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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 / 악셀 호네트 / 문성훈 이현재 옮김 / 18.09.12/
1부 인정투쟁 이념의 역사적 출현 - 헤겔의 근원적 이념
p33 : 헤겔이 일생동안 몰두한 정치철학적 과제는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칸트의 이념에서 단순한 당위적 요청의 성격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헤겔이 당시 지니고 있던 생각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실천적, 정치적으로 관철하려는 사회 내적 동력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상호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주체들의 투쟁에서 비롯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호주관적으로 인정받으려는 개인들의 요구는 본래부터 사회적 삶에 내재하는 도덕적 긴장의 원천이 된다. 또한 이러한 인정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 진보의 제도화된 수준을 넘어서 단계적으로 반복되는 투쟁이라는 부정의 방식(34)을 통해 차츰 의사소통적으로 실현된 자유의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
즉 헤겔은 인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투쟁을 자기보존을 위한 것[마키아벨리, 홉스]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 충동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헤겔은 투쟁 행위가 사회적 인정관계의 장애나 손상 때문에 일어난다고 해석함으로써 투쟁을 인간 정신의 인륜적 발전과정의 중심매체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1장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 - 근대 사회철학의 토대
p35 : 정신사적으로 볼 때 근대 사회철학의 등장은 사회적 삶을 근본적으로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관계로 규정하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새로운 사고 모델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중세까지 효력을 발휘했던 고대 정치이론의 주요 구성요소들이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정치론에서 중세의 기독교적 자연권이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근본(36)적으로 일종의 공동체적 존재, 즉 정치적 동물로서 파악되어 왔으며, 이러한 존재는 자신의 내적 본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치적 공동체라는 사회적 틀과 관련을 맺는다.
따라서 정치학은 이를 위해 적절한 제도와 법규에 대한 연구인 동시에 좋은 삶과 정의로운 삶에 대한 이론이었다.
그러나 중세 후기에서 시작하여 르네상스기에 정점에 이른 사회구조 변동과정이 더욱 빨라지면서 이와 같은 고전적 정치론의 두 가지 이론 요소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하였다.
p37 : 마키아벨리는 (...) 인간을 자기중심적 존재,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다양한 주장의 사회존재론적 토대를 이루는 것은 주체들 사이의 영원한 적대적 경쟁 상태에 대한 가정이다. 항상 야심을 가지고 새로운 성공지향적 행위전략을 마련해가는 인간들은 상대방 역시 자신처럼 자기이해관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상대를 두려워하고 불신임하면서 서로 대립한다.
p39 : 홉스는 인간을 스스로 움직이는 일종의 자동기계로 생각했으며, 이 같은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미래의 안녕을 위해 미리 노력하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 행위는 인간이 함께 사는 다른 인간들을 대면하는 순간, 상대에 대한 불신에서 생긴 예방적 권력 확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 미래에 있을 수 있는 타자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각자 자신의 잠재적 권력을 미리 확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40) 이러한 특징을 토대로 하는 사회적 관계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성격을 갖게 된다.
홉스의 국가계약론은 국가계약만이 주체들이 개인적 자기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행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종결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정당화된다.
p41 : 청년 헤겔이 자신의 철학적, 정치적 저작 속에서 반대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국가적 행위를 단순한 합목적적 권력 행사로 환원하는 근대 사회철학의 경향이었다. 특히 예나 시기 헤겔 저술의 특수하고 독특한 위상은 바로 헤겔이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의 사고 모델을 이용하면서도 자신의 비판적 의도를 관철시키려 했다는 점에 있다.
