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의 옥중수고1』-서설 안토니오 그람시 2021.7.9. 바다사자

『그람시의 옥중수고1』 안토니오 그람시 2021.7.9. 바다사자

 

서설

 1926년 무솔리니는 반대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폭넓은 검거 선풍을 일으켰는데 그 중 안토니오 그람시도 있었다. 1924년 이래 이탈리아 공산당 총서기였으며 나이는 35세였다. 1928년 20년형을 받았으나 그의 두뇌는 작동을 멈추지 않았고 감옥에서 몇 년에 걸쳐 2,848쪽에 이르는 필사본을 남겼다(23).

 본 서설은 그람시의 《옥중수고》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 아니라 집필의 불가피한 배경과 그의 정치적·지적 경험 세계를 간결하게 소개했다(24).

 

초기의 삶

 안토니오 그람시는 1891년 사르데냐의 알레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사르데냐의 길라르자에서 등기소 직원으로 일했다. 어머니는 지방 세무조사원의 딸이었고 드물게 읽고 쓸 줄 아는 소양을 지녔다. 1897년 아버지가 구속된 후 석방되기까지 어머니 혼자서 삵바느질로 일곱 아이들을(25) 키웠다. 안토니오는 척추가 잘못되어 곱사등이가 되었으며 키도 152cm를 넘기지 못했다. 어릴 때의 정신질환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고 성년 이후에도 자주 재발하여 신경성 병발을 수반하였고 46세의 나이로 죽었다.

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나 1908년 칼리아리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튜린에서의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형 젠나로와 함께 지냈는데 젠나로는 전투적인 사회주의자였고 안토니오가 정치에 눈을 뜨게 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당시 사르데냐를 휘쓸고 지나간 사회적 저항운동의 물결도 큰 자극을 주었는데 본토 파견 군대의 무참한 진압과정으로 인해 사르데냐 민족주의에 경도되었다. 이 경험으로 언제나 농민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계급과 지역적 요인 사이의 복합적인 변증법에 몰두했다(26).

 사르데냐의 군대가 튜린의 노동계급을 억압하는 데 이용된 사실에서 그람시는 산업화된 ‘북부’와 노동지대인 ‘남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근본적인 계급문제가 은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북부 산업 보호주의 정책은 이탈리아 농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생산물을 수출할 수 없었고 선진국의 값싼 상품 대신 국내산업의 비싼 상품을 사야 했다. 그람시의 <남부문제>는 이를 기초한 것이다. 그 결과로 남부 지방이나 섬에는 사회주의 이론과 자유주의 이론이 혼합된 다른 이념이 파고들었다. 1차대전 전까지 살베미니가 열렬히 선전했다. 1911년 튜린에 도착했을 당시 그람시의 정치적 입장은 바로 이 ‘남부주의’였다. 살베미니는 사회당의 개량주의자적 성격과 남부지역과 농업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비판하여 탈당(27)한 초기 사회주의자로서 그람시의 정치적 형성과정에 중요한 지적 영향을 미쳤다.

 1911년 튜린 대학에 진학했다. 추위와 영양결핍, 병고 등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으나 그의 정치적 활동의 심도가 더욱 깊어진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28).

 

지적인 형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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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린 대학 시절 사회주의 운동과 연계되어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게 됨(28)

 초기 그람시에게 중대한 철학적·문화적 영향을 미친 사람은 베네데토 크로체였다. 짧은 기간 동안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공언했으나 곧 맑스주의는 ‘사적 질문과 탐구를 위한 단순한 규범’으로서만 유용하다고 선언, ”이탈리아에서 이론적 맑스주의는 죽었다“고 선포했다. 오늘에까지 크로체의 영향은 크다. 실증주의에 대한 반대와 세속주의는 젊은 좌익 지식인들에게 지속적 영향을 끼쳤다. 도덕적 갱신에 대한 주장은 무솔리니를 지지했듯이 위험스러울 만큼 강조되었다(30). 프랑스 생디칼리슴의 이론가였던 조르주 소렐과의 지속적인 교류는 좌파 철학의 기수라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 그람시의 철학적 견해는 초기 크로체적 취향을 보여주었으나 크로체 철학과 맑스주의의 관계를 엄격히 비판하는데 할애되었다. 비판의 요체는 크로체가 대립물의 투쟁이라는 역사운동을 단순히 ‘차이물의 변증법’이란 개념적 변증법으로 환원시킨 데 대한 것이다. 실제적 갈등이 제거되었고 지식과 존재의 통일이 궁극적으로 달성된 사회를 반영하는 철학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계급투쟁인 역사의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성격을 설명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31).

