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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 공포의 전도
인간이 주변 공간에 대하여 거리를 두는 것은 이 접촉에 대한 공포 탓이다. 접촉을 하는 경우는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꼈을 때이다. 이 경우 자발적으로 접근한다(17).
인간이 접촉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군중 속에 있을 때 뿐이다. 이때는 두려움이 오히려 정반대의 감정, ‘밀집된 군중’, 몸과 몸이 밀착되어 물리적으로 빽빽이 들어찬 군중을 필요로 한다. 군중 속에 놓이는 순간 인간은 닿는 게 두렵지 않게 된다. 거기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성별 차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밀고 밀리는 것이 격렬할수록 인간은 더 큰 안전감을 느낀다. 접촉 공포의 전도, 이것이 군중의 본질에 속한다(18).
열린 군중과 닫힌 군중
성장하려는 욕구가 군중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자연적 군중은 ‘열린 군중’이다. 이 군중의 확장에는 한계가 없다. ‘열린’이란 어느 방향, 어느 곳으로도 다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 자체가 성장하는 한 존재한다. 성장을 멈추는 그 순간부터 열린 군중은 와해된다. 자생적인 형태를 취한 까닭에 매우 취약하다. 개방성은 동시에 군중의 존속을 위협하기도 한다. 군중은 가능한 한 모든 자를 받아들인다. 바로 이 때문에 궁극에 가서는 산산조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19).
닫힌 군중은 성장을 포기하고 영속성에 역점을 둔다. 한계가 있다. 정주한다. 자기가 채울 공간에 대해 미리 한계를 설정한다. 공간이 완전히 채워지고 나면 아무도 더 들어올 수 없다. 확장의 기회를 희생시키는 대신 영속성을 획득한다. 그들은 반복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20).
방전(妨電)
방전이 있어야만 비로소 군중이 생성된다. 방전의 순간에 군중은 그들 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평등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상호 간의 간격 속에서 경직되고 음울해진다(21). 인간은 함께 모임으로써만 간격의 질곡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이것이 군중 속에서 일어난다. 방전을 통해 축복의 순간을 맛본 인간이 군중을 형성한다. 방전의 순간은 근본적으로 환상이다. 진정한 전환이 일어나야만 인간은 낡은 결합에서 벗어나 새로운 결속체를 형성한다. 엄격한 규범에 의해서만 그 지속성이 확보될 수 있다. 이런 집단이 ‘군중결정체’다. 군중은 새로운 가담자들이 계속 생기고 그 내부에서 방전 과정이 계속 진행되어야만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22).
파괴욕
군중의 가장 현저한 특성은 파괴욕이다. 쉽게 깨질 수 있는 물체는 군중의 파괴 대상이다. 어떤 사건을 촉발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소음이 특히 필요하다. 상징적인 동상을 파괴하는 것은 더 이상 수긍할 수 없는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23). 창문과 문의 파괴는 집의 개성이 상실하게 된다. 군중과 격리시켜 주었던 경계는 파괴되고 군중과 사이에 장벽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군중 속에서 개개인은 고유한 인격의 한계를 초월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간격이라는 질곡에서 풀려남으로써 자유를 느낀다. 간격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이다. 파괴의 수단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불이다. 불은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가져온다(24). 파괴가 끝나면 군중도 불길도 모두 사라진다.
분출
열린 군중은 진정한 군중, 자신의 모든 것을 자연적인 성장 욕구에 일임해버린 군중이다. 이 군중은 무한정 커지려 한다. 또한 끊임없이 와해되기 때문에 별로 진지하게 주목받지 못했다.
과거의 닫힌 군중은 제도로 발전했다. 항상 종교적, 군사적 또는 축제라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다. 특수성이 신성하게 만든다. 모든 의식과 종규는 군중을 사로잡는 데 기본 의도가 있다(25). 주기적인 반복은 무언가 더 거칠고 더 폭력적인 것에 대한 욕구를 진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몇 세기 동안의 가속적인 인구 증가는 새롭고 더 대규모적인 군중을 형성시키는 유인을 마련해주었다. 전통적 의식에 대한 모든 반란은 성장하려는 군중을 제약하려는 데 대한 항거였다. 닫힌 장소를 뚫고 나오는 분출 현상은 군중이 갑작스럽고도 신속하게 무한정 커지는 데서 얻을 수 있는 군중 본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자 함을(26) 의미한다.
