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자유론

 

3장 개별성: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가지고 그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에 따르는 모든 위험과 불확실성을 스스로 책임지는 한 다른 사람에게서 일체의 물리적·도덕적 방해를 받지 않고 각자 생각대로 행동하는 자유가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p. 123).

 

다른 사람들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하도록 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의견의 자유도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수는 없다.

 

 

비고

1

의견의 자유

 

2

표현의 자유

 

3

행동의 자유

의견의 자유의 조건

4

행동에 대한 책임

타인이 관심을 갖는 문제에서 그들을 괴롭히지 않는 경우

 

어떤 종류의 행동이든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강압적인 통제를 받을 수 있으며, 사안이 심각하다면 반드시 통제를 받아야 한다. 나아가 필요하다면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간섭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받게 된다. 그렇지만 사람을 성가시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불가피하다(p. 124).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아니라 전통이나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관습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자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개별성을 잃게 된다(p. 125).

 

보통 사람들이 각 개인의 자발성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또는 그것이 왜 소중한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p. 125-126).

 

훔볼트 : ‘자유와 상황의 다양성이 결합하여 개별적 활력과 고도의 다양성이 발생. 이들이 독창성의 바탕이 됨(p. 126-127).

 

기록으로 남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 가운데 어느 부분이 자신의 환경과 성격에 의미 있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p. 127). 관습의 한계와 이에 대한 경계

 

1) 그들의 경험이 너무 지엽적이거나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잘못 해석했을 수 있다.

 

2) 해석은 옳을지 몰라도 그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일 수 있다.

 

3) 비록 관습 그 자체가 괜찮은 것이고 그 사람에게도 어울린다 해도, 그저 단순한 관습이니까 따른다는 생각이라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은 어느 것도 교육, 발전시킬 수 없게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자신의 분명한 이성적 판단에 따라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이성은 튼튼해질 수 없다(p. 128). 자기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선택하는 사람만이 자기가 타고난 모든 능력을 사용하게 된다(p. 129).

 

자료취합

이성에 따른 판단

확고한 의지

선택에 따른 실천

차이점 파악

자기 통제

 

 

 

인간의 삶을 완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 그 자체(p. 129)

이후의 맥락으로 볼 때 의 개입이 불필요함을 말하는 듯

 

인간은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고 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p. 130).

 

욕망과 충동 역시 신념과 자제 못지않게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충동이 강하다고 해서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지 못했을 때, 다시 말해 특정 종류의 목표와 성향은 강하게 발전하는데, 그와 함께 있어야 할 다른 것들은 약하고 활발하지 못할 때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p. 130-131).

 

어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고 더 다양하다는 것은, 분명히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타고난 자질이 더 풍부하고 따라서 남보다 나쁜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보다는 좋은 일을 할 가능성이 더 큰 셈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게으르고 무덤덤한 사람보다는 정력적인 사람이 좋은 일도 더 많이 할 수 있는 법이다.

 

 

적대적인 시선과 가공할 만한 검열의 위협의 결과, 다른 사람에게 관계되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만 관계되는 일에서조차, 개인이나 가족을 막론하고, 자신이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자기 성격과 취향에 맞는 것은 무엇인지, 또는 어떻게 해야 자신이 타고난 최고·최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최대한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재미 삼아 하는 일도,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먼저 살피고서 따라 하고, 군중 속에 묻혀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독특한 취미나 유별난 행동은 범죄처럼 기피 대상이 된다(p. 134).

 

칼뱅의 이론에 따르면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 가운데서도 아주 무거운 것이다. 그에 반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일은 복종과 관련이 있다(p. 134).

 

칼뱅주의자로 부르지 않는 사람들 중 신의 의지에 대해 덜 금욕적 해석을 하는 경우:

최고 권력자, 즉 신의 지시를 순종한다는 조건 아래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 가운데 일부를 추구해도 신의 의지에 부합할 수 있다(p. 135).

 

그저 인간적인 욕심을 모두 끊어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리스도교적 자기부정뿐만 아니라 이교도들의 자기주장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p. 136).

 

인간은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획일적으로 묶어두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잘 가꾸고 발전시킴으로써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고귀한 생각과 고결한 감정이 더욱 북돋워주게 되고,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연대의 끈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p. 136). 각 개인이 이처럼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면 개인들이 모인 사회 역시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p. 137).

 

많은 사람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새로운 실험을 주도할 뿐이다. 사람들이 그 새 길을 따라간다면 사회 전체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p. 139).

 

천재는 언제나 소수일 수밖에 없다. 천재는 오직 자유의 공기 속에서만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다(p. 140).