 그람시 사상에서의 정치란 인간활동의 요체를 이루며 개별의식이 사회적·자연적 세계와 접촉을 맺는 수단으로 설명된다(29). 파시트트 정권에 지원했거나 동조한 자들 중 상당수가 이탈리아 문화에서 진보적 위치를 차지했을 때 그리고 그람시의 맑스주의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을 때, 그람시의 문화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 지식인이 보여주었던 지방주의와 세계주의, 교회와 국가의 권력 구조에서 수행한 역할들은 옥중의 그람시에게 주된 고찰 대상이었고 그의 지식인 비판은 결코 분파주의적이지 않았다. 그의 비판은 성장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에 ‘민족적·민중적’ 의식 형성시키는데 지식인이 기여할 수 있겠느냐의 관점에서 이탈리아 인텔리겐차의 객관적인 허약성을 현실성있게 평가하는 데서부터 출발했다(33).

 

튜린에서의 사회주의 정치활동

 튜린은 이탈리아의 페트로그라드, 가장 선진산업의 본고장이었다(33). 튜린 노동계급의 약 40%(6만)는 여성이었는데 이들은 중요한 프롤레타리아 봉기의 맨 앞에서 싸웠다. 튜린은 1914〜15년 전쟁에 참여해서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전쟁에 직접 개입할 어떠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자본은 산업평화 유지에 무엇보다 신경을 썼는데 튜린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선진적, 전투적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격렬한 파업과(34)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때가 그람시의 초기 튜린 시기였다.

 이 시기 그람시는 노동자야말로 북부 산업 자본가들의 진정한 적이며 남부 농민 대중의 잠재적 동맹자·지도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부주의를 극복했던 것이다. 전쟁 이후에도 노동자의 투쟁은 갈수록 대량화·정치적 성격을 띠었다.

 이 시기 젊은 사회주의 세대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살베미니와 무솔리니였다(35).

무솔리니	사회당 좌파 지도자, 당 기관지 <아방티(전진)> 편집자
살베미니	리비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팽창 비난, <우니타(통일)> 신문은 평등을 기반으로 남·북부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됨. 1914년 이탈리아 참전을 주장하면서 젊은 세대로부터의 충성은 끝남

 당시 사회당은 여러 사회주의 세력 가운데 하나였으나, 전쟁 불만이 높아지고 산업노동자의 전투적 성향, 러시아 혁명의 충격파로 당 지도부는 좌경화 되었다. 이때 상반된 압력이 결합되어 ‘맥시멀리즘(중간파)’이 출현했고 지배적인 입장이 되었다. 대표자는 세라티였다. 한편 전쟁 중 사회당에 애국적인 슬로건의 개량주의 우파가 부상했다(36). 당 지도부의 전쟁에 ‘참여거부주의적’ 원칙은 전쟁 종료 후 실천에서 결코 혁명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프티부르주아층을 철저히 소외시켰으며 이 계층이 훗날 파시즘의 사회적 토대가 되었다. 튜린 지부는(37) 전쟁 중 당 비타협주의 분파의 아성이었고 그람시같은 젊은 당원들이 그랬다.

 그람시의 첫 번째 정치적 동료는 타스카였다. 그는 1912년 청년당원대회에서 보르디가와 격론을 벌여 명성을 얻었다. 보르디가는 PCI 초기 당 지도자였으며 1930년대까지 좌익 분파를 이끌던 사람이었다. 개량주의적 사회주의에 대립하는 비타협적 지도자로서 규율잡히고 비타협적인 맑스주의 정통노선으로서의 복귀를 꾀했으면서도 경직성과 독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람시가 지방적인 시각을 벗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이미(38) 혁명정당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누구보다도 먼저 이해했기에 PCI 창설 때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그람시가 PCI에서 이룩한 업적은 보르디가에게서 경제주의적 극단론을 제거하되 그것을 타스카에게 접붙이지 않았다는 점이다(39).

