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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 칸트 /제3장 순수 이성의 이상/ 20.10.16 / 화니짱
발제 목차 |
제2부 초월적 변증학 제2권 순수이성의 변증적 추리들에 대하여 제3장 순수 이성의 이상 제1절 이성 일반에 대하여 제2절 초월적 이상에 대하여(초월적 원형) 제3절 사변 이성이 최고 존재자의 현존을 추리하는 논거들에 대하여 사변 이성에 의해서는 오로지 신의 현존에 대한 세 종류의 증명이 가능할 뿐이다. 제4절 신의 현존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제5절 신의 현존에 대한 우주론적 증명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필연적 존재자의 현존에 대한 모든 초월적 증명들에 있어 변증적 가상의 발견과 설명 제6절 물리신학적 증명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제7절 이성의 사변적 원리들에 의한 모든 신학 비판 초월적 변증학 부록 순수 이성의 이념들의 규제적 사용에 대하여 인간 이성의 자연스런 변증성의 궁극의도에 대하여 |
제3장 순수 이성의 이상
제1절 이성 일반에 대하여
p752 : 우리에게 이상인 것은 플라톤에게는 신적 지성의 이념, 신적 지성의 순수 직관에서의 유일한 대상, 모든 종류의 가능한 존재자들 중 가장 완전한 것 현상에서 모든 모상들의 원근거였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멀리 빗나가지 않고서도, 우리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인간의 이성이 이념들뿐만 아니라 이상들도 함유하고, 이상들이 플라톤의 것들처럼 창조적인 힘을 가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규제적 원리들로서 실천적인 힘을 가지며, 어떤 행위작용들의 완전성의 가능성의 기초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제2절 초월적 이상에 대하여(초월적 원형)
p756 : 만약 우리가 모든 가능한 술어들을 한낱 논리적으로가 아니라, 초월적으로 다시 말해, 그것들에서 선험적으로 생각될 수 있는 내용의 면에서 고구한다면, 우리는 몇몇 술어들에 의해서는 존재(임/있음)가 다른 술어들에 의해서는 순전한 비존재(아님/없음, non-being)가 표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단지 조그만 말 ‘아니다’에 의해 지시되는 논리적 부정은 본래 결코 한 개념에게가 아니라, 한 개념의 다른 개념과의 관계에 부착해 있으며, 그러므로 한 개념을 그것의 내용과 관련하여 표시하는 데는 전혀 충분할 수가 없다. ‘죽지 않는’(non-mortal-> 좀비/ undead)이라는 표현은 그것으로써 대상에서 순전한 비존재가 표상된다는 인식을 전혀 줄 수가 없고, 모든 내용을 건드리지 않은 채 남겨둔다. 이에 반해 초월적 부정(transcendental negation)은 비존재 그 자체를 의미하며, 이에는 초월적 긍정이 대립하는데, 초월적 긍정은 하나의 어떤 것으로서, 그것의 개념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존재를 표현하고, 그래서 실재성 reality(사물임 thinghood)이라 일컬어진다. 이 실재성의 의해서만, 그리고 이것이 미치는 데가지 대상들은 어떤 것 something(사물들 things)이며, 이에 반해 대립해 있는 부정은 순전한 결여(mere lack)를 의미하고, 이 부정만이 생각되는 곳에서는 모든 사물의 폐기(removal of everything)가 표상되는 말이다.
p757 : 만약 우리 이성에서 일관적 규정의 기초에 초월적 기체가 놓여 있어서, 이것이 이를테면 재료 전체를 저장하고 있고, 이로부터 사물들의 모든 가능한 술어들이 취해질 수 있다면, 이 기체는 다름아닌 실재성 모두라는 이념이다. 그렇다면 모든 참된 부정들은 다름 아니라 제한들로서, 만약 무제한적인 것(즉 모두)이 기초에 놓여 있지 않다면, 그것은 부정들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실재성 모두 소유를 통해 사물 그 자체라는 개념은 일관적으로 규정된 것으로서 표상되어 있다. 그리고 최고 실재 존재자 개념은 유일 존재자 개념이다. 왜냐하면 모든 가능한 대립해 있는 술어들 중 하나가, 곧 존재에 단적으로 속하는 것이 이런 존재자의 규정 안에서 마주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실존하는 모든 것에서 반드시 마주쳐지는 일관적 규정의 기초에 놓여 있는 초월적 이상이다.
-> ‘초월적 부정’(undead)의 반대편에 있는 ‘초월적 긍정’으로서의 신? 왜 개인은 신을 통해서만 가능한가요?
