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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자기 연마

 

쾌락에 대한 경멸, 쾌락 남용이 육체와 영혼에 끼치는 결과에 대한 강조, 결혼과 부부 간의 의무에 대한 가치 부여, 소년애에 부여된 정식적 의미에 대한 흥미 상실 등등. 기원 후 1, 2세기의 철학자와 의사들의 저술 속에서는 성적 엄격함이라는 테마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을, 가령 정치적 권력의 어떤 교화의 노력들과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결혼을 보호하고, 가족을 우대하며, 내연의 관계를 규제하고 간통을 죄악시하는 법률적 조처들과 더불어, 당대의 문란함에 대립하는 어떤 사상적 움직임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기원 후 처음 두 세기 동안 도덕적 성찰 속에서 그토록 자주 표명되는 엄격함의 경향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산발적이다. 더구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모랄리스트들이 표명한 엄격함에 대한 의지가 공권력의 개입을 요구하는 형식을 취한 것도 아니었다. 철학자들이 ‘대다수’의 삶과 다른 삶을 영위하려는 개인들에게 한층 더 엄격하라고 부추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강요할 수 있는 어떤 조처나 징벌을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여겨봐야 하는 점은, 자기 자신에게 기울여야 할 주의에 대한 강조다. 중요한 것은 주의의 양상과 규모, 지속성과 엄밀함이었으며, 엄격한 관리를 통해 피해야 할 것은 심신의 온갖 장애에 대한 불안이었다. 또 스스로 쾌락을 삼가거나 결혼이나 출산으로 쾌락의 활용을 제한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이성적 존재로서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요컨대 성적 엄격함은 금지된 행위를 규정짓는 규약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기 행위의 주체로 형성하게 하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형태를 취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의 현상, 즉 헬레니즘-로마 사회에서의 ‘개인주의’의 성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시대 엄격한 도덕의 발전은 ‘공권력의 강화’보다는 개인들의 삶이 전개되던 ‘정치적, 사회적 틀의 약화’라는 측면의 결과일 수 있다. 개인들은 도시국가 속에 느슨하게 편입되어 서로로부터 좀 더 격리된 채 자기 자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철학에서 좀 더 개인적인 행동규칙들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주의’를 논할 때는 세 가지 범주를 구분해야 한다. ① 개인주의적 태도, ② 사생활에 대한 가치 부여, ③ 자기에 대한 관계의 강화가 그것이다. 이 셋은 분명 서로 연관이 있는데, 이를테면 개인주의가 사생활의 가치를 강화할 수도 있고, 자기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개인주의적 태도의 고양과 결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관계들은 지속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사생활이나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도, 자신을 독특하게 만들거나 다른 사람보다 우월할 수 있게 해 주는 행동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확인하도록 요구하는 사회나 집단(예컨대 군사귀족계급)이 있을 수 있다. 또 사생활이 큰 가치 부여를 받는 사회, 사생활이 세심하게 보호되고 조직될 뿐만 아니라 행동지침의 중심이자 가치평가의 원칙이 되는 사회(19세기 서구 부르주아 계급)도 있을 수 있다. 또,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강화·발전되지만 개인주의나 사생활의 가치는 강화되지 않는 사회도 있다(초기 기독교 금욕주의).

이상을 고려할 때 제정시대의 성적 엄격함이 개인주의의 증대 결과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를 특징 짓은 것은, 오랫동안 이어져 오다가 이 시기에 와서야 절정을 이룬 하나의 현상,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를 강화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자기 연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발달이다.

