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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 4

 

르 메트르씨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 그를 버리고 엄마(바랑부인)이 있는 안시로 돌아왔으나 엄마는 파리로 가고 없었음.

 

엄마의 소식을 알려고 내가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조치는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었다(p. 190).

 

이 모든 일봐 더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바로 방튀르 씨를 다시 찾은 일이다. 나는 그에게 열의를 품고 있었음에도 안시를 떠난 이후 그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p. 190). 그자는 우수꽝스럽고 익살스러운 사람으로 자기 지방 방언으로 자기 마누라를 항상 화냥년이라고 불렀다. 나는 혼자 산책을 했고 그의 엄청난 재능을 깊이 생각해보았으며 그의 보기 드문 재주에 대해 감탄하고 부러워했다(p. 191).

 

바랑 부인은 아네만 데리고 갔다. 내가 전에 이야기한 침실 담당 하녀인 메르스레는 두고 갔다. 그녀는 여자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제네바 출신의 지로 양이 있었다(p. 191). 지로 양은 내게 온갖 교태를 다 부렸지만 그녀에 대한 내 혐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가 내 얼굴에 스페인 담배처럼 얼룩덜룩한 거칠고 시커먼 낯짝을 들이대면 나는 거기에 침을 뱉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마음만 먹으면 우정 이상의 것을 넘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p. 192).

 

양장점의 여직공이나 하녀나 장사하는 여자이에게는 거의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나는 지체 높은 아가씨들을 원했다. 그렇다고 해서 신분과 지위에 따른 허영심 따위에 끌리는 것은 아니다. 내가 끌리는 것은 더 잘 관리된 얼굴빛, 더 아름다운 손, 더 우아한 몸치장, 온몸에 드러난 세련되고 깔끔한 자태, 옷차림과 말투에서 묻어나는 더 뛰어난 세련미, 더 고급스럽고 더 잘 만들어진 드레스, 더 귀여운 구두와 리본과 레이스, 더 잘 가꾼 머리이다(p. 192).

 

그라펜리드 양과 갈레양은 자신들 힘만으로는 말들이 물을 건너게 할 수 없으므로 내게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갈레 양의 말고삐를 쥐고 끌면서 물이 무릎까지 차는 시냇물을 건넜다.

 

전기의 효과도 그 몇 마디가 내게 발휘한 효과보다 신속하지 못했다. 그라펜리드 양의 말에 올라타면서 기쁨으로 몸이 떨렸다(p. 194).

 

툰에 도착하여 나는 몸을 잘 말렸고 우리는 아침식사를 했다(P. 195).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항상 더없이 조심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p. 196). 나는 그녀들이 나르 붙든 거의 같은 장소에서 그녀들과 헤어졌다(p. 197). 그녀들은 둘 다 몹시 내 마음을 끌었다. 그라펜리드 양을 애인으로 둔다면 행복해졌을 것이다.

나는 시간이 나자마자 갈레 양이 사는 거리로 달려갔다. 누군가가 드나들거나 적어도 창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은근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p. 203).

 

스페인 연인 행세를 하기에도 지치고 기타도 갖고 있지 않았던 까닭에 그라펜리드 양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원래는 그녀의 친구 갈레 양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편지 쓰기를 마친 나는 편지를 지로 양에게 가지고 갔다. 나는 그녀가 나를 두고서 자신도 그 아가씨들과 같은 여자라고 감히 생각한다는 사실에 굴욕을 느꼈다.

 

제네바 니옹 푸리부르

 

주인에게서 전혀 소식이 없자 메르스레는 이미 얼마 전부터 프리부르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녀를 아버지의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나를 추천했다(p. 204).

 

니옹에서 아버지를 만남

아버지는 내가 처해 있는 위험들을 알려주고 어리석은 짓은 되도록 빨리 그만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억지로 붙들어놓으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p. 206).

 

나는 니옹으로 다시 가지 않고 로잔으로 갔다. 그곳에서 가장 넓게 전망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호수를 실컷 즐기고 싶었다(p. 207).

