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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샤르메트에서의 생활

여기서 내 삶의 짧은 행복이 시작된다. 해가 뜨면 일어났고 행복했다. 산책을 했고 행복했다. 엄마를 보고 행복했다. 그녀를 떠나기도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숲과 언덕을 돌아다녔다. 계곡을 헤매고 다녔다. 책을 읽었고 하는 일 없이 있기도 했다. 정원에서 일을 하고 과일을 땄으며 집안일을 도왔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행복이 나를 따라왔다. 행복은 완전히 나 자신 안에 있었다. 행복은 단 한 순간도 나를 떠날 수 없었다(p. 316).

 

시골의 공기도 내 건강을 원래대로 되찾아주지는 못했다. 우유가 몸에 받지 않아 우유 마시기도 그만두어야만 했다. 당시에는 만병통치약으로 물 마시기가 유행이었다. 나는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식사 때 마시던 포도주도 완전히 끊었다. 내가 마신 물은 산악지대의 물이 대개 그렇듯이 센물이어서 소화하기 힘들었다. 말하자면 너무나 열심히 마신 나머지 두 달도 안 되어 그때까지 아주 건강하던 위장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말았다(P. 317-318).

 

온몸에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급작스러운 변화를 느꼈다. 동맥이 어찌나 강하게 요동치는지 그 박동이 느껴질 뿐 아니라 그 소리가 들리기까지 했고, 특히 경동백의 박동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심한 이명까지 겹쳤다. 30년 전부터 이러한 증상들은 한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극심한 불면증 때문에 마침내 나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삶을 연장할 수 없었으므로 내게 남은 짧은 삶을 가능한 한 모두 이용할 결심을 했다(p. 319).

 

우리는 포도와 과일 수확으로 그해의 남은 날들을 즐겁게 보냈고, 주변의 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더 시골 생활에 정이 들었다. 우리는 겨울이 오는 것을 무척이나 애석하게 생각했고 마치 유배를 가듯이 도시로 돌아갔다 이미 오래전에 여학생 제자들과 헤어지고 도시의 즐거움과 사교계에 취미를 잃어버렸던 터라 나는 더 이상 외출도 하지 않고 엄마와 살로몽씨 말고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p. 323).

 

라미 신부의 학문들에 관한 대화가 우연히 수중에 들어왔는데, 그 책은 학문을 다루는 책들을 아는 데 필요한 일종의 입문서였다. 나는 그 책을 수없이 읽고 다시 읽었다. 나는 그 책을 내 길라잡이로 삼기로 결심했다. 하루하루를 내 마지막 날처럼 생각하면서도 분명히 계속 살 것처럼 열심히 연구했다. 내가 열중했던 그 공부가 어찌나 즐거운지 내 병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어 그 영향을 훨씬 덜 받았다(p. 324).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보기 좋아 보였는지 혹은 살겠다는 한 가닥 희망이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었는지, 죽음에 대한 예상은 공부에 대한 의욕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 욕구를 자극하는 듯싶었다(p. 325).

 

나는 사물에 대한 잘못된 견해 때문에 책을 유익하게 읽으려면 그 책이 전제로 하고 있는 일체의 지식을 알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공부하려던 책을 열 페이지도 채 읽기 전에 온 서가를 다 뒤져야 했다. 그렇지만 도를 벗어난 이 방법을 철저하게 고집한 나머지 엄청난 시간을 허비했다(p. 326).

 

학문에 조금이라도 애착이 있다면 그것에 빠져들면서 첫 번째로 느끼는 것은 학문들 사이의 관련성이다.

 

나는 공부를 위해 태어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공부에 전념하게 되면 피로해져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30분을 열성적으로 몰두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갈 때면 더욱 그러했다. 내 생각에는 더 오래 집중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주제가 연달아 나오면 중단하지 않더라도 한 주제가 다른 주제에서 비롯된 피로를 풀어주어 휴식할 필요 없이 한결 편안하게 해나간다(p. 327-328).

