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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 세미나 에세이 꿈의 해석을 읽고 / 2019. 9. 4. / 진달래

느즈막이 꿈을 꾸다

 

꿈은 소원성취?

저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그랬어요.’ 실수 끝에 변명처럼 쓰는 말이다.

무의식이란 단어를 일상적으로 쓰고,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라는 이름을 익히 들어 왔으며, 꿈의 분석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이론에 대해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배운 말일뿐 그런 학문이 내 삶에 연결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을 통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지적인 어떤 결과물이 나오리라곤 애시당초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를 읽는 동안 에 대한 나의 고집스런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자신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프로이트의 실험정신, 사회적 지위와 의사로서의 위상을 보호하고 싶은 갈등이 있었을 터인데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비속하거나 때론 사회적 비난이 예상되는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특히 오늘날에도 자유롭지 못한 성적 담론들을 온갖 억압과 따돌림 속에서도 꿋꿋하게 학설로 정리해내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켜보는 일은 내 마음에 어떤 경건함을 불러일으켰다. 돌아보면 이 경건함이 나의 고집을 누그러뜨리게 한 것 같다.

내가 동의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꿈은 소원성취라는 주장이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었던 수많은 소망과 좌절된 기대를 안고 우리는 어떻게 버텨내며 견디는가? 내가 그렇게도 꿈꾸기를 외면하고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매일 밤 꿈을 꾸며 그래도 소망을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비록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

 

대체 꿈이 뭐라고!

 

꿈풀이 책을 손에 들고 심각한 얼굴로 앉아 계신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하며 아침을 시작하곤 했다. 꽤 오랜 세월이다. 꿈을 무슨 신의 계시나 예언인 양, 하루의 명암이 엇갈리는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어쩌다 평화, 이 모든 것이 꿈에 좌우되는 온통 꿈에 매여 사는 안절부절한 삶이 어머니의 하루이다.

휘둘리고 싶지 않았던 그 시절, 나에게 꿈은, 미혹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하는 미신의 일부였고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점쟁이들의 속삭임 같은 것이었다. 그것에 의존했다가는 매사 조심조심 겁쟁이로 살게 될 뿐,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게끔 만드는,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겁주는 장치일 뿐이라고 여겼다. 처음부터 귀 막고 듣지 않는 것이 좋고, 아예 곁을 주지 않는 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시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 그런 태도를 견지했고 그 덕분에 나는 평정으로 가장한 냉정함을 유지했던 것 같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나 일어날 가능성일 뿐인데 온갖 세상 근심을 짊어진 채 때론 하소연 같은, 때론 넋두리 같은, 어머니의 꿈 이야기를 외면하면서 나와 어머니 사이는 많이 소원해졌다. 동시에 내 꿈도 그렇게 해서 나에게서 멀어져갔고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았다. 가끔 친구들과 꿈 이야기가 화제가 될 때에도 그저 이야깃거리일 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꿈에 대한 어머니의 유별난 애착은 작은 오빠의 죽음 이후가 아닌가 싶다. 내가 중학교 2학년, 작은 오빠가 고등학교 2학년, 그해 여름 우리 가족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사건이다. 어머니는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때부터 부쩍 꿈 이야기를 많이 하기 시작하였다. 꿈풀이에 나타난 지침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내셨던 어머니. 더 이상은 자식을 잃지 않겠다는 집념은 세상의 온갖 위험 앞에서 의지할 곳 없는 연약한 한 인간에게 꿈만이 실낱같은 의지처였던가 보다.

 

나를 껴안다

 

꿈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과 반비례해서 나의 저항과 거부는 커졌고 나는 언제부턴가 꿈꾸지 않는 잠을 편안한 잠이라 여기며 지냈다. 프로이트를 읽으며 꿈이 내 마음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 같다. 확신이 서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나는 나의 사소한 부분들도 느끼고 껴안으려 한다. 의무와 당위로 살아온 날들, 착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내가 스스로 쳐놓은 벽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위험한 생각들은 아예 추악하다고 단정지었던, 그래서 손발을 자르고 욕망을 누르고 세상의 요구에 맞추려고만 했던, 기어들어간 나의 소원들에 귀 기울이려고 한다. 다시 무술년을 보낸 이제야 말이다.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나의 숨죽은 목소리를 현생에서 듣고자 실행하게 되었으니.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이란 시를 좋아한다. 이제 <풀꽃 3>도 좋아지려고 한다.

 

기 죽지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함께 나누는 꿈, 공동체를 생각하다

 

서부시장에 자리한 인간무늬연마소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쑥스럽기만 3월의 기억이 새롭다. 문외한에게 문을 열고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나누는 배움의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다. 길잡이가 되어주신 모든 분께 고마운 마음을 깊이 간직하겠다.

