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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6장(20.11.8. 바다사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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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알랭 바디우 2020.11.08. 바다사자

 

6. 하나가 둘로 나뉜다 199947

세기는 행위의 세기, 실질의 세기, 절대적 현재의 세기이지 결코 알림의 세기, 미래의 세기가 아님. 세기 자신을 승리의 세기로 인식했음(115).

승리의 방식은 궁극적이며 전면적인 전쟁에서의 이론적이면서 실천적인 명료함임. 전쟁이 전면적이라는 사실은 승리 역시 실질적 승리하는 것을 뜻함에서 세기는 전쟁의 세기(116).

세기는 자신의 법이 둘이라고, 적대라고 표명함. 둘의 전면적 형상인 냉전의 끝은 세기의 끝이기도 함. 그러나 둘은 세 가지 의미에 따라 거부됨(116).

중심적 적대의 존재, 두 개의 주체성 존재, 세기는 적대의 무대

적대하는 서로 다른 두 수단 사이에도 폭력적인 적대 존재

 

전쟁을 통해 궁극적 합일 생산 하나의 폭력과 적대 사이의 연결은 실재에 대한 증명인 승리(117)

세기는 둘과 하나가 비변증법적 방식으로 병렬해 있는 그 어떤 형상임.

추진력을 이루는 요소는 적대 그 자체일까, 아니면 하나에 대한 욕망일까(118).

< 1965년 경 중국의 갈등 >

- 하나가 둘로 나뉜다-좌파, 둘이 하나로 융합된다-우파 간의 철학적 계급투쟁

- 하나에 대한 욕망이라는 준칙에서는 그 주체가 종합을 빌미로 고전적 일자에 호소하고 있음 의미, 이는 복고주의적

- 혁명적 행동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나눔을 욕망하는 일, 새로움에 관한 물음이 곧 상황의 특이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적 분열에 관한 물음이 되는 것

< 문화혁명(1966-1967) >

- 마오 : 사회주의 국가는 문명화된 마지막 대중정치가 되어서는 안되며 실재적 공산주의를 향해 가는 진보 아래 대중정치의 해방을 고무시켜야 함.

- 덩샤오핑 : 경제가 핵심이므로 대중이 모이는 것이 더 해롭다.

- 첨예한 대립, 분열 마오 사망 후 테르미도르 반동 같은 일격으로 덩샤오핑 장악(120) 이는 당과 프롤레타리아 개념이 주된 정치적 개념의 폐막 의미 자본주의적 사람들이 권력투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의회정치의 민주주의적 본질이라고 논평하지 않았나?

 

마오의 노선

집단주의적, 개혁주의적

덩샤오핑 노선

개발의 노선, 사회 건설의 노선

덩샤오핑의 신-자본주의는 당의 폭압 정치 하에서 펼쳐짐.

극단적인 폭력(수만 명의 죽음, 모든 사유를 쓸모없다고 보는 영원한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집으려는 시도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 전면적 해방이란(123) 지금 현재 실천되면서 선과 악 너머에 위치함. 유일한 선은 기존 질서가 만든 선일 뿐이기 때문. 이때부터 극단적 폭력은 극단적 열광과 상관관계를 맺게 됨. 문제는 모든 가치의 가치를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 이런 실재에 대한 열정에는 도덕이 배제됨. 실재에 대한 정치적 접근이 실재에 대한 열정을 가능하게 해 줌(124). 집단화할 수 있는 어떤 사유에서만 나옴.

실재를 정화하는 것은 실재를 감싸고 희미하게 만드는 현실로부터 실재를 추출하는 것. 세기는 심층에 맞서서 대(125)항할 것을 시도함. 세기는 근본 그 너머의 것에 대해 강력한 비판, 즉각적인 것과 감각적인 표현을 장려함. 세계의 이면을 포기시키고 드러나기와 동일함을 제안함. 사유에 활기를 부여하는 것은 실재

실제는 실재가 드러나는 순수 사건으로 파악, 이를 위해 현실, 모든 실체, 주장 파괴해야 함. 현실--가장이 실재에 밀착해 있기 때문에 가장의 파괴는 순수한 파괴와 동일시 됨 정화 작업이 그 끝에 도달했을 때, 현실의 총체적 부재인 실재가 곧 무가 됨 세기 속의 여러 길은 테러리스트적 허무주의가 됨 여기에 주체적으로 활기를 부여하는 것이 실재에 대한 열정 무가 아니라 창조의 길 능동적 허무주의가 인식됨(126).

오늘날 능동적 허무주의는 반동적 허무주의

세기가 실재에 대한 열정을 유지시키는 것은 벗어나기’, 현실의 파괴가 아니라 최소의 차이를 실재적인 것으로. 현실의 정화는 미세한 차이, 현실을 자신의 외양상의 일치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함. 내재적인 예외 속에 모든 촉발이 있는 것 새로움의 포착(127).

새로운 인간(128-129)

파시스트 영역

고대인의 복원, 파괴를 통한 기원의 복원, 신화적 정체성에 뿌리

맑스주의 영역

실재적 창조, 계급과 국가의 너머에 존재, 가족에 대한 적대심

세기의 끝자락에 가족은 어떤 가치로 다시 등장(129). 불가능한 주체적 새로움이라는 논제와 반복의 안락함이라는 논제 위에서 저물어가고 있음.

그러나 세기의 핵심은, 프로이트 이후로, 파멸로 이끄는 히스테리 기호에 있었음 새롭게 보여줄 것은? 무엇의 창조자임?(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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