 

***

삶의 기술(techne tou biou)이 보통 그렇듯이, 자기 연마는 “자기 자신을 돌보라”는 원칙을 따른다. 자기 연마의 정당화, 발전과 실천의 요구는 모두 ‘자기 배려’와 맞닿는다. 사실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heautou epimeleisthai)’는 그리스문화에서 매우 오래된 주제다. 예컨대 ≪알키비아데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야심에 찬 한 젊은이에게 먼저 자기 자신에 몰두해야 하며, 그것도 젊은 만큼 즉각 그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 이후의 철학은 이러한 자기 배려의 주제를 취하여 ‘삶의 기술’의 핵심에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이 주제는 원래의 철학적 의미에서 떨어져 나와 점차 진정한 ‘자기 연마’의 차원과 형태를 획득하게 된다. ‘자기 연마’의 발달은 자기 배려의 원칙이 매우 일반적인 가치를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자기 연마는 여러 상이한 교의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하나의 정언명령이 되었고, 태도나 처신방식의 형태를 띠고 생활방식에 스며들었으며, 숙고하고 발전시키며 완성하고 가르쳐야 할 절차와 행위와 방법들로 발전했다. 종국에는 관련 제도들을 야기하면서 하나의 사회적 실천을 형성했으며, 인식 유형과 지식의 형성을 야기했다. 제정 시대의 첫 두 세기는 그 발전 곡선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며, 자기 연마의 황금기라고 할 만하다.

 

1.

자기에 대한 관심(l’epimeleia heautou / la cura sui)은 여러 철학적 교의에서 재발견되는 명령 중 하나다. 알비누스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 되돌아가기 위해” ≪알키비아데스≫를 읽는 것에서 철학 연구를 시작하길 권유한다. 아풀레우스는 ≪소크라테스의 신≫에서 동시대인들이 자기 자신에 소홀한 것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 사람들은 모두 최상의 삶을 영위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영혼 외에 어떠한 생명기관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혼을 가꾸지 않는다.”

세네카가 한 편지에서 하는 말은 에피쿠로스 철학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몸과 마음으로 행복의 씨실을 짜기 위해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돌보는 사람은 영혼에 아무런 동요가 없고 육체에 아무런 고통이 없을 때 완벽한 상태가 되며, 또한 욕망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세네카에 따르면, 자기에게 몰두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에 몰두하지 말아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을 비워둘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움’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을 형성하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며’, ‘자기에게로 되돌아오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는 다양한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또한 독서나 글쓰기에 필요 이상으로 몰두해선 안 된다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이상 헤매지 마라. 너는 더 이상 너의 노트도,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의 고대 역사도, 이야기들도, 노년을 위해 남겨두었던 선집들도 다시 읽을 운명이 아니다. 그러니 목표를 향해 서둘러라. 헛된 희망들에 작별을 고하고 너 자신을 기억한다면 가능한 한 너를 도와라.”

이 주제가 철학적으로 최고로 형상화된 것은 아마도 에픽테투스의 경우일 것이다. ≪대화≫에서 인간은 자기 배려를 위임받은 존재로 정의된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를 신이 원했기 때문이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신은 인간에게 이성을 부여했다. 제우스는 자연에 의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을 이성으로 완성하면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배려할 의무와 가능성을 주었다. 자유롭고 이성적인(또 이성적인 만큼 자유로운) 한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기를 돌보도록 위임받은 존재다.

그런데 철학자들의 이러한 권고는, 철학적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나 철학자들 곁에서 잠시 동안 머무는 사람들에게만 제시되었던 것은 아니다. 자기에 대한 관심은 모든 사람에게 일생 동안 유효한 원칙이었다. 아플레우스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한다. “이성의 도움으로 자신의 영혼을 완성”할 줄 아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필요한” 규칙이라는 것이다. 플리니우스가 그 구체적 사례다. 그는 엄격한 교의에 매이기보다는 명예로운 삶을 영위하면서 변호 활동과 문학 작업에 몰두하면서 결코 단 한순간도 세계와 단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평생 자기 자신을 몰두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삼기 위해 자기가 들인 수고에 대해 끊임없이 언급한다.