 1914년 당 간행물에 그람시는 당의 전쟁 ‘참여거부주의적‘ 입장의 소극성과 순수성만 고집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을 경멸하는 뜻에서 무솔리니가 당의 입장을 벗어나기 시작할 때 그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혁명가는 일시적인 구호인 ‘절대적 중립’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중립’의 구호 바꾸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무솔리니의 관점과 전혀 다른 것으로 곧 드러났다.

 1915년 그람시는 사회당 주간지 《그리도 델 포폴로(민중의 소리)》 발행에 참여하고 정치평론가로 성장했다(40). 1917년까지 두드러진 역할을 맡지는 않았다.

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그 중요성을 확고하게 인식했으나 혁명적 전위정당에 대한 레닌의 이론과 실천의 중요성을 제대라 이해하지 못했다(41). 그람시가 ‘볼세비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한 것은 멘셰비키나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부르주아지가 형성되어 자본주의 시대가 개막되기 전에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것)를 거부한 것을 말한다.

 1917년 튜린에서 많은 산업투쟁이 일어났으나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격렬한 말 뒤에 어떤 진지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는 않았다(42). 노동자들에게 조직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제공한 것이었다. 비타협주의적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무력했다. 이들의 무력성은 3년여 동안 계속 드러났다. 튜린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거대한 혁명정신과 그에 비한 정치조직의 형편없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 1917년 8월 폭동으로 모든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검거되자 그람시는 ‘잠정위원회’에 선출되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준지하활동을 하게 된 튜린 당 지부를 지도했다. 그의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중간파’ 뿐만 아니라 ‘순수주의’파와도 틀어졌다.

 1917년 11월 전국대회에 앞서 비밀회의가 플로렌스에서 열렸는데 ‘비타협주의자’와 당 중앙을 갈라놓은 중요한 차(43)이점은 개량주의자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관한 의견뿐이었다. 원칙의 고수에 신경을 썼으나, 정치적 행동을 위한 구체적 전략은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행동하는 것을 요구한 보르디가와 그를 지지한 그람시가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 1920년 공산당PCI 창당대회가 열릴 때까지 그람시는 공장평의회 운동의 주된 이론가롤 전국적인 인물이 된다(44).

 10월 혁명의 교훈

- 고도로 조직되고 규율잡힌 혁명정당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 보르디가가 가장 먼저 흡수

- 소비에트 권력의 수립이 가져온 대중적 충격: 그람시는 튜린에서 독일 평의회 모델을 시험하는 이론자, 선전가로 활동. 혁명정당의 중추적 중요성 이해에 뒤짐(45). 그러나 전후 이탈리아 노동계급이 수행한 주요 투쟁의 중심부에 설 수 있었다는 점. PCI노동계급적 기초의 정수를 제공한 것(46).

 

《오르딘 누오보》, ‘피의 시절’, 그리고 PCI의 창설

 1921년 1월, PCI가 창당될 때 이미 혁명의 파도는 썰물을 맞았다.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공격을 지도해야 할 혁명적 전위정당은 혁명적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배계급의 정당도 없었다. 또 파국적인 경제 위기가 닥치기도 했다(46). 그러나 이탈리아 자본주의는 전쟁을 통해 자본집중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속도로 진행되었다. 공업의 발전은 농업에 치명적이었고 소기업의 몰락으로 프티부르주아층을 프롤레타리아화시켰다. 전쟁 직후 산업자본은 공격적이고 자신에 차 있었다. 궁지에 몰린 지배계급이 최후로 선택한 수단이 파시즘이라는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대자본이 파시스트에게 재정과 활동을 승인한 것은 노동계급이 패배하고 난 후였다(47).

 1919년 PSI는 총선을 통해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스스로를 폭동에 적합하게 조직하지도 않았고 농민 속에서 산업프롤레타리아의 동맹자를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군대, 도시의 프티부르주아지, 제대한 장교집단을 소외시킴으로써 지배계급에 저항하도록 이끌지 못했다(48).