2장. 범죄와 인륜성 - 헤겔의 상호주관성이론적 새로운 사고 단초
p42 : 헤겔은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사회적 투쟁이라는 사고 모델을 전혀 다른 이론적 맥락에서 받아들인다. (44) 무엇보다도 칸트와 피히테 (...) 역시 인간 본성은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 성향의 집결체로 간주되며, 주체들은 이러한 내부의 성향을 억압하는 방식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인륜적, 즉 공동체적 입장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두 가지 이해방식의 단초들은 그 기본 개념에서 서로 고립된 주체의 존재를 인간의 사회화를 위한 일종의 자연적 토대로 전제하는 원자론에 묶여 있다. (45)그러나 인간들 사이의 인륜적 통일 상태가 이러한 자연적 토대에서부터 유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연적 토대 외부의 ‘타자 그리고 낯선 어떤 것’을 통해 보충되어야 했다. 헤겔은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즉 근대 자연법에서는 인간공동체가 다수의 연합이라는 추상적 모델에 따라, 즉 고립된 개별 주체들의 연관관계로 사고될 수 있을 뿐 인륜적 통일체 모델에 따라 사고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p46 : 헤겔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도시국가의 제도적 통치조직을 기술하는 데 사용했던 이론을 신분론의 세세한 부분까지 자신의 저작 속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공통체의 독특함은 첫째로, 유기체에 대한 비유에서처럼 ‘보편적 자유와 개인적 자유’의 살아 있는 통일 속에 있다. 이 말은 공적인 생활이 사적 자유공간의 상호제한을 결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 개인의 자유실현을 위한 기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헤겔은 사회공동체 내부에서 의사소통적으로 사용되는 인륜적 관습과 습관을 보편적 자유와 개인적 자유를 통합하는 사회적 매체로 본다. 상호주관적이며 실제로 실천된 태도만이 확장된 자유의 시행을 위한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p48 : 따라서 이제 헤겔이 제기했듯이 모든 시민의 개인적 자유에 대한 사회연대적 인정을 통해 이들의 인륜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사회조직의 형상을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적 수단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가 첫 번째로 제안한 단계는, 원자론적 기본 개념 대신 주체들 사이의 사회적 연관을 설명하는 범주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49) 헤겔은 폴리스에서 완전한 실현에 도달하는 공동체 관계가 일종의 기체처럼 인간의 본성 속에 놓여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명백하게 따른다.
여기서 헤겔은 자연적 인륜성의 상태에서 그가 이전에 이미 인륜적 총체성의 관계로 규정했던 사회조직 형태로의 이행을 설명한다.
p50 : 헤겔은 ‘인륜적 본성이 자신의 진정한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을 반복적 부정의 과정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부정의 과정을 통해서 사회의 윤리적 관계들은 차츰 기존의 일면화와 특수화에서 벗어나게 된다. (...) 파괴적 균형의 재통합을 통해 결국 보편성과 특수성의 통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차이의 실존’이다. 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면 (...) 자연의 윤리성 속에 이미 놓여 있는 ‘도덕적’ 잠재력이 투쟁을 통해 보편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p52 : 피히테는 ‘자연법의 토대’라는 자신의 글 속에서 인정을 법적 관계의 토대에 놓여 있는 개인들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했다. 즉 서로 자유롭게 행위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을 위해 각자 고유의 행위 영역을 제한하는 가운데 주체들 사이에는 공동의 의식이 생겨나게 되며, 이 공동의 의식은 후에 법적 관계 속에서 객관적 타당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53) 헤겔은 지금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아래서 단지 인륜성의 다양한 형태로만 기술해왔던 의사소통적 생활형식 속에서 상호인정이라는 상호주관적 과정을 투영한다. 이제 사회의 인륜적 관계들은 실천적 상호주관성의 형태를 띠게 되며, 서로 대립하는 주체들은 이 속에서 인정운동을 통해 서로 보완적 합의와 이에 따른 필수적 공통성을 확보하게 된다.
