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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심리학 세미나 / 시즌10 >
프로이드를 만나다
아가다
상담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심리학을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뻐 신청하게 되었다. 함께 공부하면서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마음을 조종하고 있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까지 조종하는 무의식을 세상에 알려줬던 프로이드를 더 깊이 알게 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고 즐거움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매력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 불안이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태풍으로, 누군가에게는 잔잔한 바람으로 일렁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 불안의 원인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그림자(열등감)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인정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고 되도록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힘들고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 때문에 자신이 고통받고 힘들어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채 무의식에 억압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외현적으로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대부분 부모의 불안에서 기인된 건강하지 못한 관계패턴으로 인하여 그 가족의 갈등이 가장 약하고 힘없는 아동에게 부모의 보이지 않은 짐까지 지워지게 된 것이다. 아동은 그 짐이 너무 무겁고, 힘들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부모님이 그 마음의 무의식에 있는 자신의 불안을 조금이라고 알아차린다면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것이라 생각된다.
저마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오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으로 마음을 치유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힘든 과정 중에 혼자가 아니고 함께 있어 준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관계중심적 사회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밝은 미래의 희망을 주는 것 이라고 생각된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최근 인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인문학은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며 생기는 감정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만큼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나누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커졌다고 생각되어 진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프로이드에 대해 더 자세히 더 깊이 그리고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공부할 수 있는 배움의 장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무늬연마소의 책임이 막중하고 할 일이 많아지고 바빠지기를 기대하여 본다.
꽃지의 에세이(21.06.16.)
- 꽃지 선지영-
누구나 그러한지 잘 모르겠으나, 사는 게 기운 빠지고 마냥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살기 싫다거나 죽고 싶다와 동일한 감정은 아니겠으나, 아마도 지금까지 헛살아 온 거 같다는 망연자실 혹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함으로부터 기인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영혼에 동맥경화가 걸린 것 같은 답답한 노잼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때를 어떻게 버텨야 할까?
나는 그럴 때 자는 걸 최고로 치는데, 뇌도 피곤한지 수면마저 나를 방해한다. 밥 먹고 바로 배 두드리면서 자는 게 최애 취미였는데 아니, 불면증이라니요. 역류성 식도염이라니요. 이건 내 문제가 아니야. 모든 현대인의 병이다!
그렇다면 다음 해결책은 술이 있겠다. 술은 모든 걸 마취, 혹은 마비시키지만 되려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 감정 하나가 미친 듯이 생생하고 집요하게 머릿속을 파고든다. 그러면 힘이 든다. 또 후유증은 말해 무엇하리. 상쾌한과 헛개차, 해장용 아아까지 달고 살아도 최소 하루는 낭비해야 한다. 누구는 해장술이 최고라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조차 루저인건지 주당팔자는 못될 듯하다. 주 1, 2회 정도로 줄이기로 한다. 그럼 뭐가 있을까.
나는 그래서 책을 읽는다. 아,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거창하게 많이 읽고 잘 읽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삶의 빈 공간을 좀 땜질하는 느낌이랄까. 심리학 세미나에 합류한지 근 1년이란 시간동안 내가 완독한 책은 두 세권에 불과하다. 바쁘단 핑계도 있지만 실로 난독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책이 읽히지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 한다.
아무리 안 읽혀도 하루에 오 분, 십 분 꾸역꾸역 읽다보면 또 그럭저럭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잠도 잘 온다.) 뭔가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나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책에 비추어 보고, 그러면서 나의 약점과 단점, 찌질함과 그나마 좀 봐줄만한 점, 내가 가고 싶은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나를 새롭고 (조금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자기혐오와 자기연민, 자기비하와 자기방어의 양극단을 오가며 늘 괴로운 느낌이 들었다. 남을 생각하는 것은 힘들지 않은데(남한테는 공감요정) 내가 나를 생각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나는 나에게 때로는 너무 관대하고 때로는 너무 가혹하니까. 책을 읽으면 그 안에 수많은 면면들이 나였다가, 또 내가 아니었다가 한다. 환기도 되고 내가 넓은 사람이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좋다.