또 자기에 전념하는 데는 나이가 따로 없었다. “자기 영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정도로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기란 결코 없다”(에피쿠르스). ‘살아가는 법을 평생 동안 배우는 것’, 이는 세네카가 생활을 일종의 항구적 훈련으로 변화시키도록 권유할 때의 격언이다.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지만, 중요한 것은 결코 열의가 식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세네카나 플루타르코스가 조언을 해 준 사람들은 이전에 소크라테스가 자기 자신에게 전념하라고 부추겼던, 탐욕스럽거나 소심한 젊은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성인이었다. 루실리우스가 세네카와 내밀한 편지를 교환하며 지혜의 원칙과 실천에 대해 조언을 얻었을 때, 그는 시칠리아의 행정장관이었고 62세였다. 자신들의 영혼에 몰두하는 데 성인들이 기울이는 이 열정, 행동의 길을 일어주는 철학자들을 찾으러 가는 늙은 학생들의 이러한 열망, 이 모두는 성인교육(de l’Erwachsenerziehung)의 차원에 속했다.

 

2.

자기에 대한 이러한 전념은 어떤 일반화된 태도로 치환될 수 없다. “에피멜레이아(epimeleia)”가 특정한 무엇에 대한 전념이 아니라 모든 전념을 아우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활동, 신하를 보살피는 군주의 임무, 병자에 대한 보살핌, 신이나 고인들에 대한 의무, 이 모두를 지칭할 때 에피멜레이아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에피멜레이아 또한 ‘노고’의 의미를 함축한다.

여기서 ‘시간’은 중요한 쟁점이다. 하루 중 혹은 일생 동안 자기 연마에 할당할 몫을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령 아침이나 저녁마다, 명상하거나 해야 할 일을 검토하고 어떤 유용한 원칙들을 암기하고 지난 하루를 반성하는 데 얼마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세네카, 에픽테투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공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데 할애해야 할 시간들을 강조한 바 있다. 무소니우스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묵상회에 참여하길 강력히 추천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간은 빈 것이 아니라 훈련과 실행 임무,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진다. 신체를 보살피고 건강을 관리하며 지나치지 않은 신체단련과 욕구충족의 전제가 요구된다. 또 명상과 독서, 책이나 합의된 대화에 관해 나중에 다시 읽어볼 수 있도록 적어두는 일, 이미 알고 있지만 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 기억해 두는 일 등이 요구된다. 아울러 친구나 후원자, 지도자와 대화를 하거나 편지를 교환하는 행위도 추천된다. 대화나 편지는 조언자 또는 선생 역할를 맡은 사람에게도 이로운 행위인데, 그는 이 조언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말하고 쓰는 모든 활동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 활동 속에서 자신에 대해 가하는 작업과 타인과의 소통행위는 서로 연결된다.

여기에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가 있다. 이 활동이 고독의 실천의 아니라 사회적 실천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러한데, 실제로 자기 자신에 대한 몰두는 다소간 제도화된 구조 속에서 형성되었다. 필로데무스에 따르면, 신피타고라스학파나 에피쿠로스학파 내에서는 이미 공인된 위계질서에 따라 더 나은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못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이끌 의무가 부과되었다. 에픽테투스는 학생들을 여러 범주(뜨내기, 평범한 시민, 예비 철학자 등)로 나누어서 가르쳤다. 로마의 상류 귀족사회에서는 한 가족이나 집단 속에서 생활에 대한 조언자나 정치적 지도자, 혹은 협상에서 잠재적 중재자 역할을 하는 개인 고문이 존재했다. 아울러 교수, 지도자, 조언자, 속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등과 같은 여러 다양한 역할이 언제나 구분되어 있지도 않았다. 자기 연마를 위한 실천에서 역할은 종종 서로 뒤바뀌기도 했으며, 동일한 인물에 의해 차례로 수행될 수도 있었다.

자기에 대한 전념은 혈족, 우애, 의무 등 모든 관습적 관계에도 토대를 두었다. 자신에 몰두하고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지도와 충고에 소질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하나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또 남을 아낌없이 돕는 것, 혹은 남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하나의 의무였다.

