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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 / 악셀 호네트 / 문성훈 이현재 옮김 / 18.09.19/ 

 

2부 인정투쟁 이념의 체계적 현대화 - 사회적 인정관계의 구조

 

4. 인정과 사회화 - 미드에 의한 헤겔 이념의 자연주의적 변형

p148 : 미드의 출발점은 주체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상대방을 자극함으로써 일으킨 상대방의 반작용 자체를 자신 속에서 불러일으킬 때에만, 주체는 자신의 행위가 갖는 상호주관적인 의미에 대한 지식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49) 타인이 일으킨 반응 행위를 스스로 자신 속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미드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적 의사소통 행위가 발생할 수 있는 진화론적 전제라고 보았다.

 

p 150 : 미드가 근원적으로 자기관계에 대한 체험을 특징짓기 위해 사용하는 목적격 나라는 개념이 용어상 분명히 해야 할 점은 개인은 자기 자신을 대상화함으로써만 자신에 대한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151) 왜냐하면 나 자신이란, 즉 나 자신에 대해 반응함으로써 알게 된 나 자신이란 항상 상대방의 관점에서 인지된 상호작용 상대자이지 실제로 활동하는 행위표현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드는 목적격 나(me)와 주격 나(I)를 구분한다. 목적격 나는 타인이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상이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행위조차도 항상 이미 지난 것으로 보존하고 있다. 이에 비해 주격 나는 나의 모든 현재적 행위의 규정되지 않은 원천이다. ‘주격 나개념은 비록 인지될 수는 없지만, 행위상의 문제에 대한 창조적인 반응을 책임지는 개성의 심급을 뜻한다. ‘주격 나는 인간의 자발적 활동이라는 점에서 주체가 자신의 상호작용 상대의 관점에서 갖게 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에 앞서 있을 뿐 아니라 주격 나는 항상 목적격 나속에 의식된 행위표현들을 사후에 새롭게 해석하는 관계를 갖는다.

 

p152 : 청년 헤겔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경험과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미드는 자아와 사회적 세계의 관계를 역전시켰고, 자기의식의 형성에서 타인에 대한 경험이 우선함을 주장한다.

 

p154 : 즉 그에게 떠오른 문제는 상호작용 상대자의 반응에서 단순히 인지적으로 행위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으로 무엇을 기대하는 태도가 문제로 드러날 때, ‘목적격 나로 굳어진 자화상은 어떤 속성을 지녀야 하는가이다. (155) 사회적 반작용 행위가 규범적인 행위 맥락으로 확장됨으로써 목적격 나는 한 개인의 인지적인 자화상에서 규범적인 자화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155) 미드는 강의에서 이러한 일반적인 발전방향을 두 가지 단계의 어린아이 놀이를 통해 구(156)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역할놀이인 플레이의 단계에서 어린아이는 자기 자신과 이야기하며 논다. 이는 어린아아기 구체적인 행위 상대자의 행위를 모방하고, 또한 그것을 보충하여 자신의 행위를 통해 그 상대자의 행위에 대해 반응한다는 점에서이다. 이에 반해 경기 또는 게임의 단계는 성장기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모든 게임의 참가자들이 기대하는 행위를 바로 스스로 재현할 것을 요구한다. 이 두 가지 놀이의 단계는 각각의 어린아이가 자신 속에서 예측해야만 하는, 규범적으로 기대되는 행위의 일반성 정도에 따라 구별된다. 첫 번째 경우에서는 사회적 관련된 어떤 인물행위가 모범이 되는 데 반해, 두 번째 경우에서는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집단 전체행위모범이 중요하다. 이러한 행위모범은 규범적으로 기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각 개인의 행위 속에 통제적인 방식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첫 번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의 놀이로 이행하게 되면서 성장기 청소년들의 실천적인 자화상에는 일반화된 타자의 사회적 행위규범이 침투하게 된다.

