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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들에 대한 논문

디종 아카데미가 제시한 질문: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p. 47)?

 

인류의 두 가지 불평등(p. 49)

1)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 나이·건강·체력의 차이와 정신이나 영혼의 자질 차이로 성립

2)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

-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

일부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쳐 누리는 갖가지 특권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다거나 더 존경을 받는다거나 권력을 더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타인을 복종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특권들에 의해 성립된다.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문제: 사물이 진보하는 가운데 폭력에 이어 권리가 생기고 자연이 법에 굴복한 시기를 지적하는 일. 그리고 어떤 기적의 연쇄로 인해 강자가 약자에게 봉사하고, 인민이 현실의 행복을 대가로 하여 관념 속에서 안식을 찾기로 결심했는가를 설명하는 일이다.

 

주석35(p. 184): 루소는 사회 내의 개인들을 구분하는 법칙은 개인들의 동의에 의해서만 제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동의가 있을 때, 자연에 의해 형성된 불평등은 인간에 의해 부과되는 불평등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인류가 어떻게 이런 변모를 겪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핵심 주제이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추구할 수 있는 연구는 역사적인 진실이 아니라 다만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이라고 보아야 한다(p.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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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연 상태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인간을 그 기원을 통해, 이를테면 종의 최초 발아를 통해 검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p. 55).

 

물리적 인간(p. 55~66)

인간을 자연의 손에서 갓 나온 그대로의 상태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거기서 어떤 동물보다는 약하고 민첩하지 못하지만 결국 그 어떤 동물보다 유리하게 조직된 한 동물을 떠올리게 된다(p. 56).

 

대지는 기름진 자연 그대로 방치되고 도끼에 잘려본 적이 없는 엄청난 숲으로 뒤덮여 모든 동물에게 먹이 창고와 은신처를 제공한다(p. 56).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기후와 매서운 계절 변화에 익숙해졌고 피로를 이겨내도록 단련되었으며 벌거벗은 몸으로 무기도 없이 다른 야수로부터 자기 생명이나 먹이를 지키거나 그들 앞에서 재빨리 도망쳐야 했다. 이리하여 인간은 건장하고 거의 변치 않는 체질을 가지게 되었다(p. 57).

 

동물보다 더 무서운 적으로서 인간이 적절한 방어수단을 갖지 못하는 상대는 인간의 타고난 연약함, 유년기나 노화, 온갖 종류의 병들이다(p. 60).

 

생활에서의 극심한 불평등,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한 여가가 주어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과중한 노동이 강요되는 것, 우리의 식욕과 관능적 쾌락을 쉽사리 자극하고 만족시킬 수 있는 재간, 부유한 사람들에게 변비를 일으킬 동·식물성 즙을 제공하여 소화 불량으로 괴롭히기 일쑤인 너무도 희귀한 음식들, 그나마 굶주리기 일쑤지만 경우에 따라 과식하게 마련인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없는 먹을거리, 그리고 밤샘과 온갖 종류의 무절제, 온갖 정념의 과도한 흥분, 정신의 피로와 소모, 누구나 경험하며 그래서 영원토록 영혼을 좀먹는 무수한 비애와 고통.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당하는 불행의 대부분이 우리 자신의 탓이며 따라서 자연이 명령한 소박하고 일정하며 고독한 생활 양식을 간직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고약한 증거들이다(p. 62).

 

적절히 처방된 의학이 우리에게 아무리 유용하다 하더라도, 자연 치유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병들어 혼자 버려진 미개인이 자기의 병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와 비교해볼 때 미개인의 처지가 우리보다 오히려 낫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p. 63).

 

사회화하고 노예화한 인간은 연약하고 겁이 많아지며 비굴해진다.

인간과 동물은 자연에 의해 동등한 대우를 받으므로 인간 스스로가 그가 길들이는 동물보다 그 자신에게 더 많은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을 더욱 타락시키는 특별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p. 64).

 

발가벗은 채 집도 없이 산다거나 그 밖에 지금의 우리가 그처럼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갖가지 무용지물들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해서 최초의 인류가 불행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들 자신을 보존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2.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 인간(p. 66~)

동물은 본능에 따라, 인간은 자유로운 행위에 따라 취사 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동물은 자기에게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기에게 아무리 유리해도 그렇게 할 수 없으나 인간은 자신에게 해로워도 종종 그 규칙을 벗어나 행동한다(p. 66-67).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것은 지성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특질이다(p. 67).