 

우선 철학책 몇 권부터 시작했다. 포르루아얄의 논리학, 로크의 인간오성론, 말브랑슈, 라이프니츠, 데카르트 등이었다. 나는 이 모든 저자들이 서로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들을 조화시키려는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 때문에 몹시 지치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내가 늘 공부에 별로 능력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나는 각 저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덧붙이지 않고 저자와 결코 논쟁도 벌이지 않으며 그의 생각 모두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p. 330-331).

 

이제는 철학에서 기하학의 기초로 옮겨갔다. 나는 개념들의 연관성보다는 오히려 증명들의 연쇄를 좇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라미 신부의 기하학을 더 좋아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내가 선호하는 저자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그의 저서들은 지금도 즐겁게 다시 읽고 있다. 다음은 대수학을 다루었다. 내가 선택한 지침서는 역시 라미신부의 것이었다(p. 331).

 

다음으로는 라틴어를 공부할 차례였다. 나는 수많은 규칙들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고, 마지막 규칙을 배울 즈음에는 앞서 배웠던 규칙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단어 공부는 기억력 없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내가 이 공부에 매달린 것은 바로 무리해서라도 기억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p. 332).

 

내가 가장 충실하게 공부했던 과목은 역사와 지리였다. 그 과목들은 집중력을 그다지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보잘것없는 기억력이 허락하는 정도에서 향상이 있었다. 도구들만 있었다면 천문학을 좋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p. 334).

 

내가 가장 충실하게 공부했던 과목은 역사와 지리였다. 그 과목들은 집중력을 그다지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보잘것없는 기억력이 허락하는 정도에서는 향상이 있었다.

 

도구들만 있었다면 천문학을 좋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바리요가 나에게 책 몇 권을 가져다주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반키에리 신부의 본템피악전덕분에 음악사와 그 아름다운 예술 이론 연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바리요는 얼마 동안 우리와 함께 머물렀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성이이었으므로, 합의된 바에 따라 오는 봄에 제네바에 가서 행방이 묘연한 형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게 될 때까지 어머니의 유산 가운데 적어도 내 몫만이라도 청구하기로 되어 있었다.(p. 341).

 

나는 제네바에 갔고 아버지도 그곳으로 왔다. 내 재산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재산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아주 보잘것없이 줄어들어 있었다. 형은 죽은 것이 거의 분명했지만 법적인 증거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의 몫을 요구할 권리가 없었으므로 생계에 도움이 되도록 그것을 아버지에게 미련 없이 넘겨주었고, 아버지는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을 누렸다. 재판 수속이 끝나고 돈을 받자마자 나는 일부를 책을 사는 데 쓰고 나머지는 엄마에게 주려고 쏜살같이 달려갔다(p. 342).

 

내 건강은 조금도 회복되지 않았다. 도리어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나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고 해골처럼 말랐다. 동맥의 박동은 끔찍하게 뛰었고 심장의 고동은 더 빨라졌다. 계속 가슴이 답답했고 결국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허약해졌다(p. 342-343).

 

일단 시작한 공부를 끝내려고 책 읽기 목록에 생리학을 추가한 다음 해부학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내 몸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부분들과 그 역할을 검토하면서 하루에도 스무 번은 이 모든 것들이 망가져가는 느낌을 받았다(p. 343).

 

나는 연구하고 숙고하고 비교해본 결과 내 병의 근원은 심장의 종양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네는 식물원을 보고 실험 교수인 소부자 씨를 만나러 몽펠리에로 여행을 한 일이 있는데, 피즈씨가 비슷한 종양을 치료햇다는 말으 들었다고 했다. 나는 병을 치료한다는 생각에 용기와 희망을 되찾아 여행을 시도했다. 엄마는 내 결심을 단념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격려했고 그래서 나는 몽펠리에로 출발했다(p. 344).

 

라르나주 부인은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사람들을 구해야만 했다. 이제 라르나주 부인이 나를 유혹하자 변변치 못한 장 자크와는 결별이었다. 더 정확히 말해 열병과 우울증과 종양과는 작별을 했다. 그녀 곁에서 모든 병이 사라지고 내 심장의 고동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것을 굳이 진정시키려 하지 않았다(p. 345).