 

p157 : 어린아이가 게임의 단계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를 규칙, 즉 모든 참여자의 관점들로 통합함으로써 획득한 규칙에 맞추는 능력이 필요하듯이 사회화 과정 역시 모든 사회 구성원의 기대 행위를 일반화한 결과인 행위규범들을 내면화하는 형태로 수행된다. 내면화된 모든 규범은 주체에게 그가 어떠한 기대를 타인에 대해서 정당하게 가질 수 있는가그들에 대해 어떠한 의무를 올바르게 충족시켜야 하는가를 말(158)해준다.

 

p158 : 이러한 상호주관적인 관계에 인정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즉 성장기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상호작용 상대자들의 규범적 태도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그 상대자들을 인정하게 됨에 따라 자기 자신도 사회적 협력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여기서 상호적인 인정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미드 자신의 제안이다.

 

p159 : 성장기의 개인은 공동체 내의 협력관계를 규율하는 사회적 규범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에 대해 어떠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경험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자신에게 부여되고 있는 제반 권리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다. 각 개인은 이러한 권리를 통해 자신의 구체적인 요구가 합법적으로 존중되고 있음을 믿게 된다.

이런 점에서 주체가 자신을 자신의 공동체에서 완전하게 인정된 구성원으로 이해하게 되느냐의 문제는 이러한 권리의 사회적 보장 여부에 달려 있다. (160) 인정에 대한 경험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확신할 수 있는 실천적 자기관계의 한 양식이라는 것이다. 미드가 가치에 대한 자신의 이러한 의식을 묘사하기 위해 선택한 일반적 개념은 자기존중이다.

또한 이러한 자기존중의 정도는, 주체가 자신의 상호작용 상대자들의 인정을 통해 발견한 자신의 속성과 능력이 얼마나 개성적인가에 달려 있다. 권리란 이를 통해 각 개인이 자신의 공동체에 속한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어쩔 수 없이 공유하는 속성들 속에서 인정됨을 알 수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권리는 미드에게 자기 존중을 위한 확실하지만 매우 일반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p162 : 미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헤겔과 일치하는데, 권리인정관계가 공동체 내의 시민들이 지니고 있는 개인적인 차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165) 미드는 실천적인 자기관계 속으로 내면화된 전체의 의지와 개성화 요구 사이의 긴장관계를 끌어들인다. 이러한 긴장관계는 주체와 자신의 사회적 환경 사이의 투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내부에서부터 밀려오는 요구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주체는 원칙적으로 다른 모든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내면화된 규범인 공동의 의지가 주체 자신의 행위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목적격 나의 존재는 주체로 하여금 주격 나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인정 형태를 모색하게 한다.

 

p166 : 이러한 압력이 생기는 이유는 상호주관적으로 타당했던 규범을 위심하게 됨으로써 주체가 지금까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었던 내적 대화 상대자 역시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화된 타자인 현재의 사회 대신 미래의 사회가 일반화된 타자로 등장하게 되며, 개인적 요구는 이 미래사회에서 인정될 것으로 가정된다. (168) 즉 주체들의 사회개혁이 수행된 이후에도 주격 나의 요구를 또다시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이 더 큰 자유의 공간을 보장하는 공동체를 선취할 수 있을 때이기 때문에, 규범적 이상의 역사적 사슬은 개인적 자주성의 신장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미드가 이야기하듯이 문명화의 과정은 개성화의 해방이라는 경향을 따르고 있다.

 

p170 : 따라서 두 사상가에 따르면, 개성의 역사적 해방은 기나긴 인정투쟁을 통해 실현된다. 즉 인정운동을 항상 야기하는 힘은 주격 나의 통제할 수 없는 층들이다. 이 층들은 단지 일반화된 타자의 동의를 얻을 때에만 자유롭고도 강제 없이 외화될 수 있다. 주체들은 주격 나의 압력 아래서 일반화된 타자속에서 구현된 규범들을 지속적으로 해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점에서는 권리인정관계의 확장을 위해 전략을 다하게 되는 심리적 강제에 종속되어 있다. 이렇게 공동체를 풍부화하기 위한 단결된 노력의 산물인 모든 사회적 실천을 미드의 사회심리학에서는 인정투쟁이라고 부른다.