■ ‘분출’은 닫힌 군중이 갑작스럽게 열린 군중으로 전이하는 현상이다. 모든 것에 자기를 노출시키며 모든 것을 유혹한다. 여기서 모든 자에게 손을 뻗치고자 하는 정열적인 내적 과정이 중요하다. 프랑스 혁명 이래 군중은 적나라한 군중으로서 초월적 원리나 목표가 배제된 생물학적 상태의 군중이었다. 전쟁조차 분출의 한 현상이 되어 모든 전쟁은 집단 전쟁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군중은 결코 포만감을 느끼지 못한다. 식욕이 대단하다. 군중의 존속을 위한 노력은 비교적 무력한데 존속을 가능케하는 희망은 한 군중이 다른 군중과 힘을 겨루는 ‘이중 군중’의 형성에 있다(27).
추적 감정
군중의 내면적 특질 중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흥분의 감정인데 적은 악의를 가지고 군중을 파멸시키려 한다고 해석한다. 군중은 급속히 성장하려고 하며 확장에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억압으로 간주한다. 반면 욕구가 일단 충족되면 군중은 와해된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은 군중을 강화시킬 뿐이다. 내부로부터의 공격이란 개인적 욕구로의 끌림이다. 욕구는 군중이 가진 근본 신조에 위배된다. 군중 개개인은 누구나 혼자 있고 싶어하는 조그만 반역사를 품고 다닌다(28).
군중은 안팎에 모두 적을 갖고 있다. 군중이 느끼는 추적 감정이란 이중의 위협, 즉 바깥쪽 외부로부터의 공격은 점점 더 조여지고 내부로부터의 반역자에 의해 안쪽이 점점 더 잠식당한다는 위협에 대한 느낌이다(29).
세계종교들의 군중 길들이기
종교가 염두에 두는 군중은 보편적인 군중이다. 모든 영혼을 다 소유하려 한다. 종교는 결속과 영속성을 확보해주는 제도의 중요성을 절감해 나름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인다. 제도가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진 후 자체 중량을 지니게 되면 수적 증가를 위한 노력은 점차 약화된다(30).
교단은 순종하는 양떼를 원한다. 교회는 급속한 성장을 전적으로 포기한다. 신도 간의 허구적이고 잠정적인 평등에 만족한다. 그리고 저 먼 곳에다 목표를 설정하는데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이며 끊임없는 노력과 복종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신도들은 언제나 같은 의식을 치름으로써 온순한 상태의 군중 감정이 주입되고 거기에 젖도록 길들여진다. 신도들이 이 경험에 젖어버리고 나면 그 후부터는 도저히 이 경험의 반복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겨우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군중 조직은 사소한 방해만 받아도 필연적으로 순식간에 ‘열린 군중’으로 분출하게 된다. 도달 가능성이 희박했던(31)목표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의 목표로 대치된다. 그러나 광란적인 분출 현상으로 신도들의 믿음의 성질은 달라지고 특유의 격한 감정으로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열린 군중으로 남으려고 한다(32)
심리적 공황
불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한 군중 상징이다. 화재가 났을 때 공동의 두려움이 일어난다(32).
공황이란 군중 속에서의 군중의 와해이다. 개인은 군중으로부터 이탈해서 도피하려고 한다. 전체로서의 군중이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33).
숲이나 초원에서 일어나는 대화재는 하나의 적대적인 군중이며 어떤 인간이나 두려워한다. 불은 군중 상징으로서 인간의 전체 감정 체계 속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을 짓밟는 현상은 불을 밟아 끄는 행위 바로 그것이다. 공황으로 인한 와해를 회피하는 방법은 집단적 두려움으로 일체화되어 있는 원상태를 연장시키는 길뿐이다(34).