제3절 사변 이성이 최고 존재자의 현존을 추리하는 논거들에 대하여
사변 이성에 의해서는 오로지 신의 현존에 대한 세 종류의 증명이 가능할 뿐이다.
p769 : 사람들이 이런 의도에서 택함직한 모든 길은, 첫째로 일정한 경험 및 그를 통해 인식된 우리 감성세계의 특수한 성질에서 시작하여, 그로부터 인과성의 법칙들을 따라 세계 밖에 있는 최고 원인에까지 올라가거나, (-> 자연=신/신학/ 경이로운 자연을 보며 신을 확신)
또는 둘째로 오로지 불특정한 경험, 다시 말해 여느 현존재를 경험적으로 기초에 두거나(-> 보편적 경험, 주관이 빠진 세계/ 뉴턴의 절대공간 : 칸트한테는 의미가 없음. 공간이 직관을 통해 구성되므로./ 천체론 / 현재의 물리학)
셋째로 마침내는 모든 경험을 도외시하고, 순전한 개념들로부터 전적으로 선험적으로 최고 원인의 현존을 추리하거나이다. 첫째 증명은 물리신학적 증명(->신학적 인과론)이고, 둘째 것은 우주론적 증명, 셋째 것은 존재론적 증명이다. 더 이상의 증명은 있지 않고, 있을 수도 없다.
제4절 신의 현존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p775 : ‘이다/있다’는 분명히 실재적 술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사물의 개념에다 보탤 수 있는 어떤 것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한낱 사물 또는 어떤 규정들 그 자체의 설정이다. 논리적 사용에서 그것은 단지 판단의 연결어일 따름이다. ‘신은 전능적이다(/하다)’라는 명제는 객관(776)을 갖는 두 개념, 곧 신과 전능을 포함한다. ‘이다/있다’라는 작은 말은 거기에 덧붙여진 또 하나의 술어가 아니라, 오히려 단지 술어를 주어와 관련지어 정립한 것 뿐이다.
현실적인 100탈러는 가능적인 100탈러보다 조금도 더 함유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나의 재산 상태에서는 100탈러의 순전한 개념에서보다 현실적인 100탈러에서 더한 것이 있다. 대상은 그 현실성에서 한낱 나의 개념 중에 분석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의 규정인 나의 개념에 종합적으로 보태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개념 밖에 ‘있다’에 의해 생각된 100탈러 자신이 조금도 증가되지는 않으면서도 말이다.
우리가 실존을 순수 범주에 의해서만 생각하고자 한다면, 실존을 순전한 가능성과 구별하는 징표를 하나도 댈 수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779) 그러므로 최고 존재자의 현존을 개념들로부터 증명하려 한 그 유명한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증명에서의 온갖 노고와 작업은 헛된 것이다.
제5절 신의 현존에 대한 우주론적 증명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p780 : 우주론적 증명인즉 다음과 같다 : 무엇인가가 실존한다면, 하나의 단적으로 필연적인 존재자도 실존해야만 한다. 그런데 최소한 나 자신만은 실존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존재자가 실존한다. (782) 이 우주론적 증명은 그의 기초를 정말로 확실하게 놓기 위해 경험 위에 발을 딛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마치 순정한 선험적인 순수 개념들에 전 신뢰성을 두고 있는 존재론적 증명과는 구별되는 것인 양 외관을 꾸미고 있다. 그러나 우주론적 증명은 이 경험을 오로지 곧 필연적 존재자 일반의 현존으로 나아가는 단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필연적 존재자의 현존에 대한 모든 초월적 증명들에 있어 변증적 가상의 발견과 설명
p789 : 나는 한 필연적인 존재자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실존하는 것의 조건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을 논리적으로 완성할 수 없지만, 결코 이 필연적인 존재자에서 존재론적으로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p792 : 이제까지의 고찰에 따르면, 최고 존재자라는 이상은 다름이 아니라, 세계 내의 모든 결합을 마치 최고로 충족한 필연적 원인으로부터 생긴 것처럼 보는, 이성의 규제적 원리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규제적 원리가 구성적 원리로 바뀌게 된다.
제6절 물리신학적 증명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p796 : 이성은 자연의 놀라움과 세계구조의 장엄함에 눈길을 닿자마자 마치 꿈에서 깬 듯, 모든 심사숙고하는 주저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위대함에서 위대함으로, 마침내 최고의 위대함에까지 올라가고, 조건적인 것에서 조건으로, 마침내 최상의 무조건적인 창시자에까지 올라간다.
p800 : 이렇듯이 최고 존재자인 유일한 근원존재자의 현존에 대한 물리신학적 증명의 기초에는 우주론적 증명이 있지만, 우주론적 증명의 기초에는 존재론적 증명이 놓여 있다. 이 세 가지 길 외에 사변 이성의 길은 더 이상 열려 있지 않으므로, 만약 어디선가 모든 경험적 지성사용을 훨씬 넘어서는 숭고한 명제(신은 현존한다)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 가능하다면, 순정한 순수이성개념들에 의한 존재론적 증명은, 유일하게 가능한 증명이다.