 

자신을 개량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 인간은 환경의 도움을 얻어 다른 모든 능력을 점차 발전시켜가는 이러한 가능성을 종의 차원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차원에서도 소유하고 있다.

 

어째서 인간만이 쉽사리 어리석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이와 같이 하여 원시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즉 동물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므로 잃는 것도 없이 언제까지나 자신의 본능 그대로 있는 반면에 인간은 노쇠와 그 밖의 사고로 말미암아 그의 완성 가능성 덕분에 얻게 된 모든 것을 잃어 동물보다 더 저속한 상태로 다시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과 동물을 분명히 구별하는 거의 무제한적인 이 가능성이 인간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며, 평온하고 순진무구한 나날이 계속되는 저 원초적인 상태로부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을 이끌어낸 것도 바로 이 가능성이다. 그리고 인간의 지식과 오류, 악덕과 미덕을 몇 세기 동안 흐름 속에서 부화시켜 드디어 인간을 자기 자신과 자연에 대한 폭군으로 만드는 것도 바로 이 가능성이다(p. 68-69).

 

인간성을 탐구하는 자들이 뭐라고 하든지 인간의 지성은 정념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며 누구나 알다시피 정념도 지성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우리의 이성이 완성되는 것은 바로 이 양자의 활동에 의해서다(p. 69-70).

 

정념도 우리의 욕구에서 비롯되며 우리의 지식을 통해 진보해간다.

 

미개인들의 욕망은 육체적인 욕구를 초월하지 못한다. 그들의 세상에서 알고 있는 행복은 음식과 이성과 휴식뿐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불행은 고통과 굶주림뿐이다.

 

말을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관념을 얻고 있으며, 문법이 얼마나 정신의 작용들을 잘 훈련하고 촉진시키는지를 생각해보라(p. 74).

 

일단 언어가 필요했다고 가정하고 이제 어떻게 해서 그것이 확립되었는 가를 살펴보자(p. 77).

 

인간에게 고유한 최초의 언어,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강력한 언어, 즉 모여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쓰이기 전에 인간에게 필요했던 유일한 언어는 자연 그대로의 외침이었다(p. 78).

 

일반적인 관념은 단어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인식될 수 없으며, 특히 지적 능력은 절들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일반적인 관념을 파악할 수 없다(p. 81).

 

나는 문명의 삶과 자연의 삶 중에서 어느 것이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기 삶을 한탄하는 사람들밖에 찾아볼 수 없으며,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자기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한다. 그리고 신의 법과 인간의 법을 합쳐도 이 무질서를 간신히 막을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미개인이 일찍이 삶을 한탄하여 자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p. 85).

 

미개인은 자연 상태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본능 속에 갖고 있었으며, 사회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훈련된 이성 속에 갖고 있었다(p. 86).

우선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들은 서로 간에 도덕적인 관계도, 분명한 의무도 갖고 있지 않아서 신인일 수도 악인일 수도 없었으며, 악덕도 미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문명인들 사이에도 악덕보다 미덕이 더 많은지, 또는 그들의 미덕은 그들의 악덕이 해로운 것 이상으로 유익한지, 또는 그들이 가진 지식의 진보가 그들이 서로 행해야 할 선을 배우는 데 따라서 그들 상호간의 악을 상쇄하고도 남는지, 요컨대 보편적인 의존 관계에 복종하여 그들에게 아무것도 줄 의무가 없는 사람들에게서 모든 것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보다는, 누구에 대해서도 악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그들에게 더 행복한 상태가 아닌지 미리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p. 86-87).

 

연민은 인간의 반성하는 모든 습관에 앞서는 것이므로 더욱 보편적이고 인간에게 유익한 미덕이며,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때로는 동물들도 뚜렷한 징후를 보이곤 하는 미덕이다(p. 89).