 

p175 : 헤겔이 세 번째 상호인정관계, 즉 인륜적 상호인정관계로 묘사하려고 했던 것은 미드의 관점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주체가 자신의 특수한 능력이 상호주관적으로 실현된 공동체의 가치체계에서 인정되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 가상으로 가정된 것이지만, 주체가 누구에게 호소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p177 : 미드가 염두에 둔 해결은 자기실현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의 경험과 연결하는 것이다. 사회적 분업이라는 틀 속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기능을 충족시키는 주체에게 부여되는 인정의 척도주체로 하여금 충분히 자신의 특수성에 대한 의식에 도달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178) 주체들은 자신들의 직업의무를 충실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지식을 통해 이미 자신들의 개인적 특수성에 대한 의식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실현의 표준화된 모형들, 즉 전통사회에서는 명예 개념들을 통해 확립된 모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미드의 이념은 헤겔의 인륜성 문제에 대한 탈전통적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주체들이 자신의 도덕적 공통점을 넘어서서 자신의 특수한 속성이 확증됨을 알 수 있는 상호인정관계를 기능적 분업이라는 투명한 체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9) 그러나 미드는 몇 가지 추적 가능한 이유에서 탈전통적 공동체의 윤리적 목적설정을 기능적 분업이라는 사실적 도구들과 전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도전적 문제, 일반화된 타자의 인륜적 신념을 규정하는 문제를 놓치고 말았다. (180) 왜냐하면 분업으로 규율된 기능을 평가하는 것은 한 공동체의 포괄적 목적설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181 : 헤겔에게 이러한 관계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정방식에 대한 종합명제이다. 왜냐하면 연대라는 상호주관적 관계는 권리라는 인정방식과는 보편적 평등 대우라는 인지적 관점을 공유하고 있고, ‘사랑이라는 인정방식과는 정서적 결합과 배려라는 측면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헤겔에게 인륜성이란 그가 이 개념을 실체주의적으로 파악하지 않는 한, 일종의 사회적 관계를 말한다. 이것은 사랑이 권리라는 인지적 측면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보편적 연대로 정화될 때 등장하는 사회적 관계이다. 연대라는 관점에서 각 주체는 타자의 개인적인 특수성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에, 상호인정의 최고 형태는 바로 이 속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형식적 인륜성 관념은 원칙적으로 개인들이 서로에게 연대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한 언급을 결여하고 있다.

타인을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한 연대적 관심을 통해 인정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실존적 의미에서 공통적으로 특정한 위협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경험적 자극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식의 위험이 실제로 우리를 서로 사전에 결합시켜주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공동체의 틀 안에서 가지고 있는 행복한 삶에 대한 표상에 따라 특성화된다.

 

5. 상호주관적 인정의 유형들 - 사랑, 권리, 연대

p185 : 무엇보다도 헤겔과 미드가 인정이론 속에서 계획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전개하지 못했던 두 가지 전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첫째로 헤겔과 미드가 계획했던 세 가지 상호인정 형태에 대한 구분이 사회적 생활구조에 실제로 얼마나 적합한지 드러나야 한다.

헤겔이나 미드에게는 인정 단계에 대한 대립적 등가물이자 사회적 행위자들에게 인정이 (186)유보되어 있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무시의 형태에 대한 체계화된 고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6장에서는 이러한 빈틈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써 인간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천대와 모욕을 체계적으로 구분할 것이다. 여기서 인정형태의 유형학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것은 각 개인이 상호주관적으로 획득한 자기관계의 단계에 따라 이를 훼손하는 무시 형태가 구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자신의 정치철학(187)에서 가족과 시민사회, 국가를 구분했고, 미드는 구체적 타자에 대한 원초적 관계와 일반화된 타자의 두 가지 상이한 현실화 형태인 법적 관계, 그리고 노동 영역을 구분하는 경향을 보였다.