고리로서의 군중
서로 마주 앉아 있는 군중에는 빈틈이 없다. 이런 군중은 닫힌 고리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경기에 매혹된 얼굴들은 개개인으로서의 윤곽은 희미하게 뭉개져버리고 다 같아만 보이며 행동 역시 비슷하게 보이게 된다. 타인들의 흥분된 모습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흥분을 더하게 된다. 층층이 고리를 이루는 이 군중에는 이상할 정도의 동질성이 있다. 고리의 어느 부분에 빈틈이 생긴다면 와해된 후에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으나 여기에는 빈틈이 없다. 이것이 이중으로 닫혀 있는 군중, 즉 외부 세계에 대해 그리고 자체에 대해 닫힌 군중이다(36).
군중의 특징
군중의 네 가지 특징(36〜37).
1 | 언제나 성장하기 원한다. 군중의 분출 현상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으며 영원히 막을 수 있는 제도란 없다. |
2 | 내부에는 평등이 지배하고 있다. 절대적이며 군중 자체조차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형등으로부터 벗어난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으려한다. |
3 | 밀집 상태를 사랑한다. 밀집감은 방전의 순간에 가장 강하다. |
4 | 하나의 방향을 필요로 한다. 항상 동적이고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이 방향이 군중의 평등감을 강화시킨다. 군중은 도달하지 못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한 항상 존재한다. 또 하나의 숨은 경향에 의해 새롭고도 우월적인 종류의 조직이 형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
군중 분류 | 특징 |
열린군중, 닫힌군중 | 확장에 장애가 없는 한 열린 군중, 일정한 제한이 가해지면 닫힌 군중 |
율동적 군중, 정체된 군중 | 평등성과 밀도를 고려한 분류 정체된 군중은 방전을 목표로 살아간다. 방전의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 긴 밀집 기간을 원한다. 이 군중은 평등이 아니라 밀도에서 출발한다. 평등은 마지막 달성 목표가 된다. 율동적 군중은 밀도와 평등이 병존한다. 순식간에 형성되면 육체적으로 지쳤을 때 소멸한다. |
느린 군중, 급한 군중 | 순전히 목표의 본질에 따른 분류 급한 군중은 항상 눈에 잘 띄는 군중이다. 일상적인 정치적 군중, 스포츠 군중, 호전적 군중이다. 느린 군중은 목표를 하늘나라에다 두고 있는 종교적 군중이나 순례자 군중이다. 정말로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흐름뿐이다. 느리게 모이며 스스로를 저 멀리서 영속하는 존재로 본다. |
율동
율동이란 본래 발의 율동이다. 인간은 동물이 움직이는 율동을 통해 동물을 식별하는 법을 배웠다. 소규모의 인간들은 발자국으로 수적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39). 그들은 자신들의 수적 증가를 염원했고 그것을 ‘율동적’ 혹은 ‘박동적’ 군중이 되어 특수한 공동체적 흥분 상태 속에 표현했다. 동일한 지점에서 계속 춤을 추며 격렬한 행위를 통해 수의 부족을 보충하는 것이다. 그들의 흥분은 점점 열기를 더해 광란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전원이 동일한 행위를 하는 게 중요하다.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땅을 쾅쾅 밟는다. 춤추는 사람들의 동질성은 손발의 동질성으로까지 번져나간다(40). 모든 동작이 동일하기에 꼭 같은 손발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평등의 상태에 밀도가 첨가되어 밀도와 평등은 하나가 된다. 흥분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일제감을 느끼고 무엇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전투 무용이었던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하카의 차별성은 평등의 극단적인 분화에 있다. 마치 각자의 몸이 팔다리, 손가락, 발가락, 혀, 눈알까지 각기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으나 똑같은 순간에 똑같은 동작을 한다(42). 여기서 밀도는 사람뿐 아니라 수족의 밀도이기도 하다. 하카의 리듬은 평등 하나하나에 실체를 부여한다. 개별적인 평등이 고조되어 공동의 평등을 이루게 되면 막강한 힘을 지니게 된다. 그들은 하나의 군중이 될 필요성을 느낄 때 외부집단에 대하여 하나의 단일체를 보이고 싶을 때 이 춤을 이용하는데 하카 덕분에 그들의 단결은 결코 내부로부터 심각하게 위협받지 않는다(43).