 

사실 독창적이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독창성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독창성이 그들을 위해서 하는 일 가운데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다(p. 141).

 

정신적인 능력이 뛰어나거나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우리는 어느 정도든 겉으로나마 또는 실제로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최고 권력을 장악하는 경향이 있다(p. 142).

 

대중만이 권력자라는 말에 어울리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정부가 평범한 정부가 되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는 데 있다(p. 143).

 

영웅 숭배론을 펼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천재 같은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갈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p. 144).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다 똑같은 물리적 환경과 대기, 그리고 기후 조건 속에서 살 수 없듯이, 인간 또한 똑같은 도덕적 기준 아래에서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없다(p. 146).

 

노 젓는 배를 타는 것이나 담배 피우는 것, 또는 음악이나 운동, 장기, 카드놀이, 아니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p. 147).

 

잘못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 친척들이 재산을 몰수해서 나눠가지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p. 147). 정말 하찮고 하찮은 사람들의 눈에 비추어 사회적 통념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이 적발되면, 마치 대단히 비정상적인 사람의 소행인 것처럼 배심원들 앞에 불려가게 된다(p. 227 / 주석 46).

 

영국에서는 이제 장사하는 것을 빼면 넘치는 정력을 쓸 데를 찾기 어렵다(p. 149).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 민족이 어느 정도는 번영을 누리다가 그만 쇠퇴기에 접어들고 만다. 언제 그런 일이 생기는가? 바로 개별성을 가볍게 여기는 때이다(p. 151).

 

중국은 초기 한때 놀라운 재능,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지혜를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수천 년 동안이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제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외국인들의 도움 덕분일 것이다(p. 152).

 

유럽이 지금까지 이런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유럽을 유럽답게 만든 요인, 그것은 바로 성격과 문화의 놀라운 다양성이다(p. 153).

 

유럽이 벌써부터 이 소중한 자산을 멀리하고 있다. 사람들을 똑같이 만들려는 중국식 이상을 향해 무섭게 나아가고 있다(p. 154).

 

사람들을 똑같게 만드는 것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우선 이 시대의 정치적 변화가 그것을 부추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끌어올리고 높은 사람들은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는 것 역시 동일한 현상을 촉진한다. 왜냐하면 교육이 사람들을 비슷한 영향권 아래에 들게 하고, 나아가 비슷한 사실과 감정을 접하기 더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p. 155).

 

과거에는 특별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 특별함 때문에 다수 대중의 생각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것들이 점차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대중도 나름대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이 확산되면서 정치 일선에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대중의 의지에 맞선다는 생각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p. 156).

 

 

4장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

 

개인이 일차적으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삶의 부분은 개별성에 속한다. 반면 사회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가 권한을 가져야 한다(p. 161).

 

사회는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회적 의무의 근거를 끌어내기 위해 계약론을 거론해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사회 속에서 사는 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기 위해 일정한 행동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1) 다른 사람들의 이익,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명시적인 법 규정 또는 암묵적인 이해에 따라 개인의 권리로 인정되어야만 하는 특정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2) 각자는 사회를 방어하는 데 또는 사회 구성원이 공격이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데 필요한 노동과 희생 중에서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한다. 법으로 부여받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해도, 타인에게 해를 주거나 그들의 이익과 상관있는 문제를 사려 깊게 고려하지 않을 경우, 사회가 직접 법을 동원하지는 않더라도 여론의 힘을 빌려 그런 행동에 대해 정당하게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단지 자신의 이익에만 영향을 끼친다면, 또는 그들이 원치 않는 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각 개인이 그런 일과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절대적인 법적·사회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p. 162-163).

 

나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개인적 덕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을 굳이 찾으라고 한다면 사회적 덕목을 꼽아야 할 것이다. 교육자들은 이 둘을 동일하게 가르쳐야 한다(p. 163).

 

세상에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천박하거나 타락한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취향이 있다. 물론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를 혐오의 대상 또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경멸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또 적절한 일일 수 있다(p. 165-166).

 

이런 사람이라도 그런 대접을 받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가 원치 않는 결과를 낳기 전에 미리 경고를 해주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면 우리는 싫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그 일은 물론이고 그 사람도 멀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로 그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모든 벌을 벌써 받고 있다고 또는 받게 되리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p. 169).

 

그 사람을 처벌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에게 그런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나쁜 일들을 어떻게 피하거나 치유할 수 있을지 가르쳐줌으로써 그가 받는 벌을 경감해 줄 방도를 열심히 찾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p. 170).