♡ 나처럼 책이 안 읽히는 사람에게 사소한 팁 ♡
조명등을 사용할 것 – 형광등은 책보다 졸릴 때 끄러 가기가 귀찮다. 나처럼 걱정 많고 핑계대기 좋아하는 사람은 ‘불을 끄러 갈 일이 귀찮을 것이 분명하다.’라고 미리 걱정(작정?)을 해버리는 바람에 책을 안 읽고 상대적으로 조명이 필요 없는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하게 된다. 손이 닿는 곳에 조명을 사용하면 졸다가도 바로 끄고 잘 수 있고, 새벽에 자다 깨서 책을 읽을라쳐도 몸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책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책상에서 책을 보지 말 것 – 나의 경우 책상에서 책을 보겠다는 결심은 늘 했지만 ‘책상정리도 하고 먼지도 닦고 의자도 치우고 나서 봐야지’란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부담스러워져서 책읽기를 포기하곤 했다. 꼭 각 잡고 읽을 생각을 하지 말고 침대든 쇼파든 그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 어디에서든 책보기를 시작해보자.
한 번에 한 권만 보지 말 것 – 나 같은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완독에 대한 집착때문에 뭔가 시작하기 전부터 완독하지 못할까봐 걱정스러워 책읽기가 두려워지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정작 읽지도 않으면서 걱정만 하고 실제로는 책을 슬슬 피하게 된다. 그냥 여러 권을 여기저기 두고 그때그때 보고 싶고 가까이 있는 책 위주로 보면 좀 더 편하게 독서할 수 있다.
여행이나 나들이를 활용할 것 – 여행가방을 싸본 사람은 알 것이다. 평소에 집에서는 책 한 자 안 읽는 사람이 자리도 없고 무거운데 책은 꼭 넣어가려 안달이 난다는 사실을. 일상의 공간이 아닌 다른 곳, 특히 탁 트인 야외나 자연을 벗 삼은 곳에서는 왠지 책이 잘 읽힌다. 물론 ‘이런 곳에서 멋들어지게 책 읽는 나’란 스스로의 뽕에 취해 처음에는 뭔가 작위적으로 느껴지나, 이 고비를 넘기고 계속 읽다보면 실제로 책이 잘 읽히고 재미있어진다.
‘자유’에 대한 사유 한 조각
바다사자
학생들과의 관계는 교육 활동의 시작이자 마무리이다. 교문을 들어서는 그 시점부터 교문을 빠져나가는 그 순간까지의 모든 교육적 활동은 ‘관계’가 핵심이 된다. 더욱이 수업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여기에 오기까지 저는 많은 상처를 입었거든요! 내버려 두세요!’ ‘그냥 이렇게 사는게 좋아요 ㅠㅠ, 간섭하지 마세요!’를 온 몸으로 뿜어내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어디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막막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꼰대격인 내 관점에서 보면 한심하고 한 대 쥐어박고 싶고, ‘대학 안 갈거야!?’,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에‘ 소리가 절로 나온다. 수업 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고 싶어 다가가려는 나를 밀어내고 반감을 보이며 불명확한 저항의 소리 없는 외침을 보여줄 때 사실 나도 상처를 많이 받는다. 수업 중인데 폰을 수시로 보거나 문자를 날리거나 하면서 잠시도 참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에게 폰을 수업 시간 만이라도 교탁에 올려놓으라고 하면 눈이 벌게져서 소리친다. “이건 인권침해예요! 교육청에 신고해도 되죠?!” “대학 안 간다구요!!” “싫은데요!” 이들에게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는 ‘내 맘대로’와 동의어이다.