정체(停滯)
정체된 군중은 빽빽하게 압축되어 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의 군중에는 수동적인 면이 있다. 이 군중은 기다린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밀도뿐이다. 너무나 빽빽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에 마치 하나인 것처럼 느낀다. 밀도는 서서히 계속되어 일정 기간 항구적인 효과를 미치지만 형체가 없으며 숙달된 율동의 지배를 받지 않아 행동에 대한 욕구는 오래 축적되어 고조된 폭력으로 터진다.
정체된 군중은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밀도는 크기를 재는 척도가 되며 확장시키는 자극제가 된다. 밀도가 높은 군중일수록 빨리 성장하고 방전이 일어나기 전의 정체 상태는 밀도의 과시가 된다(44).
■ 정체된 군중은 자신의 통일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므로 오랫동안 묵묵히 기다린다. 언젠가 방전은 일어난다. 방전이 없다면 군중이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방전(외침)은 반드시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자발적이고 불시에 일어나는 외침은 진짜이며 효과도 엄청나다. 이 외침은 어떤 종류의 감정이라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의 종류가 아니라 감정의 힘, 다양성, 그 결과로 생기는 자유다. 군중에게 정신적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이 감정들이다.
■ 감정들이 너무나 격렬하고 집중적이어서 군중을 즉각 분열시키는 경우도 있다. 공개 처형시 일어나는데 잘려진 목의 모습이 자극되어 터져나오는 외침은 무시무시하다. 이 외침을 마지막으로 군중은 더 이상 외치지 않게 된다. 가장 강렬한 순간을 즐긴 즉시 그 자체의 파멸을 지불한다(45).
더 수동적 형태의 정체된 군중은 극장에서 형성된다. 관객들은 제각기 스스로 모여든다.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다. 절박하지 않은 밀도감을 주며 관객들의 평등은 동일한 공연을 보게 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46). 그들이 하나의 군중이 된 정도를 알 수 있는 실마리는 오직 박수의 강도뿐이다. 극장에서 관객의 정체 상태는 너무 의식화되어 있기때문에 담담한 정도의 외적 압력만을 느낀다. 감동이나 내적 일체감, 공속감을 주진 못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자 하는 기대감은 실재하고 집요하게 지속된다(47).
음악회의 고요함은 원래 종교적 귀의의 영역에서 유래한다. 종교적 관습은 세속적 군중이 갖는 정체감을 가지고 있으며 갑작스럽고 폭발적인 방전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메카 순례의 절정을 이루는 ‘아라파트 평원 위에 서 있기’가 대표적이다(48). 몇 시간에 걸친 정체 상태에서 그들이 고대하는 것은 계속해서 되는 공식적인 기도의 말 속에 담겨있다. 모든 것은 이글거리는 햇빛의 휘황찬란함 속에 감싼다. 태양은 정체의 화신이다.
군중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수동성은 외부로부터 강제력에 의해 군중에게 부여된 것이다. 전투에선 두 군중이 만나는데 서로 상대방보다 강하기를 원한다. 목표는 상대방을 침묵시키는 데 있다. 가장 고요한 군중은 바로 적들의 시체다. 무방비 상태인 시체의 무더기로 화한 적을 보면 강렬하고도 기묘한 정동이 되살아난다(49). 시체를 보는 자의 눈에는 정체 군중의 극단적인 경우로 생각되었다. 죽은 적들 대신 함께 땅 속에서 부활을 기다리는 모든 죽은 자에게까지 생각을 확대하면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라는 개념으로 전개되고 우리는 정체 군중의 실재성과 그 의미에 대한 가장 웅대한 증명을 얻게 된다(50).
완만함, 혹은 목적지의 요원함
느린 군중은 목적지의 요원함이 그 특징이다. 이 군중은 어떤 부동의 목적지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어떤 환경하에서도 단합을 유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 첫째, 느린 군중은 기차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50). 어른들은 늙어서 죽어가도, 아이들은 태어나 어른이 된다. 그러나 개개인은 모두가 다를지라도 그 전체는 동일하다. 거기에 합류하는 새로운 집단이란 없다.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성질의 군중이 아니다
둘째, 강물의 흐름에 비유될 수 있다. 메카 순례가 본보기다. 출발은 초라한 소규모지만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거대한 흐름이 된다. 메카는 그들이 흘러들어 가는 바다인 것이다(51).
