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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티의 삶과 문학, 그리고 <군중과 권력>
화니짱
1. 카네티의 삶과 문학
엘리아스 카네티(Ellias Canetti)는 1905년 7월25일 불가리아의 도나우 강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루스추크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자크와 어머니 마틸데 사이에서 태어나 1994년 8월14일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그의 집안은 스페인계 유태인 혈통으로, 1492년 유태인 박해사건을 피해 스페인의 카네테(Canete)라는 마을에서 터키로 이주한 후 수백 년 동안 그곳에 살다가, 카네티의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 불가리아에 이주했다. 카네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루스추크는 게르만, 슬라브, 헤브라이, 그리고 라틴적인 생활 정서가 혼합된 일종의 코스모폴리탄적인 공간이었다.(646)
카네티가 여섯 살이 되던 해인 1911년, 자유와 서유럽의 문화를 동경해온 부모의 결정에 따라 가족들은 영국 맨체스터로 이주하게 되는데 바로 그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그 이후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있는 사람 이상으로 카네티의 유년생활을 지배하게 된다. <군중과 권력>에서 군중과 권력의 본질을 죽음이라는 현상으로부터 끌어내고, 죽은 자를 산 자와 연관시켜 고찰한 것도 이 체험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가족은 1912년 빈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1913년에 독일어를 배우게 된다. 세계시민 카네티의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독일어이다. 그는 괴테로 대표되는 독일의 고전 문화에 대한 사랑을 자주 표현했으며, 심지어는 나치스가 동유럽에 진주한 1938년 영국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50년을 생활하면서도 독일어를 포기한 적이 결코 없었다.
1922년 국수주의자들에 의한 독일 외상 라테나우 암살 사건이 있은 후 이에 항의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 노동자들이 벌이는 대규모 시위운동을 목격하게 된다. 그 전까지 군중을 위협적인 존재로만 생각해왔던 그는 스스로가 그 군중의 일원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위가 끝나 군중이 해산하고, 그는 자신이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1924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빈 대학에 입학한 그는 자연과학을 전공하면서도 시인, 철학자가 되려고 결심하고 언제나 글을 쓰며 지냈다. 그러던(647) 1927년 7월15일에 사회민주당원들의 집회가 있은 후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운동을 벌이며 그 당시 권력의 상징이었던 빈의 법무성을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그는 군중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1929년에 화학박사학위를 받으면서도 전방위적으로 여러 시와 소설 <현혹> 등을 집필하던 그가 일체의 문학작품을 포기한 계기는 1938년 히틀러의 빈 입성이었다. 그는 나치즘을 직접 보고 연구하기 위해 가능한 한 오랫동안 빈에 남아 있었다. 11월 7일 파리에 망명 중인 한 유태인 소년이 독일 대사관의 3등 서기관을 사살함으로써 나치가 들어선 이후 독일 내 최대 규모의 유태인 학살이 행해졌다. 그는 파리를 거쳐 영국으로 망명한다. 그 이후 20년간 군중과 권력의 본질을 파헤치는 일에 평생을 바친다.
<현혹>과 군중 현상
이 소설은 어느 도시의 기괴한 지하세계에서 주인공 페터 킨의 삶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킨은 스스로 선택한 고립 상태에서 연구에 전념하며 살아가는 중국학의 권위자이다. 이러한 그의 세계에 물욕으로 가득한 속물적인 군중의 일원인 테레제가 끼어든다. 정신이 하나의 소유물로 전락하고 인간의 본성과는 동떨어진 지식의 도구가 되어버렸음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지식, 이성이라는 정신적 소유물에 대한 욕심으로 눈먼 킨의 세계는 현실과 격리되고 소외된 정신적 세계, 즉 ‘세계 없는 머리’이다. 반면에 테레제를 비롯한 군중의 세계는 소유욕과 폭력 그리고 동물적 성욕에 눈 먼 세계, 즉 ‘머리 없는 세계’이다. 군중의 세계인 길거리로 내몰린 킨은 마침내 심한 편집증 상태에서 자기 자신의 서재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서 질식한다.(649) 결말의 방화는 결국 군중과의 접촉을 통해 개인의 정신이 오만한 격리에서 벗어나 다시 군중과 하나가 되는 단일체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른 소송과 권력의 형상화
<다른 소송>은 카프카의 <소송>과 달리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 형식의 카프카론이다. 카네티는펠리체가 카프카가 보낸 모든 편지를 읽고 답장을 한 것이 카프카에게 강력한 창조적 충동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펠리체를 카프카 문학의 산실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카프카의 삶을 파멸로 이끈 근(651)원으로도 보고 있다. 즉 카프카의 삶의 상실과 문학의 획득이라는 역학수 관계를 밝힌 카프카론이다. 카프카는 펠리체를 1912년 8월 중순 친구 집에서 처음 만난 후 약혹과 파혼의 악순환을 반복한다. 카프카는 선천적으로 허약한 자신의 체질에 대해 열등감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거대한 체구의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하다. 따라서 카프카(651)의 변신술은 권력의 횡포에 직면했을 때 굴욕감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그가 결혼을 회피하는 것은 결혼 생활의 횡포에 맞서 자기 자신을 작은 형체로 변신하여 종적을 감출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력 앞에서 느끼는 굴욕감이 카프카 작품의 중심 테마다. 변실술과 권력 문제는 <군중과 권력>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군중과 권력>
