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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_8장_반야바라밀다='공'의_깨달음_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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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공’의 깨달음 
 
붓다 입적 후 약 400년이 지난 시기에 나타난 대승불교는 붓다의 본래 가르침인 생성존재론에 충실하고자 했다. 집착하지 말라”, “아집을 버려라”에서 ‘아집’은 일상 어법으로는 심리적-윤리적 표현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아트만(我)’이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존재론적 표현이다. 그러나 아비달마불교는 ‘아(我)’의 실체성은 부정하되 그 아(我)의 경험을 구성하는 실체들로서의 ‘법(法)=다르마’의 실재성을 논했다.
 
대승불교는 아비달마불교의 분석적 탐구를 비판하면서, 철저한 생성존재론 즉 모든 것은 ‘공(空)’이라는 생각을 전개한다.
 
‘공(空)’이란 이 세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연기(緣起)의 법칙’에 따라 생성하는 세계의 단편적 모습일 뿐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대승불교는 역사적인 붓다 외에도 초월적인 붓다를 상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또 붓다 외에도 다른 많은 보살들(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에 대한 신앙을 전개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성불’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갔다. 아비달마불교가 순수한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했다면, 대승불교는 이미지 차원에서 진리에 접촉하고자 했고, 그 결과 다양한 문화적 정치들(불전문학, 불탑, 불상, 불화 등)을 만들어 냈다. 대승불교의 이러한 과정은 아비달마불교가 갖추고 있던 수준 높은 이론적 엄밀성과 지적 정직함이 적지 않게 훼손되었다.
 
대승불교의 주창자들은 “소승불교”가 자비의 정신으로 중생을 구제하지 않고 자신의 안심만을 추구한다고 비판, 대승불교는 윤리적/사회적 성격을 띠는 종교이기도 하며, 주창자들은 진리의 깨달음만을 목표로 하는 ‘아라한’이 아니라 중생의 구제도 목표로 하는 ‘보살’이 되고자 했다. 대승불교는 타인을 구제할 때 자신도 구제된다고 믿었기에 ‘부주열반’을 선택하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현실세계에서 진력한다.
 
대승경전들은 여러 형태의 『반야경』들이다. 『소품반야』, 『대품반야』 등이 있지만 현장이 번역한 『대반야바라밀다경』600권이 잘 정리된 판본이다. 『금강경』은 반야사상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명저이다. 『유마경』과 『승마경』은 재가신도의 깨달음 추구를 그린 작품으로 대승불교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대승불교의 입장을 간명하게 전달해주는 개념은 ‘반야바라밀다’- ‘아’와 ‘법’은 모두 공-이다.
 
대승의 사유를 철학적으로 다듬어낼 필요가 대두, 이 요청에 응하면서 공의 사상을 차원 높게 세운 인물이 2~3세기에 활동한 용수=나가르주나이다. 나가르주나의 중관(中觀)철학은 대승불교의 핵을 형성한다. 또한 후대에 성립한 여덟 종파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 “8종의 개조(開祖)”라 불린다.
 
나가르주나의 공(空)사상은 공 자체의 실체화를 포함해 인간이 행하는 모든 분석적 사유의 원초적인 한계를 논파하려 한다. 이런 논파는 ‘공’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고, 붓다의 설법인 연기설이 그리고 그가 제시한 중도의 길이 ‘공’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연기의 진리는 생겨남도 아니고 없어짐도 아니다. 제법은 ‘자생(自生)’도 아니고 ‘타생(他生)’도 아니다. 즉 연기를 떠난 자. 타의 실체성이나, 인과성은 없다. 이렇게 ‘생’의 실체화가 논파됨으로 ‘멸’의 실체화도 논파된고, 나머지 여섯 가지-‘상’과 ‘단’, ‘일’과 ‘이’, ‘래’와 ‘출’-도 논파된다.
『중론』은 아비달마불교를 포함 기존 사유들의 실체화를 집요하게 해체해, 진리는 실체화들을 벗어난 곳에 있는 ‘공’이며, 이 공의 진리가 연기의 진리와 중도의 길을 밝혀준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공의 진리를 보지 않고 세계와 자아를 실체화하려 하는가? 그것은 언어 때문이다. 인간이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려는 이상 모순을 품게 된다. 이에 나가르주나는 『중론』을 통해 언어가 내포하는 모순들을 드러내며, 언어사용에 대한, 논리적 비판의 극치를 보여준다. 즉 ‘공은’ 그것을 파악하려는 모든 언어를 좌절시키는 것, ‘~가 아니다’라는 부정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며, 공은 직관/깨달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나가르주나가 공의 진리를 주장한다고 해서 세간적 지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2제-진제(眞諦)와 속제(俗諦)-의 사상을 통해 개진했다. 나가르주나는 분석적인 이해, 언어로 분절된 세계 이해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지 그런 이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 6파의 철학, 다시 ‘우파니샤드’로
인도에서 철학의 흐름은 굽타 왕조의 전성기인 4~5세기를 경계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불교는 철학적으로 완성되는 동시에 종교로서는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힌두교는 아리아족의 바라문교와 합체함으로써 상하를 포용하는 새로운 동력을 얻어 확고한 전통을 이루게 된다.
 