헤겔은 또한 이와 같은 인정관계의 논리 속에 하나의 내적 역동성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주체들은 일단 인륜적으로 확정된 상호인정관계의 틀 속에서 항상 자신의 특수한 정체성 이상의 것, 즉 새로운 차원의 자신을 경험하기 때문에 주체들은 다시 한 번 이미 도달했던 인륜성 단계에서 투쟁적 방식으로 벗어나야만 한다. 이를 통해서만 주체들은 더욱 요구가 높은 형태의 개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54)이런 점에서 주체들 간의 인륜적 관계의 토대에 놓여 있는 인정운동은 화해와 투쟁 단계가 교체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헤겔이 이러한 역동화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마키아벨리에 이어 홉스로 하여금 근대 사회철학의 역사를 개시하게 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근원적 투쟁 모델을 다음과 같이 변형하는 데 있다. 즉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면, 주체들은 자신들이 존재하는 인륜적 관계를 떠나든가, 이를 극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로부터 빚어지는 투쟁은 단지 신체적 존재의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개인성 차원에 대한 상호주관적 인정을 목적으로 하는 한, 처음부터 하나의 인륜적 사건이다. 따라서 인간들 사이의 계약이 만인의 (55)만인에 대한 생존투쟁이라는 불안정한 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쟁은 일종의 도덕적 매체로서 저급한 인륜성의 상태에서 더 성숙한 인륜적 관계로 나아가게 한다.
헤겔의 저작인 ‘인륜성 체계’의 논종 구조는 ‘리바이어던’의 국가 구성과 거울에 비추듯 대비된다. 즉 헤겔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자연적 인륜성’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인간들 사이의 인정의 기본 형식에서 자신의 철학적 설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초기의 인정관계들이 다양한 종류의 투쟁을 통해 훼손되고 있음을 기술한다. 이러한 투쟁들은 ‘범죄’라는 제목 아래 중간 단계로 소개된다. 그러고 나서 형식상 유기적인 순수인륜성 관계로 이해될 수 있는 사회적 통합 상태로 나아간다.
p56 : 헤겔의 설명에 따르면, (...) 개인성의 성장은 두 단계의 상호인정을 통해서 수행되며, 이 두 단계 간의 차이는 어떠한 차원의 개인적 정체성이 각각 실천적으로 인정되는 가에 있다. 주체들은 ‘보편적 상호작용과 인간 형성’ 관계인 부모와 자식 관계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감성적으로 욕구하는 존재로서 인정한다. 여기서 타자를 통해 인정되는 개인성 부분은 각 개인이 삶에 꼭 필요한 보살핌과 물자에 의존하고 있다는 ‘실천적 감정’이다. 물론 헤겔에게 가족에 대한 내적 규정을 특징짓는 것은 교육이라는 ‘노동’이며, 이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내적 부정성과 자립성의 형성이며, 그 결과로 가족 안에서 일어난 감정통일이 지양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양된 인정형태에 이어 나타나는 두 번째 단계는, 계약의 형태로 규율된 소유자들의 교환관계이다. (57) 주체들은 이제 서로를 정당한 소유 요구의 담지자로 인정하게 됨으로써 소유자로 규정된다. 교환 속에서 주체들은 개인으로서 서로에게 관계하며, 그들에게는 모든 주어진 거래 행위에 대해 예, 아니요로 반응할 수 있는 ‘형식적’ 권리가 부여된다. 이런 점에서 법적 조항이 각 개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규정된 자유’,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에 반대할 수 있는 자유이다.
권리인정 형식을 통해 특징지어진 사회조직에 주체들이 본질적으로 관계하는 것은 바로 부정적 자유, 즉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정이라는 사회화 운동은 첫 번째 단계의 가족적 감정유대가 원칙적으로 지니고 있던 편협성의 한계를 분쇄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보편화의 진보는 무엇보다도 개별 주체에게 상호인정된 것을 방출하거나 형식화하는 대가를 치(58)르게 한다. 각 개인은 사회 내부에서 헤겔의 표현대로 아직도 총체성으로서, 즉 ‘차이를 통해 자신을 재구성하는 전체성’으로서 정립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단계들 뒤에 다양한 투쟁이라는 하나의 단계를 더 설정한다. 이 투쟁들의 공통된 작용은 이미 형성된 상호인정과정을 또다시 투쟁적으로 단절시키는 데 있다. 헤겔이 특히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로 사(59)회적 공동생활에 장애가 생기면서 일어나는 이러한 투쟁의 내적 진행 형태이다. 따라서 그의 분석은 파괴적 행위들을 ‘범죄’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데 이론적으로 고정된다.