마음대로 하는 아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아이, 무엇에도 책임을 염두에 두지 않는 아이, 특히 연장자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자유와 인권을 자주 부르짖곤 한다. 이런 아이들이 주로 하는 말들을 내심 들여다보면 모두 ‘자유’와 관련된다. 밀이 그렇게나 자유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며 타인에게 해가 되면 자유는 제한받을 수 있다고 했건만 사유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유는 그저 ‘내 맘대로’인 면만 매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고독과 불안을 가져온다는 것을 잘 모르는 듯하다. 애들은 대체적으로 혼자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항상 또래들과 같이 행동하고 또래들의 비난은 그 어떤 처벌보다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같이 있음으로 일종의 (유약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독이 싫고 혼자 있는 불안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불하는 대가는 비싸다. 자발성과 개성을 포기하게 됨으로써 정작 생명력을 향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에게 토요일 날 집으로 놀러 가겠다고 해서 그 친구는 알바를 죽이고(안 나가고) 집에서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고 전화를 하니 다른 아이와 놀고 있으면서 아주 가볍게 ‘미안해’라고 별일 아닌 듯이 반응했다. 그러자 다음날 학교에 온 그 친구는 당연히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둘은 먼저 말로 실랑이를 했고 결국 싸움으로 이어졌는데 주변 아이들은 말리지도 않고 무시하거나 별관심 없이(옆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쩌는지) 서 있었다. 이런 양태를 보여주는 아이들은 모두 2000년대 초반 생들이다. 싸움이 일어난 그 다음 날 둘은 여전히 친구였고 같이 어울리고 있었고 잦은 결과(수업 결과)문제로 같이(3명) 생활봉사활동을 마지못해 하고 있었다. 풀 뽑고 화초를 심는 작업이었는데 갖은 장난과 해찰로 시끄럽게 구는 도중 물뿌리개로 상대방에게 물을 뿌리는 와중에 같이 화초를 심고 있던 지도 교사의 등에 물이 흠뻑 부어지게 되었다. 교사가 순간 ‘장난하지 말라니까!’하면서 손을 들다가 손에 쥐고 있던 흙을 흩뿌리게 되었고 그 흙 속에 든 작은 돌맹이가 그 중 한 아이의 콧잔등을 때렸다. 한 달전에 같은 반 아이와 싸우다 맞아서 콧등에 약간의 금이 갔기 때문에 상당히 아팠었나보다. 세 아이들이 동시에 교사에게 비난의 말들을 쏟아내면서 ‘샘이 돌맹이를 던졌잖아요!!’, 신고 운운하며 하도 소리를 질러 근처에 있던 다른 교사가 애들을 데리고 가면서 일단락이 되고 그 후속 조치에 의해 마무리는 부드럽게 풀렸으나 이 예는 아이들이 실수든 아니든 주로 비난만 심하게 받아왔으며 잘못에 대한 부드러운 훈계 내지 실수임을 알아주는 연장자의 따뜻함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간혹 수업 중 자는 아이에게 일어나길 종용하면 지원반(특수반) 아이를 가리키며 ‘왜 쟤도 자는데 가만두고 나한테만 야단쳐요? 아~ 짜증나’ 하면서 교실을 나가버린다. 약자임을 알면서도!, 수업 중인데도! 참으로 난감할 때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나?
프롬은 민주주의의 미래는 개인주의 실현에 달려있으나 개인주의가 공허한 껍질이 되고 말았다고 하였다. 개인주의는 권위와 비합리적 억압, 차별에 대한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근대 이후 우리의 모든 생활영역에는 자유주의가 스며들어 왔으나 서구사상이 무차별적으로 수용만 되었지 우리 것과 화해와 융합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급성장의 시대에 산업역군을 길러내야 하는 학교의 의무는 강요된 정답을 외우고 시험 점수를 잘 받으면 높은 출세와 돈과 명예까지 안게 되는 영광을 보여주었다. 생각해서는 시험 점수를 잘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는 공부를 하지 못했고, 빨리 빨리의 시대에 시간도 없었다. 빨리 성과를 보여야 했으니까!. 결국 생각은 귀찮고 어려운 것이 되었고 정답이 있는데 왜 돌아가야 하느냐 하는 짜증 섞인 반응들이 난무하는 현재 내 수업은 소크라테스 식 질문 수업을 참으로 쓸모없이 만들고 있다.