이처럼 자기에 대한 보살핌과 타인의 도움 사이의 작용이 기존 관계들 속에 편입되어 그 관계들에 새로운 색채와 더 큰 열기를 부여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이때 자기에 대한 보살핌은 마치 사회적 관계들의 강화처럼 보인다. 세나카가 루실리우스와 나눈 편지는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관계를 한층 더 돈독하게 해 주었으며, 이러한 정신적 유도 장치를 점차 각자에게 이로운 공동의 체험으로 만들어갔다. “나는 당시을 맡았고, 당신은 나의 작품입니다”, “나는 이미 신속하게 내 곁을 벗어나 이제는 반대로 나를 격려해 줄 어떤 사람을 격려합니다”(세네카). 그러므로 자기에 대한 배려는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교환작용 및 상호적 의무체계의 가능성을 포함하며, ‘정신적 도움’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3.

그리스문화의 오랜 전통에 따르면, 자기 배려는 의학적 사고 및 실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철학과 의학은 공통된 개념 도구를 사용했는데, 그 중심 요소는 “파토스”라는 개념이었다. 이 개념은 신체적 질병과 정념, 또 마음의 무의지적 움직임과 신체적 장애에 동시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각 경우에 파토스는 어떤 수동적 상태와 관계되는데, 육체의 경우에는 체액이나 체질의 균형을 깨뜨리는 일종의 증상으로 나타나고, 마음의 경우에는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일종의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이 공통 개념에 입각해 육체와 마음의 질병에 관한 분석의 틀이 만들어졌다. 가령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병리학적” 도식은 병의 발전 및 만성화 정도, 치료의 여러 단계나 다양한 형태를 도식화했다. 이러한 도식은 신체에 대한 치료와 정신 치료 모두에 안내 역할을 했다. 즉 그것은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혼란에 동일한 유형의 이론적 분석을 적용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마음과 육체가 동일한 과정을 따름으로써 서로 간섭하면서, 심신을 치유하게 해 주었다. 

'종기를 절제하다', '절단해서 쓸모 없는 것들을 버리다', '투약하다' 등등의 일련의 의학적 메타포는 마음을 돌보는 데 필요한 처치에도 사용되었다. 철학에서 추구하는 영혼의 개선과 완성, 철학이 보자아해 주어야 하는 '단련(paideia)'은 점점 더 의학적 색채를 띠게 된다. 에픽텍토스는 학교를 "영혼의 무료 진료소"로 간주하였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하나의 병리학적 상태로 인식하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지식을 소유한 사람에게 지식을 구하러 온 학생으로 생각하지 말며, 마치 어깨가 삐었거나 종기가 났거나 두통을 앓고 있는 환자로 간주하라고 누차 강조한다. 에픽테토스는 스스로를 치료하기(therapeuthesomenoi) 위해서가 아니라 판단력을 강화하고 고정하기(epanorthosontes) 위해서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비난한다. 

