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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171~240p <어느 환상의 미래> ebook

개벽크 발제- 어느 환상의 미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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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사회 현상으로서의 종교를 고찰한 주요 저작이다.

<나는 종교를 주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후에 나는 종교에 관한 좀 더 적합한 공식을 발견했는데, 종교의 힘은 그것의 진리 내용에 근거하지만 그 진리는 실체적인 진리가 아니라 역사적인 진리> 라고 말했다.

 

<어느 환상의 미래>

 

1.

프로이트는 하나의 특정한 문명 속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그 문명의 발생과 발달 과정을 알아내려고 애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탐구는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처음부터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 요인을 3가지로 말했습니다. 1)인간 활동을 모든 방위(方位)에서 총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2)이런 종류의 판단에서는 각 개인의 주관적 기대가 작용하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이 두 번째 요인이다. 3)사람들이 대개 자신의 현재를 그저 순진하게 경험하고 있을 뿐 그 내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기묘한 사실이다.

 

인간의 삶이 동물적 상태를 뛰어넘어 짐승의 삶과 달라진 것은 인류 문명이라고 말합니다.

인류 문명은 관찰자에게 두 가지 측면을 제시했다. 1)인간이 자연을 지배해서 부를 빼내어 자인의 요구를 채우기 위해 얻은 모든 지식과 능력 2)인간의 상호 관계 조정과 유용한 물자의 분배를 조정하기 위한 온갖 제도 문명의 이 두 가지 경향이 서로 무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3가지를 들었다. 1)인간의 상호 관계는 현존하는 물자를 가져다줄 수 있는 본능 충족의 양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2)개인은 타인에 의해 노동력을 이용당하거나 성적 대상으로 선택당하는 한, 그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물자로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문명은 인류의 보편적 관심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각 개인은 사실상 문명의 적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자연을 지배하는 일에서는 끊임없는 진보를 이룩했고, 앞으로도 훨씬 많은 진보를 이룩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지만, 인간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그와 비슷한 진보가 이루어졌는지는 확실히 입증할 수 없다./

 

오히려 모든 문명은 강제와 본능 억제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강제가 사라졌을 때 대다수 인간이 새로운 물자 획득에 필요한 작업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확실치 않아 보인다. 모든 사람에게는 파괴적인, 따라서 반사회적이고 반문화적인 경향이 있으며,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인간 사회에서 그들의 행동을 결정할 만큼 강하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대중에 대한 소수의 지배가 없으면 문명은 존속할 수 없다. 대중은 게으르고 우둔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본능을 자제하기를 싫어하며, 그 불가피성을 아무리 역설해도 대중을 납득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의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탁월하고 굳건하며 공평무사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많은 수의 지도자를 어디서 조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 할 수도 있다.

 

결국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유아기의 경험에 따라 결정된다는 심리학적 통찰에 근거를 둔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

 

2

금지가 낳은 박탈의 의미.

 

금지가 낳은 상황을 <박탈>이라 부른다. /문명은 이 박탈을 초래한 금지를 통해 인간을 태고의 동물적 상태에서 분리하기 시작했다. /이 박탈은 문명에 대한 적의의 핵심을 이루며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그 아이와 함께 태어난다. 이 좌절에 대해 이미 사회적 행동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신경증 환자라고 말한다. 이 본능적 원망에는 근친상간, 식인, 살인에 대한 욕망이 포함된다고 말한다.

 

단지 식인만은 보편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는 완전히 극복된 것처럼 보인다. 근친상간은 금지되어 있지만 거기에 대한 강원 원망은 그 금지의 장막 뒤에서 아직도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 문명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원망이 오늘날의 식인과 마찬가지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원망으로 보이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인간 정신은 태고이래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으며,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진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에도 역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와 똑같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적 진보 가운데 하나를 당장 지적할 수 있다. /독자적인 정신 기능인 인간의 초()자아가 그 강제를 외부에서 이어받아, 그것을 자신의 명령 속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 과정을 모든 어린아이한테서 관찰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어린아이는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존재가 된다. 초자아의 강화는 심리학적 영역에서 가장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초자아가 강화된 사람은 문명을 적대시하는 존재에서 문명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탈바꿈한다. 어떤 문화권에서 이런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그 문화는 더 안정되고, 외부의 강제 조치를 덜 필요로 한다.

