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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치겠다는 계획을 떠올린 순간이 내게 서글펐던 만큼 그 계획을 실행한 순간 역시 매력적이었던 듯싶다(p. 71).
자유롭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p. 71).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이 루소를 호의적으로 대접함.
농부들, 콩피뇽의 퐁베르 신부
좌우로 성이 보일 때마다 거기서 틀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연애 사건을 찾아 나섰다. 목이 다 쉬도록 오랫동안 노래를 불렀는데도 내 아름다운 목소리와 세련된 노랫가락에 이끌려 나온 부인이나 아가씨를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더군다나 친구들이 알려준 기막힌 노래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멋들어지게 불렀는데도 말이다(p. 75).
마침내 (안시에) 도착하여 바랑 부인을 만났다. 내 삶에서 이 시기가 내 성격을 결정지었다.
영혼의 공감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한번 설명해보기 바란다. 바랑 부인이 어떻게 첫 만남에서, 처음 건넨 말로, 처음 마주친 시선으로 가장 강렬한 애정뿐 아니라 결코 저버리지 않을 완벽한 신뢰를 내게 불어넣었는지(p. 80).
바랑 부인은 내가 지내온 날들을 상세히 알고 싶어 했다. 그녀에게 그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나는 장인의 집에서 잃어버린 정열을 모두 되찾았다. 내가 이 훌륭한 영혼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내게 호의를 품게 만들 수 있도록 그녀는 내가 맞닥뜨리게 될 운명을 더욱 불쌍히 여겼다(p. 81).
그녀의 말이 내게 감동을 줄수록 더욱 그녀와 헤어질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 그녀는 내게 연민 어린 시선으로 말했다. “가련한 아이야, 너는 신이 부르시는 곳으로 가야 한단다. 그렇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나를 기억하게 될 것이야(p. 82).”
나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내 여행을 결정했고 나는 그 결정을 잘 따라야 했으며 그다지 반감이 들 것도 없어서 곧장 그렇게 했다. 토리노가 제네바보다 멀다고는 해도 그곳은 수도이므로 국가와 종교가 다른 여느 도시보다 안시와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p. 83).
아버지는 신의가 있을 뿐 아니라 확실히 성실하고 많은 덕을 베푸는 강건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더구나 그는 좋은 아버지였고 특히 나에게 그러했다. 아버지는 나를 매우 다정하게 사랑했다. 하지만 자신의 쾌락 또한 사랑해서, 내가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된 이후로 또 다른 취미들을 즐기느라 부성애가 다소 식어버렸다. 아버니는 니옹에서 재혼을 했다(p. 84-85).
내가 집을 나간 이후 종종 아버지를 만나러 갔을 때도,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애정 표시를 했지만 나를 붙잡으려는 노력은 그리 크게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도덕상의 대원칙을 얻었는데, 그것은 실생활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의무와 이익이 대립하는 상황, 타인의 불행에서 우리의 행복을 얻어내는 상황을 피하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미덕에 진실한 사랑을 품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약해지는 법이며, 마음속으로는 줄곧 정의롭고 선하지만 행동은 부당하고 사악해질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 원칙들 중 하나로 인해 대중들에게, 특히 내 지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별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게 되었다(p. 85-86).
나는 이 철학의 심오한 영속성에 날이 갈수록 깊이 젖어들었다. 또한 나는 이 철학을 최근 나의 모든 저작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경박한 대중들은 그 작품들에서 이러한 철학을 눈여겨볼 줄 몰랐다. 만일 내가 지금의 계획을 끝내고 다른 작업을 계속할 만큼 오래 산다면, 나는 《에밀》의 후속편에서 바로 그 원칙을 아주 매력적이고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본보기를 제시하여, 내 독자들이 그것에 주목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할 작정이다(p. 86).
토리노에서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아쉬웠지만 대도시를 보았다는 기쁨과 자신에 걸맞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마음을 달랬다. 타오르는 야망이 이미 내 머리까지 치솟았으니 말이다. 이미 나 자신이 예전의 견습공 신분보다 훨씬 높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p. 90).
카톨릭 예비신자들을 위한 수도원의 자선 보호시설로 안내되어 종교교육을 받게 되었다(p. 90-91).
날이 갈수록 가슴 깊이 새기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은 일찍이 분별 있고 건전한 교육을 받은 아이가 있다면 바로 내가 그렇다는 것이다. 품행이 여느 사람들과 다른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일가친척들로부터 사려 깊은 가르침과 도의를 다하는 모범만을 배웠다. 아버지는 비록 쾌락을 찾는 사람이지만 참으로 성실하며 신앙심도 두터웠다. 세상에는 신사였고 가정에서는 기독교도였던 아버지는 당신이 마음에 새긴 감정을 일찍부터 나에게 고취시켰다(p. 92).