자기 연마에서 의학적 관점의 증대는 신체에 대해 어떤 각별하고도 강도 높은 주의를 기울이는 형태를 띠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신체적 활력을 높이는 일과는 달랐다. 나아가 그것은 어떤 역설을 띠고 있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죽음과 질병 혹은 육체적 고통조차도 진정한 불행이 아니며, 신체관리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영혼에 전념하는 편이 더 낫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성인이 자신을 배려할 때, 여기서 육체는 더 이상 체육을 통해 단련해야 하는 젊은 육체가 아니다. 그것은 사소한 재난들로 인해 허약해지고 위협받고 쇠잔해진 육체이며, 지나치게 강한 욕구보다는 자체의 나약함으로 인해 이제는 정신마저 위협하는 육체다. 세나카의 편지에서는 건강과 식이요법, 불안, 나아가 육체와 정신 사이를 순환할 가능성이 있는 온갖 장애에 대한 여러 주의의 예를 볼 수 있다. 또 프론톤과 아우엘리우스가 주고받은 편지는, 과도함에 대한 두려움, 절제된 식이요법, 장애에 대한 경청, 역기능에 대한 상세한 주의, 계절과 기후와 섭생과 생활방식 등 신체에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정신도 혼란시킬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해 이들이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보여 준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은, 의학과 도덕을 접근시키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환자 혹은 질병에 위협받고 있는 존재로 인식하도록 권유한다는 점이다. 각자는 자신이 곤궁에 처해 있으며 치료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요한 신체 부위가 처새 있는 상태를 깨다는 것, 이것이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다.… 오늘날 최소한의 분량도 삼킬 수 없는 사람들이 처장 책을 한 권 구입해 그것을 게걸스레 먹으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토하거나 소화불량을 일으키게 된다. 이어 설사가 나고, 감기에 걸리며 열이 나는데, 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능력을 검토했어야 할 것이다”(에픽테투스). 그리고 이는 마음의 병이 신체의 병과 달리 통증을 동반하지 않는 만큼 더욱 필요하다. 정신적 질병 중에 심각한 것은 병이 감지되지 않고 간과되거나 혹은 질병을 미덕으로(분노를 용기로, 정욕을 우정으로, 선망을 대항의식으로, 비겁함을 신중함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병이 났을 경우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 것”(플루타르코스)이다.

 

4.

자기 연마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이때 자기에 대한 인식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텔포이적 원리(“너 자신을 알라”)가 자주 상기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식의 관점만으로는 당대 자기 연마의 양태를 충분히 포착할 수 없다. 자기 인식의 모든 기술은 뚜렷한 방법과 규범화된 훈련, 특수한 형태의 시험과 함께 발달했다.

 

(a)

우선 ‘시험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험과정은 미덕을 쌓게 하면서, 동시에 어떤 목표 지점을 가늠하도록 하는 이중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시험의 궁극 목적은 시험 유무와 상관없이 자신에 대한 절대적 지배력을 확립함으로써 필요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시험은 단계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박탈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필수적이거나 본질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한 독립성을 가늠하고 확인해 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소크라테스의 수호신≫에서 플라타르코스는, 먼저 강도 높은 운동으로 식욕을 돋운 다음 가장 맛있는 음식들로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이를 구경한 뒤, 노예들에게 음식을 주고 자신은 노예가 먹는 음식으로 만족하는 시험을 그 한 사례로 든다.

에피쿠스로학파와 스토아학파에게 절제 훈련은 공통적인 것이었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에피쿠로스학파의 관심사는, 기본 욕구에 대한 충족을 통해 어떻게 모든 여분의 것에서 느끼는 쾌락보다 더 충만하고 순수하며 지속적인 기쁨을 맛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시험은 절제로 인한 고통이 시작되는 지점을 알아내는 데 사용되었다. 반면 스토아학파에게는 관습, 여론, 교육, 명성에 대한 염려나 과식의 욕구로 인해 집착하게 되는 모든 것 없이 지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깨달음으로써, 발생 가능한 박탈에 대비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즉, 필수 불가결한 것이 항상 나의 재량권 안에 있으며, 박탈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모든 근심을 경계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부러 가난을 체험’해 보는 것은, 최악의 불운조차도 필수 불가결한 것을 앗아갈 수 없으며, 때때로 참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참아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함이었다.

 

(b)

또 중요하게 간주된 것은 자기 반성이었다. 아침 성찰은 그날 하루의 과제와 책무를 숙지하고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저녁 성찰은 훨씬 더 일관되게 그날 하루를 뒤돌아보는 일이었다. ≪분노에 대하여≫에서 세네카는 섹스티우스의 방법을 소개한다. 섹스티우스는 취침 전 명상할 때 자신의 영혼에다 대고 “오늘 너는 어떤 결점을 극복했는가? 어떤 악덕을 물리쳤는가? 뭔가 향상된 점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세네카 역시 매일 저녁 이런 종류의 성찰을 실행했다. 이때 사용된 용어들은 의미심장하다. 세네카는 자신이 지낸 하루 전체를 “검토”하고 싶어한다(‘흔들다’, ‘먼지를 털어내다’를 의미하는 “excutere”라는 동사는 계산 실수를 찾아내는 검토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다). 또 그는 하루 일과를 “시찰”하려 하는데, 자신이 저지른 행동과 말들을 “재평가”(이것이 remetiri, 곧 재평가인 이유는 일을 완수한 후에 그것이 처음 예상했던 것에 부합하는지 보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려 했다.

