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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성스러움 / 르네 지라르 / 18.09.26

 

[역자 해제]

p494 : 그의 관심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느냐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이 그의 첫 저서인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기 스스로 어떤 대상을 욕망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이 제삼자의 중개에 의해 욕망하므로, 이 제삼자는 욕망의 중개자이자 전범이 되며, 그 욕망은 낭만주의자가 믿는 것처럼 자발적 욕망이 아니라 비자발적 욕망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인 비자발성, 모방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 자신의 독창성을 애써 주장하는 태도가 있는데, 이것을 지라르 식으로 말하자면 낭만적 거짓의 태도라 할 수 있으며, 몇몇 뛰어난 소설처럼 욕망의 비자발성을 인정하고서 그 실상을 보여주는 태도는 소설적 진실의 태도라 할 수 있다.

끝없는 욕망모방은 그 모델(중개자)이 욕망주체와 가까운 사이에 있(495)을 때 주체와 중재자 사이에는 은연중에 경쟁관계가 생겨나면서 질투, 원한, 선망과 같은 미묘한 감정을 낳게 한다. 이렇게 너무나 가까워서 욕망주체와 거의 같은, 그래서 그의 분신과도 같은 중개자를 지라르는 짝패라고 부른다.

현대에서처럼 개인 사이의 차이가 점점 더 없어져 가는 상황에서는 숨은 원한, 질투, 숨겨져 있는 선망, 시기 등의 짝패 갈등은 더 심해지게 된다.

짝패 갈등은 모방을 본능으로 타고난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한계와 같은 것이기에, 어떤 지라르 연구가는 이것을 인간인 이상 싫든 좋든 거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인류문명의 영도라고까지 부르기도 한다.

결국 모든 것은 모방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의 욕망모방에서 출발한 지라르는 이렇게 해서 폭력도 모방되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가 이렇듯 짝패 갈등에서 빚어진 폭력 모방을 어떻게 예방하여 왔는가, 아니면 어떻게 그 효과를 감소시켜 왔는가를 이 책 속에서 숱(496)한 역사적 텍스트를 통해서 검토하다가 지라르가 발견한 것이 바로 희생제의라는 문화적 장치이다.

희생제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것의 본질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야 하는 인지불능 혹은 무지가 전제조건을 주어져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희생제의의 본질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희생물을 바쳐서 신의 노여움을 풀고 신의 은혜를 기대하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설에 만족하지 않고, 지라르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니 그것을 거슬러 읽어, 이 제의는 그 사회 내부에 실제로 존재하는 폭력을 실제로 행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물론 이때 이 폭력은 축소되어 있고 또한 그 대상도 보복의 두려움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대상을 사회 안이나 밖에서 구하고 있다.

이러한 희생물들은 모두 그 사회의 문화적 체계가 뒤흔들려서 붕괴의 위험에 처하여서 그 위기를 벗어나려 할 때 나타나던 것으(497로서, 진짜 갈등과 진짜 폭력을 속이고 있다는 공통된 특성을 갖고 있다.

보복의 연고자가 거의 없는 자이거나 외국인 중에서 선택된다는 희생물 선택에서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지라르는 여러 신화와 인류학적 자료를 통해서 입증해 낸다.

 

p498 : 사회 문화체계의 위기는 결국 짝패의 위기인데, 그것은 모든 개체들 사이의 차이가 소멸되면서 개체 사이의 짝패 갈등이 심화되어 본질적인 폭력이 폭발하려 하는 위기이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는 끝없는 폭력의 연속만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는 어떠한 폭력도 그 정당성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없어진다.

다시 말해 폭력에도 이로운 폭력과 해로운 폭력이 있는 것으로 만인이 여기도록 함으로써, 즉 무차별화된 폭력을 차별화된 폭력으로 만듦으로써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시킨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폭력을 생겨나게 한 원인인 짝패의 갈등이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유사하거나 (499)같다는 인식을 없애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는 남과 다르다라고 느끼게 하는 차별화 과정이다. 타인의 소유나 상태에 대한 시기나 질투도 알고 보면 나도 저 사람과 같이 저런 것을 가질 수도 있다라든가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라는 차별을 두지 않는 무차별적인 의식에서 싹트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짝패 갈등이며 거기에서 모든 폭력이 연원하고 있는 것 같다.

 

p500 : 지라르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외디푸스 대왕을 검토하면서 외디푸스 콤플렉스라는 프로이트의 해석을 비판한다. 요컨대 아들은 아버지를 모방하여 아버지의 욕망대상인 어머니를 함께 욕망하게 된다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욕망을 자연발생적인것으로 보는 프로이트와는 달리 지라르는 아버지를 통해 중개화된 아들의 비자발적인 욕망을 제시한다.

 

p501 : 아들은 아버지의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어머니를 갈망하게 된다.

그러다가 차츰 아버지의 욕망이 자신과 상충된다는 것을 알고서 죄의식을 느끼면서 어머니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 지라르의 견해이다.

결국 프로이트는 욕망주체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리비도를 지라르는 모방본능을 우선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로 인해 빚어지는 해석의 차이를 지라르 식으로 말하자면 욕망주체(아들)가 스스로 대상(어머니)을 욕망한다고 믿고 있는, 자발적 욕망이라는 환상을 믿고 있는 프로이트의 낭만적 거짓욕망주체가 중개자(아버지)를 통해서 대상을 욕망한다는 비자발적 욕망을 인정하는 지라르의 소설적 진실이라는 태도의 큰 차이, 본질적인 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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