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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 르네 지라르 / 김치수, 송의경 옮김 /18.09.19
해제 p23 : 한 개인이 무엇을 욕망화한다는 것은 그 개인이 지금의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때 초월은 자기가 욕망하게 되는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상
주체
돈기호테는 주체가 되고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그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가 되기 위하여 아마디스라는 전설의 기사를 모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돈키호테는 직접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를 모방함으로써 거기에 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돈키호테의 욕망은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간접화되고 있으며,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간접화현상이 일어난다. 즉 주체의 욕망이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상승하여 중개자를 거쳐 대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대상
중개자
주체
p24 : 어느 기독교인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곧 예수라는 중개자를 모방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욕망하는 주체와 욕망의 대상과 그 욕망의 중개자가 삼각형의 구조를 갖게 되고, 이처럼 간접화한 욕망을 삼각형의 욕망이라고 부른다.
지라르는 현대인의 욕망은 이처럼 삼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면서 소설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욕망의 왜곡되고 비진정한 속성을 분석하고 있다. 이로써 시장경제체제 사회 속에서 개인은 그 욕망마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중재자에 의해 암시된 욕망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제시한 셈이 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인공의 욕망의 구조와 주인공을 태어나게 한 사회의 경제구조 사이에 구조적인 동질성을 발견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p27 : 근대 이전에는 주체가 모방하고자 하는 대상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데 반하여, 현대 사회에서는 주체가 타자를 모방하면서도 모방의 대상을 밝히지 않고 모방 자체를 터부시함으로써 자기기만에 빠지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p28 : 지라르는 이처럼(적과흑) 주체와 중개자 사이에 경쟁관계가 있는 것을 내면적 간접화라 하고, ‘돈키호테’나 ‘보바리 부인’에서처럼 주체와 중개자 사이에 경쟁관계가 없는 것을 외면적 간접화라고 한다.
현대소설이 현대의 시장경제체제와 마찬가지로 욕망의 간접화 현상을 더욱 심화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지라르는 스탕달 소설의 주인공들의 욕망의 간접화, 특히 내면적 간접화를 도발하고 그것을 이용하기까지 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자신의 욕망이 고도 산업사회의 광고에 따라서 도발되고 간접화하는 현상과 다를 바 없다. 다시 말하면 필요에 따라, 즉 사용가치에 따라 어떤 욕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경쟁 관계, 즉 교환가치에 따라 어떤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작품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p30 : 지라르는 삼각형의 욕망의 구조가 사교계의 속물근성에서도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속물도 하나의 모방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주인공들은, 속물이란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욕망하는 대상들만 욕망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플로베르의 보바리즘과 상통하지만, 모방하는 대상이 단 하나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그보다 더 비극적인 욕망의 주인공들이다.
p31 : 타인을 모방하고자 하는 욕망은 타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며, 그 욕망의 강도는 대상이 소유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위력’에 달려 있고, 그 위력은 대상과 중개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강하다.
p32 : 중개자가 주체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간접화한 형이상학적 욕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그것은 중개자와 주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 경우 대상과 중개자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뜻하며, 욕망도 그만큼 강렬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지라르는 대상과 중개자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욕망이 강렬해지면 주체가 엄청난 고통 속에 빠지지만, 고행의 과정을 거쳐 그 형이상학적 욕망의 정체를 알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는 전향이라는 종교적 개심이 도달한다는 것을 밝히기에 이른다.
1장.
p47 : 어떤 허영심 많은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을 품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명성이 높은 제삼자에 의해 이미 욕망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중개자는 허영심이 만들어낸 한 경쟁자가 되는데, 허영심은 말하자면 경쟁자의 존재를 불러들인 다음 그 경쟁자의 실패를 요구하게 된다.
p81 : 속물의 욕망이 삼각형인 것과 마찬가지로, 어린애의 욕망도 삼각형이다.
어린애의 간접화는 외면적 간접화의 새로운 유형을 이룬다.
어린이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 행복과 평화를 누린다. 그러나 이 세계는 이미 위협받고 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입맞춤을 거절할 때, 어머니는 내면적 간접화에 맞는 이중의 역할, 즉 욕망의 선동자 역할과 무자비한 감시자 역할을 하게 된다.
p156 : 형이상학적 욕망은 언제나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
감염된 주체와 단순히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근접한 욕망에 전연될 때에는 내면적 간접화가 있는 것이다.
허영심과 속물근성은 물론 잘 조성된 토양, 즉 이미 확립된 허영심이나 속물근성의 한가운데서만 개화할 수 있다. 중개자가 가까워질수록 간접화로 인한 피해는 확대된다. 피해의 집단적인 발현이 개인적인 발현보다 더 심하다.
p157 : 각자는 자신의 욕망의 우선권과 선행성을 주장하면서 서로를 모방한다. 각자는 서로를 지독하게 잔인한 박해자로 생각한다.
두 주체가 서로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그들의 욕망이 강렬해질수록, 거꾸로 포개진 두 삼각형의 무익한 대립은 더욱 지독해지고 더욱 공허해져간다.