이러한 검토해서 주체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는 법적 관계에서처럼 피고인이 판사와 대면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감독관이 업무와 임무를 평가하는 시찰행위와 같은 양상을 띤다. “스펙클라토르(speculator)”라는 용어가 정확히 이러한 역할을 지칭한다. 더욱이 이 검토는 “위반행위”를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유죄판결이나 자체 징벌로 귀결되지도 않는다. 검토를 통해 잘못을 되살리는 것은 죄의식을 고정시키거나 가책의 느낌을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를 상기하고 되새겨보는 과정을 통해 현명한 처신을 보장하는 이성적 장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c)

이것들과 더불어 사유가 사유 자체에 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사유가 불러일으키는 표상 자체를 검토하고 통제하며 선별하는 일이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취해야 할 일정한 태도이기도 하다. 에픽텍투스는 각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도시나 주택의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불침번”의 역할과 태도를 취하기를 요구한다. “화폐를 시험하기 위해 화폐 검사인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적용하는가! 그는 시각, 촉각, 후각, 마지막에는 청각까지 동원한다. 그는 화폐를 땅바닥에 던진 뒤 그 소리를 가늠해 본다. 단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러 번 시도하면서 음악가와 같은 귀를 가지려고 애쓴다”(에픽테투스).

에픽테투스가 말하는 검토는 표상들을 “시험”하고 서로 “구별”하여 “아무것이나 선뜻” 수용하는 것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각의 표상을 멈춰 세우고, 불침범이 ‘신분증명서를 보여 주시오’라고 요구하듯 표상들에게 ‘기다려라. 네가 누구이고 어디 출신인지 보게 해 다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검토는 지배력에 대한 시험이자 자유의 보장으로서, 우리의 자제력과 관계없는 것을 항구적으로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자신의 표상들을 항구적으로 감시하는 것은 생각의 심원한 기원을 자문하는 것도, 표상 이면에 감춰진 의미를 해독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표현된 것과 자기 자신 사이의 관계를 측정하여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오로지 주체의 자유롭고 잉성적인 선택에 따른 것만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5.

자기 실천들의 공통 목표는 자기로의 전향(epistrophe eis heauton)이라는 대단히 일반적인 원리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이 표현은 플라톤적 외양을 띠고 있지만, 그 의미는 현저하게 다르다. 이는 먼저 활동의 변화로 이해되는데, 그렇다고 다른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완전히 몰두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해야 하는 활동의 경우 그것의 주목적은 언제나 자신, 즉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될 뿐이다. 이 자기로의 전환은 관점의 이동을 함축한다. 일상적 동요나 타인에 대한 호기심, 인간의 실제 삶과 거리가 먼 자연의 비밀을 밝히려는 호기심 같은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시선이 분산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기로의 전향은 마치 하나의 궤도로서, 이 궤도 덕분에 우리는 모든 종속과 예속에서 해방되어 마침내 자기 자신과 합류할 수 있게 된다.

