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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탈 무페(Chantal Mouffe),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1, 포퓰리즘 계기(The populist moment) & 이론적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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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머리말에서...

 

포퓰리즘(Populism). 우리나라 언어로 대중주의(大衆主義)로 번역할 수 있는 포퓰리즘은,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이나 활동으로 정의됩니다(Wikipedia). 대중에 뜻에 부합하는 정치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결을 같이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중, 민중의 흐름에 영합하려 하는 정치적인 선동처럼 사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포퓰리즘에 대해서 사유하고, 우파적 포퓰리즘의 성격과 별개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샹탈 무페의 표현처럼 좌파 포퓰리즘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퓰리즘 그 자체의 의미와 정치적인 성격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포퓰리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샹탈 무페는 “‘포퓰리즘 계기가 드러나는 현재 정세의 본질과 도전”(11)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자유의의 헤게모니 구성체의 위기’, ‘현 민주주의 질서를 보다 더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11)이라는 말로도 시작하고 있지요. 그리고 전환이라는 말로 지난 30년의 시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0여년 전의 영국은 좌파 정권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시기였고, 마가렛 대처(1979~1990까지 영국 총리)의 신자유주의 열풍이 불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처럼 1982년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로, 마가렛 대처를 말하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기반으로 국가를 안정화시킨 공로에 대해서 말합니다. 80년대 중반 대처 정권이 등장하기 전까지 좌파 정권이 득세했던 영국의 정치에 대해서 좌파 정치의 무능력을 언급합니다.

좌파 정당들은 이러한 운동들의 다양한 요구들’(12)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문맥에서 좌파 정치의 약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계급 본질주의(class essentialism)’ 관점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 진영은 모든 이해의 기초를 계급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 현상에서 더 이상 계급이 아닌 것들에 대한 문제와 요구들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진영은 이에 대응하지 못하고 정치적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본질적인 구조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난 탈구조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Hegemony)에 대한 논의를 전개합니다.

헤게모니의 기본적인 이론의 성격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의 투쟁과 대중의 자발적 동의가 일어나는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공통 의지(common will)'(13)이라고 말해지는 대중의 동의에 의해서 사회적 행위와 운동들이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노동 계급적인 관점을 유지하던 좌파 정권의 실패는, 대중의 의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실패한 것이고, 샹탈 무페의 표현처럼, “여러 다른 종속 형태에 관한 투쟁들을 접합하는 좌파 정치의 필요성과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재구상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샹탈 무페는 그런 과정에서 좌파의 심각한 퇴행’(15)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중도 좌파로 말해지는 토니 블레어(1994~2007 영국 노동당 당수)와 신노동당의 3의 길에 대해 말하는데, 이를 새로운 국면’(15)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기반의 헤게모니 지형을 수용하고, 더 이상 계급적인 투쟁이나 정치가 아닌, ‘좋은 경제 정책과 나쁜 경제 정책 사이에 대한 것이 국가의 역할이자 관리적인 역할로 정치를 퇴행(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시키면서, 결국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를 용인하게 됩니다.(이와 관련해서 유명한 말이 있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 운동 문구처럼요. “It's the economy, stupid!") 이로 인해서 시민들의 정치적 공간은 더욱 축소되고 맙니다.

샹탈 무페는 선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줄어들고, 탈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염려합니다. 헤게모니의 본질적인 특성인 경합과 투쟁의 정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치의 당파적 성격의 재확인’(17)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헤게모니적인 전략적 변화가 정치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좌파 사민주의 정당들의 쇠락과 반대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 정치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게 됩니다. 국내적으로는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시기, 2008년의 세계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자리하게 된 과정에 대한 날선 비판도 필요합니다.(관련하여 좋은 연구 논문이 있습니다. 신진욱이영민(2009). 시장포퓰리즘 담론의 구조와 기술: 이명박 정권의 정책담론에 대한 비판적 담론분석. 경제와 사회, 273-299)

이런 상황이 포퓰리즘 계기를 말하는 국면으로서, 정치적 경계를 다시 구축해내기 위한 전략으로서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논의를 해나가고 있음을 유념하면서 책을 읽어가면 됩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운동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 젠더문제, 인종주의, 기술소외 등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런 대중의 포퓰리즘적 가치에 대해 논의하면서도, 정치적 상상력을 개진할 수 있는 좌파 포퓰리즘 전략의 필요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것의 귀환’(19)을 목표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인하고 확장하며 새로운 정치 유형으로 헤게모니화하는 것, 이것이 샹탈 무페가 이 책을 통해서 다루는 내용입니다.

