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과 군중 - 가브리엘 타르드 / 이상률 / 2012년 1월 출판본]
해설
p251 : 공중이란 무엇이며 군중과는 어떻게 다른가? 타르드에 따르면, 군중은 과거의 사회집단인 데 반해 공중은 미래의 사회집단이다. 군중은 동일한 장소와 동일한 시간에 모여 있는 사람들 즉 물리적인 군집상태인 반면에 공중은 순수하게 정신적인 집합체로서, 육체적으로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결합된 개인들이 분산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때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서로 마주치치도 않으며 또 앞으로도 만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같은 신문을 읽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믿음이나 감정을 동시에 공유하고 있으며 또 공유하고 있다고 의식한다는 것을 뜻한다.
공중이라는 이 새로운 현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타르드는 공중탄생의 기원을 15세기의 인쇄술 발명으로 성서가 대량으로 보급된 시대에서 찾고 있다. 성서의 대대적인 보급으로 인해 사람들은 교회에 가지 않아도 각자 집에서 성서를 읽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독자적인 교의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252) 성서독자들의 관심은 종교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공중의 출현은 아직 멀었다. 그후 적은 부수로 발행되는 책이나 잡지를 읽는 교양층이 출현하긴 했지만, 그 독자들의 수가 너무 적어 그들은 공중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다수의 신물들이 발행되어 독자층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지만, 지방에는 신문을 수송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독자들이 공중으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지역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신문이 대중화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였다. 즉 인쇄, 철도, 전신이라는 상호보완적인 세 개의 발명이 결합하면서부터 신문은 독자층을 전국적으로 확대시켰으며, 그 결과 마침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중이라는 문명화된 현상이 출현하였다.
공중은 군중과 어떻게 다른가? 군중의 경우에는 사람들 간의 접촉이 직접적이지만, 공중의 경우에는 간접적이다. 그리고 군중의 경우에는 사람이 한번에 단 하나의 군중에밖에는 소속할 수 없지만, 군중의 경우에는 여러 공중에 동시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중이 반대파에 대해서 군중보다 더 관용적일 수 있다고 타르드는 말한다. 또한 군중은 날씨나 계절 등의 자연적인 영향을 만힝 받지만 공중은 장연적인 요인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군중과 공중의 이러한 차이는 그 각각의 지도자가 행사하는 영향력에서도 차이 나게 한다. 군중의 지도자는 입에서 귀로의 암식, 즉 가까이에서의 암시를 행하기 때문에 그의 영향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약받지만, 공중의 지도자는 멀리서의 암시를 행하기 때문에 시간적 및 공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공중의 지도자는 공중의 지도자보다 더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하며 또 그런 만틈 군중의 지도자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이다. 게다가 군중의 경우 지도자는 눈에 띄지 않으며 익명의 다수 속에 자신을 감추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공중의 지도자들은 자신을 드러내며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군중과 공중의 차이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공중은 자신들을 만들어낸 자, 즉 지도자의 천부적인 재능이나 개성을 반영하지만, 군중은 그들 자신의 민족적 특성이나 문화를 잘 나타낸다는 점에서도 군중과 공중의 또 다른 차이가 잇다고 타르드는 말한다. : "이러한 것을 보면, 공중에게는 국민성보다 그 주동자의 타고난 재능이라는 개인적인 영향이 더 두드러지게 미치며, 군중의 경우에는 그 반대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본서 30쪽)
문명의 발달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확대와 대중매체의 대대적인 보급은 공간, 시간, 계급 등의 장벽을 점점 더 크게 무너뜨린다. 이제 연설은 신문으로 대체되고 웅변가는 저널리스트로 대체된다.
p254 : 타르드는 대답한다: "여론이란 현재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같은 나라, 같은 시대, 같은 사회의 사람들에게(255)서 수많은 사본들로 복제되어 있는 판단들을 일시적으로 또 다소 논리적으로 모은 것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본서 81쪽) 그에 따르면, 이러한 여론 이외에도 두 개의 사회적 정신이 더 있다. 그 하나는 과거에 사람들이 지녔던 의견들의 축적 즉 전통이며, 또 하나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심사숙고하는 엘리트들의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판단들, 즉 이성이다. 타르드는 여론이 이성의 업적은 널리 전하는 데 만족하고 그것을 전통으로 확립시켰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바와는 달리, 여론은 끊임없이 전통과 이성을 희생시키면서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켜 왔다. 여론과 이성 사이에는 동맹관계를 맺는 경우보다 갈등관계에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중략)
여론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여론이 형성되려면 우선 개인들 간의 대화를 통해 펼쳐지는 다양한 말의 교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화는 여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원천"이다. 이때 대화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유용성 없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뜻한다. 이때에는 사람들이 특히 즐어굼 때문에, 놀이로 또는 예의상 말하기 위해 말한다."(본서 96쪽). 타르드에 따르면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주의를 집중시켜 그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256) "대화는 사람들을 대면하게 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이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작용을 통해 의사소통하게 한다. 그 결과 대화는 모방, 즉 감정, 관념, 행동방식의 전파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동인이다. (중략) 타르드가 대화의 사회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독백이 대화에 선행한다. 인류 초기에 최초의 가족이나 최초의 원시집단에서는 아버지 또는 지도자 단 한 사람만이 말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모방하였을 것이다. 아버지, 즉 지도자의 말은 명령하거나 경고하거나 비난하는 것이었고, 그의 가족들이나 추종자들의 말은 동의하거나 칭찬하거나 복종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말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었다. 전자는 위에서 아래로의 독백이고 후자는 아래에서 위로의 독백이었다. 이후 커뮤니케이션이 상호적이 되면서 독백이 대화론 바뀐다.