 

로잔이 가까워오자 나는 새어머니에게 내 궁핍함과 비참함을 보이러 가지 않고 난관에서 벗어날 방도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또한 도보순례를 하는 나 자신과 안시에 왔을 때의 방튀르를 비교해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내게는 그가 지닌 다정다감함도, 재능도 없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않은 채 로잔에서 작은 방튀르인 척하며 알지도 못하는 음악을 가르치고, 가본 적도 없으면서 파리 출신인 양 행세를 하기로 결심했다(p. 208-209).

 

나는 악보도 읽을 줄도 모르면서 음악 선생 노릇을 했다. 나는 작곡할 줄도 모르는 주제에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p. 210).

 

내 곡을 연주하려고 사람들이 모인다. 아닌 게 아니라 프랑스 오페라가 생겨난 이래 이 같은 소란은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p. 211).

 

나는 내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한 마음속의 감정과 수치심과 후회, 내가 처한 처지에 대한 절망, 크나큰 고통 속에 나를 가두어둘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뤼톨)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야 말았다. 그는 나에게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만 지켜주었다(p. 212).

 

그와 같은 데뷔 결과 때문에 나의 로잔 체류는 썩 유쾌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몰려오는 일은 없었다. 단 한 명의 여학생도 없었고 시내에서 오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늘 여인에게서 큰 위안의 힘을 발견했다. 나는 끊임없이 그녀(엄마)를 생각했고 그녀와 재회하기를 갈망했다(p. 213).

 

제네바 호수 보 지방 브베

 

어느 날 부디에서 점심을 먹으며 선술집에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턱수염이 무성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정교의 고위 성직자이자 예루살렘의 수도원장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자신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의 무덤을 복원하기 위해 유럽에서 헌금 모으는 일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비서와 통역 일으 도와주며 자신과 함께 다니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보증도 확신도 없이, 알지도 못한 채 그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고 이튿날부터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났다(p. 218).

 

프리부르 주 베른

 

우리는 베른을 떠나 솔뢰르로 갔다. 왜냐하면 수도원장의 계획은 독일로 다시 접어들어 헝가리나 폴란드를 거쳐 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p. 220).

 

우리가 솔뢰르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한 일은 프랑스 대사에게 인사를 하러 간 것이었다. 주교에게는 공교롭게도 대사가 보나크 후작이었다. 보나크 부인은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었고 나를 그런 그리스 수도사와 함께 다니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p. 221).

 

보나크 부인을 조금도 연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 집에 있으면 크게 될 수 없다고 처음부터 느꼈다. 라 마르티니에르 씨가 요직으로 있고 이를테면 마리안 씨가 그 자리를 이으려 하고 있으니 내가 바랄 수 있는 자리는 기껏해야 달갑지 않은 비서관보 자리가 전부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의견을 물어왔을 때 나는 몹시 파리에 가고 싶다는 의사 표명을 했다. 나는 여행을 하게 되고 목적지가 파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없이 즐거웠다(p. 223).

 

사람들은 내가 사관후보생부터 시작하도록 주선해 놓았다.

 

나는 웅장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위엄 있는 외관을 지닌 한 도시를 상상했다. 그 도시에는 화려한 거리, 대리석과 황금으로 만든 궁전들만 있다고 생각했다. 변두리인 생마르소에 들어서자 더럽고 악취가 나는 좁은 거리, 볼썽사납고 어두컴컴한 집들, 더럽고 궁핍한 분위기, 거지들, 짐수레꾼들, 헌옷 수선하는 여자들, 길거리에서 탕약과 헌 모자를 파는 여편네들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 모든 것들에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이후 파리에서 본 실로 화려한 어떤 것으로도 그 첫인상을 지울 수 없었으며, 이 수도에 살고 있다는 은밀한 혐오감이 항상 남게 되었다(p. 224).

 

나는 헛된 기대만 많이 가졌지 별로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결국 고다르 대령의 조카에게 붙어 있게 되었는데, 그 대령이라는 자는 고약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 노인네로 드러났다(p. 226).

 

도대체 어디서 엄마를 찾을 것인가? 내 사정을 잘 아는 메르베유 부인이 엄마 찾는 일을 도와주었지만 오랫동안 별 보람이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바랑 부인이 두 달 전에 다시 떠났지만 사부아에 갔는지 토리노에 갔는지 알지 못하며 몇몇 사람들은 부인이 스위스에 돌아와 있다고 말하더라며 내게 일러주었다. 내가 그녀를 따라갈 결심을 굳히는 데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그녀가 어디에 있든 파리에서보다는 지방에서 그녀를 찾는 것이 더 수월하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니 말이다(p. 227).