일체의 개념적 체계와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일상적 삶의 구체적 사실을 직(652)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는 그의 작업방식은 인식과 감성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조화로운 사유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이 책에 변화와 관련된 단어, 특히 정반대의 방향으로 변화하는 의미의 단어인 역전, 전회, 전도 등이 자주 사용되는 것도 그의 유동적인 사유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카네티는 군중 행동의 기원을 탐구하기 위해 무리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한다. 부족이나 씨족은 정태적인 것인 반면에 무리는 동태적인 행동의 단위이며, 그 실체는 구체적이다. 무리는 군중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카네티는 무리를 기능에 따라 사냥무리, 전투무리, 애도무리, 증식무리로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653)
군중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방전이다. 방전은 “구속 상태로부터의 해방, 에너지의 폭발과 방출”현상을 포괄적으로 함의하고 있다. 방전이 있어야만 비로소 군중이 생성된다. 방전의 순간에 군중의 모든 구성원은 그들 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평등을 느끼게 된다. 군중은 네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고 있다.
1) 군중은 언제나 성장하기를 원한다. 군중의 분출현상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다.
2) 군중의 내부에는 평등이 지배하고 있다. 군중이 형성되는 것도 바로 이 평등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이 평등으로부터 벗어난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3) 군중은 밀집 상태를 사랑한다. 모든 것은 군중 그 자체이어야 한다. 밀집감은 방전의 순간에 가장 강하다.
4) 군중은 하나의 방향을 필요로 한다. 군중은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인 이 방향은 군중의 평등감을 강화시킨다. 군중은 늘 와해를 두려워하므로 어떤 목표라도 받아들이려 한다.
(우리는 디씨 - 디시, 잉여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의 인류학 / 이길호)
카네티는 또 군중이 품고 다니는 마음과 감정 상태에 따라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654) 가장 오래 된 형태는 추적 군중과 도주군중이다. 이 두 형태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발견된다. 이에 비해 금지군중과 역전군중 그리고 축제군중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군중형태이다. 금지 군중은 특수한 종류의 군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하지 않겠다고 집단적으로 거부한다. 가장 단적인 본보기가 동맹파업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가 십지 않다. 사태가 악화되거나 궁핍이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이 부정적 군중은 적극적으로 공격적인 궁중으로 변해, 즉시 파괴로 기운다.
역전 군중은 계급화된 사회를 저넺로 한다. 상승적으로 명령을 받으며 살아온 자는 가시로 뒤덮여 있다. 그리고 이 가시를 뽑아버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자기가 하달받은 명령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의 상위자에게 자기의 수모를 되돌려주는 것이다. 명령이라는 가시로부터 집단적으로 방전하는 데서 해방이 일어나는 이 군중을 가리켜 역전 군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축제군중은 축제 자체가 목표이며, 방종과 향락의 평등을 누린다.
카네티는 권력현상을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본성과 연결시킨다. 살아남는 순간이야말로 권력의 순간이다. 죽음을 목격하며 느꼈던 공포는 죽은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만족감으로 변한다. 그런 점에서 종교도 권력의 본질과 관련되어있다. 종교는 죽음과 내세를 담보로 죽음의 공포를 누리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벌이는 장사이며, 종교인은 그런 종교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 증대시키는 죽음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모든 명령과 권력 행사의 저 이면에는 죽음의 위협이 있다. 결국, 불구대천의 원수는 죽음 바로 그 자체이다. 이 책은 테마는 바로 이것, 권력의 종교이다.(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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