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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이전」
3부 <사회주의와 파시즘>
○ 러시아와 인터내셔널,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1월 9일
“참으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국제적 무대에서의 러시아혁명의 원칙들과 수단들의 구현체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수립 —역사상 그 전례가 없는—을 통해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진 최초의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다.“(255)
“세계 혁명을 위한 조건은 급속히 성숙되어 가고 있고, 보편적 혁명의 승리만이 러시아혁명의 확실한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
현재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하고 있는 일은 보편적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러시아혁명의 엄청나고 압도적인 경험에 기초하여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256)
당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엄청난 인기’(254)는, 혁명을 필요로 하는 세계적인 조건의 상황뿐만 아니라 대중에서의 인기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 세계의 노동계급들, 프롤레타리아트 계급들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상황이었고, 그에 반대하는 자본가 세력 및 국가들도 러시아의 소비에트 정부를 인정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일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열기에 소비에트에 반대하는 개량주의와 기회주의 정당 세력들, 그리고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중도주의와 반(半)개량주의 세력들에 대하여 그람시의 태도는 비판적입니다. 그들이 ‘혼란을 가중시키는 자신들의 작업을 계속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연시킬 수 있도록 러시아에 대한 공감과 우호를 표하는 위선적 정책을 추구’(254)하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혁명에 있어 적임을 정확하게 명시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들에 대해서 강하게 경계하는 이유는, 이들이 ‘노동계급 구성원들 내부에서 투쟁하고 있다는 점’(256)에서 그러함을 지적합니다. 혁명의 길을 위해서는 이런 위선적인 태도를 지닌 자들에 대해서 투쟁하고 거짓됨을 밝혀야 한다는 태도를 밝히면서, 당시 이탈리아 사회주의 세력 내에서의 우파와 중도 세력들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 리보르노 당 대회,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1월 13일
‘리보르노 당 대회’에 대한 그람시의 생각은, 먼저 이탈리아 노동계급이 자주적인 정당을 구성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1차대전 시기의 노동계급의 비극적인 상황에서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257)하게 되었는지의 문제임을 근본적으로 밝힙니다.
노동계급이 자주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노동계급 자신들이 자본주의 상태에서 자신들을 해방하는 투쟁의 선두에 서야하기 때문이고, 이들이 기존에 세워진 권력과 예속의 관계를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람시는 산업도시-농촌, 북부-남부의 양상으로 양극화되는 이탈리아의 지역적 차이의 현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위계적인 지배와 착취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혁명적 투쟁을 통한 부르주아 국가기수 분쇄가 필요한데, 특히 그 안에서도 산업 노동계급들의 해방을 통해 다른 계급들 또한 해방을 성취할 수 있도록, 긴밀한 동맹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258)
혁명의 주체와 지향점을 확실히 하면서, 개량주의자들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기점이 ‘리보르노 당 대회’라 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타락한 사회주의 경향들’(258)과 절연하고, ‘프롤레타리아 귀족주의’(259)와도 거리를 두어, 노동자들의 혁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의지가 아닌, 철저하게 세계적인 ‘혁명적 세력의 체계’를 강조하며, 이런 체계 아래에서 노동계급의 해방과 서로를 돕는 보장, 집중화된 권력을 통해 세력화 하고 혁명에 동원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리보르노 당 대회가 사회주의 운동 안에서의 문제와 개인적인 갈등을 넘어서, 국제적인 관계에서 이탈리아 노동계급의 의지와 향후 방향성을 묻는 중요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혁명에 다른 나라, 다른 계급들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면서, 노동 대중적인 차원의 운동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 사회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6월 11일
그람시는 파시스트와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이탈리아 공산당의 노선을 명확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파시스트가 범죄적 행위인 쿠데타를 통해 정부를 장악하고, 부패한 공범들(국가 공무원)들, 무기, 군사적 체계를 토대로 권력을 잡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그런 파시스트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어떤 강령을 통한 정치적 움직임, 혹은 비합법적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람시가 밝히고 있는 공산당의 노선은, ‘민중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의 영혼을 인도하며 그들의 의식을 준비시키기 위해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정치선전’(261)입니다. 물론 이런 공산당의 노선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명료하게 읽어낸 결과인지에 대한 비판은, 앞서 살펴봤던 그람시의 <옥중수고>에서 당시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공산당도 파시스트 들의 행보를 명확하게 읽어내고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왜 부르지아지들은 더 이상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가?,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7월 2일
그람시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생각은 명료해 보입니다. 그들은 ‘수적 중요성과 민주적 중요성’을 지니지만, ‘더 이상 생산에 대해 중요한 역할을 지니지 못하는 계급’(262)입니다. 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현실에서의 생산과 생산관계, 경제적 삶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바로잡아가는 지에 대한 논쟁이라는 점에서, 생산관계에 영향을 지니지 못하는 부르주아지는 현실적 세력으로 여겨질 수 없음을 밝힙니다.