 

서로 친해지면서 자기 신상을 이야기하고 어디에서 온 누구라고 말해야만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별안간 나는 영국 사람 행세를 할 양으로 제임스 2세 당원을 자처했고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 내 이름은 더딩이라고 소개했고 나는 더딩 씨로 불렸다.(p. 246).

 

라르나주 부인은 나에게 온갖 교태를 부리더니 어찌나 다정한 말을 속삭이는지 나보다 훨씬 영리한 사람도 이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가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행동할수록 그런 내 생각은 확고해졌다(p. 347).

 

우리는 발랑스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했고 서로의 기특한 습관대로 하루의 남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점심식사 뒤 그녀는 산책을 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토리냥 후작이 산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단둘만의 만남을 마련하려는 구실이었는데, 그녀는 그 기회를 이용하려고 단단히 작정한 터였다(p. 348).

 

라르나주 부인은 더 인간적인 결심을 했다. 그녀는 느닷없이 침묵을 깨더니 한쪽 팔로 내 목덜미를 감았다. 그 순간 내 입술에 포개진 그녀의 입술은 너무나 명확하게 의사 표시를 하여 내 잘못을 깨닫게 했다. 더없이 적절한 순간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때가 온 것이다. 그녀가 내게 확신을 준 것이다(p. 349).

 

우리의 만남은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달콤한 나날이 네댓새 계속되었는데, 그 동안 나는 더없이 달콤한 쾌락을 만끽했고 그것에 빠져들었다. 고통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격렬한 쾌락을 맛보았다. 내가 그렇게 맛본 쾌락은 그때가 처음이자 유일하며, 내가 쾌락을 모른 채 죽지 않은 것은 라르나주 부인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p. 351).

 

여행을 하며 나누는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헤어져야만 했고 솔직히 말해 그럴 때가 되었다. 라르나주 부인의 충고를 들으며 부르생탕데올에서 겨울을 보내러 가기로 결정했다(p. 352).

 

오직 부르생탕데올과 그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매력적인 삶만이 생각났다. 내게는 라르나주 부인과 그녀 주변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그 나머지 세계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엄마조차도 잊혔다(p. 353).

 

내가 한 결심에 대해서도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아 퐁 생테스프리로 향하면서도 그 일에 대해 심사숙고해보았다. 그곳은 부르생탕데올로 가는 길이자 샹베리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들과, 라르나주 부인의 편지만큼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편지들은 내가 여정을 처음 시작하는 동안 억눌러왔던 양심의 가책을 마음속에서 깨어나게 했다(p. 358).

 

쾌락의 맛은 상상 속에 아직 남아 있었지만 정열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런 생각에는 나의 처지와 의무, 너무나 착하고 너그러운 엄마에 대한 반성이 한데 뒤섞여있었다. 그녀는 이미 빚을 잔뜩 지고 있었고 나의 엄청난 낭비로 빚이 늘어났으며 나를 위해 전력을 다했는데, 나는 그런 그녀를 이렇듯 뻔뻔하게 배신한 것이다.

 

생테스프리가 가까워오자 나는 부르생탕데올에 머물지 않고 곧장 지나가기로 결심했다. 자존감을 가질 만하군. 나는 쾌락보다는 내 의무를 선택할 줄 아는 거야.”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 공부에서 처음으로 얻은 진정한 책무였다. 바로 그 공부가 나에게 심사숙고하고 비교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p. 359).

 

빨리 도착해야겠다는 조바심에 예상보다 더 서두르게 되었다. 나는 발랑스에서 내 도착 날짜와 시간을 엄마에게 알렸다. 그녀와 재회하는 즐거움의 매력을 고스란히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조심성은 나에게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일종의 작은 축제가 열려 내 도착을 알리는 것을 늘 보아왔다.

 

집에 들어선다. 사방이 고요하다. 일하는 사람들이 부엌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 하녀는 나를 보고 놀란 듯싶다. 그녀는 내가 도착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p. 360).