그런데 자유의 향유에는 뜻하지 않은 효과도 있었다.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교육적 행위의 바탕을 ‘자유’에 두고 있다. 자유에 바탕을 둔 ‘자율’의 실천이 대세를 이룬다. 프롬이 말하는 ‘자발성’이 발현되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하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진학 이전의 학교 경험이 ‘억압’으로 작용한 학생들이 많아 이의 해소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 뭐든지 주입식 교육 같은 거? 이거 외우고 이거 외워야지 시험을 잘 보고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그냥 저는 한 가지 집중 못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근데 막 중학교 공부시키고 그런 게 제가 이걸 해야 네가 어딜 간다 뭐 고등학교를 좋은 데 간다 전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내가 특별히 뭘 잘하는 게 있으면 거기에 맞는 고등학교를 가면 되는 거였는데 굳이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 그런 게 별로 안 좋았어요. 공부 별로 안 좋아하는데. ▶ (중학교 때) 제가 다닌 곳은 청소년 자립 센터인데 거기에서는 선생님들도 다 댄스, 베이킹, 팝아트, 식물 이렇게 꽂아서 하는 것도 있었고 아예 과목 수업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공부를 이미 포기한 상태였으니까 제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미 인식도 좋았고 그리고 주마다 사람들이 바뀌었어요, 거기는. 이제 장기 위탁하는 사람들도 있긴 있었지만 일주일마다 이렇게 사람을 받는 형식이어서 그렇게 사람들 많이 만나는 것도 좋았고 그래서 대안학교 약간 내가 생각하는 대안학교는 아니어도 이만큼 자유롭지 않을까 조금은 더 자유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 기본적으로 저는 되게 문과형인데 거기는 이과형이다 보니까 자체의 성격이 잘 맞지가 않았고 또 저는 엄격한 분위기 그런 거 싫어하거든요. 되게 싫어하기도 하고 그 잘 맞추기도 힘들고. 제가 남의 눈치를 되게 많이 보다 보니까 그런 분위기가 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쉬어야 할 때 잘 쉬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까 피로가 많이 쌓였던 것 같습니다. 그 학교에 있으면서. ▶ 사실 1, 2학년 때는 제가 기숙사에서 되게 늦게 잤어요. 새벽 2시, 3시까지 안 자고. 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을 제가 그때 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자는 시간을 줄이고 다른 걸 하거나 그랬는데 그래도 제가 아무리 늦게 자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똑같잖아요. 기숙사에 살다 보니까. 그래서 그것 때문에 제가 피곤해지고 아침에 학교에 오면 수업 시간에 자고 그러는 게 계속 반복이 되다 보니까 별생각 없이 잤던 것 같아요. 그때. ▶ 중학교 때 사실 저는 학원도 막 다니고 그래서 공부한 기억밖에 안 났거든요. 친구들과 놀아도 그냥 쉬는 시간에 잠깐 놀거나 밖에서는 잘 못 봤던 거 같아요. 바로 학원 가야 했던 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아무래도 재밌긴 했는데 조금 저를 알아갈 수 있는 계기는 없었다? 이랬던 거 같아요. 그냥 공부에만 집중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특히 중학교 생활 재밌게 했는데 고등학교 생활이 너무 재밌었다, 그냥 딱 이 정도. |
그러나 ‘자유’의 실천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고 특히 교사들의 피로도도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는 건 좋아요. 자율적인 학습 이러잖아요. 근데 이게 얼핏 보면 자율인지 자유인지 모르겠는 거에요, 수업 시간에만 봐도. 자는 애들 반 이상이고 수업 듣는 애들 몇 명 없고. 선생님께서는 핸드폰도 다 걷고 낼 때도 다들 싫은 티 낸다고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중에 가서 보면 내가 수학 시간에 뭐했지? 잤구나 이 생각 밖에 없고. 1학년 땐 제가 자다가 2학년 때 다시 공부 시작한 게 그거거든요. 내가 수업 시간에 뭘 배웠지? 선생님한테 대한 예의가 맞나? 이러다가. 보완해야 될 점이라고 하면. 하고 싶은 걸 하게 내버려 두는 건 맞는데 예의는 지키면서 진짜 해야 될 건 하면서 하고 싶은 거 하게 하는? 그런 능력을 심어주는? 그런 교육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구요. 요즘 1,2학년 보니깐 수업 시간에 안 들어가는 친구들도 몇 명 있더라구요. 그것도 아니면 아니다, 딱 이렇게 하고. 제가 지금 다 말하는 것도 다 자유랑 자율 한 글자 리을 차이인 거 같아요. 기숙사 일인데, 회복 교육 받을 때도 뭐 이거 안 받고 계속 뻐기다가 졸업하면은 나 안하는데, 이 생각으로 안하는 친구들도 되게 많거든요.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건 좋지만 그게 선을 넘으면 안된다. 이게 보완해야될 점?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 너무 자유분방하니까 그 자유를 제가 책임 못 지게 자유를 사용하는 친구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그냥 핸드폰 계속 본다든지, 이런 행동들이 정말 아쉽고. 그리고 이제 우리 후배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싸우지 말고 저는 선생님께 예의 없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는데, 저는 그런 경우엔 참지 못합니다. 선생님을 존경을 표하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끼리의 문제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따라오는 거 같아요. 좋은 분위기가 따라오는. 그래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게끔 많은 친구가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게 너무 자유로우니까. 애들이 좀 그런 경향이 있죠. 좀 막 놓아놓고 놀려는. 그런 경향이 있죠. 일단 후배들이 너무 제가 보니까 엄청 놀더라구요. 저희 1학년 때랑 똑같이. 아 물론 그 때는 노는게 주. 좋고 재밌긴 한데. 좀 빨리 깨닫고 자신의 진로 활동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러나 소기의 성과는 분명하게 있어 학생들은 스스로의 성장을 확신하고 있다.