 

동정심이란 우리를 고통받는 자의 입장에 놓는 감정일 뿐이다. 이 감정이 미개인들 사이에서는 뚜렷하지 않지만 생생하게 드러나 있고 문명인들 사이에서는 발달되어 있지만 약하게 드러나 있음이 사실일지라도 그 같은 사실은 결과적으로 내 주장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p. 91).

 

이기심을 낳는 것은 이성이며, 그것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은 반성이다. 이 반성에 의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를 방해하고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난다. 인간을 고립시키는 것은 철학이다.

 

연민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연민은 각 개체에서 자기애의 작용을 완화하면서 종 전체의 상호적 보존에 기여함이 분명하다(p. 92).

 

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 원칙과는 별 관계가 없더라도 인간이 악을 행했을 때 느끼는 혐오감의 원인은 교묘한 논거 속보다 오히려 자연의 감정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성에 따라 덕을 얻는 것은 소크라테스나 그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속하는 일일지 모르지만, 만일 인류의 보존이 인류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추론에만 달려 있었다면 인류는 벌써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p. 93).

 

인간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여러 가지 정념들 중에는 이성을 필요로 하는 열렬하고 격렬한 정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장애를 물리치며, 본래는 인류를 보존하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면 인류를 파멸시키기 십상일 만큼 무서운 정념이다(p. 94).

 

우선 정념들이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억제를 위한 법률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 정념들이 날마다 우리들 사이에서 일으키고 있는 무질서와 범죄는 이 점에서 법률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무질서가 혹시 법률 자체와 함께 생긴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랑의 감정 속에 깃든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구별하도록 하자. 육체적인 것이란 이성끼리 서로 결합하게끔 하는 일반적인 욕구다. 정신적인 것이란 그 욕구를 결정하여 전적으로 하나의 대상에 고정시키거나 적어도 그 선택된 대상을 위해 한층 고도의 정력을 그 욕구에 쏟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신적인 것이란 사회적 관례에서 생기는 인위적인 감정으로, 여자들이 자기의 지배력을 확립하고 본래 복종해야 할 자기 성을 우위에 두기 위해 온갖 수완과 주의를 기울여 찬양하고 있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쉽사리 알 수 있다(p. 94-95).

 

다른 모든 정념과 마찬가지로 사랑 또한 그토록 자주 인간에게 많은 불행을 가져오게 만드는 저 격렬한 열정을 사회 속에서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미개인들을 자신들의 야수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 죽이는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견해가 경험에 위배되는 만큼 더욱 터무니없는 것이다(p. 96).

 

원시의 인간은 일도 언어도 거처도 없고, 싸움도 교제도 없으며, 타인을 해칠 욕구가 없듯이 타인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어쩌면 동류의 인간을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그저 숲속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정념의 지배를 받을 뿐 스스로 자족하면서 자신의 상태에 맞는 감정과 지적 능력만을 갖고 있었다(p. 98).

 

오늘날 사회의 여러 계층을 지배하고 있는 교육과 생활 양식의 놀라운 다양성을,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생활을 하고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동물이나 원시인의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함이나 단조로움과 비교해보면, 인간과 인간의 차이가 사회 상태보다 자연 상태에서 훨씬 적으며 아울러 자연적 불평등이 인류에게는 제도의 불평등에 의해 한층 증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p. 100).

 

어떤 자가 폭력으로 지배하면 다른 사람들은 강자의 온갖 변덕에 굴복하여 한탄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원시의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굴종과 지배가 무엇인지 이해시키기조차 어려울 것이다(p. 100).

자연 상태에서는 불평등을 거의 느낄 수 없으며 그 영향도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했으므로, 이제 나는 그 불평등의 기원과 발전을 인간 정신의 지속적인 진보 속에서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자기 '완성 가능성'이나 사회적인 덕성, 그 밖에 자연인이 잠재적으로 받은 여러 가지 능력은 그 자체만으로 결코 발전할 수 없으며, 그 발전을 위해서는 외부적인 원인의 우연한 협력이 필요했음을 이미 밝혔으므로 이제 나는 인간 종을 손상시킴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완성하고 인간을 사교적으로 만듦으로써 사악하게 하며 마침내는 인간과 세계를 까마득한 출발점에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지점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우연을 검토하고 비교해 보려 한다(p.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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