 

다수 계층을 억압해야만 소수 계층에 만족을 줄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난 문명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문명은 억압당한 계층의 노동을 통해서만 존립할 수 있음에도, 그 문명이 소유하고 있는 부에서 그 계층이 차지하는 몫은 너무나 적다.

 

다른 성취를 지향하여 다른 이상을 발전시킨 다른 문명들과 자기 문명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문명이 저마다 다른 문명들을 업신여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이다. 이리하여 문화적 이상은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에 불화와 증오를 낳는 원인이 된다. 이것은 민족의 경우에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예술은 어떤 문명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또 다른 종류의 만족을 준다./ 예술은 문화적 요구에 따라 우리가 오래전에 단념했지만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원망에 대한 대리 만족을 제공하고, 따라서 문명을 위해 욕망을 희생한 사람의 불만을 달래기에는 가장 적합하다. 예술 작품은 또 한편으로는 귀중한 감정적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제공하여, 모든 문화권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동질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리고 이런 예술 작품이 특정한 문명의 성취를 생생히 표현하여 문화적 이상을 인상적으로 전달하면, 그 문명에 속한 사람들에게 자기애적 만족을 줄 수도 있다./ -> 발터 벤야민(예술작품) 아우라 고대 그리스 베누스 상의 의미

 

 

문명의 정신적 재산 목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항목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한 사람이 없다. 가장 중요한 항목은 넓은 의미의 종교적 관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문명의 환상이다.

 

3.

종교적 관념들의 독특한 가치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우리는 문명이 행사하는 압력- 본능 자제의 요구- 이 문명에 대한 적의를 낳는다고 말했다. /문명의 금지가 해제된 상황의 예/

 

문명이 폐지되면 남는 것은 자연 상태일 것이고 그것은 훨씬 견디기 어렵다./ 자연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일들을 통해 우리를 파괴해왔다./ 인간이 문명을 창조한 것은 자연의 위협 때문이었고, 우리의 공동 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문명이 지향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문명의 실제적인 존재 이유와 사명으로 인류를 자연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문명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생명과 우주를 사로잡은 공포를 제거해야 한다./

 

첫 단계는 자연을 인간화하는 것이고, 이 단계에서 이미 많은 것이 달성된다./ 죽음이 자연 방생적인 것이 아니라 사악한 <의지>의 폭력 행위라면, 사회의 친숙한 <존재들> 이 자연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면, 우리는 자유롭게 숨을 쉬고 으스스함 속에서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어리석은 불안을 정신적 수간으로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지만 적어도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무력한 상태에 빠져있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무방비 상태를 우리의 유아기 원형을 두며 그 원형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예 우리는 부모, 특히 아버지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우리를 위험에서 지켜 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유아기의 원형만이 아니라 계통 발생적인 원형에 따라 자연력을 신으로 형상화 한다.

 

자연 현상이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법칙에 순응한다는 결과로 자연력은 인간적 성경을 잃어버렸으나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신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신들은 세 가지 임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1.자연의 공포를 제거 2.인간으로 하여금 특히 죽음에서 나타나는 <운명의 여신>의 잔인함을 감수하게 하는 것 3.문명 생활이 강요하는 고통과 박탈을 보상해 주는 것/ 자신의 무력함을 그런대로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모태로 하고, 자신과 인류의 유아기 때의 무력했던 기억을 재료로 한 수많은 개념이 만들어진다. 이런 개념을 갖는 것이 두 가지 방향 ─ 하나는 자연과 〈운명의 신〉의 위협, 또 하나는 인간 사회 자체가 인간에게 주는 피해 ─ 에서 인간을 보호해 준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은 생명이 없는 무기물 상태로 돌아가는 소멸이 아니라, 더 고귀한 존재로 발전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이 견해는 우리 문명이 세운 도덕률이 우주 전체도 지배한다는 선언이다. 다만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도덕률은 우주를 관장하는 최고 법정이 인류 문명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강력하고 일관성 있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유럽 문명에서는 고대의 모든 신이 하느님이라는 하나의 신적 존재로 집약되었으니까 하느님의 속성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4.

문명과 종교의 관계 질문.

 

Q/〈문명이 종교적 관념들을 만들어 낸다〉거나 〈문명은 그 문명의 구성원들에게 종교적 관념들을 증여한다〉는 식의 표현을 되풀이해서 사용했다.