 

몇 시간 동안 쓸데없이 돌아다니니 심신이 지치고 갈증과 허기에 죽을 지경이 되어 어느 농가에 들어갔다. 나는 그 집 주인에게 돈을 지불할 것이니 식사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나에게 탈지유와 커다란 보리 빵을 내주면서, 그것이 자기가 가진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착하고 정직한 청년이며 자신을 고발하러 온 사람이 아님을 잘 알겠다고 말하고는, 부엌 옆 마룻바닥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을 열고 내려가더니 얼마 후 순수 밀로 만든 갈색 빵과 잘라 먹긴 했지만 아주 먹음직스러운 햄과 포도주 한 병을 들고 다시 나왔다(p. 230).

 

자신은 왕실 상납용 주세 때문에 포도주를 숨겼고 인두세 때문에 빵을 감추었으며 굶어 죽지 않는다는 것을 남들이 눈치 채기라도 하면 자신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불행한 민중이 겪는 억압에 맞서고 압제자들에게 맞서는 꺼지지 않는 증오의 근원인데, 이후 내 마음 속에서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 농부는 넉넉한 형편이면서도 자신이 땀 흘려 얻은 빵조차 감히 먹지 못했고, 자기 주변에 만연한 빈곤을 똑같이 가장함으로써만 파멸을 피할 수 있었다(p. 231).

 

성 안토니우스 수도원의 신부 롤리숑이 루소에게 악보 필사를 부탁함.

그는 내가 작업한 악장들이 온통 누락되고 중복되고 뒤바뀐 것투성이어서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없었다고 알려주었다(p. 238).

 

마침내 도착해서 엄마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혼자 있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집에 들어갔을 때 경리국장이 와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내 손을 잡더니, 온 마음을 열어줄 듯 다정다감하게 나를 그에게 소개했다(p. 242).

 

꿈틀거리는 야심에 도취되어 벌써부터 작은 재정국장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p. 243).

 

빅토르 아마데우스 왕은 몇 년 전부터 귀족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작정을 하고, 과세를 현실에 맞게 함으로써 세금을 공정하게 부과하기 위해 온 나라의 토지측량을 명령했다. 기하학자라는 뜻도 지니고 있는 측량기사와 비서라고도 불리는 서기 등 이삼백 명이 그 작업에 동원되었다. 엄마는 서기들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놓았다.

 

제네바를 떠난 뒤 4, 5년을 떠돌아다니며 어리석은 짓과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처음으로 떳떳하게 돈벌이를 하게 된 것이다.

 

 

5

1732, 스무살

내 정신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성숙했지만 분별력은 거의 그렇지 못했다. 나는 내 집에서, 말하자면 엄마의 집에서 묵고 있었다. 그러나 안시에서의 내 방 같은 거처를 다시 갖지는 못했다(p. 249).

 

나는 그 집에도 살림살이가 거의 전과 같이 마련되어 있고 충직한 클로드 아네가 여전히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p. 250).

나는 그 사건이 있고서야 그 하인과 여주인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알게 되었다(p. 251).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내밀하게 그녀와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p. 252).

 

내가 샹베리에 도착한 이후 1741년에 파리로 떠날 때까지 8,9년간의 시기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바로 이 소중한 기간 동안 뒤얽혀서 일관성 없던 내 교육이 견고해졌고, 그런 교육 덕분에 나는 내를 기다리고 있던 폭풍우를 이겨내고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p. 253).

 

나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산술책 몇 권을 사서 계산법을 제대로 배웠다(p. 253)

 

측량기사들의 지적도에 색 입히는 일을 하다보니 그림에 대한 취미가 생겼다. 나는 물감을 구입하여 꽃과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p. 254).

