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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칸트 / 2장 순수이성의 이율배반 / 20.10.12 / 화니짱

제2장 순수이성의 이율배반(20.10.12 수정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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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목차

2부 초월적 변증학

2권 순수이성의 변증적 추리들에 대하여

2장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1절 우주론적 이념들의 체계

2절 순수 이성의 반정립론

초월적 이념의 첫째 상충

첫째 이율배반에 대한 주석

I. 정립에 대한 주석

II. 반정립에 대한 주석

초월적 이념의 둘째 상충

둘째 이유배반에 대한 주석

I. 정립에 대한 주석

II. 반정립에 대한 주석

초월적 이념의 셋째 상충

셋째 이유배반에 대한 주석

I. 정립에 대한 주석

II. 반정립에 대한 주석

초월적 이념의 넷째 상충

넷째 이유배반에 대한 주석

I. 정립에 대한 주석

II. 반정립에 대한 주석

3절 이 이성의 상충에서 이성의 관심에 대하여

4절 단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한의 순수 이성의 초월적 과제들에 대하여

5절 네 가지 모든 초월적 이념들에 의해 제기되는 우주론적 물음들의 회의적 표상

6절 우주론적 변증학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로서 초월적 관념론

7절 이성의 자기와의 우주론적 싸움의 비판적 판결

8절 우주론적 이념들에 대한 순수 이성의 규제적 원리

2장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1절 우주론적 이념들의 체계

[해설] p80 : 이상의 이율배반 해명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완전성이라는 것은 이성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성 자신이 과제로 삼은 부과된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과된 완전성의 이념은 객관에서 현실적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들의 계열에 있어서의 소급을 계속하는 지성을 위해 하나의 규칙으로서나 의의를 가질 따름이다. 이 규칙은 조건들의 계열에서 지속하나, 소급에서 이른바 단적인 무조건자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이 규칙에 의해 객관에서 그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주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으며, 이 규칙은 가능한 경험의 조건으로서 경험의 대상들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규칙은 인식의 구성적 원리가 아니라, 이를테면 규제적원리. 이것은 객관이 무엇인가에 관해 지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객관의 완전한 개념에 이르기 위해서는 경험적 소급이 어디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관해 지시해 주는 것이다.

-> 이성을 통해서 우리는 객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다만 객관에 이르려는 경험적 소급 시도의 어떤 부분에 논리적 문제가 있는지 비판할 수는 있다. 규제하고 견제하는 힘으로서 의미가 있다.

 

p81 : 칸트는 양, 질 범주에 따른 이율배반을 수학적이라 일컫고, 반면에 관계, 양태 범주에 따른 이율배반을 역학적이라 일컫는다. 이런 구분이 가능한 것은, 수학적 이율배반에서는 조건 계열의 모든 항들이 동종적인 반면, 역학적 이율배반에서는 그 계열 안에 원인, 결과나 필연적인 것, 우연적인 것과 같은 이종적인 항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 두 종류의 이율배반적 사상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있음을 고지해준다.

앞의 두 이율배반에서는 모든 항이 동종적인 만큼 무조건자(무조건자인 것이)라는 이념 자체도 조건적인(조건지어진) 것들의 계열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성이 자기모순을 피하려면 정립과 반정립 양자를 모두 배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순수한 이성으로는 세계의 시작과 끝, 그리고 세계의 근원적 구성 요소에 관해서는 발언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금 이 문제에 관한 형이상학적 우주론은 성립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뒤의 두 이율배반에서는 서로 이율배반이 되는 정립과 반정립(82)각각 이종적인 세계에 대해서 타당할 가능성이 있고, 이럴 경우 정립과 반정립은 일정한 관점에서는 다 같이 참일 수 있다. 칸트는 이에 정립은 사물 자체의 세계, 곧 예지의 세계에 대해 타당할 수 있고, 반정립은 현상의 세계, 곧 감성의 세계에 대해 타당할 수 있다고 본다. 이로써 칸트에게서 사변적 형이상학이 학문으로서 성립할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자유의 개념은 구출되어 도덕의 세계를 떠받치고, ‘필연적 존재자의 이념 곧 신의 이념은 살아남아 희망의 세계를 열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칸트의 계몽주의가 순전히 파괴적이 아니라 대안적인 비판적계몽주의임을 여실히 볼 수 있다.

-> 볼테르는 인간의 내면에는 이율배반으로 가득차 있고, 그것을 드러낼수록 좋은 것이라고 봄. 원래 인간은 그런 것. 칸트는 이성을 지성의 단계까지 성숙시켜야 한다는 입장. 칸트는 라이프니츠처럼 최고선을 믿는 것. 최고선을 달성하려면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음. 영혼불사론이 나오는 것은 이성이 불가능한 요구를 하기 때문에. 이성도 덕과 행복을 위해 신을 요청하게 됨(칸트) -> 헤겔은 이를 비판함.(결국 영혼과 신-종교적인 것으로 다시 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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