셋째, 눈에 보이지 않는 이승에서는 도달될 수 없는 목적지를 두고 형성된 군중이다. 저 세상은 하나의 뚜렷한 목적지이며 오로지 믿는 자들에게만 허용된다. 인생이란 저 세상으로 가는 순레의 길이며 그들과 저 세상 사이에 죽음이 가로놓여 있다. 이 군중의 익명성은 특히 인상적이다.
느린 군중에게는 방전이 부인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무방전(無妨電)(53)의 군중이라고 해도 되나 전적으로 방전이 배제되어 있지 않다. 방전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이다.
■ 느린 군중은 방전에 이르는 과정을 길게 늘이는 경향이 있다. 신도들의 단결이 상실되지 않기 위해 방전의 규칙적 반복은 필수적이다. 새로운 추종자를 신규로 획득하기 위해 이따금 추종자들을 집결시켜야 하고 이 집결이 방전으로 이끌려가게 되면 되풀이되어야 하고 가능한 한 더욱 더 격렬해져야 한다. 세계 종교의 중심 과제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신도들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 지배는 오직 군중 사건을 의식적으로 늦출 경우에만 비로서 가능해진다. 이 세상에서의 방전은 순간적이지만, 저 세상으로 옮겨진 방전은 영속성을 갖는다(53). 느린 군중의 와해는 저 세상에 대한 믿음이 퇴락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군중
인간은 죽은 자들에게 사로잡혀 있다. 산 자에 대한 죽은 자의 작용은 산자의 삶 자체의 본질적인 한 부분이다. 죽은 자의 수는 엄청나게 많으며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54). 그들은 평범한 인간에겐 보이지 않으나 무당은 주술을 부리고 귀신을 다룰 줄 알며 하인으로 삼기도 한다(55).
켈트 족은 죽은 자들 중 일정수를 전투 부대로 상상한다. ‘sluagh’(귀신의 군대)와 ‘gairm’(함성)은 죽은 자들이 전투 시에 지르는 함성이라는 단어가 현대 군중이 지르는 ‘슬로건slogan’이라는 단어가 되었다(56).
종교란 보이지 않는 군중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것은 제각기 상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종교적 믿음 안에서는 서로 독특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보편적 가치를 획득한 모든 종교는 보이지 않는 군중을 취급하는 데 탁월한 확실성과 명확성을 보여준다. 군중은 종교적 가르침에 의해 생명이 유지되며 인간의 근심과 소망이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종교적 믿음의 보혈인 것이며 이들이 퇴색하면 종교적 믿음도 곧장 약화된다(59).
보이지 않는 군중이지만 현대인에게까지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유일한 군중은 후손이다. 자손의 번성에 대한 표상은 전 인류의 미래라는 추상적인 전체로 바뀌었다. 자손 즉 미래의 군중에 노력을 기울이고 올바르게 준비하는 것은 매우 보람있는 일이다(60).
보이지 않는 군중들은 어떤 것은 완전히 소멸했고 어떤 것은 거의 소멸한 상태인데 후자는 악마들이다. 악마들의 크기는 작으며 19세기에 세균이라는 미세한 것으로 변했으나 수적으로 훨씬 늘어나 인간의 영혼 대신 육체를 공격하고 있다. 인간은 세균의 존재를 악마의 실재성이 증명되는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접촉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인간들은 세균을 악마의 현신, 즉 소위 병마라고 믿는다.
현미경 발명으로 알게 된 보이지 않는 군중은 정충(精蟲)의 군중이다. 2억 마리가 동일 목적지를 행해 출발하며(61) 각기 평등하고 굉장한 밀도로 밀집되어 있다. 그러나 오직 한 마리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전멸한다. 정충들은 우리 조상에 의해 면면히 보존되어 왔던 모든 것을 계승하고 있다. 정충이 곧 조상이다(62).
품고 다니는 감정에 따른 분류
군중의 주요한 감정 형태의 기원은 아주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감정들은 단일한 격정에 의해 지배된다. 가장 유서 깊은 형태는 추적 군중과 도주 군중인데 동물에게서도 발견된다. 금지 군중, 역전 군중, 축제 군중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군중 형태이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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