 

나는 일과 오락과 교육에 시간을 보내며 더없이 달콤한 안식 속에서 살았는데, 유럽은 나만큼 평온하지는 못했다. 그즈음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서로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내 마음속에 너무나 깊게 뿌리박혀 훗날 내가 파리에서 반전제주의자로 또 자존심 강한 공화주의자로 행동할 때에도 비굴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국민에게, 조롱하기를 즐겼던 그 정부에 본의 아니게 은밀한 편애를 느꼈다(p. 257).

 

문학에 대한 내 취미가 점점 커지다 보니 프랑스 서적과 그 책의 저자들, 그 저자들의 나라에 애착이 가기 시작했다(p. 258).

 

내 음악 공부를 도와주려고 발레다오스타 주에서 팔레 신부라는 젊은 오르간 연주자가 왔는데, 그는 훌륭한 음악가이면서 좋은 사람이었고 클라브생으로 반주도 무척 잘했다(p. 260).

 

음악에 완전히 빠져버려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일을 그만두고 완전히 음악에 몰두하고 싶어졌다. 고정 수입이 있는 웬만한 자리를 그만두고 정해지지도 않은 학생들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너무나 생각이 없는 결심이어서 엄마의 마음에 들리 없었다(p. 263).

 

결국 나는 엄마가 만족할 만한 이유를 통하기보다는 성가시게 하고 비위도 맞춰가면서 그녀의 동의를 억지로 얻어냈다. 나는 이유도 까닭도 구실도 없이 그 일을 자발적으로 그만두었다. 그러면서 그 일을 시작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처음 시작했을 때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기뻐했다(p. 264).

 

지적과에서는 매일 여덟 시간을 따분한 일에 매인 채 그보다 훨씬 더 따분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대부분 머리에 빗질조차 하지 않고 상당히 더러웠던 그 촌놈들 모두에게서 풍기는 입 냄새와 땀 냄새로 악취가 진동하는 우중충한 사무실에 갇혀 지냈다.

 

이와는 달리 별안간 사교계에 뛰어든 내가 대단한 집안들의 인정과 총애를 받게 된 것이다. 어디서나 친절하고 상냥한 대접을 받았으며 왁자지껄한 축제의 분위기였다. 잘 차려입은 사랑스러운 아가씨들이 나를 기다렸다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매력적인 대상들이었고 코에 닿는 것은 장미와 오렌지 꽃향기 뿐이었다(p. 265).

 

엄마는 내가 청년기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서 구해내려고 나를 남자로 대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p. 271).

 

젊은이들이 자신이 말하려는 바에 관심을 갖게 만들려고 그들의 관심사를 맨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은 선생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이다. 나 자신도 그런 오류를 에밀에서 피하지 못했다. 엄마는 그 점이 서툴렀다. 그녀는 융퉁성 없는 성격에서 비롯된 특이함 탓에 자신의 조건을 드러내는 데 신중했지만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p. 272-273).

 

나는 처음으로 한 여자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여자의 품에 말이다. 과연 행복했던가? 아니, 쾌락을 맛보았을 뿐이다.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물리칠 수 없는 슬픔이 쾌락의 매력에 독처럼 스며들었다. 마치 내가 근친상간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p. 276).

 

거듭 말하건대 그녀가 저지른 일체의 잘못은 그녀의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 정욕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해준 모든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으며 너무나 감동적이라고 느낀 나머지 나를 되돌아보았으며, 그녀에게서 받은 가르침보다 그녀의 속내 이야기에 나 자신을 위해 더욱 열중했다. 상대가 진심으로 말한다는 것이 실제로 느껴질 때 우리 마음도 그 고백을 받아들이려고 열리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현학자들의 도덕은 우리가 애착을 갖는 분별 있는 여자의 다정하고 애정 어린 수다만큼의 가치도 없다(p. 280).

 

그녀는 나의 어수룩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교계로 진출하기 위한 교양을 쌓을 자격이 있으며, 그곳에서 언젠가 어떤 지위에 오르게 되면 출세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나의 판단력뿐 아니라 나의 외모와 태도까지 길러내어 나를 존경과 사랑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무용과 펜싱을 배웠으나 소용이 없었음.