 

p189 : 이제 주제를 개별과학적 연구 맥락으로 이전할 수 있는 열쇠는 다음과 같은 헤겔의 공식이다. 사랑을 바로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함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서적인 원초적 관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들은 자립성과 구속성 사이의 불확실한 균형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러한 불확실한 균형은 병리적 일탈의 원인 규정에 대한 심리분석적 대상관계이론의 주된 관심사이다. 여기서는 심리분(190)석이 유아기의 상호작용 현상으로 나아감으로써 타인과의 정서적 결합과정은 그 성패 여부가 공생을 위한 자기 포기와 개인적 자기주장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상호주관적으로 유지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연구된다. (191) 원숭이 새끼가 이른바 대리모에게 애착을 갖는 것은 본능 충족의 체험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접촉쾌감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어머니와 아이의 상호행위는 양자가 서로 감정이나 느낌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능력(192)을 연습하는 고도로 복잡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이론의 이드-자아 구조 모델과는 반대로, 생후 초기의 전()언어적 상호행위 경험이 갖는 지속적 중요성이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즉 유아의 사회화 과정이 최초의 관련 상대자들과의 정서적 접촉 경험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 심리적 발달과정을 리비도적 충동과 자기 지배능력 사이의 독백적관계라는 조직 형태의 연속으로 보는 정통적 표상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었다.

이러한 이론적 결론은 임상적 측면에서 볼 때 점점 많은 환자들이 고통받는 정신병이 자아 부분과 리비도 부분 사이의 심리 내적 갈등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의 독립과정 속에서 일어난 상호개인적 장애에 기인한다는 사실과도 일치한다.

 

p198 : 어머니가 다시금 증대된 행위자주성 때문에 어린아이의 이용범위 밖에 놓이게 될 때 등장하는 탈착각 과정에서 아이는 커다란, 극복하기 어려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의 주관적 세계의 한 부분으로만 여겼던 어머니가 차츰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게 됨으로써 아이는 대상(어머니)고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인정하기 시작해야만 한다. 어린아이는 사회적 환경이 두 가지 심리적 메커니즘의 적용을 허용해야만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워니캇은 이 두 가지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를 파괴라는 제목을 통해 다루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이행기 현상이라는 개념적 틀 속에서 설명한다. (199) 마치 통제권의 소멸이라는 경험에 맹렬하게 대들기라도 하듯이 젖먹이는 지금까지 단지 즐거움의 원천으로만 체험되었던 어머니의 신체를 파괴하려고 한다. 젖먹이는 어머니의 신체를 때리고 물고 찌른다.

어머니가 거절 행위를 통해 젖먹이의 울분을 폭발시킨다면, 젖먹이는 자신의 파괴적 충동들을 통합함으로써 나르시스적인 절대권력에 대한 착각없이 어머니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발생한 경(200)험을 통해 아이는 아직도 공생적으로 부여된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어머니의 자립성에 대한 경험과 화해시킬 수 있게 된다.

어머니 역시 아이의 독립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공격적 상황이 어머니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이의 파괴적 요구를, (비록 어머니 자신의 이해에는 어긋나는 것이지만) 이미 자립화된 개인인 아이에게만 귀속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호 간의 경계 설정이 시작되면, 어머니와 아이는 서로 공생적으로 융합할 필요 없이 각기 상대방의 사랑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p202 : 생후 몇 개월이 지난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물질적 환경의 대상들과 고도의 정서적 관계를 맺으려는 강한 경향을 보인다. 그 대상이 베개의 모서리 끝이든, 자신의 엄지손가락이든 아이는 이것들을 배타적 소유물로 취급하며, 때로는 부드럽게 사랑하다가 때로는 격렬하게 파괴한다.