범죄 행위 속에서 주체들은 자신들이 자유권의 담지자로서 사회적 공동생활과 부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괴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 (60) 범죄자의 내적 동기는 이미 확정된 상호인정의 단계에서 자신이 불만족스럽게 인정받고 있다는 경험이다. (61) 도둑질이라는 범죄를 통해서 주체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귀속된 소유물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제한받을 뿐만 아니라 헤겔이 말하듯이 자신의 ‘인격’이 전적으로 손상되는 침해를 받는다.
p63 : ‘명예’란 내가 나만의 속성과 특징 모두를 적극적으로 나의 정체성으로 파악할 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취하게 되는 태도이다. (64) 명예를 둘러싼 투쟁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긍정적 자기 관계의 가능성이 다른 주체들의 인정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예란 각 개인의 특성이 상호주관적으로 인정받는 다는 전제에 구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긍정적인 자기관계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두 주체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손상된 자신의 명예를 투쟁으로 회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헤겔의 가정에 따르면, 두 주체가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자신의 생명을 걸 준비가 되어 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오직 내가 죽을 각오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만, 나는 내가 나의 신체적 생존보다 나의 개인적 목적과 특성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은 모욕 행위에서 발생한 사회적 투쟁을 생사를 건 투쟁으로 발전시킨다. 생사를 건 투쟁은 항상 법적으로 탄원 가능한 요구의 영역 밖에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전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p65 : 헤겔은 이외에도 이러한 파괴 행위를 통해서만 인륜적으로 더욱 성숙한 인정관계가 일반적으로 성립되며, 이와 같은 인정관계를 전제로 ‘자유시민 공동체’가 실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66) 이러한 발전의 차원은 헤겔이 마지막에 명예를 둘러싼 투쟁을 부지불식간에 개별 주체들 사이의 투쟁에서 사회 공동체 사이의 투쟁으로 이전함으로써 주지시키고자 했던 바이다. 결국 개인들은 다양한 범죄 유발을 감수하고 나서야 더 이상 자기관계적 행위자로서가 아니라 ‘전체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마주하게 된다.
범죄자는 무엇보다도 인격체들의 권리와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각 개인의 정체성이 공동체에 의존하고 잇다는 것을 보편적 지식의 대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교육과정) 이럼 점에서 자연적 인륜성을 파괴하는 동일한 사회적 투쟁이 주체들로 하여금 서로를 의존하면서도 완전히 개별화된 인격체로 서로를 인정하게 하는 자세를 갖게 한다.
p67 : 범죄 장과 연결된 절대적 인륜성에 대한 묘사 속에서 미래 공동체의 상호주관적 토대로 주장된 주체들 간의 특수한 관계에 해당하는 것은 상호직관이라는 범주이다. 즉 개인은 ‘타인 속에서 자신을 그 자체로 직관’한다는 것이다.
인지적 인정을 넘어 정서적인 데까지 뻗어나가는 이와 같은 인정유형에 적절한 범주로 제공된 것이 ‘연대’이다.
p68 : 헤겔이 염두에 두었던 단계이론을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인정대상 인정방식 | 개인 (구체적 욕구) | 인격체 (형식적 자율성) | 주체 (개인적 특수성) |
직관 (정서적) | 가족 (사랑) |
|
|
개념 (인지적) |
| 시민사회 (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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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직관 |
|
| 국가 (연대) |
p73 : 투쟁은 사회적 공동체가 형성되는 일종의 메커니즘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투쟁은 주체들로 하여금 각각 서로의 타자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도록 만듦으로써 결국 이들 개인의 총체성 의식은 타자의 총체성 의식과 함께 ‘보편적’ 의식으로 엮인다.