 1919년 6월 그람시는 《오르딘 누오보》에 <노동의 민주주의>라는 논설을 실어, 직장위원회는 공장평의회를 위한 잠재적인 토대이며 이것이 이탈리아 ‘소비에트’의 창출을 위한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는 구상을 밝혔다. 《오르딘 누오보》는 레닌주의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조직가’였고 튜린의 모든 공장에 공장평의회가 조직되는데 불가결한 역할을 했다. PCI의 노동계급적 기초의 주요 부분을 제공했다(50).

 오르딘 누오보의 성격과 약점(51).

	성격	약점
첫째	자신의 이론을 튜린 노동계급의 실천과 직접 연결시켰다. 소비에트 체제의 실현을 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비조직 노동자·무정부주의자 들을 포함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기구였다.	타스카와의 불화의 근본 이유였다. 평의회를 프롤레타리아 독재 수행하는 기구로서 그 아래 전통적 노동계급 조직을 종속적 위치에 놓았다는 점이 좌파 전체의 불만의 원천이 되었다.
셋째	공장평의회가 기초가 되는 지역소비에트를 미래의 사회주의 국가의 맹아로 보았다(51).	생디칼리슴적인 경향, 국가의 역할 과소평가, 권력의 장악을 준비하는 혁명 정당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
넷째	혁명이 다수의 동의를 장악하여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극복하는 것은 오직 대중을 통일시키고 그들의 자발성을(52) 조절해 나가는 조직체의 창설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대중조직과 혁명 정당 사이의 관계를 제시하고(1920년 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활동을 전국적으로 조정하기에는 너무 늦은 때였다. PCI창설과정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PCI가 형태를 잡은 것은 혁명적 기운이 사실상 종식된 뒤였다(53).

 1920년 여름은 《오르딘 누오보》 그룹에게 시련의 시기였다. 제3 인터내셔널은 보르디가 중심 ‘선거불참여파’의 자제를 종용했고 그람시는 옵서버로 참여했으나 제안은 부결되었고 고립되었으며 《오르딘 누오보》 그룹의 통일도 깨진데다 전국적인 ‘조직’일 수 없게 되었다(54).

 1920년 7월 제2차 코민테른 세계대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PSI의 혁명성에 대해 환상을 가졌다. 보르디가는 좌익소아병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결국 ‘선거불참여주의’를 철회했다. 인터내셔널과 보르디가 사이의 진정한 괴리는(55) 근본적인 문제, 곧 노동계급의 다수를 얻는 것이 필수적이냐의 여부 즉, 보르디가는 당이 올바른 정책을 견지하기만 하면 노동계급은 당연히 따를 것이라고 보는 완벽한 경직성을 가지고 있었다.

 그람시는 반중간파적 입장이었으므로 보르디가를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상충점은 분명했다. 1923년 PCI가 사회주의 노동자의 다수파를 획득하는 데 실패하자 이를 반동세력의 가장 큰 승리라고 보았고 보르디가는 인정하지 않았다. 1920년 여름은 《오르딘 누오보》의 통일성과 방향감각을 상실한 순간이며 보르디가의 우위성이 굳어진 때였다(56).

 《오르딘 누오보》가 이념을 제시하고 선거불참여파는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으나 전국적인 규모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하는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산업동반자적 관계를 제시한 것만으로도 타협할 수 있었다. 《오르딘 누오보》 그룹은 전국적·조직적 차원에서 전적으로 무력했다.(《오르딘 누오보》는 이론적 바탕만, 혁명은 혁명정당 PSI가 했어야!) 전후 이탈리아 혁명적 상황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러나 1920년 가을부터 만족하지 못한 자본가들은 좌익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고(58) 무솔리니 조직에 자금을 제공했다. 파시즘이 대중적 현상으로 발전한 것은 국가로부터 ‘대량적인 묵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 1921년 PSI 내부의 코뮤니스트 분파는 리보르노 당 전국대회에 대비했다. 그람시와 인터내셔널은 그들이 다수파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때 그람시는 지난 시간 패배에 책임이 있는 이탈리아 사회주의 모든 과거를 거부했다. 적은 개량주의자가 아니라 중간파였다는 것이다. PCI가 이후 코민테른의 방침을 거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59).

