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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스승 / 4장 / 랑시에르 / 18.08.22 / 핫썸머세미나

 

p145 : 그러나 가능한 사회라는 것은 없다. 오로지 지금 있는 사회만 있다. 우리는 몽상에 잠겨 있었다.

-> 3장 결론부에 대한 반전.

 

무게의 법칙

p148 : 지능은 물질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지능은 다만 개인들 속에 있는 것이지 그들의 모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어야 한다.

우리는 이성적 개인들이 각자의 생각을 서로 의미화하기 위해 언어적 물질성의 층들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이 교류는 지능의 모임을 모든 결집의 법칙인 물질 법칙에 종속시키는 역관계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 거기에 바보 만들기의 물질적 중심축이 있다. 비물질적 지능들을 물질 법칙에 따를 때에만 묶일 수 있다.

 

p151 : 우리는 이미 의지와 지능의 연합인 정신에는 주의와 부주의라는 두 가지 기본 양상이 있음을 보았다. 부주의가 있거나 지능이 되는 대로 방치되기만 해도 지능은 물질의 중력에 의해 끌려간다.

우리는 또한 이 방심이 하나의 거부임을 안다. 부주의한 자는 그가 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보지 않는다. 부주의는 먼저 게으름, 즉 노력에서 빠져나오려는 욕망이다.

(152) 이성적 소통은 자기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존중 사이의 평등에 바탕을 둔다. 소통은 이 평등을 계속 입증하려고 애쓴다. 지능을 물질의 무게로 떨어뜨리는 게으름의 원리는 무시다. 이 무시는 겸손을 자처하려 한다. 배워야 한다는 과제를 모면하고 싶어하는 무지한 자는 “나는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겸손이 무엇을 뜻하는지 경험으로 안다. 자기 무시는 항상 타인에 대한 무시이기도 하다.

 

불평등에 대한 정념

p154 : 우리는 자유 의지를 무게의 물질적 체계에 종속시켰던 것, 정신을 중력의 맹목적 세계 속으로 떨어뜨렸던 것이 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것[패권]에 대한 정념이라고 말할 것이다. 불평등주의적 무분별 때문에 개인은 스스로를 포기하고, 자신의 본질이 지닌, 공통의 척도로 잴 수 없는 비물질성을 포기한다.

 

p156 : 계속해서 개인들은 비교를 통해 서로를 묶으면서 이 무분별, 이 바보 만들기를 재생한다. 제도는 이 무분별과 바보만들기를 체계화하고, 설명자는 두뇌 속에 그것들을 응고시킨다.

 

p157 : [전쟁 속에서] 의지가 목표로 하는 것은 타인의 침묵, 말대꾸의 부재, 동의라는 물질적 응집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의 추락이다.

 

 

수사적 광기

p161 : 사람들이 말했듯이 수사학의 원리는 전쟁이다. 사람들은 수사학에서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지를 무화시킬 방법을 구한다. 수사학은 말하는 존재의 시적인 조건에 반기를 드는 말이다. 그것은 입 다물게 하기 위해 말한다. 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할 것이다. 이상이 수사학의 강력령이다.

 

우월한 열등자들

p165 : 사회의 무분별을 집약하는 정식은 우리가 우월한 열등자들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있다. 그 역설 속에서 각자는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복종한다. 각자는 대중과 구별된다고 자처함으로써 대중의 법칙에 복종한다.

 

p166 : 사회적 불평등은 지능의 근본적인 평등에 기초해서만 생각될 수 있고, 또 가능하다. 불평등은 그 자체로 생각될 수 없다.

불평등주의적 사회는 헛되이 그 자체로 이해되기를 바라고, 스스로에게 자연적 토대를 부여하려고 애쓴다. (167) 만일 레비 공작이 부주의하지 않다면 자신의 체계, 바로 지능의 불평등의 체계가 사회질서를 전복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법도 했는데. 만일 권위가 지적 우월성에 달려 있다면, 역시 지능의 불평등을 확신하는 피통치자가 도지사의 멍청함을 봤다고 생각하게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p168 : 우리 모두가 자연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상황에 따라 불평등함에 틀림없다.