3장. 인정투쟁 - 예나 시기 헤겔의 ‘실재철학’에서 나타난 사회이론의 토대
p77 : 헤겔은 이제 피히테의 영향 아래서 정신의 본질적 특징을 ‘자기 자신에 대해 동시에 타자로’ 존재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으로 본다. 즉 정신은 자신을 자기 자신의 타자로 만들 수 있으며 이로부터 다시 자기 자신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신을 분화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78) 즉 모든 사건의 근저에 놓여 있는 동일한 발전법칙은 자기 자신의 외화와 자기 자신으로의 귀환이라는 이중적 운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운동의 끝없는 반복을 통해서 정신은 단계적으로 자신을 실현한다.
p82 : 주체는 개별성 의식으로서 이러한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미 자신을 ‘부정적’인 힘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이 힘은 현실의 질서를 독자적으로 산출해내며, 따라서 그 질서 속에서 자신을 ‘대상’으로 만든다. (83) 헤겔은 개인의 자기형성과정의 실천적 측면이 주체의 도구적 자기경험과 함께 시작된다고 본다. 동물과 달리 인간 정신은 결여감, 즉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다는 느낌에 대해 대상을 직접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헤겔의 경우 ‘단순한 욕구 충족’을 대신하는 것은 ‘자기반성적’ 노동행위이다.
노동 활동은 ‘본능적인 나의 분열’에 따른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 활동은 직접적인 욕구 (84)충족을 중지시킴으로써만 나타날 수 있는 추진력과 규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은 총괄적으로 노동을 ‘자신을 사물로 만드는’ 경험이라고 한다. (85) 헤겔은 자신의 사고를 의식철학의 자기독백적 가정에 종속시킨 만큼 ‘의지’의 새로운 차원, 즉 상호주관적 차원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86) 헤겔이 이런 식의 확장을 기도한 체계상의 동기는 남녀 간의 성적인 상호작용관계가 권리 인격체인 자기의식의 구성을 위한 추가적 조건으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즉 성적인 상호행위관계에서 두 주체는 서로 상대방의 욕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각기 자신의 상대자 속에서 자신을 재인식한다.
이처럼 성은 서로 대립하는 주체의 통일을 나타내는 첫 번째 형식이다.
p87 : 타자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상호적인 경험이 비로소 현실의 사랑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이 경험이 두 당사자에게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인식으로 변할 수 있을 때이다. 왜냐하면 각 주체는 자신의 상대 또한 “자신을 그렇게 자신의 타자 속에서 인식한다”는 것을 경험했을 때, 비로소 ‘타자가 나에게 대자적으로’ 존재한다는 확실한 믿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자기 자신을 타자 속에서 인식하는 이러한 종류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헤겔은 여기서 처음 ‘인정’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는 한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랑관계 속에서 ‘인정’되는 것은 ‘형상화되지 않은 자연적 자신’이다.
주체가 사랑받는 경험 속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자신을 ‘욕구하고 욕망하는’ 주체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훨씬 더 명료하게 보여준다.
p88 : 이러한 헤겔의 생각에 따르면, 자신의 상호작용 파트너를 독특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개인은 자기 자신 역시 전적으로, 또는 제한 없이 그와 같은 인격체로 경험할 수 없다는 역추리도 가능하다. 따라서 인정관계에는 어떤 점에서는 상호성을 위한 강제가 삽입되어 있다.
만약 내가 나의 상호작용 상대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상대방의 반작용 속에서 동일한 인격체로 인정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상대방에게 인정받으려는 속성과 능력들을 상대방은 나에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p89 : 헤겔은 사랑을 인간으로 하여금 서로 대립하는 주체들이 단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게 하는 원초적인 경험 맥락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없다면, 인륜적 공동체에 대한 표상을 심리 내적으로 재현해내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할 것이다.
