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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민족학에 있어서의 아르케이즘의 개념

 

미개와 그렇지 않은 것과의 경계선은 어디일까?(97). 민족학이 고유한 대상에 관해서 감각을 잃었기 때문에 미국의 인류학은 창시자들의 방법 대신 흔히 단순하기 그지없는 사회 형이상학이나 믿을 수 없는 조사 방법을 사용하며 안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법을 확고한 것으로 하고 확대할 수 있도록 특유의 대상, 특수 성격, 특징적 제 요소에 대해 끊임없이 보다 정확한 지식을 더해 가는 길 외에는 없다.

미개라는 용어는 진화론의 혼란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모면되고 있다. 미개 민족은 발육이 늦은 또는 정체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영역에서 문명인의 성과를 훨씬 능가하는 발명과 창조의 정신을 보일 수도 있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가족 조직 연구에 의해 밝혀진 계획 사회학이라고나 할 것, 멜라네시아 인의 복잡한 권리-의무 체계의 감정 생활의 융합, 개인적 소망과 사회 질서와의 통합을 위해 종교적 감정을 이용하는 것 등이다. 나아가 미개인은 결코역사를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리그맨의 뉴기니아 원주민의 매우 체계적인 사회 구조가 일련의 우발 사건-전쟁, 이주, 항쟁, 정복 등-을 거쳐 때로는 늦춰지고 때로는 굳게 지켜진다(98). 아메리카 호피 족의 상황도 200년 전과 동일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서 이른바 미개인참된 미개인의 구별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둘의 구분은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실제상으로도 성립되지 않는다. 훼고(남미 남단의 군도)족과 몇 피그미 족이 변함없이 존속하며 전혀 역사를 가지지 않는다는 기이한 주장은 이중의 논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첫째 구송 전승이나 고고학적 유적 결여, 그들의 역사는 도저히 손이 미치지 못하는 것에 있다. 그렇다고 거기서 역사가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없다. 둘째 이들의 제도의 원초성 고졸성으로 인해 태고적 인간의 사회 상태를 재구성하게 하는 그 무엇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태고적부터 오늘날까지 변치 않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어떤 경우는 발생하고 반대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의 설명을 철학에 맡기게 되는 셈이 된다면 의론은 수습할 수 없게 된다(99). 문제는 원초적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어떤 규준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이 부정적 논증이 모든 경우에 원용된다 할지라도 구조와 관련된 어떤 형식상의 특징이 미개 사회와 근대적 또는 문명적인 사회를 구분할 수 있을까?

마티우스 이후 민족학자는 열대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를 두 개로 범주화한다(100).

해안부의 문화 및 오리노코-아마존 계통의 문화 삼림 또는 삼림에 가까운 하천 연안, 기술적으로 소박하지만 광역 개간의 농경, 분화된 사회 조직, 광대한 집단적 주거
아라왁, 토우피, 카리브족
브라질 중앙부 간소한 문화, 이동생활, 가옥과 토기 제작 미발달, 식물 채집, 수렵
, 야만인 타푸야 족의 자손, 토우피 족에 의해 내륙을 쫓겨감

두 범주는 쿠르트 님엔다쥬의 조사에 의해 의심되기 시작했다. 훨씬 오랜 형태의 농경 발견, 반족을 재분할하고 있는 외혼적 반족, 비밀결사, 남자 결사, 연령 구분 등 복잡한 제도 소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고도의 문화 수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로위와 쿠퍼는 이것은 국지적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너무 단순해서 믿을만하지 못하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선콜롬비아기의 고도 문화에는 쌍분 조직이 있었다. 즉 잉카 제국 수도의 주민(101)은 상부, 하부 쿠스코 두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제사 때 조상의 미이라가 쌍분 조직에 대응하는 두 열로 병치되었다. 동일한 쌍분성 또는 그 기본적 주제는 아스테카의 독수리와 쟈가의 제례상의 대립 형태로 중앙아프리카까지 이른다.

고원의 대문명과 사바나나 삼림의 야만인과의 사이에는 거래 교환, 군사적 정찰, 전초선에서의 소분쟁 형태의 접촉이 확실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즈텍과 잉카는 오랜 상호 이질적인 다종 다양한 문화가 일시적으로 결부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나의 종족이 일시적으로 우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그 특정 종족의 관습이 제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 범위에 걸쳐서 행해지고 있었다는 즉 지배와 복종의 관계에 놓여졌다는 결론을 끄집어 낼 수는 없다. 안데스 문명의 확대와 몰락은 급격한 리듬이었기에 교환이라도 단기간의 산발적인 모양이었다. 한편, 아즈텍과 잉카 사회 조직의 발견에 열심이었던 정복자들의 기술에 따라 분명 현실적으로 있지도 않았던 정비된 특징까지 덧붙여졌다(102).

