 또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듯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 감성적 직관의 순수 형식이다. 서로 다른 시간들은 동일한 시간의 부분들일 따름이다. 그런데 오직 단 하나의 대상에 의해서만 주어질 수 있는 표상은 직관이다.

근원적 표상 시간은 무제한적으로 주어져야만 한다.

 

§5 시간 개념에 대한 초월적 해설

p253 : 나는 변화의 개념 및 이와 함께 장소의 변화로서 운동의 개념이 오직 시간표상을 통해서만 그리고 시간표상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어떤 개념도 변화가 가능함을, 다시 말해 동일한 객관에서 모순 대립적인 수렁들의 결합이 가능함을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직 시간상에서만 두 모순 대립적인 규정들이 한 사물 안에서, 곧 잇따라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6 이상의 개념들로부터 나오는 결론

) 시간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속하는 무엇도 아니고, 사물들의 객관적인 규정으로서, 그러니까 우리가 사물들에 대한 직관의 모든 주관적인 조건들을 도외시해도 여전히 사물들에게 남을 그런 어떤 것도 아니다. (254) 시간이 다름아니라 그 아래에서 모든 직관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주관적 조건인 경우에는 충분히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때 내적 직관의 이 형식은 대상들에 앞서서, 그러니까 선험적으로, 표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시간은 다름 아닌 내감의 형식, 다시 말해 우리 자신과 우리의 내적 상태를 직관하는 형식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외적 형식들의 규정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 계기를 무한히 뻗어나가는 하나의 선으로 표상하는데, 이 선 위에서 잡다한 것들이, 오로지 1차원적일 뿐인 하나의 계열을 형성한다. 이로부터 밝혀지는 것은 시간의 모든 관계들은 하나의 외적 직관에서 표현되므로, 시간표상은 그 자체가 직관이라는 사실이다.

-> 외적 직관(공간)? 그렇다고 한다면, 시간의 공간화, 공간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인가?

) 시간은 모든 형상들 일반의 선험적인 형식적 조건이다. 모든 외적 직관의 순수형식으로서 공간은 선험적인 조건으로서는 순전히 외적인 현상들에만 제한된다. 이에 반해, 모든 표상들은, 그것들이 외적인 사물들을 대상으로 가지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그 자체로서 마음의 규정들로서 내적 상태에 속하는 것이고, 그런데 이 내적인 상태란 내적 직관의 형식적 조건 아래에, 그러니가 시간에 속하는 것이므로, 시간은 모든 현상들 일반의 선험적 조건이다. (256) 우리의 주장들은 시간의 경험적 실재성을, 다시 말해 언제든 우리의 감관에 주어짐직한 모든 대상들과 관련해 객관적 타당성을 가르쳐 준다. 우리의 직관은 항상 감성적이므로, 시간 조건에 종속하지 않을 어떠한 대상도 결코 경험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7 해명

p257 : 시간은 물론 실재적인 무엇, 곧 내적 직관의 실재적 형식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내적 경험과 관련하여 주관적 실재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나는 실제로 시간표상과 시간상에서의 나의 규정들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간은 실제로 객관으로 볼 수 없고, 나 자신을 객관으로서 표상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258) 시간은 대상들 자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것들을 직관하는 주관에 달려 있는 것이다.

 

p260 : 공간과 시간이 경험에서 추상된 현상들의 관계들이 되어버린다면, 그들은 실재하는 사물들과 관련한 선험적 수학 이론들의 타당성을, 적어도 명증적 확실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8 초월적 감성학에 대한 일반적 주해

p262 : 공간과 시간은 그 방식의 순수 형식들이고, 감각 일반은 그 질료들이다. 전자를 우리는 오로지 선험적으로, 다시 말해 모든 현실적인 지각에 앞서 인식하므로 그것을 순수 직관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후자는 우리 인식에서 후험적 인식, 다시 말해 경험적 직관이라 일컬어지는 것을 이루는 그런 것이다.

 

p266 : 경험적 개념들과 이것들이 기반하는 경험적인 직관은, 순전히 경험적인 다시 말해 경험 명제인, 그러니까 기하학의 모든 명제들의 특징인 것과 같은 필연성과 절대적 보편성을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종합명제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할 수 없다.

순전한 개념들로부터는 전혀 아무런 종합 인식도 얻을 수 없고, 오로지 분석적 인식을 얻을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은 명료한 일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직관 중에서 여러분의 대상을 선험적으로 주어야 하며, 이 대상 위에 여러분의 종합 명제를 세워야 한다.

 

p267 : 우리의 직관 방식은 근원적이 아니라, 다시 말해 그것을 통해서 직관의 객관의 현존조차도 주어지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객관의 현존에 의존적이고, 그러니까 주관의 표상력이 그것에 의해 촉발됨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감성적이라 일컫어진다.

 

초월적 감성학의 맺은말

p272 : 이로써 우리는 선험적 종합 명제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초월철학의 일반적 과제 해결에 요구되는 요소 가운데 하나를 가진 셈이다. 곧 그것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선험적인 순수 직관들로, 우리가 판단에서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개념을 넘어가려 할 때, 개념 내에서는 발견할 수 없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직관 중에서는 발견할 수 있고, 저 개념과 종합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것을 만난다. 그러나 이 판단들은 바로 이런 근거에서 감관의 대상들 이상에는 결코 이를 수 없고, 오직 가능한 경험의 객관들에만 타당할 수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