 

종교적 관념들도 문명의 다른 성취들과 똑같은 필요, 즉 압도적으로 우월한 자연력에서 자신을 지켜야 할 필요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입증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여기에 두 번째 동기, 즉 인간이 고통스럽게 느끼는 문명의 결함을 수정하려는 충동이 추가되었다.

 

종교적 관념들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로 개인에게 주어진다. 개인이 혼자 힘으로 그런 종교적 관념들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은 수많은 세대가 남긴 유산 속으로 들어가, 구구단이나 기하학 같은 것들을 받아들이듯 종교적 관념들을 이어받는다./  

 

 

Q/인간화가 난폭한 자연력에 직면한 인간의 당혹감과 무력감을 없애고 자연력과 관계를 맺고 결국에는 자연력에 영향을 주어야 할 필요성에 근원을 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동기는 불필요해 보인다.

 

인간이 자연력을 인간화할 때는 유아기의 원형을 모델로 삼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최초의 환경에서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마주치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어렸을 때 주위 사람들을 대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것들을 대한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말한 관찰 결과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나중에 무언가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을 이해해야 하고(정신적 지배는 물리적 지배를 위한 준비 단계이다),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것을 모두 인간화하는 것은 사실상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사고방식이 지닌 이 특징에 동기와 기원을 추가로 부여하고 싶다.

 

Q/ 「토템과 터부」라는 글에서 종교의 기원/ 당신은 과거에는 아버지 콤플렉스였던 것을 죄다 무력감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놓았다. 이 변화의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겠는가?

 

「토템과 터부」에서 내 목적은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토테미즘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토테미즘은 후세의 신()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토템 동물은 신성한 동물이 되었고, 살인과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인류 최초의 도덕률은 토테미즘에 기원을 둔다.

 

 

아버지 콤플렉스와 인간의 무력함 및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이 서로 어떤 고리로 이어져 있는가를 지적하는 것은 내 의무이다./ 종교 형성에 관한 정신분석적 동기는 〈의식에 나타난〉 동기를 형성하는 유아기의 원인과 같다.

 

「토템과 터부」에서 입증되었듯이, 아버지에 대한 이 이중적 태도를 암시하는 것은 모든 종교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을 운명이며 미지의 우월한 힘으로부터 보호받지 않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라는 인격의 속성을 그 힘에 부여한다.

 

그는 스스로 신을 만들고, 그 신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보호자 역할을 그 신에게 맡긴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동경은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와 똑같은 동기이다. 〈어른〉은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종교를 형성하게 되는데, 유아기의 무력함에 대한 자기 방어의 자세가 종교 형성이라는 어른의 반응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한다. 그러나 신의 개념이 발전한 과정을 더 깊이 탐구하는 것은 내 의도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문명이 개인에게 전달하는 완성된 형태의 종교적 관념이다.

 

5.

종교적 관념들의 심리학적 의미.

 

종교적 관념들은 외적(또는 내적) 현실의 사실과 상황들에 대한 가르침과 주장들이며, 우리가 혼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말해 주고 그것을 믿으라고 요구한다.

 

종교의 가르침에도 이와 똑같은 표준을 적용해 보자. 가르침을 믿으라는 요구의 근거가 뭐냐고 물으면, 세 가지 답을 얻을 수 있다. 1)원시적 조상들이 이미 믿었으니까 믿을 만하다는 것 2)답은 원시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증거가 있다. 3)답은 종교적 가르침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자산이 제공하는 모든 정보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종교적 교리,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고 삶의 고통을 달래 주는 임무를 맡고 있는 종교적 교리가 하필이면 진정성이 가장 입증되지 않은 요소라는 기묘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고대에 이루어진 시도는 억지스러운 성격을 띠는 반면, 현대에 이루어진 시도는 좀 더 교묘하다. 최초의 시도는 초기 기독교 교부의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Credo quia absurdum12라는 선언이다. 이 말은 종교적 교리가 이성보다 위에 있다고, 즉 이성의 관할권 밖에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적 교리의 진실성이 그 진실성을 입증하는 내적 경험에 달려 있다면, 그런 희귀한 경험을 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사람에게 타고난 이성을 활용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동기를 근거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의무를 제정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황홀경에 빠져 종교적 교리의 진실성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얻고 깊이 감동했다고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거에 종교적 관념들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진정성이 부족했는데도 인류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것은 새로운 심리학적 문제이다. 우리는 그런 교리의 내적인 힘이 어디에 있고, 이성의 승인과는 관계없이 유효성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를 자문해야 한다.