 

1. 포퓰리즘 계기

 

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관심은 민주주의 정치를 구성하는 평등과 포퓰리즘적 주권에 대한 최상의 상태를 발견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전략”(21)의 제공에 있습니다. 이런 판단은 현재 정치의 국면’(22)에서 내릴 수 있는 솔직한 판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 적인 계기로서 등장하는 정치 세력들(우파든 좌파든 관계없이)에서 마키아벨리의 사물의 실제 진리특정 국면’(22)에 대해서 사유하고 있지요. 포퓰리즘은 국면과 매우 강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는 국면을 구성하는 그 의견의 근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국면은 대중에게서 나오고, 대중의 의견에 부합하느냐의 여부가 매우 중요한 것이 포퓰리즘입니다.

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구상에 있어서 그 근간을 구성하는 것은 헤게모니 이론입니다. 그것은 기존 좌파의 계급적 본질주의 구상과는 다르게, 세계의 정치적 역동성을 설명하고, ‘헤게모니 실천의 담론적 구성’(23)이 중요하고, 이는 현대 정치의 근간이 됩니다.

라클라우(Ernesto Laclau)의 논의처럼 포퓰리즘은 정치적 경계 구상을 위한 담론적 전략입니다. 물론 포퓰리즘은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정치적 레짐도 아닙니다(24). 하지만 국면, 즉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이데올로기 형태도, 레짐으로서 정치적 제도의 관습성과 결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현대의 정치에서 포퓰리즘 계기란, “정치적 혹은 사회경제적 전환에 대한 압박에 처한 지배 헤게모니가 불안정해진 상태”(24)를 말합니다. 새로운 사회질서의 요구에 따른 대중의 가능성이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좌파 포퓰리즘을 지금 이 시기에 논의하는 이유는, 장기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가 불안정한 신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30년전 케인즈식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전복시켰던 하이에크식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지속해온 탈규제, 민영화, 재정긴축, 자유무역 등의 정치경제적 현상들에 의해서, 현재 간극이 깊어졌고 새로운 요구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불안정 현상들이 재기되기 시작했던 시점이 2008년의 세계 경제 위기 현상이었고, 이후 유럽에서 채무 위기들이 촉발되면서, 남유럽 국가들(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긴축정책이 실행되고 사회적인 모순이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람시의 표현에 따르면 인터레그넘(interregnum)(26)이라 표현될 수 있는, 기존의 헤게모니가 도전받게 되는 그 시기에 새로운 해법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포퓰리즘 계기의 특징이라고 설명합니다. 계기는 새로운 전환에 대한 저항과 다양한 표현들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사회를 한 단계 더 나아가기를 바라며 포스트(post)'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콜린 크라우치의 표현에 따르면 정치의 민주주의 이전 시대로 돌아간 엘리트주의 현상이자, 자끄 랑시에르의 표현에 따르면 국가 장치와 사회적 에너지 및 이해관계의 합성 작용으로 환원’(27)되는 개념입니다.

샹탈 무페의 논의는 이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특질을 전면에 드러내면서(28), 동시에 민주주의적 특성을 조명합니다. 민주주의적 정치 레짐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대중 민주주의의 접합과 관계성 속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물론 칼 슈미트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를 부정하고 접합이 실패한다 주장하지만, 샹탈 무페는 민주주의의 역설을 통해서 두 가지 정치적 전통이 접합되는 긴장의 장소(29)’를 언급합니다. 자유주의적 경향성을 전복하기 위해서는 대중과 평등주의 실천 논리가 필요하고, 평등주의의 자유를 배제하는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비판 또한 필요합니다. 상호 논리가 끊임없이 경합적으로 투쟁하고 협상하는 헤게모니적 배열’(30)로서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포스트 민주주의’(31) 상태로 묘사되는데, 이는 앞서서 정치에서의 자유와 민주의 원리들 간의 경합과 긴장이, 오로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의해서 제거되고 외면 받게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경제 중심의 논리에 의해서 정치적 논의가 이루어져야할 긴장 공간이 사라지고, 시민들은 민주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게 됩니다. 정치적 자유 혹은 평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공간은, 오로지 경제적 자유에 대한 논의로 가득차고 탈정치’(32)하게 되는 상태인 것입니다. 정치적 결정과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들이 힘을 잃고 자신들의 영역을 상실하고 축소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은 정치적 상황은 중도적인 성격의 좌와 우 중에서 더 나은 경제 정책을 수행 관리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 정도에 불과하게 됩니다. 만약 이를 넘어서는 정치를 이야기하고 논리에 대해서 말하면 그 순간 극단주의자 혹은 포퓰리스트(32)로 불리게 됩니다.