 

그에게 흥미나 관심을 보임으로써 선의로 간섭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정당한 범위 안에서 그를 가장 심하게 대하는 것은 그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규칙을 위반했다면, 그런 경우에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하므로, 그에게 응징을 가해야 하고 명백한 징계의 표시로 고통을 주어야 하며 그 처벌이 충분히 무겁도록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반론

여기서 나는 우리 삶에서 당사자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도 관계되는 것을 구분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아마 이렇게 물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타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전적으로 고립되어서 사는 사람은 없다(p. 171).

 

(또 다음과 같이 덧붙일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행위의 결과가 그런 일을 한 나쁜 사람이나 생각이 모자라는 개인에 국한될 수 있다 해도, 스스로 잘 살아갈 능력이 분명히 모자라는 사람이 모두 알아서 하도록 맡겨버려야 좋은 것인가(p. 172)?

) 도박, 과음, 무절제나 게으름, 불결함 등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법의 이름으로 이런 일도 단속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동정심과 이해관게에 의해 그 사람과 가까운 주변 사람들, 그리고 정도는 조금 덜하겠지만 사회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정한다(p. 173).

 

이런 유의 행동 끝에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공공 의무를 조금도 위반하지 않고, 또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눈에 띌 만한 손해를 주지 않는 행동이지만, 그럼에도 이른바 불확정적 또는 추정적 피해를 사회에 끼칠 수 있다. 이 정도의 불편은 자유라는 좀 더 큰 목적을 위해 감수할 수 밖에 없다(p. 175).

 

나는 사회가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보통 수준의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끌어줄 아무런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비합리적인 일을 저지르면 법적·도덕적인 처벌을 가하는 일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다는 식의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찰스 2세가 다스리던 당시 청교도들의 편협하기 짝이 없는 광신적 도덕률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처럼, 횡포를 부리는 부당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당당하게 반박한다면, 이런 행동은 당연히 높은 기상과 용기의 표상이 될 것이다(p. 177).

 

사회가 순전히 개인적인 행동에 간섭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런 간섭이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된 곳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적 윤리나 타인에 대한 의무 같은 문제를 놓고 공공 여론, 즉 압도적 다수의 의견이 가끔씩 틀리기는 하지만 옳을 때가 더 많다. 그러나 같은 다수 의견이라 해도 소수 사람들에게만 관계되는 행동에 대해 하나의 법으로 군림하는 의견은, 옳을 때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틀리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 공공 여론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다른 사람에게 좋고 나쁜 것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생각이고, 실제 대부분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쾌락이나 편의에 대해 그저 자신들의 기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 178).

 

대만 카스테라 / 공무원 연금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의 사례

 

각 개인의 취향은 의견이나 지갑과 마찬가지로 각자 고유의 관심사이다. 오직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이 용납하지 못하는 행동을 제외하고는, 모든 불확실한 문제에 대해 각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주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검열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가지 않게 스스로 자제하는 사회가 어디 있던가(p. 179)?

 

불쌍한 대중은 이런 가르침(도덕주의자와 사변적 저술가가 본색을 숨겨 놓은 종교와 철학)을 받아들여 그 바탕 위에서 좋고 나쁜 것에 관한 그들 자신의 감정을 형성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이른바 규찰대 moral police라는 것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개인의 자유까지 침범하면서 그 활동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p. 180).

 

미국에서는 다수 대중이 꿈꿀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화려하거나 고급스럽게 살면 많은 사람들이 곱지 않은 눈길을 준다(p. 184).

 

이런 것이 더 발전하면 사회주의자들의 발상, 즉 아주 미미한 수준 이상 재산을 보유하거나 육체노동자가 버는 것 이상의 수입이 있으면 대중의 눈에 수치스럽게 보이는 것과 비슷해진다(p. 185).

 

사회가 판단해서 틀린 것이면 무엇이든 법으로 금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잘못을 막을 목적이라면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인정되는 여러 가지 일마저 사회가 무제한적으로 금지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고 있다(p. 186).

) 영국과 미국의 금주법, 안식일 엄수법, 모르몬교에 대한 영국 언론의 언어폭력, 미국의 오바마 케어

 

나는 어느 사회든지 다른 사회를 강제로 문명화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악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들 눈에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이유로, 당사자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제도를 폐기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p. 193-194).

 

야만인들이 사는 지역에 문명이 스며든 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야만적인 풍습이 되살아나서 문명을 해칠까 두려워하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이 이미 과거에 정벌한 적 앞에서 무너질 수 있는 문명이라면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이미 몰락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문명이라면 하루빨리 사라지는 것이 차라리 낫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