 

p169 : 인간 사회에서는 어느 것도 제자리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다르지 않은 존재들에게 다른 자리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인간 이성에게 질서를 바꾸라고 제안한다면, 이성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질서를 질서로 자리를 자리로 차이를 차이로 바꿀 이성적인 동기가 하나도 없다.

 

철인왕과 인민 주권자

p169 : 이성적 인간만이 불평등의 고리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도 역시 시민으로서 그 고리 속에 갇혀 있다.

기성 질서에는 이성/근거가 없다. 철학자들은 사회 질서가 마침내 합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추구하는 순간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이 주장에 두 극단적이면서도 대칭적인 형상이 있음을 안다. 철인왕에 대한 플라톤의 오래된 꿈 그리고 인민 주권에 대한 근대의 꿈.

 

p170 : 우두머리가 자신을 양도하여 그의 인민에게 종속되는 것과 똑같이 인민은 자신을 양도하여 그의 우두머리에게 종속된다. 이 상호 예속은 정치적 허구의 원리다. 철학자들의 오류추리는 [순수하게 고립되었고,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인간들로 이루어진 인민을 가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순적인 표현이며, 불가능한 존재다. 시민들(자신의 이성을 불평등주의적 허구에 양도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인민들만 존재한다.

 

(171) 우리는 인간들 사이에서만 평등이 있다고, 다시 말해 서로를 이성적 존재로 바라보는 인간들 사이에만 평등이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시민(정치적 허구의 주민)은 불평등의 나라에 사는 타락한 인간이다.

 

어떻게 이성적으로 헛소리할까?

p172 : 그러므로 이성적 인간에게는 자신의 이성을 시민의 광기로부터 지키려고 애쓰면서 그 광기에 복종할 일이 남는다. 철학자들은 그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다. 그들은 말한다. 수동적 복종 반대! 권리 없는 의무 반대! 하지만 그것은 부주의하게 말하는 것이다. 권리 관념을 함축하는 의무 관념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양도하는 자는 절대적으로 양도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반대급부를 상정하는 것은 양도를 합리화하고, 양도하고도 제 몫을 남겨뒀다고 자처하는 자를 더 잘 사로잡는 것 말고는 다른 효과를 갖지 않는 불쌍한 헛된 계략이다.

 

p173 : 이성적 인간이 스스로에게 우월성을 부여하는 순간 그는 (...) 사회 질서를 이성의 힘보다 위에 위치한 신비로 볼 것이다. 즉 자기 이성의 부분적 희생<열등한 자들과 함께하라>을 명령하는 우월한 이성의 작품으로 말이다. 그는 시민으로서 통치자들의 무분별이 내리는 명령에 따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성을 무분별의 명령에 일정 부분 양도함으로써 (174) 합리성(자신을 극복하는 능력)의 거처를 유지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성은 항상 무분별 내에서도 난공불락의 성채를 지킬 것이다.

 

p177 : 이성은 모든 언어를 배우는 힘이다. 그러므로 (...) 이성은 헛소리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에 찬성하고 플라톤에 반대하며 결단을 내려야 한다.

 

p178 : 어떤 경우든 이성의 힘을 입증하는 것, 이성을 가지고 항상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즉 극단적 무분별 속에서도 이성을 능동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성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헛소리하는 이성적인 사람은 사회적 광기의 고리에 갇히더라도, 개인의 이성이 그것의 힘을 끊임없이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벤티부스 위에서 한 말

p183 : 사회의 무분별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남으면서 사회의 무분별에 효과를 낼 수 있는 이성의 삶이 있다.

 

p186 : 해방된 자들의 당, 의회 또는 해방된 사회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늘 매순간 스스로 해방될 수 있고, 타인을 해방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알리고, 제 자신을 알고 더 이상 열등한 우월자의 코미디를 연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를 늘릴 수 있다. 사회, 인민, 국가는 늘 무분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개인으로서 이성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시민으로서 가능한 가장 이성적으로 헛소리하는 기술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의 수를 늘릴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 “만일 각각의 가정이 내 말대로 한다면, 국민은 곧 해방될 것이다. 식자들이 인민의 지능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설명을 통해 부여하는 해방이 아니라, 우리가 심지어 식자들에 맞서 우리 스스로를 지도할 때 얻는 해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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