▶ 아무래도 우리학교는 좀 발표 같은 거나 말하는 수업이 많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말하는 자신감 같은게 좀 늘었죠. 확실히 기숙사 생활을 하니까 어. 좀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좀 알았죠. 음~ 예전에는 그게 좀 강했죠, 입시교육 쪽, 대학교를 꼭 진학해야겠다. 근데 저는 지금은 꼭 그렇게 대학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안 들고, 제가 진학하는 이유는 제가 필요하니까 그런거거든요. ▶ 제일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거 같아요, 그냥. 3년 동안의 생활에서. 일거수일투족, 제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한 생각이죠. 왜냐면 그냥 인문계에서 정해진 그런 수업방식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제가 정하고 제가 할지 말지도 제가 정하고, 제가 열심히 할지 말지도 정하는, 모든 것이 제 선택이었으니까. 그 선택에 대한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되게끔 하려고 보면. 그게 결국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 그래도 할 건 다 하는 거 같아요, 애들도. 1학년 때 막 놀았던 친구들도 지금쯤 되니까 공부하는 애들도 있고. 그래도 달라지긴 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까. ▶ 3년 동안 여기 학교를 다니면서 예전에는 빨리 어린 마음에 스무살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들 틀에 갇혀서 살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이 되게 많았는데 여기에 3년을 다니면서 솔직히 좀 말썽꾸러기긴 했어요. 어쩔 때는 잘하다가 어쩔 때는 또 틀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철없는 면모를 많이 보여주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는 이게 나를 발전할 수 있게끔 해준 거 같기도 하지만 되게 아쉬운 마음도 커요 졸업하는 마음에, 이제 와서 이러긴 하지만 아 더 열심히 다녔어도 되지 않았을까 졸업하려니까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아 정말 여기 학교 되게 좋았던 학교구나. 되게 난 좋은 사람들 밑에서 좋게 학교 생활 보냈었구나 되게 감사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도 후배들한테도 선배들 졸업반 선배들 선생님들한테까지도 부모님들한테까지도 그냥 너무 감사했고 잊지 못할 3년이었고 되게 다시 다니라면 다시 다니고 싶을 만큼 되게 저한테 가장 행복한 3년이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 가장 큰 장점이 생각할 시간이 많았던 거 같거든요. 그래서 내가 꼭 이 진로를 찾아야만 해야돼 이 생각보다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지 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거 같아요. 저 스스로가 많이 고쳤다고 해야되나 생각을 좀 고쳤다해야하나 그런 것 같습니다. ▶ 솔직히 말하면 학교로 인해 내 모습이 달라졌다 이것보다는 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이제 다른 학교와 비교했을 때 보통 인문계들은 다 공부를 해가지고 내신 걱정이랑 생활기록부나 이런 걸 되게 신경 많이 쓰잖아요 근데 그런 것보다는 이 공부 압박감이 없으니까 내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찾아보고 싶으니까 그거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을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학교에서는 압박감을 받지 않으니까 내 꿈에 대해서 조금 더 신중하고 내가 경쟁 속에서 살아야되는게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내 꿈을 장려해야겠다는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게 된 거 같아요. ▶ 옛날에는 주위에서 하는 말만 듣고 아 이게 맞는 거야 하면서 주위 말만 신경 썼다면 지금은 제 스스로가 주관적으로 생각한다는 그런 느낌 그래서 저 스스로는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는데 이게 또 어떻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달라졌는지는 설명을 잘 못하겠어요. ▶ 대안학교에 오면 일단은 자기가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는데 저를 예시로 들면 저는 협동 조합을 들어갔어요 1학년 때 그래가지고 협동 조합을 만들고 협동 조합을 만드는 거에 저도 참여를 했거든요. 막 그 몇 명 이상 모여야 만들 수 있는데 거기에도 조합원으로 들어가고 법 만들때도 제가 한 번 그 조항을 다 봐가지고 좋은 거 안 좋은 거 해가지고 빼고 그래서 직접 골라서 과자나 그런 것도 선별하고 해서 개수식까지 다 했거든요. 그러니깐 자기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고 해야될까. 그리고 우리들끼리 또 회의를 통해서 이야기해서 직접 기숙사 조항도 만들고 그거 회의를 통해서 학교에 원하는 점이나 그런 걸 이야기할 수 있다는게 좋은 거 같고 그리고 정규과목이 반절인 만큼 그만큼 더 다른 거에 활동을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지원이 좋다는 거 지원이 좋고 선생님들이 친절하셔서 그냥 자유롭게 해주는 거 뿐만 아니고 믿고 지지해주신다는 거? ▶ 일단 중학교 때 했던 행동들이 창피하다는 걸 안다는 게 성장한 거 같아요. 제가 봤을 때 제가 중학교 때 한 거는 지금 생각해보면 쪽팔리다고 생각하는데 중학교 때 잘못된 행동과 생각을 갖고 있어가지고 그런 거 봐도 좀 많이 성장했다 생각하는데 깨달은 것만으로도 성장했다 생각해요. 도움까진(아니지만),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하나하나가 다른 학교도 뭐 다른 학교에서 접하지 못한 걸 제가 했으니까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아요. |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돌아다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순수한 개성의 억압은 아주 빠른 시기에, 아이들의 최초의 훈련과 더불어 시작된다. 교육의 참된 목표가 아이들의 내적인 독립과 개성, 성장과 완전성을 촉진시키는데 있다면 훈련은 어디까지나 자발성의 억압을 이끌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프롬의 제언은 참으로 쉽지 않은 자유와 민주주의이지만 ‘자유’를 거듭 거듭 식탁에 올려놓는 일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지와 편협함