 

그녀는 사교계와 젊은 시절의 즐거움에 싫증이 나면서 새로운 비법과 계획에 대한 취미로 그것(계획하거나 정리하는 과거의 습관, 강박관념)을 대신했다. 집 안은 사기꾼들, 제조업자들, 연금술사들, 온갖 종류의 장사꾼들로 북적댔으며 그들은 엄청난 돈을 헤프게 쓰면서도 결국 필요한 돈은 1에퀴였다(p. 284).

 

아네는 너무나 심하게 열이 올라 늑막염에 걸리고 말았다. 급기야 그는 확실히 아주 유능했던 그로시의 온갖 의술에도 불구하고, 착한 여주인과 내가 그에게 기울인 더없는 정성에도 불구하고, 닷새째 되던 날 극심한 임종의 고통을 겪다가 그만 우리 품에서 죽고 말았다(p. 287).

 

엄마는 아네의 죽음으로 고통뿐 아니라 손해도 입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사업은 쉼 없이 기울어갔다. 정확하고 단정한 총각이었던 아네는 여주인의 집안에서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그와 같은 정도의 영향력이 없었으므로 나의 말은 그의 말만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 그가 없으니 내가 그의 자리를 대신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일에는 취미도, 소질도 없어서 그리 잘 해내지는 못했다. 나는 그리 꼼꼼하지 못했고 상당히 소심했다. 혼자서만 중얼거릴 뿐 모든 일을 그저 되는대로 내버려두었다(p. 288).

 

그녀가 무분별한 지출로 조만간 틀림없이 궁핍한 처지에 빠질 것임을 깊이 절감하고 있던 나는 특히 집안의 감독관이 된 이후에는 직접 수지의 불균형을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더욱더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 시절 이후 나 자신에게서 항상 느껴지는 인색한 기질은 그 무렵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p. 289).

 

내가 돈을 모으는 일에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그것이 그녀에게도 변변치 못한 수단이라는 것을 완전히 확신한 나는 마침내 이렇게 느끼게 되었다. 그녀가 나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고 자신의 생계마저 유지하기가 곤란해지면 내가 그녀의 생활을 떠맡는 것 말고는 내가 두려워하는 불행에 맞설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이다. 불행히도 나는 내 취미와 관련된 계획을 세워서 터무니없이 음악으로 출세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p. 290).

 

나는 브장송에 가서 블랑샤르 신부의 교습을 받을 작정이었다. 그녀는 나의 별것 아닌 여행 준비에 정성을 쏟았고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이번 일에도 돈을 아낌없이 썼다. 그렇게 나는 항상 파산을 대비하고 그녀의 낭비벽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만회할 계획을 세우면서도 그녀에게 800프랑의 비용을 내게 하고야 말았다. 그녀의 파산을 막는다던 내가 도리어 그것을 부추긴 것이다.

 

블랑샤르 신부는 나를 환대해주었고 나에 대한 교육을 약속했으며 내게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막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나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내 가방이 스위스 국경의 프랑스 세관이 있는 레루스에서 압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p. 291).

 

세관 사람들에게 문의를 하자 수많은 온갖 지시서와 자료, 증명서, 진정서 등을 요구하는 바람에 나는 그 미궁 속에서 수없이 헤매다가 결국 모든 것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p. 292).

 

이 같은 손실을 입는 바람에 나는 블랑샤르 신부에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곧장 샹베리로 돌아가게 되었다(p. 293).

 

엄마는 내가 보물이라도 가져온 듯이 나를 맞아주었고 나의 별것 아닌 옥가지도 조금씩 다시 마련해주었다. 이런 불행 때문에 음악에 관한 계획에서는 열의가 식었지만 그래도 라모의 책을 항상 공부했다.

 

볼테르와 프로이센 황태자 사이의 서신 교환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우리는 두 유명인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얼마 전에 왕위에 오른 한 사람은 그가 곧 드러내게 될 성향이 이미 예상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지금 감탄의 대상인 만큼이나 비난을 받고 있던 터라 그를 괴롭히는 것 같은 불행을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그런 불행은 위대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속성이다. 프로이센의 황태자는 젊은 시절에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고 볼테르는 전혀 행복하지 못하게 태어난 듯싶었다. 우리가 두 사람에게 쏟은 관심은 두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 확대되었다. 우리는 볼테르가 쓴 것이면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이런 독서를 통해 얻은 취미 덕분에 멋있게 글 쓰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얼마 뒤 그의 철학서간이 출간되었다. 그 저서가 확실히 그의 최고 작품은 아니지만, 나를 공부로 끌어당기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p. 289-299).