 보르디가는 파시즘을 간과했으며, 사회민주주의만이 ‘해결책’이라고 믿었으며 규율과 중앙집권주의, 원칙의 순수성을 고수했다. 그람시는 암흑의 반동 아니면 프롤레타리아혁명밖에는 길이 없다고 했으나 당시 코뮤니스트 정당 형성의 길은 보르디가 방식밖에 없다고 믿었다. 리보르노 대회에서 코뮤니스트 대표들은 통일전선전략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창당대회를 열었다. 보르디가는 당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며 부분적 반대자였던 그람시는 완전히 고립되었다(61).

 

보르디가 지도하의 PCI(1921〜1923)

 PCI 창당 시 그람시는 30세 직전이었다. 이 기간에 파시스트 권력은 공고화되었으며 국제적으로 혁명이 퇴조했고 러시아 공산당 내 권력투쟁이 개시되었다. 이탈리아 당과 인터내셔널의 반목은 깊어갔다. 그람시의 경우 불확실성의 기간이었으며 진정 고뇌의 기간이었다.

 당시 역사적 상황의 주요한 세 가지 요인은 국제적인 상황 전개와 통일전선, 이탈리아의 상황전개와 파시즘, 당 내에서의 보르디가와 타스카에 대한 투쟁이다(61).

 3차 세계대회에서 코민테른은 혁명의 후퇴를 일시적으로 보고 통일전선 정책을 제시했다. PCI는 본질적으로 노동계급 다수파(중간파)의 지지를 얻어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거부했다(63). PCI와 코민테른 사이의 불화는 레닌에 의해 통일전선정책이 선언된 때부터 1930년대 인민전선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2차 대회(1920)와 3차 대회 사이에 신경제정책, 파시즘의 성장, 독일 3월 봉기 실패가 있었다(65).

 인터내셔널은 PSI 개량주의자들이 축출되면 PCI와 PSI가 합당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65) 그람시는 PSI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이라기보다는 농민당에 가까우므로 합당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922년 PCI 2차 당 대회에 인터내셔널의 콜라로프의 비판은 당내 우익반대파(타스카 주도)의 부상을 촉진시켰다. 인터내셔널이 통일전선정책의 완전 적용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 1922년 4차 인터내셔널 대회는(66) 파시즘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처리하고 사회민주주의자에게 화살을 집중했다. 그람시의 영향을 받은 라데크는 파시즘의 프티부르주아적 구성 요소,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퇴역 군인에 대한 분파주의적 태도, 파시즘에 대한 대자본의 원조를 강조했으나 보르디가는 파시즘과 자본은 무관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람시 자신조차 파시즘 분석에 일관성이 없었고 오히려 그람시 초기 직관을 일관성 있게 발전시킨 사람은 타스카였다(67).

 1922년 11월 레닌 등의(68) 최후 통첩을 받은 이탈리아 당은 분열이 일어났다. 보르디가와 그람시는 의견을 달리했지만 그람시는 계속적인 저항으로 당내 우익소수파와 타스카가 부상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써 전술적인 차이뿐이었다. 이후 PSI 내에 개량주의자들이 축출되었음에도 반합당파가 주도권을 쥐자 합당문제는 사라졌다. 이후 코민테른은 그람시에게 PCI의 주도권을 제안했으나 그는 거절했다(69).

 1921년 8월 PSI는 파시스트들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1921〜1922년은 심각한 경제위기와 부르주아 정부의 허약성이 특징이다. 당원 수는 급감했고 PSI는 말뿐인 비타협과 실천에서 소극성이 결합된 채 덫에 걸렸다. 1922년 파시스트 폭력이 다시 시작되었고 7월 총파업이 실패하자(70) 무솔리니가 로마에 입성할 때 아무런 반향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파시스트는 권력을 장악하자 억압을 시작했고 타격은 막대했다(71). PCI가 파시즘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했음이 분명했으며 그람시조차 파시즘 정권의 특수성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72).

 

그람시의 옥중수고1-서설(안토니오 그람시 21.7.9).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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