굽타왕조가 인도의 고대 문화를 집대성하면서 힌두교가 자리를 잡게 되자, 산스크리트어가 문화언어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어, 불교 사상가들도 산스크리트어로 저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힌두교는 『베다』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전통적인 다신교와 철학적인 일신교를 결합하고자 했다. 이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들로는 가우타마의 니야야학파와 카나다의 바이세시카학파, 카필라의 상키야학파와 파탄잘리의 요가학파, 바다라야나의 베단타학파와 자이미니의 미맘사학파가 있다.
 
물론 불교사상도 이 시대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아상가=무착과 바부반두의 활약, 유식불교의 탄생, 여래장사상의 발달이 모두 이 시대에 만개했으며, 그 이후까지도 디그나가, 다르마키르티 등의 논리학-인식론의 탐구 등이 전개되었다.
 
니야야-바이셰시카 학파
니야야학파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에 대항해서 브라만교/힌두교의 본래 입장인 실재론적이고 실체주의적인 사유를 새롭게 개념화하고자 했다. 이 점에서 아비달마불교와 일정 측면을 공유한다.
 
니야야학파는 특히 ‘인식’의 방법에 대해 세밀하게 탐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식에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지각’, ‘추론’, ‘유추’, ‘언어/증언’이 그것들이다. 이중 어떤 것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인도 제 학파의 성격을 결정했다.
가우타마에 따르면, ‘지각’은 “감각기관들과 그 대상들의 접촉을 통해 생겨나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참되어 오류가 없는 명료한 인식 ”이다. 매개가 없는 직접적 인식으로, 후대에는 감관지각으로 국한하기도 했다. 마음은 어떻게 이해되는가? 아트만(참 자아)과 감각기관들 사이에 위치하는 마음은 외적 기관들인 감각기관들과 달리 내적 감각기관이다. 또한 지각은 대상을 분절하지 못한 채 지각하는 경우와 어느 정도 분절해서 지각하는 경우로 세밀하게 분석했다.  
 
‘추론’은 지각에 근거하지만 그로부터 더 밀고 나가는 인식이다.(인과관계, 상관관계). 니야야학파에서는 불교의 경우와 반대로 세계가 필연적 인과연쇄로 되어 있고, 이를 깨닫는 것은 생성존재론/공존재론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양자는 모두 해탈을 지향했지만 그 이론적 근거를 반대 방향으로 잡고 있다.
니야야학파는 결과는 원인에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발 된다는 ‘인중무과론(因中無果論)’을 주장했으며, 상키야학파나 베단타학파는 결과는 원인 속에 이미 잠재해 있다가 나중에 현실화하는 것이라는 ‘인중유과론(因中有果論)’에 입각해 니야야학파를 비판했다.
니야야학파의 사유를 파악하는 또 다른 축으로 연역과 귀납인데, 니야야학파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귀납과는 다른, 형식적 논리 절차를 넘어 직관을 통해 보편을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귀납을 사용했다. 이는 산스크리트어가 추상명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특징을 가진 점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니야야학파는 세계를 보편자들의 유기적 집합체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이 때문에 차르바카로부터, 상키야학파나 불교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예증을 통한 논변을 ‘유추’라 할 수 있다. 니야야학파의 유추는 ‘유비(類比)’라기보다는 ‘유례’이다.
 
