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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 / 장 보드리야르 / 옮긴이 해제 / 18.09.05(OT)
p253 : 모더니즘의 기원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적으로는 자유경제의 원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 모더니즘의 근저에는 기독교주의가 지탱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더니즘의 절대적 이데올로기는 바로 진보에 대한 믿음이다. 기독교주의와 헬레니즘의 인간주의 기반 위에서 이상적 절대를 향한 끝없는 나아감,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의 실체이다. (254)인간의 행복을 짓밟는 모든 사회적, 제도적, 물리적 질곡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기. 즉 새로움이 인간적 이상인 절대를 압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모더니즘의 기본적인 논리적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이 모순을 우리는 후기 모더니즘 현상이라고 부른다.
p255 : 전달의 내용물인 지식은 전달조작의 대상물이 되었다. 따라서 현대는 조작적인 사회로 전환된다. 지식의 양은 무한히 어디에고 있다. 그러나 그를 어떻게 조작하는지 그 방법과 속도에 의해서 각 현상은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시간의 개념도 바뀌었다.
역사란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가 유럽에서 자리를 잡은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주목하자. 그 이전의 시대는 역사의 시대가 아니었다. 신화와 전설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시간개념, 그와 함께 역사도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무자비하게 무너진다. 오직 현재, 지금 여기만이 남는다. 즉자적인 시대라는 것이다. 절대적인 의미의 지표, 이상이 없으니, 전통이 있을 수 없으며, 미래를 향한 이상이 없다.
p256 : 전통적인 정치의 개념도 오늘에 와서는 전혀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 정치란 목표로 내건 어떤 이상 주위에서 그 지배력을 갖는다. 쉽게 말하여 형이상학적 이상이 지배하던 시대에나 그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형이상의 쇠퇴는 또다시 철학적 이원론의 붕괴를 수반한다. 이원적 대립,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등, 모든 의미와 가치창출의 대립개념이 사라졌다. (257) 긴장과 의미가 담겨지게 될 거리의 사라짐은 달리 말하여 의미가 사라짐을 말하는 것이다.
p258 : 이원론을 부활하고자 하는 노력은 구조주의와 마르크시즘에 있어서 가장 처절히 나타났다. (259) 구조는 예전의 신, 절대를 대신하여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레비-스트로스의 구조 인류학은 원시인이나 현대인이나 동일한 구조 속에 있는 것이라 하고, 원시 사회의 연구는 예나 지금이나 보편타당한 구조를 밝히기 위하여 행해진다. 보편적 구조, 불변의 어떤 진리를 구제하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 같은 것이 바로 구조주의라고 할 수 있다.
p263 : 오늘날은 자본의 시대도 아니다. 자본은 실물과 독립한 독자적 체계를 구사하고 있을 따름이다. 자본에 상응하는 실물이 없는 자본은 인간이 정처없이 떠돌 듯이 아무 이유없이 배회하고 있는 유령과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의 몰락도 이제 시간을 다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p264 : 전체는 더욱더 동시적으로 변하게 되어 시간적 차이가 없어지므로 시간의 연속성보다는 항상 시간은 표피적인 현재적으로 변하게 된다. 표피적이고 일회적 현재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추상적 의미보다는 지극히 말초적이고 감각적으로 변하도록 한다.
p265 : 사실 모더니즘의 공간은 의미의 투명성, 명확성을 추구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극도의 의미의 명확성은 오히려 의미 제거의 의미의 투명함을 가져온다.
정보가 제공되면 될수록 의미는 사라진다. 모든 것이 미분화의 덩어리 속으로 함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포스트모던은 다시 의미가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속도가, 진보가, 인간주의가, 형이상학이 탄생하기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p266 : 실제가 없는 사회는 그 아노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끝없이 실제를 주입하기에 힘을 쓴다.
모든 경제위기, 환경위기 등도 따지고 보면 아무런 실제 없이 만들어진 실제에 불과하다. 우리는 실제가 없는 허구 속에 살고 있을 따름이다.
도덕적 위기라는 것도 알고 보면 없는 형이상적인 가치를 끝없이 주창하고 거기서 이익을 얻는 자들의 조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67) 실제로 만약 가치가 무너졌음을 보여주면 시스템이 붕괴되기에, 시스템은 끝없이 죽은 가치를 부활시킨다.
오늘날은 니힐니즘의 시대이기에 이 니힐리즘을 가리기 위한 시뮬라크르적인 실재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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