 

마침내 그녀를, 그토록 다정하게 그토록 열렬하게 그토록 순수하게 사랑하는 그 소중한 엄마를 본다. 그녀에게 내 편지를 받지 못했는지 묻는다. 그녀는 내게 받았다고 말한다. “나는 못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해명은 그것으로 끝이다. 젊은이 한 명이 그녀와 함께 있다. 나는 그를 알고 있는데, 내가 떠나기 전에 집에서 이미 그를 보았던 터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는 자기 자리를 잡은 것이다. 요컨대 나는 내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그 젊은이는 보 지방 출신이었다. 빈첸리드라는 이름의 그의 아버지는 시용 성의 수위였는데, 자칭 집사라고 했다. 집사의 아들은 가발 제작과 이발, 면도를 함께 하는 사람의 보조였으며, 그런 직업으로 세상을 떠돌다가 바랑 부인에게 와서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천박하고 어리석으며 무식한데다 건방졌는데, 말하자면 더없이 잘난 체하는 놈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는 내 대리인 역할을 하다가 내가 돌아온 후에는 동료 구실을 한 자가 이 모양이었다(p. 361).

 

이 신참자는 항상 일거리가 많은 온갖 자질구레한 용무에 열심이고 부지런하고 꼼꼼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일하는 사람들의 감독이 되었다(p. 362).

 

내가 그토록 다정스럽게 품어왔던 온갖 달콤한 생각들이 사라져버린 것이고,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존재와 더불어서만 내 존재를 볼 줄 알았던 내가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음을 안 것이다. 그 시간 이후 다정다감한 존재는 반쯤 죽고 말았다. 이제 내 앞에 보이는 것은 무미건조한 삶의 서글픈 흔적밖에 없었고, 이따금 행복의 영상이 나의 욕망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만 그 행복은 더 이상 내게 걸맞지 않았다. 나는 이제 행복을 얻더라도 정말로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p. 363).

 

그녀는 솔직하게 그 문제를 서둘러 고백했는데 내가 그것에 마음을 썼다면 그런 솔직함 때문에 더욱더 분노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일을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내가 집에 소홀한 것을 나무랐으며 내가 자주 자리를 비우는 것을 구실로 내세웠다.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요! 이것이 내가 품었던 애정에 대한 보상입니까! 당신이 내 생명을 몇 번이고 지켜준 것이 고작 그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준 모든 것을 내게서 빼앗기 위해서였나요? 나는 그 때문에 죽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나를 그리워할 거예요(p. 363-365).”

 

당신을 소유하는 것은 내게 너무 소중해서 나누어 갖는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내게 훨씬 더 필요한 것은 당신을 소유하는 것보다 당신을 숭배하는 일이에요.”

 

나는 그 결심을 시종일관 지켰는데, 감히 말하자면 나에게 그런 결심을 품게 한 감정에 걸맞은 인내심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토록 소중한 엄마를 진짜 아들의 눈으로밖에 더 이상 보지 않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내가 분명히 눈치챘듯이 내 결심이 그녀의 은밀한 동의를 전혀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 결심을 단념시키기 위해 환심을 사려는 말이나 호의, 여자들이 자신들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으면서 쓸 줄 아는, 대개는 성공을 거두는 그런 능숙한 교태를 전혀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p. 364-364).

 

이해관계를 떠난 태도에서 나온 첫 성과는 내 자리를 밀치고 들어온 사람에 대한 증오와 시기의 모든 감정을 내 마음에서 몰아내는 것이었다. 반대로 내가 그 젊은이에게 원하고 진실로 원한 것은 그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의 재능을 길러주며 그의 교육을 위해 애쓰는 것, 그에게 자신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가능하다면 그를 그런 행복을 느낄 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아네가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나에게 해준 모든 것을 그에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빈첸리드라는 이름이 그다지 귀족답지 않아 보였는지 그 이름을 버리고 드 쿠르티유씨라는 이름을 썼다(p. 366).

 

마침내 이 저명인사가 온갖 술수를 써서 자신은 집안에서 전부가 되었고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녀석의 성격이 완전히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엄마를 사랑했다. 더구나 그는 나에게 반감을 갖지 않았다.

 

그때까지 일어난 어떤 일보다 나를 더 깊은 절망에 빠뜨린 또 다른 일을 알게 되었다. 바로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식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p. 367).