고지 문화와 저지 문화의 유사성은 보다 깊은 이유에 유래되고 있다. 지리상의 원근이나 문화 수준과 관계없이 없어졌다 나타났다 한다. 전 대륙에 뿌려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개개의 사상의 전파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제 현상 혼합주의의 현상이며 역사적-지역적 근거를 거슬러가면 선콜럼비아기의 역사라고 부르는 것이 출현하기 이전에 도달하리다. 보다 확실한 방법에 따르면 이 혼합주의의 현상을 멕시코나 페루의 고도 문화가 거기에서 태어나 발전한 발달의 상황으로 인정해야 한다.

사바나 저지 문화 속에서 발단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 각각이 확실하게 공통되는 기층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지만 사바나 지역의 현재 문화와 고지의 고문명의 중간 차원에서 구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증거는 많다. 고고학적으로 열대 아메리카 권역에 걸쳐서 발달된 문(103)명의 중심이 최근까지 있었음이 발견된다. 집단적 작업은 오리노코 강 계곡의 타피라페 족에서 현저한 예증을 찾아볼 수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쌍분 조직을 가장 미개한 수준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규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바나 지역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경작 방법을 알고 있는 숙련된 농경민이며 모가지 사냥도 행하는 삼림에 주거하는 이웃 사람들도 쌍분 조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바나 지역민의 사회 조직과 계곡이나 강안 지역 주민들의 사회조직을 별개의 것으로 놓아서는 안 된다. 반대로 사람들은 전혀 이질적인 문화를 갖는 몇몇 종족을 고대 수준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보로로 계 여러 종족을 참된 미개인으로 만들어 버린 폰 덴 슈타이넨의 기술 때문이다(104). 이 해석은 브라질인 병사의 농경 개념 때문이며 같은 저자가 보로로 족은 문명의 은혜 같은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음을 잊은 것이다. 이 문맥은 보로로 족의 사회가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사실 보로로족은 손질된 경작지를 가지고 있었다(105).

문제는 남아메리카에서 순수한 수렵민 혹은 채집민을 말할 수 있나이다. 극히 미개한 것처럼 보이는 종족에게서도 농경이라는 것을 아주 모르는 종족은 드물며 그들보다 수준이 높은 집단 사이에 고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많은 경우 초보적인 농경을 하고 있는데 다만 수렵, 어로, 채집을 아주 대신하기에 이르지 못한 셈일 뿐이다.

남아메리카만큼 지리상의 구별이 명확한 곳은 없다. 사바나는 농경에 부적당하고 식물 채집도 부적당하며 식물과 동물도 흔치 않다. 브라질 삼림 지대는 과일, 사냥감이 풍부하며, 밭갈이할 땅도 비옥하다(106). 둘의 대조는 하나의 문화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농경이나 채집은 삼림이나 사바나나 똑 같이 행해진다. 다만 그 생활양식이 삼림 지대가 더 발달되어 있을 뿐이다. 식물적 환경이 바뀌어도 생활 양식이 변화하지는 않는다. 바구니 짜는 방법도 같고, 마취약이 의례에서 행사하는 역할은 동일하다. 생산되는 것은 달라져도 쓰임새는 달라지지 않는 셈이다. 사바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 아니라 삼림 지대가 갖는 가능성을 제한할 따름이다. “사바나 문화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삼림 지대에 살고 있지 않음은 그들이 삼림 지대에서 쫓겨났기 때문인 것이다(107).

이러한 고찰은 오직 열대 아메리카에만 적용된다. 그러나 이것이 명확하다면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는 기준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참된 아르케이즘이란 고고학자나 선사학자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라는 것, 그러나 현실 사회를 연구하는 민족학자는 그 사회가 현재와 같은 사회이기 위해 이러한 사회가 생존하고, 존속하며 따라서 변화해 온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108). 그런데 과연 내재적인 비판에 의해 참된 아르케이즘과 유사 아르케이즘을 식별한다는 일은 가능할 것인가?

어떤 사회의 미개성이라는 것은 그 사회와 멀고 가까운 인접 사회와의 대조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대조가 존재하고 지금도 존속되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유사 아르케이즘의 대비는 결코 배타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가 보다 발달된 인접 사회하고 구별되는 것은 그의 모든 점에서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일 뿐으로 다른 영역에서 수많은 유사점을 찾아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가장 현저한 예는 쌍분 조직이다. 남아메리카에서 이 제도는 공통되는 하나의 요소이다. 유사 아르케이즘 사회의 경우 그 차이가 결코 전체에 파급되는 것이 아니며 대립점에 필적할 만한 유사점이 있다.