 

에세이 - 초코 

"의학과정 수료를 위해 정해져 있는 <5년>은 내게 아주 짧았다. 나는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 후 몇 년 더 공부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빈둥빈둥 노는 줄 알았으며, 내 인생이 <끝난>것이 아닌가 의심했다"(528)

 프로이트는 그 자신의 호기심을 쫓았고 그때그때 기록했으며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인간무늬 연마소에서 진행한 심리 세미나가 계기가 되어 이제 겨우 세 권 <히스테리 연구>, <예술, 문학, 정신분석>, <꿈의 해석>(읽은 순)을 읽었지만 프로이트가 의사나 심리학자이기 이전에(그는 이 모든 것에서부터 독립적인 체계인 정신분석이란 분야를 일구어냈다) 철저한 문학가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자신이 일군 학문적인 용어를 통해 자신의 삶의 무수한 알레고리를 단순하면서도 통쾌하게 설명해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록을 통해 몇 가지의 결론을 도출해내가는 과정과 그 과정을 실제에 적용하기위한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적용해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할 뿐 아니라 예술 작품, 문학, 심지어는 예술가들의 작업 동기(혹은 원리)를 설명하려 했던 것은 내게 더 큰 차원에서의, 어쩌면 그동안 희미하고 거대해서 막연하기만 했던 공부, 연구, 학문, 학자로서의 역할과 가져야할 의식과 같은 개념에 좀 더 다가설 수 있게 했다. 아니 어쩌면 유아 심리나 마인드 헌터와 같은 미드에 꽂히게 된 포석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 인간 연구에 대한 욕망을 불어일으켰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의 저작을 읽는 것은 꼭 그와 같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함께 연구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런 경험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나를 공부하게 했다.

 <꿈의 해석>의 경우, 꿈의 해석을 모호하게 만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 예컨대 꿈 요소를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지 부정으로 받아들일지, 역사적으로 해석 할지 아닐지, 상징인지 아닌지, 표현 그대로 해석할지 등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례 연구나 꿈의 상징, 꿈의 작업-압축, 전위, 묘사가능성, 부조리 등은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대목

 "꿈에 대한 연구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 극복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그 하나만 해도 나 자신의 내밀한 면을 얼마나 많이 포기해야 하는가"(531)

 에 시선이 갔다. 리오타르의 <불화> 말마따나 스스로를 지칭할 수 있는 용어가 없을 때, 그 용어를 스스로 구성해내고 창안할 뿐 아니라 설득하는 과정이 무대 위로 오르는 것이고, 프로이트는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 위인 중 하나다. 나는 이 지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더 경이로운 것은 그의 집념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집념을 갖게 했는지, 그에게도 어떤 충동이 있었는지, 아니면 어떤 강박증-보이는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 내밀한 진실까지 간파하는 것에 집착하다시피했던 걸 보면-이었는지 따져볼 만 하다. 그의 규명되지 않은 내면의 겹들, 충동들에 대해 풀리지 않은 의문을 갖고 있었고, 그 강렬한 욕구는 평생에 걸친 '자기 분석'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수많은 이들의 심적 비밀들을 파헤치고 그들의 말과 꿈의 내용(내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이 '말'에 있다)을 들어줌으로써 그들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했다. 나날이 확실을 늘여갈 때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충동들을 설명할 통로를 찾을 수 있었고, 이 통로들은 실제로 그를 더욱 자유롭게 했을 것이다. 자유롭다는 표현이 적절치 못하다면 프로이트의 표현대로 그를 더 '강화'시켰다. 내가 도입부에 인용했던 구절의 말미에 프로이트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내가 서두르지 않기 때문에 너희들이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는 끝낼 것이다. 나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모든 행동의, 다양한 방식의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지만 정작 그렇게 못하거나 하지 않고 자신이 하던 대로 삶을 고수한다. 윤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지만 관성일 때가 많다. 나 역시 가정환경과 이런저런 경험으로 성격이 고착화되었고, 결국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던 때가 많았다. 모든 것에 거스르기 힘들었던 까닭이다. 나는 그 답을 스스로의 능력, 어쩌면 어린 시절의 신념(누구에게 물려받았을까?)으로 찾으려 했다. 그건 나름대로 자기 분석이라 할 수 있었고, 실재로 나는 한 때 블로그에 '발굴 작업'이란 시리즈를 연재한 적도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지에 대한 내용들이었고, 그것은 종종 불행들이 설명가능하다는 단순한 사실 확인만으로도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보려 한다.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미묘한 균열에서 시작해, 나는 "내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라며 오랜 시간이 걸릴 발굴을 시작하려 한다고 운을 띄웠다. 그러나 '자기 분석'은 곧 객관성을 잃고 자꾸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쳤다. 그 당시의 내가 느끼던 기분을 해명하려 했을 것이다. 오랜 기간이 걸릴 거라 짐작하면서도 단기간에 볼 수 있는 성과에 집착했다. 그렇게 자신의 불행을 설명가능한 수준으로 퍼올리려다가 결국 더 이상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단계, 난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결론에 이르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내게 상처가 되었고,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글쓰기를 중단해야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글쓰기를 계속 했고. 결국 꿈 속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까지 나아갔다(이 때는 프로이트의 저서<꿈의 해석>을 읽기 전이다). 꿈 속에서 학창 시절 내게 우상과도 같았던 친구가 나왔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그가 내가 쓴 첫 작품을 읽고선 <초현실적>이라는 간단한 품평을 해주었다. 여기서 다 적을 순 없지만 나는 당시 이렇게 적었다.