헤겔은 이제 개인적 의지가 자신을 살아 있는 주체로 경험할 수 있는 첫 번째 발전 단계, 즉 사랑이라는 인정관계가 또한 그 내적 경험 잠재력을 확장하는 두 가지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에로틱한 사랑관계가 확립되면서 ‘타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인식’은 두 당사자의 공통된 인식으로 발전한다. 이제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인식은 제도적인 부분관계에서 나타나는 협동적 행위를 통해 다시 한 번 반성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도구를 통한 개인의 노동과 마찬가지로 부부간의 사랑에서 ‘가족 소유’(91)는 이 사랑을 ‘지속적 존속 가능성’으로 보게 하는 매체이다. 물론 노동 도구와 마찬가지로 가족 소유에는 한계가 있다. 즉 가족 소유라는 매체는 그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경험 내용을 생명력 없게, 무감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부부는 외적인 매체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제한 없이 느끼기 위해서 공동의 대상화라는 단계를 필요로 한다. 즉 후손의 탄생을 통해 사랑은 ‘인식하는 인식’이 된다. 왜냐하면 부부는 아이를 통해 상대방의 사랑을 서로 알고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p92 : 사랑관계 속에서 성장한 최초의 상호인정관계는 이후의 모든 정체성 발전의 필연적 전제이다. 왜냐하면 이 인격관계는 개인의 특수한 성향을 인정하고, 따라서 각 개인에게 포기할 수 없는 자기신뢰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과 같이 협소하고 제한된 상호작용의 틀 속에서 주체가 한 사회의 사회적 생활 맥락 속에 상호주관적으로 보증된 권리의 기능을 배우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 상호행위 규범에 대한 인식 없이는 주관적 정신도 자기 자신을 상호주관적으로 유효한 권리를 부여받는 인격체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헤겔은 주체의 형성과정을 세계에 대한 실천적 관계라는 추가적인 차원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이제 헤겔은 『실제철학』의 맥락 속에서 ‘인정투쟁’이라는 구성수단을 재수용하게 된다.
p93 : 필연적으로 한 가족은 다른 가족이 자기 땅을 공동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수많은 가족 사이에는 일종의 사회적 경쟁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은 일견 자연법적 전통 속에서 기술되었던 바로 그 경쟁 상태에 상응한다.
p96 : 만약 기존의 전통적 사고와 달리 주체들이 적대적 경쟁이라는 사회 조건 아래서도 스스로 사회계약 이념에서 기술된 것과 같은 식의 법적 갈등 해결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면, 우리는 최소한의 규범적 동의를 사전에 보(97)장해주는 상호주관적 사회관계에 대해 이론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경쟁관계의 토대를 이루는 계약 이전의 상호인정 관계만이 도덕적 잠재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상태라는 사회적 상태에 필연적으로 덧붙여 고려해야 하는 사실은, 주체들이 투쟁에 앞서서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 자체는 인정 행위로서의 운동이며, 이러한 운동이 바로 인간의 자연 상태를 극복한다. 즉 인간은 인정 행위다.”
p99 : 헤겔의 대안적 설명은 일방적인 소유물 획득을 둘러싼 투쟁을 ‘자기주장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인정을 위한 투쟁’으로 해석하는 서술 형식을 취한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한 가족의 독점적 소유물 획득은 처음부터 사회적 공동생활에 대한 민감한 방해 행위로 나타난다.
p100 : 헤겔은 상대방의 소유물 획득 행위에 가하게 되는 배제된 주체의 공격적 행위 역시 홉스의 자연상태론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서술한다. 즉 사회적으로 무시당한 개인이 대항 행위로써 타인의 획득물을 훼손하는 것은, 그가 그것을 통해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 자신을 다시 인식시키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헤겔은 소유에서 배제당한 자의 파괴적 반작용을, 자신에 대한 타자의 존중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행위라고 해석한다.
p101 : 그 다음 단계로 이 투쟁의 과정을 소유한 자의 시각을 통해 기술한다. 공격당한 주체에게 자기 소유물이 파괴되는 경험은 일종의 규범적 자극을 일으킨다.