대중의 민주적 권리와 권력의 기반이 약해졌는데, 이는 정치적 투쟁의 가능성이 현재 제거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33) 동시에 정치는 과두제화’(33)하고 있는데, 적절한 금융정책의 관리를 수행할 수 있고, 금융 중심의 생산 경제가 핵심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노동의 조건과 질의 문제, 산업변화와 실업률의 증가, 긴축재정과 노동자 복지의 약화 등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포퓰리즘 계기가 파악되어야 하는 지점은,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이상이 침식되고 있는 포스트 민주주의 상태”(34)임을 더욱 강조하게 됩니다. 금융제도 중심의 사회적 체계에 맞서서 새로운 형태의 저항과 정치적 저항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성격은 우파 포퓰리즘의 현상으로 먼저 등장하였는데, 우파 정당에서 대중주권이라는 테마를 동원하여 저항들을 접합시켜 나갔음을 사례로 보여줍니다.(35) 그리고 좌파적인 사례로도 긴축정책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광장을 점령하는 광장 운동’(35)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이 국면들을 포퓰리즘 계기라 하며, 새로운 성격의 사회정치적 운동의 등장과 정치적 성격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좌파 운동의 정당들이 득세에 성공하기도 합니다만, 유럽의 트로이카’(37)라 할 수 있는,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의 강제적인 명령에 의해서 곤란함을 겪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어려움을 겪지만,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에 도전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전략의 성격은 유의미하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포모데스의 대중적 집합 의지’(37)를 만드는 전략은 현실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는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이 유럽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급진주의의 신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샹탈 무페가 해석하는 유럽의 정치적 지형에 대한 비판은, 사회민주주의 진영들이 탈정치적 신조에 갇혀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여하는 반면,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에 의해서 요구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적 요구들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져 있고, 신자유주의 상황에서 패배한 이들을 만족시키는 정치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통렬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39) 좌파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도 좌파적 성격으로 변화시킨 것에 대해서 정당화하며, 우파 진영을 극구진영, 네오파시스트로 분류하면서 비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정치적 영향력은 잃고 있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39)

본질은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서, 적절한 좌파 포퓰리즘 운동과 정치적 구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현대 사회의 국면에서 민주적 정치의 핵심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40) “다른 언어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진보적 투쟁에 함께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40) 이것이 샹탈 무페의 좌퐈 포퓰리즘 전략의 지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 포퓰리즘 계기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41)

포퓰리즘의 계기에서 중요한 것은 선동이 아닌, 대중이 구성되고 있는 방식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런 저항이 생기고, 대중이 등장하고 설정되고 있는 것을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우파 포퓰리즘에서 설정하는 대중이란, 국민정 정체성과 번영에 위협되는 이민자, 위협적 주체들을 배제한 대중을 구성하는 것입니다.(42) 우파적 포퓰리즘은 사실은 민주주의를 철저히 제약하는 신자유주의의 국민주의적인 권위주의 형태”(43)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반대로 좌파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장을 목표로 합니다. 좌파적 진영에서 우리대중의 구성은 기존의 계급적인 본질의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신자유주의에서 불안한 이들이 연결되고 연합하면서 다양한 주제들과 연대하는 경험을 갖기를 희망합니다. 노동자는 다른 민주주의 요구들과 함께 등가사슬을 형성”(43)해야 합니다. 이런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헤게모니를 창출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이론적 부록

 