 "내가 아닌 내가, 어쩌면 환영으로 이끄는 내면의 목소리가 이제는 그의 얼굴을 쓰고 나타나고 있다......그 표상들과는 실상 별 관련이 없고 마치 배우가 실제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없이 갖게 되는 역할 같은 것이다. 그는 나서서 맡은 배역에 열일하며 내게도 역할을 부여하고 떠난 것이고, 그리하여 내게 남겨진 이 시달림은 질병이라기보다 내가 떠안아야 할 <초현실적>인 의무가 현실과 떨어져 있는 만큼의 간극인 것이다."

 나는 나의 사례를 들어, 신경증 치료와 자기 분석이 어찌하여 꿈으로 논의가 진전될 수 있는지, 꿈 작업을 이해함으로써 어떻게 나와 관련된 내밀한 진실로 해석할 수 있는지 설명해보았다. 동시에 프로이트의 자기 분석에 대한 열망을 어렴풋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프로이트의 용어로 나는 적어도 이러한 일들의 대부분을 해석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 - 노그래

 마음의 정신병원 ,프로이트 세미나 후기

 

세미나에서 읽은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연구>, <꿈의 해석>  사례에 대입해보고 사례를 저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해보았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정신이 아프다는 것을 이해하지  하는  같습니다.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도 많이 남아있는  같습니다. 얼마  아버지와 산책하던  심리상담센터가 있어 요즘 불안한 심리상태라서   가봐야겠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반응이 오더군요. 저의 아버지라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 가끔 있습니다. 아무튼 몸이 아픈 것처럼 정신도 당연히 아프다는 것을 이번에 이해하였습니다. 정신병원에 가진 않았지만 세미나를 통해 어느 정도 치유됨을 경험했습니다.

 

(1)

저는 어린 시절 몸집은 작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나중에 개그맨 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아이가 어른이  지금은 현재의 삶과 미래에 불안함을 느끼고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2)

제가 사랑하는 친할머니가 시골에 계십니다. 지금까지 저를 아껴주시고 언제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 할머니께서는 지금까지 유교적인 색채가 짙고 남성 중심적인 저희 집안에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전부터 명절 때마다 몸이 아프다고 하시는 일이 자주 있고 소화가  된다며 구토를 하는 증상을 보였습니다. 건강검진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왔습니다.

 

(1) 관련된 꿈의 사례  해석 : 3~4  수능을 100 정도 앞둔 상황으로 돌아가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현재 저의 의식을 가지고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니 준비가 전혀  되어있는  시험을  봐야한다는 압박감에 불안해하던 상태로 꿈을 꾸었습니다. 

어린 시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공부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고 훈련된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제가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기대가 컸던  같습니다. 그래서 집안 형편에 비해 과한 사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사고에 입학했습니다. 입시경쟁의 최정점에 있던 학교를 다니며 저는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남들이 정해준 길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충실히 경쟁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3때부터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 수능성적 하락으로 이어졌고 대학 시절까지 만족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마 철저하게 경쟁의 노예로 훈련 받아  것과 제가  동안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기준에 대한 갈망이  자신을 잃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외향적인 성격은 내향적으로 변화했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불안함을 느끼고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회사에 취업해서 크게 달라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경험한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주는  같습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은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제가 갖고 있는 정신적인 고통을   해소할  있는 계기를 마련한  같습니다.