둘째, 대화는 사회의 언어와 지성을 윤택하게 한다. 타르드는 그 증거의 예로 14세기부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발달한 살롱을 든다. 살롱은 특히 17세기에 프랑스에서 꽃을 피웠는데, 살롱에서는 언어의 뉘앙스와 재치를 중요시하였으며 문학과 예술을 소재로 한 대화가 끝없이 펼쳐졌다. 18세기 후반부터는 대화의 소재가 철학과 정치로 바뀌면서 살롱에서 혁명적인 사상들이 발아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유럽에서 혁명이 제일 먼저 일어난 영국에 대한 숭배사상이 프랑스를 휩쓸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제 살롱은 계몽사상가들이 종교와 사상의 자유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교환하는 토론의 광장이 되었다.
셋째, 대화는 절대권력의 해독제이다. 대화는 절대권력을 제한하며 자유를 보장하는 역할 한다: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대화가 -출판 이전에는- 정부에 대한 유일한 제동기이자 난공불락의 자유의 피난처이다. 대화는 평판과 위세를 만들어내며, 영광과 - 이 영광을 통해- 권력을 좌지우지한다. 대화는 그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동화시켠서 평준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아울러 위계질서를 지나치게 표현한 나머지 오히려 그것을 파괴한다."(본서135쪽)
그렇지만 개인들 간의 사적인 대화만으로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다. 여론을 주도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신문이다. 신문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대부분의 주제를 제공한다. 그로 인해 여러 장소에서 같은 내용의 대화가 동시에 이루어 진다. "점점 넓은 지역에 걸쳐서 그 곳에서 동시에 행해지는 대화들 간의 유사가 증가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본서 114쪽) 그렇다면 신문은 기사 소재를 어디에서 얻는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개인들 간의 사적인 대화에서 나온다. (중량) 이러한 연속적인 과정 즉 개인들의 사적인 대화->신문->공중->다수의 사람들의 대화->여론이라는 연쇄가 타르드가 말하는 여론형성의 과정이다. "뉴스는 한 대륙의 모든 대도시에서 순식간에 군중을 자극한다. 이 분산되어 있는 군중에서, 신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즉 동시성이라는 그들의 의식을 통해 또 신문의 영향에서 생겨나는 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닿아 있는 이 흩어져 있는 군중에서 단 하나의 거대하고 추상적이며 최고의 힘을 갖는 군중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문은 대화로 시작되었으며 (...) 개인적인 의견을 지역적인 의견으로,지역적인 의견을 국민적인 의견이나 세계적인 의견으로 통합하는 작업 즉 공공정신의 장대한 통합을 끝마쳤다."(본서162쪽)
p258 : 신문은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이나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관한 소식들을 매일 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같은 나라에 소속되어 있다는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하였다. 이는 각각의 독자에게 국민으로서의 의식과 생활에 자극을 주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국민국가라는 공동체 관념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이러한 사실은 국민국가의 형성기가 대체로 신문이 대대적으로 보급되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p260 : (세르주 모스코비치는) 타르드를 "우리가 오늘날 국민의 맥을 짚어보는 수단으로서 정치마케팅이라고 부르는 것을 권장한 최초의 사람"으로도 평가한다.
p261 : 다음과 같은 구절을 쓴이는 프로이트가 아니라 타르드이다. "가장 평등주의적인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일방성과 불가역성은 사회제도의 기초에 즉 가족 속에 존속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항상 아들의 최초의 스승, 최초의 사제, 최초의 본보기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모든 사회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p263 : 타르드에 따르면 공중은 인쇄신문의 산물이었다. 군중의 한계는 목소리가 전해지는 길이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나 공중은 암시가 관념의 형태로 전달되고 '접촉 없는 전염'이 있는 높은 단계의 사회발전을 전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