 

나는 여주인의 속내 이야기를 듣는 클로드 아네의 자리를 물려받고 그녀의 사업 형편을 더욱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후 사업이 악화되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수없이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간청도 하고 몰아붙이기도 하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가 절약한 돈이 사기꾼들에게 넘어갈 것이 확실했던 까닭에 나도 그녀의 너그러움을 이용하여 그들과 함께 내 몫을 챙겼다. 마치 도살장에서 돌아온 개처럼 내가 지킬 수 없었던 고깃덩어리에서 내 몫을 가져왔던 것이다(p. 300).

 

나는 무장한 제네바가 내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애국심의 첫 번째 술렁거림을 아직 느끼지 못했다. 내게 책임이 있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내가 얼마나 애국심이 없었는지 판단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음악과 묘약, 계획과 여행 사이를 오가며 2,3년을 보냈다. 이 일에서 저 일로 쉬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어딘지도 모른 채 정착하려고 애쓰면서도 서서히 연구에 빠져들었던 것이다(p. 303).

 

나의 정열은 나를 살리기도 했지만 나를 죽이기도 했다. 우선 여자들이다. 내가 한 여자를 소유했을 때 나의 관능은 잠잠했지만 마음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사랑에의 욕구는 쾌락에 둘러싸여 있을 때도 내 마음을 괴롭혔다. 나에게는 다정한 어머니와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애인이 필요했다. 어머니 대신 애인을 상상해보았다(p. 304).

 

! 만약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사랑의 온갖 환희를 그 절정에서 맛보았다면 내 연약한 존재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나는 아마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대상 없는 사랑으로 불타고 있었다(p. 305).

 

음악은 나에게 또 다른 열정이었는데, 격렬함은 덜했지만 몸을 쇠약하게 만드는 것은 그에 못지 않았다(p. 305).

 

바그레는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미래의 재물을 그녀에게 아낌없이 쓰더니 그녀의 얼마 남지 않은 돈을 한 푼 두 푼씩 빼갔다. 그는 내 비위를 맞추려고 온갖 비열한 짓을 다했다. 그는 내게 체스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는 체스를 어느 정도 두었고 나도 거의 내키지는 않았지만 시도를 해보았다. 나는 그럭저럭 행마를 배운 뒤 상당히 빠르게 수가 늘어서 첫 판이 끝나기 전에 시작할 때 그가 나에게 준 루크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내게 더 필요한 것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체스에 미치게 되었다(p. 306).

 

한곳에만 틀어박혀 지낼수록 갑갑함이 아닌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정열에 이어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p. 307).

 

그녀는 극진한 정성과 빈틈없는 주의, 믿기 힘든 노력을 다한 끝에 나를 살려냈다(p. 308).

 

중병은 회복되었지만 기운은 되찾지 못했다. 폐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미열이 지속되어서 생기가 없었다(p. 309).

엄마가 나에게 우유를 처방했고 내가 시골에 가서 우유를 마시기를 원했다(p. 310).

 

나는 그녀가 도시에 싫증을 느낀 것을 알고 지금 그런 감정을 이용하여 도시를 완전히 단념하고 마음에 드는 적막한 곳에, 성가신 사람들을 따돌릴 만큼 충분한 외딴 작은 집에 자리 잡는 것이 어떠냐고 그녀에게 권했다.

 

그녀는 별것 아닌 걱정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녀는 주인을 화나게 만들까 봐 걱정하여 그 보잘것없는 집을 도무지 떠나지 못했다(p. 310-311).

 

레 샤르메트에 거처를 정함.

 

우리는 1736년 여름의 끝 무렵에 이 집에 들었다. 우리가 이 집에서 잠을 자게 된 첫날 나는 감격스러웠다. 나는 이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를 품에 안고 감동과 기쁨의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말했다. “오 엄마! 이 거처야말로 행복과 순수의 장소로군요. 만약 우리가 이 곳에 있으면서 그것들을 찾지 못한다면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서는 안 돼요(p. 31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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