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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이론 산책하기 2장 3,4절 / 전혜은 / 21.08.15. / 화니짱
2장 트랜스 멍멍멍이를 버틀러가 논박하다
3. 수행성 : 우리는 어떻게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저항하는가
1) 규범과 젠더의 관계
p180 : 젠더란 개념은 단 하나의 정의, 단 하나의 의미로 포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 “다양한 관점이 경쟁하는 장”이다. 버틀러는 이 용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찾으려 애쓰는 대신에 이 용어가 공적이고 사적인 문화에서 어떤 식으로 유통되는지 추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182) 자폐인들은 스스로를 에이섹슈얼로 정체화하거나, 섹슈얼/에이섹슈얼의 범주를 섹슈얼리티의 유/무로 이해하는 통념이 자신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183) 우리가 어떤 인식틀과도 전혀 관계 맺지 않고선 살 수 없을지라도, 중요한 건 그런 인식틀, 젠더 규범, 규제적 이상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5) 규범을 억압과 등치시켜 그로부터 완벽히 해방되는 것만을 옳은 방향이라고 볼 수도 없고 그게 가능하지(186)도 않다. ‘권력은 나쁘고 무조건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성 해방 운동에서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들의 여성 착취에 기여했던 역사를 생각해보라.
천부인권이나 차별금지법, 살인금지, 동물 학대 금지 등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규제적 이상들도 존재한다. 세상을 더 낫게 바꾸려는 투쟁들은 이러한 규제적 이상(187)들을, 즉 보편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의 범주를 급진적으로 확장·변환시키려는 싸움이기도 했다.
2) 규범과 ‘나’의 관계 : 행위성을 재개념화하기
“역설적으로 사회적 인식/인정의 담론적 조건은 주체의 형성보다 앞서고 그것을 조건 짓는다. 즉 인식/인정은 주체에게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버틀러가 담론, 권력, 규범의 작동을 설명할 때 ‘결정한다’ 대신 ‘조건짓는다’는 표현을 주로 쓴다는 점이다. 이것들은 우리를 찍어누르고 억압하고 우리를 완전히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경계를 설정하는 인지적 프로세스”다. (192) 수행성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무결하게 순수한 행위성이라는 것은 없다. 사람은 자신의 행성을 가능케 해주는 담론 안에 항상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자신을 형성하는 조건인 권력 규범들에 맞서 투쟁할 때조차 주체로 형성되고 행위성을 발휘하기 위해 바로 그 규범들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1) 수행성 1 : 반복과 인용을 통한 권력의 재생산
p196 : 수행성은 의지주의적 주체가 명확한 의도를 갖고 한번에 끝내는 일회성 행위가 아니라, 반드시 의식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규범(들)을 반복하고 인용함으로써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규제적으로 생산해내는 의례적인 반복적 실천으로 정의된다.
(2) 수행성 2: 다르게 반복하기
p199 : 특정한 위치에만 동일시해야 한다는 요구, 나아가 그러한 “동일시가 반복되어야 한다는 요구 속에는 반복에 실패할 가능성, 반복이 실패하리라는 위협이 계속 있다.” 이것이 바로 수행성이 열어주는 두 번째 차원, 전복적 차원이다. (201) 버틀러는 ‘나만은 권력에서 완전히 초월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환상을 붙들고 있기보다는 권력을 전복적으로 재배치하는 작업, 즉 기존의 범주들을 불법으로 점유하고 재배치함으로써 다시는 그 범주들이 당연시될 수 없도록 트러블을 일으키는 작업이 훨씬 더 교활하고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202) 비판적 모방은 정체성주의적 정의처럼 새로운 토대가 될 물질성을 수립하는 일에 관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규범의 유연성을 재배치하고 규범의 자연화라는 허구적 특성을 재배치하는 전복적인 반복을 우연적으로 발생시키는 작업입니다. (203) 버틀러는 이 개념적 작업을 ‘재절합’이라 칭한다.
3) “불가피하게 불순한 자원으로부터 미래를 만들어내는 어려운 노동”
(1) 브리콜라주, 혹은 improvisation의 실천
p205 : Undoing Gender의 한글판 <젠더 허물기>의 역자는 ‘a practice of improvisation’을 ‘즉흥적 실천’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번역이 틀린(206)건 아니지만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젠더는 행위다’는 명제는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제시했더 ‘브리콜라주’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아무런 제한 없이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젠더를 실천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권력 구조의 제약 안에서 일단 구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젠더를 수행한다는 뜻이다.
(2) 불법 점유의 언어
p207 : 내가 나를 설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러모아(208)규범과 다르게 반복한 언어를, 규범적 반복에 익숙한 사람들은 읽어내지 못하고 오해할 수도 있다. 트랜스 여성을 계속 치미가 입고 싶은 한남이라고 오독하는 반응처럼 말이다.
불순한 자원을 그러모아 나 자신을 설명하고 내가 살아있어도 되는 존재임을 변호하고 내가 나로서 살아있을 미래를 만들어내려 투쟁하는 언어는 불가피하게 버틀러가 “불법 점유의 언어”라고 부른 것의 모양새를 띤다. (214) 불가피하게 모순된 형태를 띨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버틀러는 이런 모순이 사회적 소수자들의 한계가 아니라 수행성이 발현되는 모든 형식에 해당되는 것이며 나아가 정치를 추동하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3) 수행적 모순
p215 : 2006년 봄 캘리포니아의 주요 도시에서 일어난 미등록 이주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미국 국가를 멕시코 국가와 함께 스페인어로 노래한 사건이 있었다. 버틀러는 이 사건을 ‘수행적 모순’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217) 이러한 권리 행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에 상연하는 역설 속에서 그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수행적인 실천이 된다. (218) 이 행위들은 보편성의 소위 보편적 위상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질문들을 유발한다 – 누가 보편성을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배제되었으니 아직 그것은 보편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때, 이 ‘아직은 아닌’이 사실상 계속해서 보편성을 보편적 의미 자체로의 보편성이 되도록 추구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이 구성된 보편성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로 불러내고 아직 만나지 못한 문화적 지평들의 수렴 가능성을 붙잡는데” 전략적 유용성을 갖는 “미래 지향적 노동”이 될 수 있다.
4. 비판이란 무엇인가
p222 : 비판이란 “삶의 다른 양식들이 가능해지도록, 삶을 규제하는 용어들이 무엇인지를 심문하는” 실천이다. 이는 그저 다양성과 차이를 있는 그대로 찬양하자는 나이브한 자유주의나 무한다원주의가 아니다. (223) 차라리 중요한 것은 어떤 규범과 관습들이 “사람들을 숨쉬고 욕망하고 사랑하고 살게” 만드는가, 또 어떤 규범과 관습들이 “삶의 조건 자체를 규제하거나 제거하는”가를 꼼꼼히 따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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