콩빠
2021년 6월 16일
"당신에게 질투의 불꽃이 가장 불타오를 때는 언제입니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질투의 불꽃 뒤에 숨겨져 있지 않나요?" (니카고시 히로시, 좋아하는 일만 하며 재미있게 살 순 없을까? 아날로그 2016, 257~258쪽)
얼마 전 한 일본 사람이 쓴 상기 진로 지도 관련 책을 보았습니다. 내가 가야 할 직업적인 방향을 모르겠거든 자신이 무슨 일에 가장 흥분하는지 거기서 살펴보고 여기서 진로선택의 실마리를 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질투의 불꽃이 가장 불타오를 때는 언제입니까?”라는 물음을 제기할 때 의외로 천직에 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질투심이란 마주하기 힘든 감정입니다. 하지만 자기 내면의 진흙탕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관객의 차원에서 벋어나는 길입니다. 이를 통해 “나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나카고시 히로시 258쪽)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독일 직업교육과 연관하여 학생들의 진로 지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저의 자문이, 제가 권유했던 조언들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편협했었나 하고 자문해 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니면 나도 잘 모른 것을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무연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면서 저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화니짱은 카톡방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조언합니다.
“Gnothi Seauton!
너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 '무지의 지'야 말로 배움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자기 배려, 타자 배려의 기술로서 함께 겸허한 태도로 '무지의 지'를 연마해보아요.”
모임을 이끌어 주시는 화니짱님과 학우들의 관심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프로이트와 마주하기
프리다
나는 예전부터 프로이트가 참 불편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불편한 프로이트를 마치 숙명처럼 자꾸만 마주 선다. 내가 프로이트를 불편하게 느끼면서도 끌리는 내재적 심리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 답은 프로이트를 마주 보려면 결국 나의 유년기 상처를 마주 봐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결국 유년기를 빼놓고 논할 수 없으므로 바로 이 부분에서 나의 무의식이 본능적으로 저항해왔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육자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양육자의 ‘보살핌’은 단순히 음식이나 옷, 교육이 전부는 아니다. 아이의 감정을 신경 써주고 때로는 소파에 기대어 함께 TV를 보며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온 식구가 식탁에 앉아 저녁을 같이 먹는 순간들도 ‘보살핌’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열세 살 이후로 앞에서 말한 ‘보살핌’들을 잃었고 그런 이유로 나의 정서적 자아는 언제나 열세 살 어린 여자아이에 멈춰있다.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이 아동방임과도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 속사정은 나의 열세 살 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에 부모님은 아홉 살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우리 가족은 슬픔에 허덕이느라 서로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자식을 잃은 젊은 부모는 상실의 슬픔을 새로운 자녀로 보상 받기위해 늦둥이를 가졌고 큰딸은 언제나 의젓하고 혼자서 잘해왔으니 시내 학교로 혼자 전학 보내기로 했다. 그런 사연으로 동생을 잃은 나는 부모마저 새로운 동생에게 양보하고 열세 살부터 스스로 돌보며 살아왔다. 바로 이 부분이 나의 지독한 ‘자기연민’이 생겨난 지점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자동인형적 순응’은 사실 나의 오랜 도피 매커니즘이었다. 나는 이른바 ‘K-장녀’였고 자아를 잃은 채 부모님이 기대하는 유형의 모습으로 살면서 의젓하고 철든 큰딸을 나의 ‘가짜 자아’로 삼고 살았다.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고 부모와 어른들의 기대를 만족 시키기위해 일찍 철이 든 아이였다. 프롬이 말하는 도피의 매커니즘이 인간의 무력감과 불안에서 비롯한다는 전제처럼 나의 유년기는 외롭고 불안했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학교에서 적응하는 동안 나는 낯선 곳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의젓한척했지만 나는 아직 보호가 필요했고 혼자 잠드는 날들이 무서웠다. 오롯이 혼자서 감당 해야하는 외로움과 나를 보호해줄 부모가 멀리 있다는 불안은 나로 하여금 가짜 자아를 강화시켰다. 즉, ‘혼자서도 의젓하게 해내며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는 큰딸’로 가짜 자아를 만들어 놓고 마치 그게 태생적인 자아라고 스스로 믿게 만들어 불안과 고독을 없애기 위해 합리화했다.
