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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샹탈 무페
3장 민주주의를 급진화하기/ 2021.06.25. 개벽크
민주주의를 급진화한다는 뜻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서 옹호되었던 ‘급진 다원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오해들이 발생되어 왔고 우리가 옹호하고 있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윤리-정치적 원칙인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의 급진화‘였던 것이다. (67)
라클라우와 무페 주장했던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다 중요한 민주주의 업적이란 기존 제도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가진 문제는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구성 원리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급진 다원 민주주의’는 기존 민주주의 제도들의 급진화로 이해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자유와 평등 원리들은 점차 증가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효과적이게 되었다. 민주주의 전통이 가진 상징적 자원들을 끌어내 오는 내재적 비판을 통한 헤게모니적 방법으로 성취될 수 있었고 이러한 내재적 비판 속에서 좌파 포퓰리즘 전략이 포스트 민주주의에 개입하여 도전하고, 평등과 대중 주권이라는 민주주의 가치의 중심성 또한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68)
사회정치적 침체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초래했으나, 대부분의 이 저항들은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거부 형태를 취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특권화 시켜왔던 기성 엘리트에 대한 고발 형태를 취한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 언어를 통해서 많은 시민들은 자신들의 저항을 접합시킬 수 있다. ‘광장 운동’의 주 대상은 정치 시스템과 민주주의 제도의 결점이 아니었고 스페인 인디그나도스에서 ‘우리는 투표권만 있을 뿐 우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라는 구호처럼 시민들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69)
다양한 억압 형태에 맞선 수많은 저항들이 민주주의 요구들로 표현된다는 사실은 ‘민주주의’ 기표가 정치적 상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이다. 민주주의의 평등주의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비판적으로 사용할 때, 민주주의 기표는 새로운 상식을 창조하는 헤게모니 투쟁에서 강력한 무기를 만들게 된다. 그람시는 이것을 “처음부터 과학적 사고를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 삶에 도입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행동을 새롭게 하고 ‘비판적’으로 만드는 것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70)
민주주의 혁명을 정의하는 계기는 대중이 절대 권력을 새롭게 확정한 프랑스혁명이었고 신학정치적 모체와 단절한 사회 제도들의 새로운 상징 양식의 시작점이며, 불평등의 여러 다른 형태들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문제삼는 말들에 프랑스 인권선언을 제공했다. (71)
토크빌이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으로 예견한 것으로 정치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이 ‘평등을 위한 열정’은 여러 사회주의 담론들과 투쟁들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문제삼게 되었고, 이로써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72)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는 과정에서, 마거릿 대처가 어떻게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신자유주의 기획이 실행 될 수 있게 했는지를 보아 왔다. 헤게모니의 구성체의 이행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두 가지 분석 수준들을 방법론적으로 구분해야한다.
(1)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의 윤리-정치적 원리
(2) 이 원칙들이 서로 다르게 각인된 헤게모니 형태
헤게모니적 전환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레짐에 내정한 정치 원리들과 사회경제적 실천들 사이 여러 다른 접합에 기초한 새로운 역사적 블록을 구성하는 것이다.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입헌적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 새로운 헤게모니 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이지, 다원적 자유민주주의와의 급진적 단절,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정치 질서의 구축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전략의 목표는 민주주의 가치에 주도적 역할을 부여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부정해버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다시 접합시킬 새로운 헤게모니 구성체를 이끌 ‘대중’이라는 집합 의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74-75)
‘극좌’의 혁명적 전략이나 정부 내에서의 단순한 교체만을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의 무익한 개혁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 전략은 ‘급진적 개혁주의’ 혹은 장 조레스를 따라 ‘혁명적 개혁주의’라 불릴 수 있다. 보통 ‘좌파’로 이해되는 것의 스펙트럼 내에는 정치가 세 가지로 나눠질 수 있다.
(1) ‘순수 개혁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합법성 원리와 기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적 사회 구성체 모두를 수용한다.
(2) ‘급진적 개혁주의’는 합법성 원리를 수용하지만 전혀 다른 헤게모니 구성체를 실행하려 한다.