 

(2) 사례에 나오는 히스테리 증상의 해석 : 할머니로부터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볼  할머니는 분명 집안의 맏며느리로 엄청난 고생을  것이 분명합니다. 유교적이며 남성중심적인 당시 시대분위기와 집안의 환경은 어린 할머니에게 억압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술만 마시고 한량처럼 지냈다고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집안 일에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몸과 마음 모두 고생을 하였을 것입니다. 명절이나 제사 때면 정말 바빴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뚜렷한 이유와 명분 없이 위로  대까지 올라가는 분들까지 제사를 모시려고 음식을 최대한 많이 준비했을텐데 당연히 식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고 먹더라도 허겁지겁 먹을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에는 소화가  되지 않아 체를 했거나 구토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할머니는 명절 연휴라는 특정한 상황에서 소화불량  구토 증상을 나타내지만 몸에 특별히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연구에서 분석한 것처럼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저항하기 어려운 억압의 상황(정신적 외상) 증상이 결합되어 반복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최근 할머니와 가끔씩 할아버지의 잘못된 점에 관해 뒷담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할머니의 건강상태와 얼굴이 좋아진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소산이 이루어진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동안 사람들이 무시했던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던 점과 인간의 정신을 분석함으로써 사람의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했던 점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기에 이게 가능할까라고 생각되는 말이 되지 않는 해석을 내놓지만  진위여부를 떠나 무의식의 세계이기에 그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정신세계를 파악하고 무의식의 세계에 어떤 것들이 잠재되어 있을지 알아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해할  없다고 생각했던 행동이나 상황조차 여러가지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충분히 수용할  있다고 느낀 점은  수확이었습니다.

방수민 09.04.2019

프로이트 꿈의 해석/  무의식의  후기

심리학을 전공 중인 사람으로서 프로이트 특강이 있다는 소식에 관심이 갔다. 프로이트 심리 성적 발달 단계 (psychosexual development) 이론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외에 프로이트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김서영 교수님의  무의식의 방이라는 특강이 있기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읽기 세미나를   참여  기회가 있었다. 특강과 세미나 후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내가 꾸는 꿈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꾼다. 하지만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몇몇 꿈들을 제외하고는 잠에서    시간 후면 잊어버리곤 한다. 내가 생각했을  나의 꿈들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많아서 이른바 개꿈이라고 간주하고 꿈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나름대로 주위에서 많이 들어  이야기들로 해몽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흔히 알고 있는 돼지나 불이 나는 꿈은 좋은 일이 일어나는 꿈으로 생각하고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했던 적도 있고 쫓기는 꿈을 꾸면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도 했으며 찜찜한 꿈을 꾸면 꿈은 현실과 반대라고 했으니까 괜찮아라고 위안하기도 했다. 돼지나  꿈을 꿔서 사소하더라도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나면 역시  꿈을 꿔서 이런 일이 생기나 보다라고 신기해했고 찜찜한 꿈을 꿔서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나면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돼지나 불이 나는 꿈을  날도, 찜찜한 꿈을  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은   좋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식으로 꿈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던 나에게 김서영 교수님이 언급하신  분석 흥미롭기도 하고 어렵게도 느껴졌다. 대부분 마구 뒤섞여 있는 꿈과 드문드문 기억나는 조각들로 표상을 분석하기가 쉽지 않아 현재는  분석 미뤄두고 있다. 아니, 어쩌면 쉽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의 억압된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두려운   수도 있겠다.

교수님과 프로이트의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이라는 개념이 너무도 달라서 신선했다. 꿈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여주기 보다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안에 무의식이 전하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괴상해서 스스로 개꿈이라고 판단했던 꿈도 반복적으로 꾸는 쫓기는 꿈에도 모두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대학에 오고부터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점과  자신  모른다는 생각이  때가 종종 있다. 꿈을 자주 꾼다는 것은  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뤄두고 있는  분석을 시작해봐야겠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다 보면 억눌려있던 나의 무의식의 기억들을 마주하고 나의 삶을   알게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에세이 - 망고

 

어렸을 때는 참 별별 꿈을 다 꾸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괴한에게 쫓기는 꿈, 끝이 없는 계단을 반복해서 오르는 꿈 등등. 지금은 한 해를 통틀어서 기억나는 꿈이 손에 꼽는다.

그동안 나는 꿈에 대해 주사야몽(晝思夜夢) , 낮에 생각한 것이 밤에 나타난다고만 생각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완전히 틀린 말도, 맞는 말도 아니다. 꿈의 해석 마지막 장에서 프로이트는 낮의 사고가 꿈에 파고들어 때때로 꿈-내용을 지배하기도 하며, 낮의 작업을 계속하도록 강요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무의식의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낮의 사고가 무의식적 소원과 결부되어야 꿈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꿈-형성과정에서 검열이 발생하고, 이러한 검열에서 벗어나야 하는 압박 이외에 심리적 재료를 압축해야 하는 압박, 감각적 형상으로의 묘사 가능성에 대한 고려, -형성물의 합리적이고 이해 가능한 외양을 위한 고려가 꿈-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이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현재의 나, 그러니까 꿈을 꾸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나의 무의식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나에 대해 깊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의식적인 차원에서만 나에 대해 분석했었는데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다. 꿈을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프로이트가 자기 꿈 분석한 사례가 순간 스쳐지나가서 살짝 엄두가 나지 않지만 시도해보려고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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