그는 경제적으로 더욱 많은 대상을 소유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의식을 가지고 소유물 획득 행위를 했던 것이다. 이 주체는 그의 상호작용 상대자의 반작용을 통하여 비로소 자신이 소유 대상에 대한 상대방의 사용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자신도 자신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환경과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소유 주체의 자기인식 속에는 이제 타자가 편입된다.
p102 : 물론 공격당한 주체는 자신의 행위 방향을 탈중심화함에 따라 상호작용 상대방의 공격이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인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즉 공격당한 주체는 파괴 행위를, 자신의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도발적으로 어떤 반작용을 강요하는 행위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의 소유물 획득 행위로부터 결국에는 각기 서로에게 사회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알고 있는 두 당사자가 적대적으로 대립하게 되는 투쟁 상황이 발생한다.
p103 : 이때 서로 싸우는 주체들은 더 이상 자기중심적으로 행위하는, 즉 상대방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존재로 파악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주체는 투쟁 속에서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기 전에 각기 자신의 상대방을 자신의 행위 방향 속에 이미 적극적으로 관련시키고 있었다. 두 주체는 이미 상대방을 자기 행위의 상호작용 상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소유하지 못한 주체의 경우, 그가 타인의 소유물 획득 행위에 대해 가지는 실망감은 바로 이러한 이전의 상호인정관계에 대한 증거이다. 이와는 달리 소유물을 획득한 주체의 경우에는 자기의 해위 해석에 대한 상대방의 상황규정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통해서 상호인정이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동의가 그들에게 뚜렷하게 주체화되어 나타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투쟁의 양측은 행위의 내용상 이미 서로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 상태의 투쟁에는 서로를 상호작용 상대자로 긍정하는 주체들 사이의 암묵적 동의가 전제되어 있다는 헤겔의 추론은 정당하다.
p104 : 헤겔은 소유물의 파괴 이후에 둘로 나뉜 주체들 사이에 성립하는 상호주관적 관련을 불평등 관계라고 규정한다. 배제된 주체는 타자의 소유물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상대방에게 의식시키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상호주관적으로 강화된 인식을 획득하는 데 비해, 그 타자는 바로 이러한 자기인식을 도난당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의 상황해석은 상호주관적인 동의를 얻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격당한 주체에게 그 순간 자신의 상대방을 통한 인정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주체는 자신의 상대가 앞서서 그에게 행했던 것과 같은 것을 행함으로써만 상호주관적으로 확인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로 되돌아갈 수 있다.
p105 :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상대와는 달리 도발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단지 타자에게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오히려 적대적인 소유물의 파괴를 통해 그가 모욕당한 것은 소유물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가 잘못 해석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신념이 상대방의 인정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가 삶과 죽음이 걸린 투쟁에 임할 각오로 자기 요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신체적 생존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때이다. 따라서 헤겔은 공격당한 주체가 자기 의지의 도덕적 절대성과 자기 인격의 인정 가치를 상대방에게 증명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뛰어들게 되는 투쟁을 투쟁적 자연 상태의 중간 단계로 간주한다.
p110 : 이제 헤겔은 사회적 현실의 구성을 권리의 실현과정으로 기술해야 한다는 독특한 요구를 안게 된다. 사회적 삶에서 권리관계가 일종의 상호주관적 토대가 되는 이유는, 모든 주체가 모든 타자를 그들의 정당한 권리 요구에 맞게 대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에게 권리는 사랑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사회적 친밀관계라는 특수한 영역으로 한정될 수 없는 상호인정 형식이다. ‘권리 인격체’의 성립을 통해 비로소 한 사회의 핵심 중심 제도들의 공동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의사소통적 동의, 즉 ‘보편적 의지’를 위한 최소한의 척도가 마련된다.