증오가 강렬해질수록 우리는 증오의 대상인 경쟁자에게 더욱 가까워진다. 어떻게 해서든 서로 다르게 보이려는 욕망을 포함하여, 이 증오는 한 사람에게 암시하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암시한다. 따라서 서로 닮은 한 쌍의 원수들은 언제나 동일한 길을 가게 되고, 그로인해 그들은 노발대발하게 된다.
p162 : 타인을 따르는 모든 욕망은, 시초에 그 욕망이 아무리 고귀하고 악의 없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차츰차츰 그 희생자를 지옥의 영역으로 끌고 간다.
p166 : 관찰자의 눈에 무관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욕망의 외면적 양상으로 비친다. 또한 그렇게 추측된 이 욕망이 모방된다. 무관심의 변증법은 형이상학적 욕망의 법칙에 모순되기는커녕 이를 확인해준다.
무관심한 사람은 우리 모두가 그 비결을 알고자 하는 뛰어난 자제력을 늘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외부와의 차단된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를 즐기면서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완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신이다.
p167 : 허영심 많은 여자에게 그녀를 욕망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이 열등하다고 밝히는 것과 같다. 이는 결코 욕망을 유발하지 못하면서 자신만이 욕망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중 간접화가 사랑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면 상호성의 희망은 모두 사라진다.
p169 : 승리는 두 연인 중에서 거짓말을 가장 잘 유지하는 자에게 돌아간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는 것은, 한 사람이 욕망을 드러내는 실수를 범하면 곧 그 상대방은 그런 실수를 저지를 마음이 우러나지 않는 만큼, 더욱 용서할 수 없는 실책이 된다.
(170) 마틸드는 자기가 노예임을 인정한다.
이중 간접화에서는 각자가 상대방의 자유를 희생해서만 자신의 자유를 누린다. 투사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욕망을 고백하고 자만심을 꺽으면 투쟁은 곧 끝난다. 그때부터 모방의 역전이 일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노예의 표명된 욕망이 주인의 욕망을 파괴하고 그의 진정한 무관심을 확고하게 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폭력적이던 과거에 자리 잡고 있다.
폭력의 지배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으면 안 된다. 헤겔은 이 다른 것을 규정하기 위해 논리와 역사적 반성을 신뢰한다. 인간관계에서 폭력과 독단의 지배가 끝나면 필연적으로 충족, 즉 화해가 그 뒤를 이어, 정신의 지배가 시작된다. 현대의 헤겔주의자들,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p171 : 스탕달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들은 투쟁을 위한 새로운 영역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결코 화합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충분히 의견의 일치를 볼 것이다. 그들은 불화에 가장 불리해 보이는 상황에 적응하여 악착같이 투쟁의 새로운 형태를 고안해낼 것이다.
p172 : 유아론적 이상주의와 실증주의는 단지 고독한 개인과 집단만 인정하기를 원한다.
소설가만이 그가 자신의 노예상태를 인정하는 명확한 한도 내에서 구체적인 것, 즉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헤겔식 투쟁을 패러디하는 자아와 타인 사이의 적대적 대화를 암중모색한다.
내면적 간접화의 주인공은 모든 물리적인 위협이 배제된 원초적 투쟁을 다시 겪으면서 최소한의 욕망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불행한 의식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물리적인 용기를 근거로 한다.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주인이 되고 두려워하는 자는 노예가 된다. 소설의 변증법은 위선을 근거로 한다. 폭력은 그것을 행사하는 자의 이해관계에 이바지하기는커녕 그의 욕망의 강도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폭력은 노예상태의 기호이다.
내면적 간접화의 세계에서는 물리적인 힘이 위력을 상실하였다. 개인의 기본 권리는 존중되지만, 자유롭게 살 만큼 충분하게 강하지 못하면 허영심으로 인한 경쟁의 마력에 굴복하게 된다.
p251 : 연속적으로 수많은 경험을 거치면서 주인은 소유가능한 대상들은 그에게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무자비한 중재자가 소유를 금지한 대상에게만 흥미를 느낀다. 그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을 추구하고 거의 언제나 그러한 장애물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매저키스트는 원래 싫증을 느낀 한 주인일 따름이다. 연속되는 성공, 다시 말해서 연속되는 실망으로 인해 자신의 실패를 바라게 되는 사람이다. 단지 그런 실패만이 그에게 진정한 신, 즉 그 자신의 일을 끄떡없이 견뎌낼 중개자를 제시해 줄 수 있다. 우리는 형이상학적 욕망이 언제나 노예상태와 실패와 수치심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결말이 너무 지체되면 주체 스스로가 이상한 논리로 그러한 결말을 재촉할 것이다.
p383 : 진정한 전향은 타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를 발생시킨다.
(385) 소설의 결말은 모두가 되찾은 시간이다.
클레브 부인은 ‘더욱 폭넓고 객관적인 시선’, 즉 소설의 전망을 향해 나아간다. (386) 소설의 영감은 중재자와의 결별에서 솟아나온다. 현재 부재하는 욕망이 과거의 욕망을 되살린다.
어떤 깊이에 이르면 타인의 비밀과 우리 자신의 비밀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어진다. 소설가가 이 자아, 즉 각자가 뽐내며 드러내는 자아보다 훨씬 진실된 자아에 이르게 되면 모든 것이 그에게 밝혀진다. 바로 이러한 자아가 중재자 앞에 무릎을 꿇고 그를 모방하는 삶을 살고 있다.
p388 : 욕망에 대한 이러한 승리는 무한히 고통스럽다. 프루스트는 우리에게 우리 각자가 자신의 외면만 파악하는 데 그치는 끈질기게 계속되는 열정적인 대화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환상을 폐기’해야만 한다. 소설가의 예술은 하나의 현상학적인 ‘판단중지’(에포크)이다.
판단중지야말로 항상 욕망에 대한 승리, 프로메테우스적 자만심에 대한 승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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