투라티의 농업노동자연맹,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패거리, 토비니의 카톨릭가 교계 세력들은 노동 대중들을 설득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대중적 영향력을 통해 선거 등의 득표상 승리를 할 수는 있지만, 실제 생산 활동이 일어나는 영역에서는 이들의 지배 권력은 부재하며 설득의 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정치적일 수 있지만 경제적이지 못하고, 설득을 위해 말하지만 그 말이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기 때문에 이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람시의 논조입니다.
그람시는 대중들이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고, 자신들을 위한 행동에 나서기 때문에 기존의 행정부와 권위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대중에게 권력을 주고 새로운 부와 창조의 기쁨을 위한 대망을 바라고 있음을 말합니다.(264)
○ <라 스탐파>와 파시스트들,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7월 24일
토리노의 일간지 <라 스탐파>의 폭력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에 대한 그람시의 비판은, 이들이 매우 모순적인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라 스탐파>는 토리노의 일간지로 당시 국가 수장인 지오반니 지올리티를 지지하였는데, 지오반니는 파시스트들의 횡포와 폭력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언론이 파시스트들을 영웅화하며 이로 인해 확산되는 파시즘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부분을 지적합니다.
거짓된 언론에 대한 그람시의 태도는 명확합니다.
“<라 스탐파>의 독자들은 국가 정부 안에서 행해진, 파시스트 운동의 공식적 지도자의 적나라한 협박에 대해 무지해야만 한다. 그들은, 지올리티 의원, 저 정치적 질서, 경제적 질서, 도덕적 질서의 회복자에 의해 창조된, 이탈리아 상황의 심각함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도록 허용되어선 안 된다. … 수천 수만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은 이러한 정치와 언론의 도적놈들에 의해 단축되어 왔다.”(268)
○ 도덕적 문제들과 계급투쟁,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8월 7일
이 글에서는 파시스트-사회주의자-노동총동맹(CGL)의 평화조약 서명에 대한 그람시의 비판적 관점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를 ‘이탈리아 노동 지도자들이 수년간 따라왔던 전략과 완전히 조응하는 것’으로, ‘민주적 국가라는 정치적 이상을 추구해 온’ 것이라 말합니다.(269) 이는 의회 활동에 기반한 쁘띠브루주아적 성격을 가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적 혁명과는 거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타협이 사회주의 안에서의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노조의 관료주의화에 따른 노동 대중과의 불일치 문제들, 파시즘에 의한 권력 장악이라는 모순된 현상들을 마주하고 있었음에도 개량주의자들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271)고 비판합니다. 국가 대의제라는 것에 대한 이상적 추구가 결국 반계급적, 반혁명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비판합니다.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관점을 조금 더 심층 깊게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대의 국가의 민주적인 제도 안에서 부르주아-노동계급의 관계를 단지 정치적인 체제의 도덕적 문제로만 국한짓는 것은 노동계급을 위한 혁명의 기로를 차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점검해봐야 함을 그람시는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노동과 생산관계를 둘러싼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의 도덕적 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도덕적 문제’가 중요함을 성찰해야 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니체의 도덕의 계보가 떠오르네요.)
○ 두 개의 파시즘,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8월 25일
1차대전 이후 출현한 ‘전투적 파쇼’들은,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려는 자본가와 정부, 지주측에 의해 지지를 받고 성장하여 ‘자본주의의 백색 테러단’(273)으로서의 정체성과 결합하며 힘을 얻은 세력들입니다. 국가-자본-군사기관의 보호를 통해 성장하고 권력을 확보하였는데, 이들은 부르주아 세력들에 이익을 가져다 주지만, 극악한 폭력적 성격으로 인해 민중 사이에서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음을 지적합니다. 과한 폭력적 행위는 파시스트에 대한 공공의 지지를 상실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한 사회적 충격이 사회당을 평화조약으로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전술적인 것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계급투쟁에서의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점만으로도 혁명을 위한 투쟁에서는 큰 손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파시즘 세력도 의견이 양분됩니다. 계급투쟁은 포기하게 했지만, 더 이상 지주들이 자유롭게 농민 계급을 착취하지 못하게 되는 명분을 제공하며 평화조약에 대한 파시즘 내부의 찬반이 나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파시스트 내부의 분열을 조장했다는 사회주의자의 주장들이 전혀 그런 것이 아닌, 기존에 존재해온 문제가 드러난 것일 뿐임을 지적합니다. 결국 파시즘은 세력이 분리된 상태로 생존할 것으로 그람시는 보고 있습니다. 파시즘의 내부 분열로 인한 일시적인 평온의 시기가 왔을 때에, 그람시는 더욱 전략적으로 혁명을 위한 노동자-농민의 계급투쟁의 의식과 수단을 제공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 합법성,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8월 28일
‘합법성의 개념이 극도로 탄력적임’(276)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합법성은 항상 계급의 논리와 이해에서 이루어져 왔음을 논하면서 그람시는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투표권을 동등하게 분배하며 탄생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통찰, 형식적 합법성이라는 것을 통해 ‘합법성에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인식을 가려왔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날카롭습니다. 합법성은 내적으로 본질적 차원과 외적으로 형식적 차원의 합법성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외적인, 절차적인 합법성에 의해 자유를 획득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서 속아온 근시안적인 태도가 맑스주의 안에서도 있음을 지적하는 것 또한 뼈아픈 성찰입니다.