증언에 의한 인식. 증언이란 “신뢰할 만한 사람이 가르쳐주는 것”이다. 니야야학파에서의 증언은 『베다』의 언어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베다』는 그 보조 학문으로서 운율학, 제사학, 천문학, 어원학, 음운학, 문법학을 가졌다. 이 때문에 정통 6파의 사유는 모두 『베다』와 이 보조 학문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니야야학파는 ‘오류추리론’도 상당한 비중으로 전개했으며, 논리학. 인식론만이 아닌 형이상학/우주론, 영혼론, 윤리학 등 포괄적인 철학적 주제들도 다루었다. 또한 바이셰시카학파의 사상도 받아들여, 니야야-바이셰시카 학파가 성립했다.
 
바이셰시카학파는 세계를 범주론을 통해 파악했다. 실체. 속성. 운동. 내속. 보편. 특수의 여섯 범주, 후에는 비-존재를 포함해 일곱 범주로 분석했다. 실체는 아홉 가지로 구분한다. 지. 수. 화. 풍. 공기는 물질적 실체들이고, 정신적 실체로서는 아트만과 마나스, 공간과 시간도 ‘실체’로 본 것은 이 학파의 특징적인 면모이다.
속성에는 17가지가 있다. 감각적 속성인 색. 성. 향. 미. 촉, 추상적 속성인 수. 양. 개별성. 결합/분리, 공간적 속성인 앞. 뒤, 아트만의 속성인 지성. 쾌락. 고통. 욕망. 염오. 의지가 있다. 어떤 실체가 어떤 속성을 가지는가에 대한 상이한 이론들이 펼쳐졌다.
운동범주에는 상승. 하강. 수축. 신장, 그 외 운동 일반의 다섯 하위범주가 있다.
내속은 바이셰시카학파 특유의 범주로서 외적 결합이 아닌 내적 또는 필연적 결합을 뜻한다.
보편과 특수는 이 네 범주의 축과 다른 축에서 성립한다. 불교 계통에서는 보편자를 실재로 보는 바이셰시카학파를 맹렬히 비판했다. 후기 바이셰시카학파에 이르러서는 ‘비-존재’가 하나의 범주로서 추가된다. 또한 ‘~이 아님’을 하나의 실재로 파악하고자 했다. 이 학파는 ‘관계’자체를 실재론적으로 파악했고, 세계를 유기적 질서의 체계로 이해했음을 함축한다.
 
6파 철학은 신학이 아니라 『베다』를 전제하는 학문이었다. 『베다』는 상고 시대 종교로부터 우파니샤드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문헌이었기에, 이를 잇는 방식은 매우 다양했다.
 
상키야-요가학파   
연대적으로 가장 오래된 학파로 알려져 있다. 시조는 카필라며, 핵심 문헌은 이슈와라크리슈나의 저서인 『상키야카리카』이다. 상키야학파는 한편으로는 일원론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원론적이다. 원리적으로는 세계를 이원론으로 사유하고, 구체적으로는 경험의 복잡성과 다원성에 충실한 사유이다.
 
상키야는 푸루샤와 프라크르티의 2원 구조에서 출발한다. 창조의 사유보다는 ‘전개’-논리적 전개-의 사유가 특징이다. 상키야적 세계는 끝없는 생성의 세계이다. 사물들은 일정한 조건만 주어지면 자생적으로 전변해가며, 또 경우에 따라서는 외적 원인에 의해 전변되기도 한다. 이는 깨어남과 잠듦의 영겁회귀이다.
 
상키야학파는 아트만을 푸루샤로 재-개념화하고 있다. 푸루샤가 프라크르티와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로부터 마침내 구분에 이르러 스스로를 발견함으로써 해탈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본체론적 자아가 경험적 자아로부터 해탈을 이룬다는 힌두교의 정통에 충실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푸루샤의 자극을 받은 프라크르티의 전개는 세 ‘구나’-세 속성-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사트바(프라크르티의 밝은 측면으로 프라크르티가 실현코자 하는 그 본질들)’, ‘타마스(이 실현을 가로막는 어두운 측면)’, ‘라자스(프라크르티의 동적인 측면, 원동력이다)’이다. 이 세 구나들은 각각 무수한 방식으로 현현하며, 내적 조합에 의해 무수한 사물들을 만들어낸다(세계는 전개된다).
 