이는 사회적 과제의 협동적 해결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p112 : 즉 주체들은 노동을 통해 생산한 자신들의 소유물이 적법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야 하며, 이와 더불어 자신들의 합법적 능력에 상응하는 부분을 자신이 원하는 생산물과 교환하기 위해서는 각자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헤겔은 권리 인격체들 사이의 상호행위의 전형을 교환 속에서 본다. 헤겔에게 교환가치는 거래에 참여한 주체들의 동의를 정신적으로 체현한 것이다.
p113 : 이런 점에서 계약관계의 성립과 함께 제도적 인정 형식의 실질적 내용도 확장된다. 왜냐하면 계약관계란 권리 주체가 자신을 계약 상대자로 인정하는 계약 수행 문구의 도덕적 내용과 자기 자신을 연결할 줄 아는 특수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p115 : 법적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는 강제수단을 통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주체에게 계약상의 의무를 사후에라도 이행하도록 독촉한다.
p116 : 헤겔에 따르면, 법적 강제에 대한 경험은 권리 주체인 자신의 요구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종의 인격 손상을 의미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개인 역시 이미 자신을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 보장된 주체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사회적 강제조치에 대하여 분노를 가지고 반응하게 될 것이다.
“범죄자는 그리스의 헤로스트라토스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는 비록 유명해지지 않았지만, 보편적인 의지를 무시하고 자기의 의지를 실현시켰던 것이다.”
p117 : 범죄는 일종의 ‘보편적 인정’을 손상시키기 위한 행위이다. 범죄는 범죄자 측에서 볼 때 ‘즉각적으로 인정된 한 인격체를 훼손한다’는 일반적 사실인식 속에서 발생한다. 범죄 행위의 동기는 법적 강제의 집행 때문에 특수한 ‘자기 의지’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감정이다. 이런 점에서 권리라는 발전된 단계의 범죄에서도 개인의 자기형성과정이라는 조건 아래서 일어난 생사를 건 투쟁과 동일한 것이 수행된다.
p118 : 헤겔은 ‘보편적 의지’의 형성과정, 즉 사회의 형성과정을 권리 인정 내용의 단계적 구체화 과정으로 파악한다.『인륜성 체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범죄 행위는 통일된 권리 주체들의 ‘보편적 의지’를 새로운 단계로 분화시키는 도덕적 도전이라는 촉매기능을 가지고 있다.
p120 : 놀랍게도 헤겔은 범죄라는 도덕적 도발이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변화가 비형식적 상태에서 국가적으로 조직된 상태로 나아가는 법의 제도적 변형, 즉 자연법에서 실정법으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p121 : 범 규범은 범죄 때문에 공적으로 통제된 법 조항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며, 따라서 국가의 제재력을 증대시킨다. 그렇다고 법 규범의 도덕적 내용이 더욱 구체화되거나 분화된 것은 아니다.
p124 : 정신은 자신이 최종적으로 떠났던 발전 단계 속에서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헤겔에 따르면, 국가형성과정과 이에 따른 인륜성의 구성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완성된 법 현실이라는 매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의 자기반성이다.
p127 : 여기서 국가의 형성은 무엇보다도 권리관계의 형성과 마찬가지로 상호주관적 투쟁현상으로 소급되는 것이 아니라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전제적 지배권력을 통해 설명된다. 즉 정신의 ‘절대의지’는 카르스마적 지도자의 활동력 속에서만 예감될 수 있기 때문에 오직 이러한 지도자만이 국가권력 행사를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사회적 복종 자세를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의 주체성은 단지 개별적 영웅의 유일성 속에서만 반영될 수 있으며, 이 유일성이 다시금 국가의 단일한 권위의 선행 형태가 된다.
p128 : 헤겔은 그동안 국가를 자신을 실현하는 정신으로 보는 모델에 따라 사고했지만, 국가의 성립을 일방적인 정복 행위로 이해함으로서 근대 사회철학의 창립 세대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p130 : 공민의 지위는 오직 국가라는 상위의 보편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규정한다. 권리 주체와는 달리 ‘공민’은 자신을 ‘공민’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개인들과 성공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자신의 특수한 능력과 속성을 갖게 된 사회적 인격체가 아니다. 오히려 공민의 자기의식은 고독한 주체가 인륜성 전체 이념이 객관적으로 표현된 자신 속의 부분들과 반성적으로 관련을 맺음으로써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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