<반본질주의 접근 방식>

반본질주의적 접근을 말하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좌파 포퓰리즘의 계기와 새로운 헤게모니적 운동의 지형을 구축하기 위한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연의 관점은 자유와 평등의 접합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입니다. 반면 분리적 관점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논의를 전개하지요. 헤게모니는 상존적인 경합의 과정의 가능성(ever-present possibility)이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헤게모니적인 경쟁은 사회의 완전한 총체성(전체주의)을 경계하게 합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 기초한 정치사회의 이해에 따르면, 사회적 맥락과 질서를 획득하기 위한 헤게모니적 실천의 과정에서 지금의 사회가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헤게모니적 경쟁이 침전되어 온 실천의 영역으로 발견됩니다(132). “헤게모니 실천이란 기성 질서가 만들어지고 사회 제도의 의미가 고정되도록 하는 접합 실천입니다(132).

사물은 생산물이기에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존재 가능합니다. 다만 경쟁으로 존재하는 방식으로 질서화되는 과정 가운데에서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구축되어온 것이지요. 그런 권력관계는 자연적인 질서는 아닙니다(양육강식이 아닙니다!). 항상 질서는 새로운 헤게모니 실천에 의해 도전받고 있으며, 기존 질서를 벗어나려는 도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회는 역동적으로 변화하게 되고 건강을 획득하게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본질이 정해져 있다는 인식으로는 이런 역동과 건강함을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본질주의 접근 방식의 두 번째 중요한 원칙(133)담론적 위치들의 조화를 통한 구성입니다. 담론들의 실천은 다양하게 일어나며, 때로는 과잉결정혹은 전치등의 다양한 운동이 존재합니다.(133) 이것은 우연적이고 불안정한 형태이지만, 그것이 교차하는 시점(intersection)에서 담론의 실천의 다원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형태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담론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의 다원성에 의해서 사회적 행위를, 운동을 이해해야 합니다. 필연적인 것이 아닌, 개방된 형태에서 주체들이 서로 조화하고 전복시키고 경계를 구축하면서 사회적 운동이 발견됩니다.

이 운동의 성격은 말하듯이 이중 운동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로 고정될 수 없는 탈중심화 운동이자, 교차점에서 만나는 형태의, “결절점의 도입, 기표 아래에서의 기의의 흐름을 제한”(134)하는 담론적 실천으로서 부분적 고정화 운동의 형태가 있습니다. 이것을 접합이라 하며, “다른 주체 위치들 사이에 아무런 필연적 연결도 없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다양한 관점들로부터 접합을 제공하려는 담론들이 존재”(135)합니다. 따라서 담론적 구조와 그 구조의 구축을 위한 실천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헤게모니적 운동의 전복과 실천이 나타나게 됩니다.

 

<민주주의의 경합적 구상>

헤게모니적 담론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정치적 지형에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 이것이 샹탈 무페의 고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질서가 유지되기만 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갈등이 등장하고 유지되면서 헤게모니적인 운동의 경합이 일어나는 방식에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갈등이 배제를 위한 방식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배제 없이 합의에 어떻게 다다를 수 있는가”(136)에 대한 고민으로, 우리와 그들 사이의 적절한 경계를 찾아갈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민주주의의 경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합적인 대결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가능성을 탐구하는 정치적 방식입니다. 우파적 포퓰리즘에서처럼 자기들만을 위한 우리를 위해 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와 권리는 타당하면서, 우리의 정치적 레짐을 달성하기 위한 경합을 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좌파적 포퓰리즘의 지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경합을 위한 당파와 정치적 운동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승자독식이 아닌, 승자에 의해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발견하는 방식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경합적 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 질서를 구조화하는 권력 관계와, 이 권력 관계가 구성하는 헤게모니 유형의 배열입니다(138). 경합에 의해 구축되는 질서가 중립적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의 정치적 성격을 인정하고, 서로 경합이 가능한 공공의 영역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민주주의 질서의 수립을 고민하고 참여적 시민이 등장하고 숙의의 민주주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샹탈 무페가 제안하는 민주주의는, 시민이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민주주의입니다. 그런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헤게모니의 담론적 실천과 투쟁의 경합성이 잘 드러나야 하고, 다양성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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