“합법성에는 다만 하나의 진실한 얼굴만이 존재하며 합법성은 다만 지배계급의 이해에 따라 설정된 경계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현실은 너무도 분명히 보여주었다.”(277)
그리고 파시즘이 점령한 상황에서의 유일한 합법성의 상태, ‘비합법성을 합법적인 유일한 것으로 만드는 운동’의 상태에서 부르주아적 합법성의 의미가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계급투쟁을 한다는 행위자 스스로가 부르주아 질서의 합법성의 체계 안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비판 또한 매우 날카롭습니다.(278) 이런 상황이 지배계급의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을 지속하며, 노동계급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게 하고, 권리의 침해를 견뎌내기만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조직가들이 노동부 장관에게 질문들을 제기하는 동안, 더욱 더 많은 민중이 굶주려가고 있으며, 고난은 증대하고 있고, 반동 세력은 힘을 얻어가고 있다.”(278)
따라서 노동계급에 대한 방어를 위해 조직화하고 단결시킬 것을 그람시는 주장하며, 자본가에 대한 효과적 저항이 제시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 1920년 4월과 9월,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9월 7일
1920년 9월의 노동총동맹의 봉기의 실패 상황에 대하여, 앞서 4월에 토리노에서 있었던 공산주의자들의 점거 투쟁에 관한 논설로 보입니다. 당시 운동과 세력관계를 명확하게 알지 못해서 이 글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9월의 실패에 대해서 토리노의 공산주의자들의 역할이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들에 대해서 그람시는 변호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총동맹(CGL)의 무력함(무기를 압수당하는 등의 어설픈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토리노의 공산주의자들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투쟁에도 참여하여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였음 밝히고 있습니다.
○ 국가의 대들보, <오르디네 누오보> 1921년 11월 13일
“주군에 대해 책임을 지닌 정부가 헌법에 대한 그 충성 서약을 저벼렸다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의미할 수 있겠는가?”(283)
파시스트들의 군사 쿠데타에 의한 비정상적인 역사적 상황에 대한 열변과 함께 그람시가 강조하는 것은 명료합니다. 이런 반동 세력들에 대한 저항세력이 될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 프롤레타리아트이며, 공산당이 반동세력의 공격에 대항해서 대중의 자유와 신념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부르주아 국가 아래에서 작업과 희생을 감당하는 이들이 국가의 중핵이지만, 항상 이득은 ‘여타의 무리들’이 가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대들보와 같은 역할을 감내하고 있는 이들의 협력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위기의 본질, <오르디네 누오보> 1922년 2월 5일
마지막 문단을 통해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겠다 생각하여 적어봅니다.
“사회-민주주의적 정당들 —사회당과 인민당— 의 참주선동에 대한 어떠한 지지도 오랜 세월 자신들로부터 자유와 복지를 앗아가고 예속과 고통과 죽음을 안겨주어 왔던 유기체의 재건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점이 이탈리아의 노동자, 농민 대중에게 분명히 인식되어야만 한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투쟁, 배신적인 사회당에 대한 투쟁은 모두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를 예속의 어떠한 형태로부터도 해방시키는 투쟁의 일부이다.”(288)
○ 이탈리아 미래주의에 대해 트로츠키에게 보내는 편지, 모스크바에서 1922년 9월 8일
어떠한 맥락에서 트로츠키와 그람시 사이에서 이탈리아의 미래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를 잘 알 수 없습니다. 당시 미래주의가 그 독특성을 잃어버린 시점에서 생산력있는 집단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전쟁 동안에는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굳센 지지자들이었고, 이러한 내용들이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관점과 예술적인 시도들은 실패하고, 특성을 상실하였다고 그람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글만으로는 이탈리아에서의 미래주의에 대한 논의가 왜 필요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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