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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 2차 발제문(p127-169)

원문 : S. Freud, Massenpsychologie und Ich-Analyse(1921)

 

哲,테츠)[문명 속의 불만] - 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 2번째(8-1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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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발제한 앞부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지난 시간의 내용은, 군중의 일원으로서 개인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집단 심리학은 어떻게 분석하고 서술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 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르 봉, 맥두걸, 등의 당시대 집단 심리학에 대한 연구의 내용들을 살피고 비판점을 제시하며 자신의 논의를 전개합니다. 그들의 분석이 집단적 모습을 분석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집단 속 개인의 심리와 모습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집단 심리 분석을 핵심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집단 속 개인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서 집단과 지도자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암시>, 리비도에 의한 집단적 유대, 동일시 등의 과정에서 개인이 집단과 어떻게 연결되고, 그 안의 지도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집단 심리적 현상이 드러나고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8. 사랑에 빠짐과 최면>에 들어가며, 리비도 집중과 사랑의 현상을 통해 바라보는 집단 심리에 대한 분석을 시작합니다.

 

8. 사랑에 빠짐과 최면

사랑에 빠짐은 직접적인 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성본능의 리비도 집중이며 평범한 관능적 사랑’(128)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리비도는 단순한 상태가 아닌, 욕구가 되살아나는 방식으로 성욕이 없는 동안에도 <사랑>하는 방식의 리비도 집중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하나의 요인을 더 추가하여, 어린이와 부모의 관계에서 <목적이 금지된> <정애적> 감정의 본능(128)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초기 관능적 무의식에 보존되고 경향으로 존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 동일시에서 살펴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성격에 이에 해당하겠습니다.

이후, 사춘기 시기에는 성적 목적을 추구하는 관능적 경향의 충동이 생겨나는데, 이는 존경하는 여자와는 감정적인 관계를 가지지만 성행위적 자극은 받지 못하는 한편, <사랑>하지 않는, 오히려 경멸하는 여자와만 성행위를 할 수 있다 합니다. 그러나 청소년은 성스러움과 세속성을 어느 정도 통합하는 경우가 많고, 프로이트는 이에 대해서, “억압되지 않은 본능과 목적이 금지된 본능 사이의 상호 작용”(129)이라고 특징 짓습니다.

사랑에 빠짐에 대해서 우리는 늘 성적인 과대평가를 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관능적으로 사랑한다는 착각, 이런 성적인 과대평가에 의해 판단이 왜곡되는 경향을 <이상화>(129)라고 합니다. 사랑의 대상을 자아와 똑같이 여기며 자애적 리비도가 대상에게 넘쳐흐른다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그 대상을 사랑하는 까닭은 우리 자신의 자아가 도달하려고 애쓴 완벽함을 그 대상이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는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우회적 방법으로 그 완벽함을 손에 넣고 싶어 한다.”(130) 사랑을 만족시킬 수 없는 불행한 경우 이런 일이 더 쉽게 일어나는데, <대상이 자아 이상을 대신했다>는 말로 설명합니다.(131)

극단적으로 사랑에 빠짐의 상태에서 자아는 대상에 굴복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대상에 리비도를 집중하는 <사랑의 노예>(131)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시는 이와는 다르게 대상을 자신 속에 <투사Introjektion>(131)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동일시의 경우에는 대상이 사라지거나 포기되고, 그런 다음 자아 속에 다시 확립되고, 자아는 사라진 대상을 모델로 삼아 부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입니다.(131)

사랑에 빠지는 것과 최면은 어떤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는데, 최면에 걸린 사람은 복종하고 자아 주도권이 약해집니다. 최면적 관계는 성적 만족이 배제된 무제한의 헌신과 같다.”(132)고 표현합니다. 반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성적 만족이 잠시 억제된 상태로 언젠가는 달성할 수 있는 것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최면적 관계를 통해 집단의 리비도적 구조를 파악하려 하지만, 최면에 대한 수수께끼가 많고 미지의 요인이 많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집단의 리비도적 유대의 구조, 지도자가 있고 <조직화>에 의해 개인의 특징을 이차적으로 획득하지 못한 집단의 구조가 있음을 설명합니다.(134 도표)