미현현의 프라크르티가 전개되어 나타나는 첫 번째 존재는 ‘마하트=붓디’이다. 이 붓디로부터 ‘아함카라’ 즉 개별적 붓디 곧 자아의식들(푸르샤)이 전개된다. 이때 세 속성도 동시에 작동한다. 아함카라 다음에는 마나스와 안. 이. 비. 설. 신의 지각기관, 그리고 설. 족. 수. 비뇨기. 성기의 행동기관이 전개되며, 다른 한편 색. 성. 향. 미. 촉의 미세한 입자득과 지. 수. 화. 풍. 공의 조대한 입자들이 전개된다. 푸르샤는 붓디. 아함카라. 마나스라는 경험적 자아로 전개되며, 마나스가 감각기관들 및 행동기관들과 혼합된 의식이라면, 아함카라는 대자족 존재인 자기의식, 붓디는 본체계와 현상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상키야학파의 서술전반은 우주론적이기보다는 영혼론적으로 느껴진다. 무수한 푸르샤들이 스스로가 아트만임을 발견해가는 여정으로, 물질성을 점차 떨쳐냄으로써 순수 정신적인 차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요가는 물질성에 물들어 있는 마음을 해방시켜, 완전히 정화되었을 때, 그것을 관조하는 푸루샤가 마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경지에 달하는 것이다.
요가학파는 8가지 단계로 물질성을 떨어버리고 정신으로 향해 갈 것을 제시한다. 금계, 권계, 정좌, 심호흡, 감각의 통어, 정신집중, 선정, 삼매로써 요가의 최종단계는 삼매이다.

 

베단타-미맘사 학파

베다에 가장 충실했던 학파는 베단타-미맘사 학파였다. 니야야-바이셰시카 학파와 같은 이지적인 탐구를 통해서는 베다의 진리에 다가설 수 없다고 보았다. 종교로서의 힌두교에 충실했으며, ‘도그마의 성격이 강한 학파이다.

베단타학파는 이론적이며 베다의 후반부 아란야카와 우파니샤드를 이어받아 힌두교의 이론적 기초를 보다 단단히 다지고자 했다.

미맘사학파는 베다의 전반부 만트라와 브라흐마나를 이어받아 종교로서의 실제 영위를 다져나가 고자 했다.

이들은 베다의 이해를 위한 인식론과 언어철학을 풍성하게 발달시켰다.

 

바다라야나의 베단타수트라는 브라흐만을 절대적 일자로 새롭게 개념화하고 찬미한다. 푸루샤와 프라크르티는 브라흐만의 변형태일 뿐이다. 이는 힌두교를 현실/대중과 매우 친밀한 종교로 탈바꿈하게 만들었다.

개별자들은 삶에서 무수한 고통을 겪고 업과 윤회를 반복하는 데 비해, 그 안의 아트만은 항구적이다. 삶의 의미는 끝없는 수행을 통해 이 아트만을 발견하고 해탈하는 것이다.

 

3.흰두교와 불교

굽타 왕조(4~6세기)시기에 마하바라타, 마누법전, 바가바드기타등이 대성되었고, 6파 철학이 그 온전한 형태로 구축, 인도의 고전 문화를 완성, 힌두교는 반석 위에 서게 되었다. 굽타 왕조가 기울기 시작한 5세기 말부터, 10~11세기 무슬림이 쳐들어 오기전까지의 혼란기에 상인 계층의 비호를 받던 불교와 자이나교는 위축되었고, 농촌 중심의 보수적 성격의 힌두교는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힌두교가 체계를 갖추는 것에 자극을 받아, 불교 역시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또 철학적으로 정교한 존재론을 개발했다. 이는 유식사상으로 대변된다. 또 한편으로 쇠퇴해가는 종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보다 대중적이고 감성적인 불교로 방향을 틀기도 했는데, 이는 여래장사상. 밀교로 대변된다.

 

불교철학의 변용

굽타왕조 시대 힌두교가 학문적으로 조직화되고 6파 철학이 체계화되자, 불교 쪽에서도 대승불교사상을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유식철학, 중관철학, 불교논리학이 그것이다.