 

6.

종교적 관념들의 정신적 기원

 

종교적 관념들은 환상이이라고 말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하고 절박한 원망의 실현이다. 종교적 교리가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비결은 원망의 강력함에 있다.

 

유아기의 무력감은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싶은 욕구 ─ 사랑을 통해 보호받고 싶은 욕구 ─ 를 불러일으켰다. 이 무력감이 평생 동안 지속된다는 인식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매달려야 할 필요성을 낳았지만, 이번에는 훨씬 강력한 아버지가 그 대상이 되었다.

 

신의 섭리의 자애로운 지배는 삶의 위험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달래 주고, 도덕적인 세계 질서 확립은 인류 문명 속에서는 대체로 실현되지 않은 정의의 요구를 확실하게 실현시켜 준다.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갖게 된 주요 동기가 원망 실현일 때 그 믿음을 환상이라 부르고, 환상 자체가 입증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환상과 현실의 관계는 고려하지 않는다.

 

종교적 교리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에는 우리의 지식이 너무 빈약하다. 우주의 수수께끼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탐구해도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직관이나 내적 성찰에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도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 직관과 내적 성찰은 우리 자신의 정신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줄 수 있을 뿐이지만, 이것은 해석하기 어렵고, 종교적 교리가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종교 문제에 관한 한 사람들은 온갖 부정직과 지적 비행을 저지른다. 철학자들은 낱말이 원래의 뜻을 거의 잃어버릴 정도로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한다. 그들은 스스로 창조해 낸 모호한 추상 개념에 〈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 앞에서 이신론자(神論者)로 가장할 수 있다.

 

우주에 비하면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무력한 존재인가 하는 인식을 받아들이는 사람한테는 〈철처히 종교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종교적 태도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종교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의 다음 단계, 즉 종교적 감정에 반발하여 그 감정에 대한 치유책을 찾으려고 애쓰는 노력이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인간이 맡고 있는 사소한 역할을 그저 겸손하게 받아들일 뿐,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말의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비종교적이다.

 

 

 

7.

종교적 교리의 환상?

 

종교적 교리를 환상으로 인정하면, 우리는 당장 또 다른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다른 문화적 자산들도 종교적 교리와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과학적 연구에서 관찰과 추론을 이용하여 외적 현실에 대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확신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고고학적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칭찬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발굴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주거지가 무너져, 그 폐허 밑에 주민들이 생매장될 위험이 있다면, 그 발굴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종교적 교리는 다른 것과는 달리 공연한 트집을 잡아서 이러쿵저러쿵 비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문명은 종교적 교리 위에 세워져 있고, 인간 사회는 종교적 교리의 진실성을 믿는 대다수 사람을 기반으로 유지된다./ ->부처의 독화살 비유

 

인류가 종교에 대한 현재의 태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고집한다면 문명이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는 견해를 강력히 주장할 작정이다./ 종교가 인류 문명에 크게 공헌한 것은 분명하다. 종교는 반사회적 본능을 길들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종교적 교리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었을 때 인류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들이 지금보다 더 도덕적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들은 종교의 명령을 외면화하여 그 의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

 

웃을 죽이면 안 되는 유일한 이유가 신이 살인을 금지했기 때문이고, 살인을 하면 이승이나 내세에서 가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자. 그런데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신의 징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주저없이 이웃을 죽일 테고,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상의 권력뿐이다. 따라서 이 위험한 대중을 최대한 엄하게 다스림으로써 그들이 지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철저히 봉쇄하거나, 아니면 문명과 종교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8.

문명과 종교의 관계

 

사람들은 문명과 종교의 관계를 바꾸면 문명이 훨씬 큰 위험에 노출되기라도 하듯 두려워한다. 작센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를 성 보니파티우스가 베어 버렸을 때, 이를 본 사람들은 그 신성 모독으로 말미암아 무서운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작센 사람들은 기독교도로 개종했다.

 

밉거나 방해된다는 이유로, 또는 재물이 탐나서 이웃을 죽이면 안 된다고 문명이 명령했을 때, 이것은 분명 인간의 공동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살인을 금지하지 않으면 인간의 공동생활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는 개인의 살인을 금지하고, 이 금지를 어기는 사람을 공동으로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법과 형벌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살인에 대한 금지를 이렇게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살인에 대한 금지령은 신이 내렸다고 주장한다.