 

9. 군거 본능

집단 심리학에서는 집단의 감정적 유대의 특징들을 밝히는 것 이상으로, 집단에서 퇴행의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퇴행을 억제하기 위한 집단의 조직화를 주장합니다. 집단 구성원들의 상호 의존 현상 가운데 사회적 구조, 민족성, 계급, 여론 등의 다양한 형태가 집단 심리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앞서 지도자에 의한 암시와 동일시의 영향력을 강조하여 설명하였는데, 이 챕터에서는 상호 암시’(136)의 요소를 살펴봐야 함을 주장합니다.

프로이트는 트로터의 <군거 본능>(136)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집단에서의 정신적 현상을 살펴보려 합니다. 군거성은 개인이 혼자 있을 때 자신을 불완전하게 느끼는 것, 또는 혼자 있거나 고립에서 보이는 공포와 불안에서 나타나는 원초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트로터의 정신분석의 군거 본능의 근거를 말의 상호 이해에서 도출하기도 합니다. 앞서 르 봉이 전형적인 집단, 맥두걸이 안정된 조직에 관심을 보였다면, 트로터는 <정치적 동물>(137)로서 인간의 일반적 형태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트로터에게 군거 본능은 원초적인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우리는 오히려 지도자를 무시하고는 집단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에 마음이 쏠린다.”(138)고 말하면서 군거성 기반의 트로터 서술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어린이는 오랫동안 군거 본능이나 집단 정서와 비슷한 것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138)는 언급처럼, 어린이가 자기가 손해를 보는 상황에 마주하면서, 결국 다른 아이들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밖에 없어 한다는 어린이 집단의 상황을 통해 군거 본능이 원초적 본능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군거 집단적인 정서는 서로 동등하게 대우 받는 정의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제기되며, 공동체 의식과 집단 정서가 생겨나고, 학교에서 더욱 발전한다고 주장합니다.(139)

원래는 서로 연적이었음에도, 그들은 동일한 대상에게 비슷하게 사랑에 빠져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서로 동일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139)는 표현도 군거의 특징을 설명하는 매우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집단의 기원을 시샘에서 유래했다는 표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모두가 같아야 한다는 사회 정의와 평등에 대한 요구 등의 사회적 감정(140), 앞서 교회와 군대의 집단성에 대한 논의처럼, 평등화가 일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트로터의 원초적 의미의 군거성 보다는, 집단적 평등의 현상을 원하는 상황으로서 <군집 동물>(141)이라는 표현을 통해, ‘우두머리의 통솔을 받는 집단 속의 개체’(141)라는 주장을 전개합니다.

 

10. 집단과 원시적 군집

다윈의 추론에 근거한 원시적 군집의 형태들, 이런 형태는 대등한 동료들의 무리 속에 우세한 힘을 가진 한 개인이 끼여 있는 낯익은 상황”(142)으로, 이런 군집의 성격이 집단의 형성에 습관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집단 심리는 매우 오래된 현상일 것입니다.

그만큼 개인의 심리도 오래되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집단을 이루는 개인의 심리로서 아버지, 우두머리, 지도자’(143)의 심리가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개인을 니체의 위버멘쉬(Übermensch)의 초인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위버멘쉬의 개념은 정말 논쟁적인 개념이지요.) “지도자는 남을 사랑할 필요가 없다. 그는 절대적인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혀 있고, 자신만만하고 독립성이 강한 독불장군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144)