(203) 아이는 정서적 관계를 맺는 대상들을 놀이식으로 다루면서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의 고통스러운 단절을 항상 다시금 상징적으로 봉합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워니캇은 바로 이로부터 상호주관적으로 수용된 환상 형성 작업이 시작된다는 사실에서 한 걸을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태제에 이르게 된다.

이에 따르면, 이 매개 영역은 성인들이 문화적으로 대상화시키는 모든 관심이 심리적으로 등장하는 장소이다.

어떠한 인간도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을 연결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고, 또한 이 압력에서의 해방은 의심할 것 없이 중간매개적 영역을 통해서 예술이나 종교 따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영역은 놀이에 열중한 어린아이의 놀이 영역에서 직접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p204 : 사랑을 특수한 인정관계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에서 핵심적 의미를 갖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어머니의 지속적 보살핌에 대한 아이의 신뢰에 의존하고 있다는 위니캇의 주장이다. 이러한 테제가 제공하는 정보는, 주체가 자신에게 독립적 존재로 체험된 개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한 그에게 자신 역시 정서적인 호의, 즉 사랑을 느낄 때 도달할 수 있는 자기관계방식에 대한 것이다. (205) 오직 개인의 심리적 현실에서 좋은 대상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아이는 내버려진다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내적 충동에 관계할 수 있으며, 또한 개방적이고 창조적 방식으로 이 충동을 따르려고 시도할 수 있다.

따라서 미드가 주격 나로 이름 붙인 자아의 부분으로 관심을 옮기는 것은 사랑하는 상대가 비록 내가 관심을 쏟지 않을 때라도 나에 대한 사랑을 유지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p206 : 그렇다면 이제 출발점이 되는 것은 모든 사랑관계가 생후 초기의 특징인 어머니와 아이의 근원적 상호융합 상태 체험에 대한 무의식적 회상에 근거를 두고 추진된다는 가정이다. (207) 오직 파괴된 공생관계만이 인간 사이의 경계 설정과 탈경계의 생산적 균형을 발생시킨다. 위니캇에 따르면, 이러한 균형은 서로 환상을 제거함으로써 성숙하는 사랑관계의 구조에 속한다. 이 구조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상호주관적 긴장관계에서 주체와 관련된 측면이고, 이에 대립된 측면은 타자와 탈경계화된 융합을 수행할 수 있는 측면이다.

즉 사랑받는 사람은 바로 자신에 대한 애정의 확실성을 통해 항상 자신과의 탈긴장화된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개방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에 하나 됨을 일종의 상호 탈경계화로 경험할 수 있는 자립적인 주체가 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이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함으로 묘사했던 사랑이라는 인정 형태 상호주관적 상태가 아니(208) 오히려 혼자 있을 수 있음에 대한 경험을 융합 상태에 대한 경험과 매개하는 의사소통적 연결대를 나타낸다. 이 속에서 자기관계와 공생관계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두 개의 평형추이며, 이것들이 한데 모여 비로소 서로가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가능하게 한다.

주관 상호 간의 역동적 연결이 갖는 상호성이 저해되는 병적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두 주체 가운데 하나가 자기중심적 자립성의 상태 또는 공생적인 의존성 상태에서 더 이상 자신을 분리할 수 없는 경우이다. 이런 식의 일면화는 벤저민이 보여주듯이 자기관계와 탈경계화 사이의 지속적 교체과정을 중단시킨다. 왜냐하면 일면화는 이 교체과정을 경직된 상호보완 도식으로 대(209)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관계에서 한 상대자의 공생적 의존성은 결국 또 다른 상대자가 지니고 있는 공격적 전능함에 대한 환상과 보완적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사랑관계가 인정을 통해 드러난 일종의 공생관계라는 점을 입증해준다.