프롬도 말했듯이 이 ‘비합리적인 합리성’-외부에서 주입된 생각-이 때로는 유용하고 ‘합리적’일수도 있으며 부정적인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가짜 자아를 나의 자아라고 믿었지만 덕분에 나는 책임감과 주변에 대한 배려가 능숙했고 사회적 업무 능력에서도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 그래서 그 동기와 과정이 어떠했든 지난 모든 일들은 오늘날 나를 얻기 위한 필연이었다고 자위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애써 위로하며 살았다. 그러나 나의 아이가 열세 살이 되면서 나의 마음속에 애써 외면했던 자기연민이 불쑥 일어나 휘젓기 시작했다. 아마도 프로이트가 말했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동일시’-전이-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는 열세 살이 된 내 아이을 통해 그때의 어린 나를 돌보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열세 살 때 내가 부모에게 받고 싶었던 보살핌, 이해, 공감, 멘토링을 지금 내 아이에게 넘치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나의 자기연민과도 같은 이 ‘보살핌’이 내 아이에게 반작용으로 작용하지는 않을지 염려하며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사실 현재의 나는 여러 측면에서 프로이트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나는 그 누구보다 부모의 정서적 보살핌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내 부모가 나에게 준 정서적 그늘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된 이후로,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해왔던 그 어떤 공부나 업무적 성과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던 이유도 아이에게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였다. 내가 하는 행동과 모든 말들이 이 아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며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나를 완성시킨 존재는 결국 나의 부모님이었다는 결론에 도착하게 된다.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공존하듯이 나에게 있는 장점과 단점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에 원망과 감사의 마음이 항상 복잡하게 얽혀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피천득의 글귀처럼 ‘좋은 점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고 나에게 허물이 있다면 그것은 엄마를 너무 일찍 여의었기 때문이다.-수필 「엄마」 中’ 나에게도 내세울 만한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엄마의 그늘 밑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 덕분이고 나에게 허물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 일찍 엄마의 그늘을 떠나서 일 것이다.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모도 성숙하고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 시절 나의 부모님도 성숙하고 완전하지 못했기에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 또한 완전한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인정에서 치유와 성장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옛 그리스 철학자의 말처럼 자신에 무지를 자각하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인정할 때, 인간은 성장한다고 믿는다. 결국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인문학이 나를 바로 알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라면 프로이트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과도 같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이유로 프로이트를 마주하기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꼭 한 번쯤은 용기 내어 프로이트와 마주하기를 추천한다. 프로이트를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더기 소녀에서 인생 2막으로
풀
누더기? 누더기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처음으로 찾아보았다. 내가 누더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굳이 나를 생각해본다면 ‘미운 새끼오리’ 정도였는데……. 프로이트를 만나면서 누더기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다가 공부할수록 내가 크는 동안 누더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인정해, 말아 하다가 숨기려야 숨길 수도 없는 거 인정하자. 맘먹고 나니 속도 편하고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기분마저 들었다. 후련했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를 받치고 있던 두루뭉술한 상처들이 다섯 겹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었다. 얼굴 한번 마주친 적도 없었던 프로이트가 내 상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줄 줄이야!
어린 시절, 집은 가난했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으며 학교에 갔고 준비물을 살 수 없어 선생님께 매번 맞았다. 한겨울에 변변한 외투도 없이 손발에는 얼음이 박히고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수업료를 언제나 제때 내지 못해 늘 가슴 졸였다.