이런 지도자를 상실하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대체하는 상황들이 일어나는 경우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상상은 한 가지라고 하는데, 아버지가 아들의 금욕을 강조시킨 결과, 아들은 목적이 금지된 성충동의 감정을 집단 심리 속으로 몰아넣는 형태(144)라 말합니다. “그가 성적 만족을 경계하고 용납하지 않은 것이 결국 집단 심리의 원인이 되었다.”(144) 이후 후계자에게는 성적 요구를 언제든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 등의 집단 심리 조건에서 벗어나는 가능성이 열리면서 지도자적인 나르시시즘은 유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위적인 집단의 통합을 이루는 데 있어서, ‘교훈적인 것은 유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 시간, 군대와 교회의 집단의 유지와 리비도적인 감정적 유대의 관계에서 살펴 보았듯이, 모든 구성원들이 공평하게 사랑받는 것에서 집단이 유지되고 있음을 상기해봅시다. 이런 공평하게 사랑한다는 환상’(145)이 원시적 군집에 작동하며, ‘아버지의 공평한 사랑’(145)이 가족의 집단에 적용되고 있음을 언급합니다.

이렇게 원시적 군집의 특성에서, 집단의 형성과 통합의 뿌리를 살펴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집단적 <최면>이나 <암시> , 아직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으스스한 특징은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던 무언가 친숙한 것을 암시한다.”(146)고 말합니다. 최면의 상태가 어떻게 유도되고, 유지되는지, 그것은 신비로운 힘처럼 작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최면은 시술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혹은 특정한 대상에 집중하는 것처럼, ‘의식적 주의력을 다른 데로 돌려서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146)에서 시작하는데, 이것은 원시적인 특성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원시적으로 절대자의 눈을 바라본다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사이를 중개할 수 있는 역할로서 지도자의 역할과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면에 걸린 이들은 최면술사에게 집중하며, 최면술사에게 친밀감과 신뢰감을 느끼고 감정을 전이하는 상태에 빠져든다.”(147)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최면술사에게 쏠려 있는 상태인 것이죠.

이런 상황을, “최면술사는 자신을 피시술자의 부모 자리에 놓고 있다는 것이다”(148)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때로는 자상한 어머니로, 때로는 엄격한 아버지를 모델로 피시술자의 관심을 집중하게 합니다. 그런 집중이 일어난 뒤로 최면에 빠진 상태에서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뒤로하게 됨을 지적합니다. 연이어 이런 집중의 단계는 피시술자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오랜 유산’(148)을 일깨운다 합니다. 그 유산은, 부모에 대한 순종, 아버지와의 관계의 기억, 즉 권위에 대한 굴복과 순종, 수동적인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집단에 아버지, 부모에 대한 사랑의 리비도적인 원시적인 군집의 특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최면은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며, “암시는 성애적 결합에 바탕을 둔 확신”(149)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11. 자아 속의 한 단계