 

p211 : 여기에서 인정이란 타인으로부터의 해방임과 동시에 정서적 구속이라는 이중적 과정이다. 따라서 인정이 독립성에 대한 인지적 존중이 아니라 사랑에 동반되는, 또는 사랑이 뒷받침하는 독립성의 긍정일 때에만 사랑의 구성요소인 인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모든 사랑관계는 그것이 부모 자식 관계이든 우정 또는 친근 관계이든 개인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호감과 매력을 전제한다. 사랑관계가 원초적 상호관계의 범위를 넘어나서 더 많은 상호행위 상대자에게 임의로 적용될 수 없는 것은, 타인에 대한 적극적 감정이 결코 자의적 노력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항상 도덕적 개별주의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상호 간의 경계 설정을 통해 등장한 공생적 결합이 비로소 공동생활에 자주적으로 참여하는데 필수불가결한 토대가 되는 개인적 자기신뢰의 척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인정 형식은 이제 많은 점에서 권리관계와 결정적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권리의 담지자인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거꾸로 우리가 타인에 대한 어떠한 규범적 의무를 준수해야만 하는가(212)를 알게 될 때라는 사실 때문이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을 이미 권리의 담지자로 인정하도록 가르쳐왔던 일반화된 타자의 규범적 관점으로부터 비로소 우리 자신 역시 우리의 특정한 요구가 사회적으로 충족된다는 점을 확신해도 된다는 의미에서 권리 인격체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연적 구조는 미드와 마찬가지로 헤겔로 하여금 권리관계를 상호인정의 한 형태로 개념화할 수 있게 하였다.

 

p215 : 권리라는 인정관계는 새로우면서도 가장 요구수준이 높은 상호성 형태이다. 권리 인격체들은 동일한 법에 종속됨으로써 서로를 개인적 자율성 속에서 도덕규범들을 이성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인격체로 인정하게 된다.

이제 이러한 구분으로부터 두 가지 질문이 도출된다.

첫째로, 권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개인적 자율성이라는 동일한 속성을 부여하는 인정 형태는 어떤 성격을 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둘째는, 주체들이 근대적 권리관계라는 조건 아래서 서로의 도덕적 판단능력을 인정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220) 즉 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이 권리를 적용해야 하는 인간 주체의 범위가 어느 정도냐 하는 점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권리 적용과 관계된 상황 해석의 영역은 근대적 권리관계에서 인정투쟁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가운데 하나이다. (229) 따라서 인정의 유보나 무시에 대한 경험 때문에 일어나는 대립은 권리 인격체라는 지위가 갖는 실질적 내용뿐만 아니라 그 사회적 적용 대상의 확장을 둘러싼 갈등이다.

 

p232 : 권리는 권리의 소유자에게 상호행위 상대자들의 배려 속에서 행동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기 때문에 공공의 성격을 띠며, 또한 권리 소유자에게 자기존중 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권리와 관련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능은 각 개인에게, 그가 도덕적 판단능력이 있는 인격체로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다시금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표현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p242 : 이러한 개념사적 변화과정의 한 측면은, 당시까지 신분적 생활방식과 결합되어 있던 명예 범주의 적용 틀이 개인적 영역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 앞으로 명예 범주는 무조건적 방어가치를 지닌 개인적 자기이해의 측면에 대해 단지 주관적으로만 규정 가능한 척도를 나타낼 뿐이다. 이에 반해 명예 개념이 사회의 공공영역에서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이제 차츰 신망이나 위신 범주들이 대신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각 개인이 향유하는 개인적 업적과 능력에 대한 사회적 가치부여의 척도가 규정된다. (244) 이런 해석 내용은 어떤 사회적 집단이 자신들의 고유한 업적과 생활방식을 공개적으로, 특히 가치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하느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차적인 해석 행위는 문화적인 장기적 투쟁과 다를 바 없다. (각주65 : 이러한 과정의 분석에 적합한 것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이론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다양한 사회집단들이 한 사회의 가치분류체계를 자신의 위신과 이에 따른 권력 위치를 고양하기 위해 새롭게 해석하는 상징적 투쟁을 연구하려 하였다. 그러나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회적 가치부여를 둘러싼 상징적 투쟁의 규범적 논리를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부르디외는 자신의 분석에 경제적 행위이론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p244 : 물론 비록 임시적이지만, 이러한 투쟁을 종식시키는 것은 상징적 권력수단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적 힘과 매우 영향을 미치기가 어려운 공공영역의 분위기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이 자신들이 집단적으로 제시한 속성과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공공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하면 할수록 이 구성원들이 사회적 가치나 신망을 높일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커진다.