 

1. 유식철학은 을 예외로 할 경우 철저한 반-실재론을 취하는 중관철학의 한계를 느끼고, 불교적 진리가 닻을 내릴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실재를 찾아 대승불교를 종합하고자 했다.

 

1-1 유식사상은 해심밀경(解深密經)대승아비달마경을 기초로 한다. 아비달마가 ()’를 설했고, 나가르주나의 중관사상이 ()’을 설했다면, 스스로는 그 중용을 취해 ()’을 설한다고 한다. 즉 붓다의 생성존재론을 이어가면서도 의 밑바탕을 이루는 어떤 실재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객관적 실체로서의 은 부정하고 마음을 사유한다.

 

일절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빚어낸 것들일 뿐이다.”

 

1-2 유식사상은 모든 것은 마음이 빚어낸 것이기에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바깥이 아닌 내면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을 도와주는 실행 기법이 요가이다. 이 때문에 때로 유식학파는 유가행(瑜伽行)학파라고도 불린다.

 

1-3 본격적인 유식철학은 마이트레야(미륵)에게서 유래한다.(마이트레야는 그 존재가 아리송한 인물이다) 유식철학을 집대성한 인물은 5세기에 활동한 아상가=무착과 그 동생 바수반두이다. 아상가의 섭대승론과 바수반두의 유식이십론. 유삭삼십송이 유식철학의 대표저작들이다.

1-4 유식철학은 세계의 진상이 궁극적으로 이라면, 어떻게 일정한 객관세계가 성립하는 듯이 보이는가를 설명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설명은 유심론적이다.

진상은 유식무경(唯識無境)’이다. 즉 식이 인식하는 대상들은 사실 식 자신이 현현한 것일 뿐으로, 오로지 식만이 존재하며, 객관세계 즉 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유(萬有-만물) 에서 유래하며, 세계는 식이 꾸는 꿈과도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대상이 존재하고 주체가 그것을 인식한다고 본다. 6식이 있기에 6경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6경을 객관적인 것들로 생각하는 것은 꿈을 실재로 착각하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으로, 이 허망함을 깨달으면(의타기성(依他起性)), 66식이 사라지게 되고, 그러면 객관세계에 대한 집착(아집 자체도 해체해버릴 수 있게 되어)으로부터 해방되어, 진여를 깨달은 단계인 원성실성(圓成實性)‘을 갖추게 되어 해탈에 이르게 된다.(594p)

 

1-5 유식철학은 상키야철학과 일정 정도 유사하다. 전자가 일원론이라면, 후자는 이원론이다. 유식철학은 이 펼쳐짐으로써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보며, 상키야학파는 푸루사가 프라크르티를 전개하게 만든다고 본다. 이러한 구도에 입각해 양자는 모두 물진성의 차원으로부터 정신성의 차원으로의 상향도를 추구한다. 그러나 유식학파가 궁극적으로 세계의 을 깨달아 해탈하고자 한다면, 상키야학파는 푸루사의 존재를 깨달아 해탈하고자 한다.(593p)

 

1-6 유식과 중관 양 학파는 영향을 주고받으며 대승불교를 절정으로 이끌고 갔다. 바수반두 이래 유식철학은 유상유식파무상유식파로 갈라져 발달했다. 인도 유식철학은 파라마르타=진제(眞諦)를 통해 중국에 전해졌고, 현장. 의정 등은 인도에 직접 가서 유식철학을 배우기도 했다. 현장이 배운 다르마팔라의 사유는 동북아에 와서 법상종으로 발전했다.

 

2. 중관철학은 모든 분석적 명제들을 비판하면서 을 주장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체계화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러나 힌두교 체제로 접어들자, 이에 발맞추어 좀 더 논리적인 사유로 다듬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불교논리학도 발달하게 된다.

 

2-1중관학파는 라훌라(3세기) 이래 프라상키카파와 스바탄트리카파로 양분되어 발달했다. 프라상키카파는 나가르주나가 중론에서 그랬듯 타 학파의 명제들을 논파함으로써 사상을 더욱 분명히 하고자 했으며, 프라상가=귀류(歸謬)의 방식을 통해 모든 학파들을 논파하고자 했다. 스바탄트리카파는 자립의 성격을 가지는 논변등을 통해 공사상을 체계화하고자 했는데, 이는 타 학파들을 해체하려는 프라상키카파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 것이다.