 

어느새 나는 바로 이 집에서 고립되었고 혼자라는 것을 느꼈다.

 

오래지 않아 이런 삶이 완전히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집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내가 그런 사실을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계획을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와주었다. 그녀에게는 그르노블에 데방 부인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리옹의 대법관인 마블리 씨의 친구였다. 데방 씨는 내게 마블리 씨 아이들의 교육을 제안했다.

 

나의 온화한 성격은 감정이 폭발하여 분노를 터뜨리는 일만 없다면 이 직업과 잘 맞았을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고 내가 수고를 아끼지 않은 배려와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것을 보는 동안에는 나는 천사와도 같았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악마같이 돌변했다(p. 368).

 

내게 인내심과 냉정함이 있었다면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둘 다 부족해서 웬만하다 싶은 일도 좀처럼 하지 못했고 내 학생들은 행실이 점점 나빠졌다. 나는 인내심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꾸준하지 못했고 특히 신중함이 부족했다. 그 아이들을 대하며 세 가지 수단, 즉 감정과 논리와 성질밖에 사용할 줄 몰랐는데 그 수단들은 아이들에게는 항상 무익하고 종종 해롭기까지 했다.

 

나는 내 학생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나은 성과를 거의 거두지 못했다(p. 369).

 

엄마 집에 있으면서 좀도둑질 성향은 완전히 사라졌다. 모든 것이 내것이었으니 훔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훔칠만한 작은 물건들이 사방에 있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던 내가 별 이름은 없지만 썩 괜찮은 아르부아 산 백포도주를 탐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p. 370).

 

나는 결코 문란하거나 방탕한 적이 없고 일평생 술에 취한 적도 없다. 그래서 나의 이러한 좀도둑질은 심하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짓은 곧 들키고 말았다. 술병들 때문에 내가 한 짓이 들통나고 만 것이다.

 

내게 맞지 않는 직업과 나로서는 전혀 즐거울 것이 없던 아주 갑갑한 상황에 염증이 나서 내가 그토록 정성을 아끼지 않은 1년의 시도 끝에 제자들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p. 371-372).

 

내가 떠나온 과거의 처지와 현재 내가 놓여 있는 처지를 지속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현재의 내 처지를 더욱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사랑했던 레 샤르메트, 정원 나무들, , 과수원, 특히 내가 태어난 목적이자 이 모든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엄마가 생각난 것이다.

 

모든 것과 헤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서 쏜살 같이 달려 소년기와 같은 격정 속에 도착한다. 그녀의 발밑에 다시 와있다.

 

그녀와 함께 고작 반 시간을 머무는 동안 나는 과거의 행복이 영원히 죽어버린 것을 느꼈다(p. 373).

 

나는 그녀에게 전부였고 그녀는 나에게 여전히 전부일 수 밖에 없는데, 그녀 옆에서 내가 여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나는 집안 형편이 나빠지지 않을 정도로 살림살이를 유지시켰다. 하지만 내가 나온 다음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녀의 경리 담당은 낭비가 심한 사람이었다.

 

내 소중한 서재가 유일하게 기분전환 역할을 해주었다. 마음의 불안을 다스릴 대책을 서재에서 찾은 덕분에 내가 예상한 불행에 대한 대책도 그곳에서 찾을 생각이었다(p. 373-374).

 

곤경에서 가엾은 엄마를 구해내려고 또 다시 헛된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나는 문단에 이름을 알리고 그 길로 출세할 수 있을 만큼 박식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그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분야에서 학자로서 나 자신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오래전에 나는 숫자로 음계를 기보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숙고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도한 어떤 음악이라도 가장 정확하게,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가장 단순하게 내가 고안한 숫자로 기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와 함께 행운을 나누어야겠다는 열의에서 파리로 떠날 생각만 했다. 아카데미에 내 계획을 제출하면 일대 혁신을 일으킬 것임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젊은 시절의 실수와 잘못은 이상과 같다. 나는 내 마음이 만족할 만큼 충실하게 그 이야기를 서술했다(p.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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