제7절 이성의 사변적 원리들에 의한 모든 신학 비판
p801 : 이성 신학은 그의 대상을 순전히 이성을 통해, 순정한 초월적 개념들을 매개로 해서 생각하거나, 우리 영혼의 자연본성에서 빌려온 한 개념을 통해 최고 예지자로 생각한다. 전자는 초월적 신학이라고 일컬어지고, 후자는 자연적 신학이라 일컬어져야 할 것이다. 초월적 신학만을 용인하는 이는 이신론자라 부르고, 자연적 신학도 받아들이는 이는 유신론자라고 부른다.
근원존재라로서 전자는 한낱 세계원인을 표상하고, 후자는 세계창시자를 표상한다.
p809 : 최고 존재자는 이성의 순전한 사변적 사용에 대해서는 순전한, 그러나 오류에서 자유로운 이상으로 남는다. 그것은 인간의 전체 인식을 완결하고 왕관을 씌워 주는 개념으로, 그것의 객관적 실재성은 이런 사변적인 방식으로는 증명될 수 없지만, 또한 반박될 수도 없는 것이다. -> 도구로서 종교가 필요한 칸트. 루소의 시민종교(세속종교->시민단체) : 아즈마 히로키 “고독한 존재라 사회를 이룰 수 없는데, 사회를 만드는데 그게 시민종교”
초월적 변증학 부록
순수 이성의 이념들의 규제적 사용에 대하여
p810 : 인간의 이성은 이 한계를 넘어서려는 자연스런 성벽을 갖는다는 것, 초월적 이념들은 범주들이 지성에게 그러한 것과 똑같이 이성에게 자연적이라는 것, 그럼에도 범주들이 진리로, 곧 우리 개념들의 객관과의 합치로 이끄는 것과는 달리, 이념들은 순전한,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가상을 낳는다. (812) 그럼에도 이 점은 지성개념들에게 최대한의 외연 확장과 더불어 최대한의 통일성을 부여하는데 기여한다. (816) 이성을 위하여, 곧 모종의 원리들을 세우기 위해서 경험이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규칙들을 그러한 것을 찾아야 하고,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방식으로 인식에게 체계적 통일을 부여해야 한다.
인간 이성의 자연스런 변증성의 궁극의도에 대하여
p832 : 이념들은 여기서 우리 인식을 경험이 줄 수 있는 대상들 너머까지 확장하는 구성적 원리들이 아니라, 잡다한 경험적 인식 일반의 체계적 통일의 규제적 원리들이다. 경험적 인식은 이 원리들에 의해 자기 자신의 한계 안에서, 이런 이념들 없이 순전한 지성원칙들의 사용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개척되고 교정될 것이다.
p833 : 첫째로 영혼론에서 우리 마음의 현상들을 내적 경험의 실마리에 연결하고자 한다. 마치 우리 마음이 단순한 실체로서, 인격적 동일성을 갖고 적어도 생존 중에는 고정불변적으로 실존하는 것처럼 그렇게 연결하고자 한다.
둘째로 우주론에서 내적 외적 자연현상들의 조건들을 그러한 결코 완결될 수 없는 연구에서, 마치 자연현상들이 그 자체 무한하고 또 최초의 또는 최상의 항이 없는 것처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현상들의 바깥에 그 현상들의 순전히 예지적인 제일의 근거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근거들을 자연설명의 연관 속에 결코 넣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로서는 그것들을 전혀 알지 못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신학과 관련해 오직 언제나 가능한 경험의 연관에 속함직한 모든 것을, 마치 이 경험이 하나의 절대적인 그러나 철두철미 의존적인 그리고 언제나 감성세계 안에서 조건적인 통일을 이루는 것처럼 보아야만 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마치 모든 현상들의 총체가 유일한 최상의 모든 것을 충족하는 근거를 자기 바깥에 갖는 것처럼, 말하자면 독립적이고 근원적이며 창조적인 이성을 갖는 것처럼 보아야만 한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최고예지자로부터 세계질서와 그 세계질서의 체계적 통일성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로 지혜로운 원인이라는 이념으로부터, 그에 따라 이성이 세계 안에서 원인들과 결과들을 결함함에 있어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데 가장 잘 사용될 수 있는 규칙을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835) 이 존재자는 오직 이념 중에서만 기초에 놓이는 것이지, 그 자체로서 놓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순전히 사변적인 이성이 우리에게 신에 대해서 주는 초월적이고 유일하게 규정적인 개념은 이신론적이다. (844) 세계 전체의 유일한 원인으로서 최상의 예지자의 전제는 물론 한낱 이념 중에서이지만 항상 이성에게 유용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다. (847) 그렇게 해서 우리는 목적론적 결합의 체계적 통일의 규제적 원리를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목적론적 결합을 미리 규정해서는 안 되고, 단지 그것을 기대하면서 물리-기계적인 결합을 보편적인 법칙들에 따라 추구할 수 있을 뿐이다.
p854 : 이렇게 해서 무릇 모든 인간의 인식은 직관들로 시작하여, 거기서부터 개념들로 나가고, 이념들로써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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