엄마 대신 일 할 사람이 필요했던 집에서 학교 끝나면 밥하고 일요일마다 빨래했다. 독한 비누 탓에 손바닥에 구멍이 생기면 아파서 침을 바르고 월요일 학교에 가면 코피가 줄줄 났다. 어느 겨울, 찬물에 빨래가 너무 하기 싫어 입을 내밀자 엄마는 수도꼭지를 틀고 호스 물을 나에게 뿌렸다. 아, 젖은 내 빨래까지 늘어서 속상했었다.
또한, 엄마와 아버지는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고 그건 나를 향한 매질이었다. 아버지에게는 함석 일할 때 쓰는 각기 목과 혁대, 호스로 맞아봤다. 호스는 살에 닿는 면적이 가장 좁았기 때문에 기막히게 아팠다. 게다가 낭창낭창해서 몸에 착착 감기기까지 했다. 엄마는 내가 스물두 살 때까지 때렸다. 맨손으로 얼굴부터 손 닿는 대로 때렸다. 머리채를 잡아 벽에 힘껏 칠 때는 방안이 텅텅 울렸다.
나는 첫 생리가 시작되자 피부병이 생겼다. 엄마는 깜짝 놀랐다. 엄마의 피부병이 유전되었던 것이다. 그건 낫지 않는 병이었다. 처음 팔꿈치에 50원 크기로 빨갛게 나타났던 것이 머릿속, 얼굴, 목, 팔다리, 허벅지, 엉덩이 등 온몸에 번졌다. 가려워서 스륵스륵 긁으면 하얀 가루가 떨어졌다. 손톱 믿은 언제나 피딱지가 있었고 한여름에도 목을 가리며 긴 소매에 긴바지만 입었다. 부디 얼굴에만 안 나면 얼마나 좋을까 주문이 되었다.
가장 아픈 상처는 편애였다. 두 살 차이나는 작은 언니는 엄마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항상 맛있는 음식, 좋은 옷, 대학 공부는 모두 언니 몫이었다. 그걸 본 큰언니가 내가 꼭 자기 같다며 공부하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귀하고 예쁜 시계를 선물했다. 난생처음 내 것이 된 그렇게 좋은 물건, 값진 시계는 나를 들뜨게 했다. 그건 시계 이상의 것이었다. 그런데 시계가 고장이 나서 나는 수리비를 주며 시계를 맡겼다. 사흘 뒤 시계를 찾으러 간 나는 팔목에 시계를 찰 수가 없었다. 이미 엄마와 언니가 와서 언니의 손에 맞게 고쳐서 찾아갔기 때문이다. 겨울 저녁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막막함과 억울함과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짓눌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숨이 낮았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종합선물세트 대신 가난, 가사노동, 아동폭력, 피부병, 편애 이렇게 종합고난세트가 한 묶음으로 왔다. 나는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 정서를 거세해 내 처지가 어떤 줄을 모르고 살았다. 또한, 살고 싶어 눈을 집 밖으로 돌렸다. 거기에서 힘껏, 양껏, 원 없이 나의 존재감을 찾아 나갔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스물두 세 살부터 가슴의 통증이 느껴졌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치는 것처럼 그렇게 가슴이 물결치듯 아프고 뻐근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비볐다. 구멍 난 손에 침 바른 것처럼.
프로이트를 알게 되고 처음으로 내가 누더기로 살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나는 몸도 마음도 누더기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더 보여줄 바닥이 없었으므로. 맨바닥, 더는 내려갈 데가 없는 가장 낮은, 비루한 곳에서 나의 삶은 시작되었다.
지금의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게 되어 기쁘다. 인생 전반전이 이렇게 정리, 완결된 기분이 들어 흐뭇하다. 나의 환경과 상처들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상처 치유의 문을 여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읽어왔던 책들과 글쓰기, 마흔 가까이부터 내 상처들과 직면하면서 이제 쉰다섯. 화룡점정이라 해야 할까? 프로이트를 통해 산뜻하고 빠르게 인생 전반전을 끝낸 것이다. 홀가분하다.
생애를 통해 숙제처럼 올라가야 하는 큰 산의 정상에 마침내 서서 아래를 지그시 보고 난 뒤 새로이 다음 산에 오르는 기분이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인생 2막. 내 안의 어떤 나와 만날지 생각만 해도 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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