(3) ‘혁명적 정치’는 기존 사회 정치 질서와의 총체적 파열을 추구한다.
세 번째 범주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레닌주의 정치뿐만 아니라,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철저히 부정하려는 아니키스트들 혹은 ‘반란’의 옹호자들이 촉진하는 다른 형태의 정치도 발견하게 된다.(76-77)
그람시는 ‘통합 국가’라는 구상으로 정치 사회와 시민 사회를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것은 시민 사회의 ‘국가화’가 아니라, 헤게모니 투쟁 지형으로 제시되는 시민 사회가 가진 심오한 정치적 성격에 대한 지칭으로 이해되어야한다. 국가 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국가가 되는 것을 말한다. (77-78)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반자본주의 차원을 포함한다.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노동 계급이 선험적인 특권적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반자본주의 투쟁에는 어떤 선험적인 특권적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다양한 인구 집단들 사이에는 수많은 적대 지점들이 존재하며, 이것이 투쟁의 원리를 확장하는 것으로 예상할 때 다양한 투쟁들이 나타나게 될 것을 의미한다. 몇몇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자본주의적’이 아닌 평등의 이름으로 수행되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파악될 것이다. 대중들은 자신들이 사회주의로 나가는 ‘역사 법칙’을 믿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행동하게 되는 것은 언제나 구체적인 상황에 기반을 둔다. 만일 그들이 평등을 위해 투쟁한다면, 그것은 다양한 지배 형태들에 대한 그들의 저항이 민주주의 가치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대중이 동원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반자본주의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 열망과 주체성을 언급하는 민주주의 가치들 사이에 있다. (81)
그들은 대중이 현실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론에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이란 대중이 현실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극좌들은 실제로 대중의 실제 요구에 둔감하다. 그들의 반자본주의적 수사는 자신들이 대변하는 척하는 이해관계에 속한 집단들에게 아무런 울림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것이 극좌들이 언제나 주변부에 남는 이유이다. (82)
이미 정해진 ‘포퓰리즘 체제’의 수립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과 심화를 보장할 헤게모니 구성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적 사회주의’, ‘생태 사회주의’, ‘결사체 민주주의’ 또는 ‘참여 민주주의’ 등으로 보일 수 있다. 모든 것은 맥락과 국민적 전통들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83)
보비오는 사회주의 국가와 경제의 민주화로 이해하면서,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접합에 대한 몇몇 연구를 통해 민주적 사회주의가 일종의 자유사회주의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보비오는 사회주의 목표들은 오직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목표들이 자유민주주의 틀 내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주장을 강력히 옹호한다. (83-84)
급진민주주의 기획은 생태적 위기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질문들을 접합시켜야 한다. 새로운 발전 양식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전통과 사회주의 전통들의 핵심 지점들을 새롭게 종합하는 상상이 필요하다. (85)
하트와 네그리는 모든 포퓰리즘은 ‘한 줌의 정치 파벌이 대중 권력에 끊임없이 립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궁극적으로 통제와 의사 결정을 해 나간다는 핵심적인 역설에 의해 특정지어진다고 한다. (87)
하트와 네그리가 말하는 관점의 중심인 공유재에서 문제는 이것이 사회 조직화의 주요 원리를 제공한다는 것과 부정성과 적대에서 벗어난 다양체에 대한 구상을 상정하다 보니, 사회 질서가 가진 필연적으로 레게모니적인 본질을 인식할 수 있는 여지를 공유재에 대한 칭송이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89)
다원주의를 조화로운 반 정치적 형태로 파악하지 않고, 언제나 적대가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하는 다원 민주주의 사회는 대표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실제로 다원주의는 헤게모니 기획들 사이의 경합적 대결을 상정한다. 집합적 정치 주체들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바로 대표성을 통해서이다. 기존 대의제가 가진 주요 문제는 진동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조건인 사회의 여러 다른 기획들 사이 경헙적 대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것은 대표성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경합적 대결의 결핍인 것이다. 해결방안은 대표성을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제도를 더욱 대표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좌파 포퓰리즘 전략의 목표인 것이다.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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