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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칸트 / 초월적 논리학 / 20.09.15 / <화니짱 발제>

순수이성비판- 제2편 초월적 논리학 (20.09.15).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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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목차

2편 초월적 논리학

서론 초월 논리학의 이념

I. 논리학 일반에 대하여

II. 초월 논리학에 대하여

III. 일반 논리학을 분석학과 변증학으로 구분함에 대하여

IV. 초월 논리학을 초월적 분석학과 변증학으로 구분함에 대하여

 

1편 초월적 논리학

 

서론 초월 논리학의 이념

 

I. 논리학 일반에 대하여

 

p273 : 우리 인식은 마음의 두 원천으로부터 유래한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원천은 표상들을 받아들이는 능력(, 인상들의 수용성)이고, 두 번째 원천은 이 표상들을 통해 하나의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즉 개념들의 자발성)이다. 전자에 의해 한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후자에 의해 이 대상이 (마음의 저 순전한 규정인) 저 표상과 관련하여 사고된다.

 

p274 : 우리가 우리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든 촉발되는 한에서, 표상들을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의 수용성을 감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면, 이에 반해 표상들을 스스로 산출하는 능력, 바꿔 말해 인식의 자발성은 지성이다.

-> 프로이트의 구도로 보자면, 감성은 이드, 지성은 자아?

 

p275 : 일반 논리학, 그 중에서도 순수 논리학은 그러므로 순정한 선험적 원리들만을 취급하는 것이고, 이성과 지성의 규준(Kanon)이다. 그러나 내용이야 어떻든지 간에(경험적이든 초월적이든) 그것들을 사용하는 형식과 관련해서만 그러하다. 반면에 일반 논리학이, 심리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바, 주관적인 경험적 조건들 아래에서의 지성사용의 규칙들에 지향되어 있다면, 그것은 응용 논리학으로 일컫는다.

 

II. 초월 논리학에 대하여

p277 : 일반 논리학은 인식의 이런 근원에는 관여하지 않고, 표상들이 애당초 선험적으로 우리 자신 안에 있든 아니면 단지 경험적으로 주어지든 간에, 그 표상들을 지성이 사고할 때 그것들을 상호 관계시키는 데 사용하는 법칙들에 따라서만 고찰한다. 그러므로 일반 논리학은 표상들이 어디에서 유래하든 그 표상들에 적용될 수 있는 지성 형식만을 다룬다.

사람들이 유념해야만 하는, 하나의 주의를 해둔다. 곧 선험적인 모든 인식이 아니라, 단지 그것들에 의해 어떤 표상들이 (직관이든 개념이든) 오로지 선험적으로 적용된다거나 또는 선험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과,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러한가를 우리가 인식하는, 그런 선험적 인식(priori)을 초월적(transcendental, 다시 말해 인식을 가능하게 함 내지는 인식을 선험적으로 사용함)이라고 일컫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간도 공간의 어떠한 선험적인 기(278)하학적 규정도 초월적 표상이 아니고, 이런 표상들은 전혀 경험에 근원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인식과, 그러면서도 이 표상들은 경험의 대상들과 선험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이 초월적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각주6 : “낱말 초월적은 모든 경험을 넘어가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에 선행하면서도(즉 선험적이면서도), 오직 경험 인식을 가능하다록 하는 데에만 쓰이게끔 정해져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 형이상학 서설]

 

p278 : 그러한 인식들의 근원과 범위와 객관적 타당성을 규정하는 그러한 학문은 초월 논리학이라고 일컬어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학문은 순전히 지성과 이성의 법칙들만을 다루고, 그것도 오로지 이 법칙들이 대상들과 선험적으로 관계 맺는 한에서만 그러하며, 그러니까 경험적 인식이든 순수한 이성 인식이든 구별 없이 관계하는 일반 논리학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III. 일반 논리학을 분석학과 변증학으로 구분함에 대하여

p279 : 예부터 유명한 질문은 진리란 무엇인가?’이다. 여기서 진리란 곧 인식과 그 대상의 합치라는 진리의 낱말 풀이는 주어지고 전제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알기를 요구하는 것은 개개 인식의 진리(참임)의 보편적이고 확실한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무릇 진리의 기준이란 모든 인식들에 대해 그것들의 대상들의 구별 없이 타당할 터인 그런 기준이겠다. 그러나 이런 기준의 경우 인식의 모든 내용(객관과의 관계맺음)은 도외시되는데, 진리는 다름 아닌 이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이므로, 인식들의 이 내용의 진리 징표를 묻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고 불합리한 일임은 명백하다. (280) 이 기준들은 단지 진리의 형식, 다시 말해 사고 일반의 형식에만 관련한 것으로, 그런 한에서 전적으로 옳지만, 충분하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어떤 인식이 논리적 형식에는 온전히 적합할지라도, 다시 말해 자기 자신과는 어긋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그 인식은 언제나 대상에는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논리학은 어쨌든 지성 및 이성의 전 형식적 업무를 요소들로 분해하고, 그 요소들을 우리 인식의 모든 논리적 평가의 원리로 제시한다. 따라서 논리학의 이 부문은 분석학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적어도 진리의 소극적인 시금석이다.

 

p281 : 한낱 평가를 위한 규준(canon)인 저 일반 논리학이 객관적인 주장들을 실제로 산출하기 위한, 적어도 객관적 주장들의 환영을 위한, 기관(organon)으로 사용되었고, 그러니까 실제로 그렇게 요용되었다. 그래서 기관으로 잘못 생각된 일반 논리학은 변증학이라 일컬어진다. 이제 우리가 확실하고 유용한 경고로(282)주의할 수 있는 것은, 기관으로 간주된 일반 논리학은 항상 가상의 논리학, 다시 말해 변증적이라는 것이다.

 

IV. 초월 논리학을 초월적 분석학과 변증학으로 구분함에 대하여

p282 : 순수 인식의 사용은 그것이 적용될 수 있는 대상들이 우리에게 직관에서 주어진다는 조건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직관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인식에는 객관들이 결여되는 것이고, 그러면 인식은 완전히 공허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 사물을 통한 직관(감성)이 우리의 개념을 객관의 세계와 연결시켜 준다.

p283 : 순수한 지성 인식들과 원칙들을 우리에게 질료(객관들)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 경험의 한계 너머까지도 사용하는 것(..)은 순수한 지성의 순전히 형식적인 원리들을 질료적(실질적)으로 사용하여,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도 않고, 아니 어쩌면 결코 어떤 방식으로도 주어질 수 없는 대상들에 대하여 무차별적으로 판단하는 위험에 빠진다. 그러니까 이 초월적 분석학은 본디 단지 경험적 사용을 평가하는 규준(kanon)일 뿐이므로, 만약 사람들이 그것을 보편적으로 무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기관(Organon)으로 써서, 감히 순수한 지성만으로써 대상들 일반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주장하고, 결정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순수 지성의 사용은 변증적이 될 터이다. 그래서 초월 논리학의 제2부문은 변증적 가상의 비판일 수밖에 없고, 초월적 변증학이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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