독단적인 신앙은 교육의 산물이다. 나는 나를 조상들의 종교에 묶어두는 일반적인 원칙은 차치하고라도, 카톨릭교를 대함에 있어 내가 태어난 도시에 유별난 반감을 품고 있었다(p. 94).
로마 카톨릭교를 그저 즐거움이나 식탐과 관련지어 생각했던 까닭에 그 종교와 함께한다는 생각에 쉽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고향을 도망치듯 떠나고 먼 훗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종교에 정식으로 입문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너무나 많은 은밀한 욕망들이 그 결심과 충돌했고 결국은 결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p. 95).
나는 카톨릭 신자가 되고자 하는 결심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시기가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해서 이 견해에 익숙해질 시간을 가졌다(p. 96).
나는 그 사건 덕분에 차후에는 동성애자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동성애자로 통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 끔찍한 무어인의 표정과 행동이 떠올라 늘 숨기기 힘들 정도로 혐오감을 품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그런 비교를 통해 여성들은 훨씬 더 신뢰하게 되었다. 내 생각에 여성들이 나의 동성들로부터 받은 모욕을 나의 다정한 감정과 내가 바치는 경의를 통해 사죄해야 할 듯싶었다. 또한 아무리 못생긴 여자라도 내 눈에는 그 가짜 아프리카인에 대한 기억 때문에 숭배할 만한 대상으로 보이게 되었다(p. 102).
수중의 20프랑을 다 써버리고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바질부인을 만나게 됨(p. 107-108).
나는 그녀에게서 바랑 부인에게 품었던 정도의 진실되고 다정한 존경심을 느끼지는 못했고 친숙함보다는 두려움을 훨씬 더 느꼈다(p. 109).
그녀는 마음이 약했지만 정숙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자기 마음을 사로잡은 애정에 굴복했지만, 여러 모로 보나 그런 행동은 그녀가 저지른 최초의 부정이었다(p. 112).
내게는 그녀의 평판이 내 생명보다 더 소중했다. 또한 쾌락에서 얻는 일체의 즐거움을 희생해서라도 단 한순간도 그녀의 안식을 위태롭게 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성향으로 인해 여자를 유혹하면서 매번 너무나 많은 정성을 쏟고 비밀을 지키며 신중을 기하는 바람에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다. 내가 여자들에게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항상 여자들을 너무나 사랑한 데에 이유가 있다(P. 113).
그녀는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알려주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녀는 충분히 고심하더니 이제 나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느꼈다(p. 114).
모두 자리를 뜨자마자 주인이 급히 보낸 점원은 내게 의기양양하게 다가와서 당장 이 집을 떠나고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주인의 말을 전했다(p. 115).
큰일을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 말한 나를 좋아했던 여주인이 나에게 일자리를 한 군데 마련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어떤 귀부인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p. 117).
내가 일하게 된 곳은 베르첼리스 백작부인 댁이었는데, 그녀는 혼자되어 아이가 없었다.
나의 주된 업무는 나로서도 싫지 않았는데, 그녀가 불러주는 편지를 받아 적는 일이었다.
베르첼리스 부인은 내게 애정이나 동정심이나 호의 따위를 느끼게 할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p. 119).
그녀는 나를 하인으로만 본 나머지 나를 다른 모습으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숨은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간교한 장난을 겪었다. 그런 장난은 평생 동안 내 성공에 걸림돌이 되었고 그 때문에 그것을 만들어 내는 허울뿐인 질서에 아주 자연스러운 반감을 품게 되었다.
퐁탈 양이 장밋빛과 은빛의 작은 리본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그것은 이미 낡은 것이었다. 다른 더 좋은 것들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유난히 그 리본이 마음에 들어 그것을 훔쳤다. 하지만 그것을 잘 숨겨두지 않은 탓에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곧 발각되었다. … 나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다가 얼굴을 붉히면서 결국 마리옹이 내게 그것을 주었다고 말했다(p. 122).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잔인한 행동을 스스로 나무라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고백하는 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행위가 어떤 것인지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마음의 부담은 오늘까지 줄어들지 않은 채 내 양심에 남아 있고, 어떻게 보면 그런 부담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바람이 내가 고백록을 쓰고자 한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p. 124).
거짓말에 대한 나의 혐오감은 상당 부분 내가 그렇게 사악한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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