(246) 이 성과는 정형화된 신분집단적 속성과 거의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각 개인은 자신을 개성화된 주체로 느끼지 못하며, 단지 집단 전체를 가치부여 수혜자로 느낄 뿐이다. 따라서 이런 식의 인정 경험을 통해 각 개인이 도달하게 되는 실천적 자기관계는 집단적 자부심이나 집단적 명예감이다.

(247) 그러나 가치부여라는 인정방식이 개성화되어가면서 주체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실천적 자기관계도 변화한다. 이제 각 개인은 문화적 표준에 따라 자신의 능력에 부과되는 존중을 더 이상 전체 집단에 귀속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존중을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여타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가치 있는것으로 인정된 활동을 수행하고 있고, 또한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p348 : 따라서 근대사회라는 조건 아래서 사회적 연대는 개성화된 주체들 사이의 대등한 가치부여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관계의 전제이다. 이런 점에서 대등한 가치부여란 서로를 타인의 능력과 속성을 공동의 행위 수행에서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게 하는 가치관에 비추어 상호적으로 관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식의 관계를 연대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 관계가 타인의 개인적 특수성에 대한 수동적 관용만이 아니라 정서적 관심 역시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에게는 낯선 타인의 속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함으로써 우리의 공동목표가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연대라는 개념 아래서 염두에 두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이 비로소 열어놓을 수 있는 지평이 있다면, 사회적 가치부여를 둘러싼 개인적 경쟁은 이러한 지평 속에서 고통없이, 즉 무시 경험 때문에 흐려지지 않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p249 : 사회적 인정관계의 구조

인정방식

정서적 배려

인지적 존중

사회적 가치 부여

개성의 차원

욕구 및 정서본능

도덕적 판단 능

능력, 속성

인정형태

원초적 관계

(사랑, 우정)

권리관계

(권리)

가치 공동체

(연대)

진행방향

 

일반화, 실질화

개성화, 평등화

실천적 자기 관계

자기 믿음

자기 존중

자기 가치 부여

무시의 형태

학대, 폭행

권리부정, 제외시킴

존엄성 부정, 모욕

위협받는 개성 구성요소

신체적 불가침성

사회적 불가침성

명예, 존엄성

 

6. 개인의 자기 정체성과 무시 - 폭행, 권리의 부정, 가치의 부정

p251 : 개개의 인간의 규범적 자화상, 즉 미드가 이야기했던 목적격 나는 타자의 지속적 재보증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무시에 대한 경험은 한 인격체 전체의 정체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의 위험을 동반한다.

이런 점에서 세 가지 인정 형태를 구별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세 가지 무시의 형태를 체계적으로 구분해낼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252)이 형태들의 차이는, 이것들이 한 개인에게서 특정한 정체성 요구에 대한 인정을 박탈함으로써 한 개인의 실천적 자기관계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수 있는 다양한 정도에 따라 측정된다.

한 인간에게서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폭력으로 빼앗는 실제적 학대의 형태들은 가장 기본적인 인격적 굴욕의 형태이다.