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것은 일견 자제의 윤리다. 그러나 다스리기 어려운 힘들에 대한 승리, 이 힘들에 대해 별 무리 없는 행사할 수 있는 지배라는 불가지론적 행태를 내세우는 것만으로 이 관계를 특징지을 수 없다. 이 관계는 종종 법률적 소유 모델로 생각되곤 한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속하며, “우리 자신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관(sui juris)”이다. 그런데 이처럼 정치적이고 법률적인 형태를 통하여, 자기와의 관계는 또한 마치 자신을 자신의 소유물이자 바로 자기 눈앞에 있는 물건처럼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구체적 관계처럼 정의된다. 자기로 전향한다는 것은 외부에 대한 관심이나 야망에 대한 염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럴 때 우리는 각자 자기의 고유한 과거로 되돌아가 과거를 수집하고 눈앞에 마음 내키는 대로 전개시키면서, 자기의 과거와 그 어떤 것도 방해하지 못할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이러한 소유 속에서 형성되는 자기에 대한 경험은 단순히 통제된 어떤 힘에 대한 경험이나 혹은 거역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어떤 힘에 대한 지배의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일종의 기쁨의 경험이다. 자기 자신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자는 그 자신에게 하나의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즐긴다”(세네카).

이 즐거움은 우리 능력을 벗어나는 그 어떤 것으로는 결코 유발되지 않는 기쁨이다. 또 그것은 어떠한 단계나 변화도 거치지 않고 “한꺼번에” 주어지며, 일단 주어지면 어떠한 외부적 사건도 침해하지 못한다는 특징을 지니다. 이 점에서 이러한 종류의 쾌락은 “관능(voluptas)”이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쾌락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능은 일시적이며, 박탈에 대한 두려움으로 손상되고, 충족 혹은 충족되지 않을 수도 있는 욕망의 힘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쾌락이다. 격렬하고 불확실하고 일시적인 이 쾌락과 대비하여, 평온하고 지속적인 상태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게 되는 것이 세네카가 말하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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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후 초기 몇 세기 동안 쾌락의 도덕에 대한 성찰은 바로 이러한 자기 연마와 그 주체 및 실천의 틀 속에서 전개되었다. 근엄함이 훨씬 더 강조되고 엄격해지며, 의무에 대한 요구가 훨씬 더 강화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를 금지조항들의 강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금지조항의 영역을 거의 확장된 바가 없으며, 오히려 이들 변화들은 개인이 스스로를 도덕적 주체로 형성해 가는 방식과 관련되었다. 사실상 자기 연마의 발달은 욕망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의 강화 속에서가 아니라 도덕적 주관성을 구성하는 요소와 관련된 어떤 변화들 속에서 이루어졌다.

윤리적 실체로서 성적 쾌락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힘’의 차원에 속한다. 주체는 언제나 맞서 싸워야 하고 그것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점은 점점 더 개인의 나약함과 연약함, 도피, 방어, 피신의 필요성에 놓이게 된다. 성 윤리는 삶의 미학적·도덕적 기준을 규정하는 일정한 삶의 기술에 개인이 복종할 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은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이 따라야 하는 자연이나 이성의 보편 원칙들에 점점 의거하게 된다. 그 결과 각자가 자신에 대해 완수해야 할 과업을 정하는 일 또한 자기 연마를 통해 상당한 변모를 겪는다. 필수적 “아스케시스(askesis)”를 구성하는 절제와 자제의 훈련을 통하여 자기 인식이 한층 더 중요해진다. 즉 자신을 시험, 관찰, 통제하는 임무는 도덕적 주체 형성의 중심에 진실의 문제(“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져다 놓는다.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지배력을 갖는가 여부가 그 결과를 판가름한다. 그리고 이때 지배력은 욕망도 동요도 없는 즐김이라는 경험으로까지 확장된다.

우리는 이 시기가 성적 쾌락이 악과 결부되고, 성적 행위가 보편적 법률행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욕망을 간파하는 것이 정화된 삶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 되는 성적 쾌락의 경험과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악의 문제가 어떻게 힘이라는 오래된 주제에 작용하기 시작하는지, 법률의 문제가 예술과 “기술(techne)”의 주제를 굴절시키기 시작하는지, 또 진실의 문제와 자기 인식의 원리가 금욕의 실천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배경과 원인에서 자기 연마가 그런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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