 

2-2 중관학파가 유식사상을 받아들이는 샨타라크시타=적호(8세기)등의 사유는 유가행중관파라 불린다. 유식과 중관철학의 결합은 인도 불교에서 철학적 사유의 절정이었다.

 

3. 종교로서의 불교를 다시 세우고자 한 흐름은 교리를 좀 더 단순화시키면서, 윤리적인 실천을 뒷받침하여 대중의 마음에 확신과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여래장(如來藏)사상은 이런 방향으로 변형해가고자 했다.

 

3-1 여래장사상의 핵심은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갖추어져 있는 성불의 가능성이다. 마음은 본체가 아니라 현상과 실재에 걸쳐 있고, 현상에 물들 수도 있고 실재로 나아갈 수도 있는 이중체이다. 성불은 어떤 진리를 인식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믿음으로써 가능하다. 여래장 불교는 무지/무명을 탈피하려는 철학적 탐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붓다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성불 가능성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통해 해탈할 수 있음을 말한다.

 

3-2 여래장경, 승만경이 이런 방향을 마련한 대표적인 경전이고, 열반경, 부증불감경, 보성론등도 여래장의 성격이 강한 경이며, 유마경, 볍화경, 화엄경등도 이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3-3 여래장 사상의 핵심은 마음이다. 이 마음은 힌두교의 아트만에 대응하는 불교의 개념이다. 반야사상에서 출발한 불교가 여기에 이르러 어떤 완성에 이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흐름을 더 이어간 것은 인도가 아니라 동북아였다.

 

베단타철학의 완성

상카라 이후의 흐름은 라마누자에 의해 대표된다. 라마누자도 실체를 다원화해 파악했다.

브라흐만을 인격신 차원으로 보았다. 내재해 있으며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인격적 존재로 본 것이다. =이슈와라는 브라흐만의 구체적인 존재 양태이고, 또 브라흐만은 물질로서도, 정신으로서도 활동한다. “모든 존재는 브라흐만의 본질과 그 표현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유를 한정적 불이론이라 부른다. 브라흐만은 모든 한정들을 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정됨으로써 다양한 아바타라들로서 활동하는 존재이다. 이제 힌두교는 그 원형을 복구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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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는 계속 그 생명력을 이어갔으나 철학적 측면에서 뚜렷한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왜일까?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경험적 탐구가 결연된 순수 사변적 사유는 어디에선가 그 극한에 다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단타철학에 대한 샹카라와 라마누자의 두 정치한 체계가 세워짐으로써 6파철학은 그 한계에 달하게 되었으며, 이후의 철학들은 예전에 이루어진 성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조합함으로써 성립하게 된다.

 

라마누자 이후 힌두교 철학자들은 샹카라의 사유를 공사상에 물든 것으로 비판하면서 보다 실재론적인 사상을 전개했고, 신앙, 은총, 신애 등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로 화해갔다. 여기에 점차 주술적인 경향도 가미되어 가자, 이러한 흐름들의 한계를 본 힌두교 철학자들은 보다 이지적이고 보편적인 샹카라의 사유를 힌두교 정통철학으로 발전시켜나가기도 한다.

 

인도 아대륙은 11세기~16세기 까지 투르크계열 이슬람교도들의 지배를 받게 되고, 이후 서구세력이 들어와 지배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근대성과 조우한 힌두교는 받아들일 만한 부분을 받아들이는 경향으로 진화했다. 그 과정에서 힌두교의 핵심성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힌두교가 보편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들 중 하나는 카스트(바루나)제도에 있었다.

 

교리상 힌두교는 6파 철학을 통해서 다양하게 해석되어왔지만, 힌두교의 핵심 특징은 아바타라의 사상이다. 아바타라의 존재론은 본질들의 위계를 틀로 하는 지중해세계의 일신교들과 대조적인 것으로 타자를 전변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자체 내에 녹여버려내는 독특한 속성을 유지, 절대 타자와는 섞이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사상을 흡수해버리는 양극의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불교는 왜 인도에서 사라졌는가?라는 물음은 흰두교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가?” 물음과 쌍을 이루며 성립한다. 불교는 인도 사회 상층부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지지층인 상공인들이 인도사회에서 쇠퇴해갔다. 인도의 역사는 불교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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