 

신 자신이 요구한 것과 입법부나 사법부라는 막강한 권력 기관에서 나온 요구를 구별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에, 차라리 신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문명의 모든 제도와 명령은 순전히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이로울 것이다. 신의 뜻을 자처했던 이런 명령과 법률이 그 후광을 잃어버리면, 경직성과 불변성도 함께 잃어버릴 것이다.

 

아버지 살해에 대한 감정적 반응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이 생겨났다. 토테미즘에서는 이 명령이 아버지 대역을 맡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었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한테까지 확대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이 명령이 보편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시 시대의 아버지는 신의 원형이었고, 후세 사람들은 이 원형에 따라 신의 형상을 만들었다. 따라서 신은 살인 금지의 발생 과정에 실제로 참여했다는 종교 측의 해석은 옳다.

 

어린아이는 신경증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문명적 단계로의 발달을 무사히 마칠 수 없다./ 억압 행동 뒤에는 대개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동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 전체도 오랜 세월 동안 발달해 오는 과정에서 신경증과 비슷한 상태에 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류가 무지하고 지능이 낮았던 시대에는 공동생활에 불가결한 본능 자제가 순전히 감정적인 힘을 통해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원시 시대에 이루어진 이 과정은 유아기의 억압과 비슷하고, 그 침전물은 오랫동안 문명에 달라붙은 채 남아 있었다. 따라서 종교는 인류의 보편적인 강박 신경증일 것이다. 어린아이의 강박 신경증과 마찬가지로 종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생겨났다.

 

종교가 한편으로는 개인의 강박 신경증처럼 강제적인 제약을 가져오고, 또 한편으로는 현실 부정과 더불어 원망 환상의 체계를 이룬다면, 그와 같은 상태가 고립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멘티아 Amentia, 즉 행복에 넘친 환각적 정신 착란 상태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 엔돌핀/ 지젝은 이러한 현상을 현대 의학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신상태가 뇌의 작용인데 약물로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일본 사무라이가 선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예를 든다.

 

9.

종교와 교육

 

어떤 신자도 내 글이나 이와 비슷한 주장 때문에 신앙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신자들은 모종의 감정적 유대로 종교적 교리에 묶여 있다./ 이들은 종교의 위협에 겁을 먹기 때문에 문명의 명령에 복종하며, 종교를 자신들이 꼼짝 못하게 갇혀 있는 현실의 일부분으로 여기는 한 종교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이 상대적 퇴화를 초래한 책임에 종교 교육이 큰 몫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 세뇌의 교육/ 메타인지의 교육/ 종교의 본질적 교육은 메타인지를 높이는 게 종교의 역할이다. (영성개발)

 

 

어린 시절부터 줄곧 종교적 환상이라는 달콤한 ─ 또는 달콤씁쓸한 ─ 독을 주입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분별 있게 키워진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신경증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들은 신경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마취제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 세뇌/ 맹목적 종교의 신앙을 비판/ 비판적 이성적 사고가 필요하다.

 

10.

과학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내 환상은 망상적 성격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과학이 종교적 믿음을 약화시켰고 신앙을 뒤엎으려고 한다는 이유로 과학을 용서하지 못한다. 과학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너무 적은 반면, 애매한 상태로 남겨 둔 분야는 그것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다는 비난을 받는다.

 

과학적 연구 방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 4 가지

첫째, 우리의 유기체 ─ 즉 심리적 기관 ─ 는 외부 세계를 탐구하려는 노력으로 발달해 왔고, 따라서 자신의 구조 속에 어느 정도의 합목적성을 실현했을 것이 분명하다.

둘째, 우리의 유기체는 그 자체가 우리의 연구 대상인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구성 요소이며, 따라서 과학적으로 연구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

셋째, 세계는 우리 자신의 육체가 지닌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어떻게 보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고 해도, 과학이 할 일은 사실상 그것이 전부이다.

넷째, 과학의 궁극적 결과를 얻는 데 사용한 방법 때문에, 우리 자신의 유기체만이 아니라 거기에 영향을 준 외부의 사물도 과학의 결과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끝으로 세계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는, 그 세계를 지각하는 우리의 심리적 기관을 무시할 경우, 하나의 공허한 추상 개념에 불과하다./ 아니, 우리의 과학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을 다른 데서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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