고문이나 폭행 같은 신체의 훼손방식이 갖는 특수성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이 신체적 고통이 아무런 보호 없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을 정도로 타인의 의지에 내맡겨져 버린다는 느낌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 있다. (253) 신체적, 정신적 행위능력의 성공적 통합이 특히 외부에서부터 깨지게 됨으로써, 실천적 자기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지속적으로 파괴된다.

 

두 번째 무시 형태는 한 개인의 자기존중을 훼손하는 굴욕에 대한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한 사회 내에서 특정한 권리의 소유에서 배제된 개인들에게 가(254)해진 무시의 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권리가 유보된다는 것은, 한 개인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동등한 정도의 도덕적 판단능력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함축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권리 부정에 대한 경험은 모든 사회 구성원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 상호작용 상대자인 자기 자신과 관계할 수 있는 능력, 자기 존중을 잃어버리게 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 인정에 대한 무시를 통해 한 개인에게서 제거된 것은, 바로 사회화라는 상호행위과정 속에서 어렵게 얻은 도덕적 판단능력에 대한 인지적 존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시 형태가 역사적으로 가변적인 이유는, 도덕적 판단능력이 있는 개인이라는 의미 내용이 법적 관계의 발전에 따라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p255 : 굴욕의 마지막 형태는 각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부정과 관계가 있다. 특히 가치평가적 무시 형태, 개인적, 집단적 생활방식에 대한 평가절하는 오늘날 일상 언어에서 모욕이나 가치부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묘사되는 행위 형태를 말한다. 명예와 품위, 또는 근대적으로 말해서 한 사람의 지위는 이미 보았듯이 한 사회의 문화적 전통지평 속에서 각 개인의 자기실현방식에 부과된 사회적 가치부여의 척도이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 부정에 대한 경험은 각 개인에게, 자기 자신을 독특한 속성과 능력에 따라 평가된 어떤 존재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 개인적 자기가치부여의 상실을 동반하게 한다.

 

p257 : 헤겔이나 미드에게는 어떻게 사회적 무시에 대한 경험이 주체로 하여금 실제의 투쟁에 참여하도록 동기 부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258)적이 없다.

 

p261 : 심리분석적 고찰에 따르면, 행위 수행을 가로막는 도덕적 규범의 훼손 상황에서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주체의 초자아가 아니라 자아이상들이다. 이런 경우에 수치는 실재적이든 가상적이든 상호행위 상대자, 즉 훼손된 이상적 자아상에 대한 증인의 역할이 부여된 상호행위 상대자를 전제함으로써 체험되며, 이 수치는 자기책임이나 타인의 책임으로 환원될 수 있다. 자기책임일 경우에 주체는 자신의 이상적 자아상의 기본원칙을 이루는 규범을 자기가 훼손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갖게 되며, 타인의 책임을 경우에는 자신의 가치가 결여되는 느낌에 억눌리(262)게 된다.

주체가 자신에 대한 이런 감정 속에서 경험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치와 같은 감정 속에서 무시에 대한 경험은 바로 인정투쟁을 동기 짓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굴욕당함으로써 가질 수밖에 없는 정서적 흥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각 개인이 다시금 적극적 행위의 가능성을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실천이 정치적 저항의 형태를 띨 수 있는 것은, 부정적 감정 속에 확고하게 인지적 내용으로 짜 맞추어져 있는 도덕적 통찰의 계기 때문이다.

 

p263 : 사회적 수치나 무시당한 감정에 내포된 인지적 잠재력이 정치적, 도덕적 신념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은, 경험적으로 볼 때 무엇보다도 관련자들의 정치적, 문화적 외부 조건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오직 사회운동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할 때에만 무시에 대한 경험은 정치적 저항 행위를 동기화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이런 집단적 사회운동이 따르고 있는 논리를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도덕 경험의 역동성으로 사회적 투쟁을 설명하려는 분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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