아르케익한 사회를 내부 구조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109). 그 내부 구조는 부조화와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남비콰라 족은 가장 미개한 문화 수준을 나타내는데 그들의 문화에서 많은 수수께끼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극히 숙달된 독물 이용자이다. 유독 물질 중 큐라레(시독)가 있는데 그 분포의 최남한이다. 그것의 제조에 있어 다른 곳과 같은 의례, 주술적 조작, 비밀 처리 등을 따르고 있지 않다. 큐라레의 처방은 기본적인 재료만으로 한정되며 그 제법은 전적으로 세속적인 활동일 뿐이다. 남비콰라 족은 독물에 관한 하나의 이론을 갖고 있고 신비주의적 고찰에 호소하고 자연의 형이상학에 기초를 둔다. 기묘한 것은 이 이론이 참된 독물의 제조에는 하등 간여하는 일이 없고 그저 독물의 효력을 정당히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독물과 명은 같으나 무해한 물질로서 순수하게 주술적 성격을 가질 뿐이지만 다른 독물을 닮은 것의 제조, 처리, 이용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110).

이 사례는 첫째, 유사 아르케이즘을 폭로하기 위한 두 기준을 충족시킨다. 서로 멀리 떨어진 주민 사이에 동일한 큐라레가 존재한다는 것은 외면적 일치이다. 하지만 그 제법의 비주술적 성격을 내적 부조화이다. 내적 부조화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비콰라 족의 큐라레는 거의 날것으로 존재하며 제조과정에서 일체의 의례를 결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대의 여러 성격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단지 퇴화된 문화의 잔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하는 문제를 제시한다. 독물에 관한 이론과 실제와의 모순을 해석하려면 북방 지역에서는 큐라레의 제조에 따라붙기 마련이 복잡한 의례 체계의 소산이라고 보는 편이 사실에 걸맞다.

또 남비콰라 족은 세공이 훌륭한 마제 석기인 손도끼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자루를 붙일 수는 있어도 손도끼를 만들 수 없다. 어쩌다 만드는 석기는 마무리되지 않은 불규칙한 돌조각에 한정되어 있다. 식량은 수집과 채집에 의존한다. 어느 그룹이든 약간의 밭일을 하고 바구니 짜기에 종사하며 튼튼한 토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독한 식량 부족에도 불구하고 유랑 생활의 필요와 항구적 가옥이 없어 항아리나 바구니를 보존용으로 이용하지 않는다(111).

외면적 일치와 내적 부조화가 동시적으로 존재함에서 유사 아르케이즘의 기준을 찾아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일치와 부조화와의 대립에 하나의 보충적인 성격이 있어서 각기 따로 고찰할 때에는 각각의 문화 형태가 고유한 것이 된다. 남비콰라 족의 외면적 일치점은 매우 산재해 있다. 반대로 부조화 측면은 문화의 핵심적 부분에 집중되고 가장 내부적인 구조이며 고유한 본질을 보여준다. 문화에 개성(112)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부조화라 할 것이다.

남비콰라 족에는 신석기 문화 복합의 거의 모든 요소가 현존하고 있으나 종합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 생활 양식의 쌍분성은 일상 생활에 침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 태도, 사회 조직, 사고에까지 확대되어 있다. 생산적이면서 간헐적인 수렵과 경작하는 남성적 활동은 대수로울 것도 없으나 항상적 야생 식물 채집을 기본으로 하는 여성적 활동은 갖가지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간의 대립-여성은 귀여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존재, 방랑과 정주 계절의 대립으로 인한 생활 양식의 대립, 시련과 모험의 생활과 단조롭고 안일한 생활과의 대립 등이다. 전체가 형이상학적 평면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영혼은 사후 운명의 불평 등에 표현된다. 남성의 영혼은 사후에 영구적으로 재생되는데 여성의 영혼은 사후에는 바람이나 비, 폭풍 속에 날려 흐트러지고 마는 것이다.

고대적인 사회의 잔존이라는 가설은 유사 아르케이즘에서 두 가지 중대한 장해에 부딪친다. 첫째, 외면적인 불일치라는 것은 외면적인 합치점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다 비유형적이다. 합치점이 모든 방향을 지향하며 상호 간에 이질적인 여러 그룹을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둘째, 유사 아르케이즘 문화를 자율적 체계로 하여 분석하면 내재적 부조화가 밝혀지지만, 내적 부조화가 유형적이(113) 된다. 그것은 사회 구조 그 자체에 관계되며 독자적 평형 상태를 위험에 처하게 한다. 유사 아르케익 사회는 저주받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근 사회와 대치하여 자기 보전에 고추하고 있다는 불안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민족학적 연구는 아무런 특수 운명에도 처해지지 않고 있는 사회에 대해 특수한 조건에 의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조사 방법의 총체 속에 있기 때문에 민족학적 연구의 고유한 대상의 경계 결정에 큰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학은 탈국적화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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