프로이트는 당시의 르 봉 등이 관찰했던 일시적인 집단의 특징들, 개인이 집단 안에서 퇴화하고 사라지는 경이적인 현상을 마주하는 것을 쉽게 집단에서 볼 수 있음을 서술합니다. 그러나 이 경이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경이란, “개인이 자아 이상을 포기하고, 그것을 지도자 안에서 구현된 집단 이상으로 대치한 것을 의미”(150)합니다. 자아는 나르시시즘적인 성향의 자기애적 만족을 통해 지도자를 선택하는데, 이런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단지 개인들의 전형적 특징을 유난히 뚜렷하고 순수한 형태로 지니고 있으면 충분하고, 남들보다 더 위대한 힘과 더 자유로운 리비도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만 주면 된다.”(150)는 표현처럼, 자아들이 알아서 강한 자아를 지도자로 만들고, 그에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집단의 구성원들은 집단 내부에 휩쓸리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집단적 특성이 리비도적인 결합을 통해 유지되고 있음을 해명하였고, 자아가 이상과의 동일시를 통해 집단을 가능하게 해왔다는 것을 앞서의 분석들을 통해 밝힐 수 있었습니다. 자아 분석은, “외적 대상과 자아 전체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상호작용이 자아 내부의 새로운 활동 무대에서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점”(151)을 상기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정신적 분화와 관련된, 정신증의 상태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외부 세계와의 관계는 대상에 대한 발견과, 그 새로운 상황을 다시 초기화 하는 과정에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초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수면으로, 우리는 외부 대상의 회피가 가능한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 대부분을 일시적으로 제거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아 밖에 남겨진 무의식적이고 억압된 부분”(152)의 자아는 충격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런 상태에 대한 신경증의 심리학은 더욱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자아와 자아 이상의 관계도 지속적인 것은 불가능하고, 여기서 나타나는 억압과 제한을 풀어내기 위한 장치로 축제와 같은 해방의 순간이, ‘자아 이상을 폐기하는축제가 필요합니다.(153) 이를 통해 다시 자아 이상과의 합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초기화를 하지 못하고, 수시로 억눌린 기분과 고양된 기분의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멜랑콜리(Melancholie)의 울증, 마니(Manie)의 조증의 형태를 오가며 당사자의 삶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문제는 이런 문제점의 특별한 동기를 찾기 어렵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를 자연 발생적 기분 변화’(154)라고 말하며 아직 그 메커니즘을 밝히지 못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자아 분석을 근거로 하면, ‘조증자아와 자아 이상이 하나로 합치된 것일테고, ‘우울증자아 이상이 지나치게 민감해진 나머지 열등 망상과 자기 멸시에 사로잡혀 자아를 가혹하게 비난하는 것일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합니다.(154) 그럼 문제는 이 기분의 변화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원인을 설명하는 데에 있습니다.

우울증에서 조증으로의 변화는 자연발생적일 수 있습니다. 죽음 혹은 리비도의 철회와 같은 상황에 의한 우울증은 조증으로 순환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더 나아가, 심인성 우울증도 자아 이상에 대한 자아의 주기적 반항’(155)이라는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아는 자아 이상의 학대 - 거부된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했을 때 자아가 당하는 학대 - 에 시달리다 못해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156)

 

12. 보유

여기서는 앞서 논의에서 발견한 통찰들에 대해 다섯 가지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1) 자아의 대상에 대한 동일시, 그리고 그 대상이 자아 이상을 대신하는 모습을 앞서 두 인위적 집단인 군대와 교회에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군대는 동료들과 자아의 동일성을 유지하지만, 자아 이상의 대상으로서 상관과의 관계를 통해 유지되는 집단입니다. 교회는 약간 다르게, 동일시를 통해 모든 성도와 결합하지만 신과의 동일시도 요구되면서, 모든 신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리비도적 유대에 의한 동일시가 중요한 집단입니다. 이런 리비도의 분배가 기독교로 하여금 더 높은 윤리적 수준에 도달하게 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2) 여기서는 집단 심리에서 개인 심리로의 진보’(157)를 특정한다 말하며, 집단의 발전사를 집어보고 있습니다. 초기 세상을 창조한 아버지, 그리고 그를 죽이고 형제들 중심의 토템 공동체적 형태, 아버지가 없는 시대의 여성의 지배, 그 특권을 무너뜨리고 등장하는 수많은 아버지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아버지의 역할을 동경하고 복구하고자 하는 관계에서 등장하는 최초의 서사 시인과 영웅신화가 등장합니다. 이런 영웅 신화는 개인이 집단 심리에서 빠져나가는 첫걸음”(159)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심리학적인 영웅 신화, 영웅은 시인 자신으로, 원시적 아버지를 동경한 자신을 영웅과 동일시하고 이를 신격화에 이르게 하며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신의 반열에 놓인 그 과정을 추적할 때, 연대순으로 어머니 여신 - 영웅 - 하느님 아버지’(160)의 단계로 나아온, 신으로 승격할 때 거기에 우리가 인정하는 신적인 특성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성 본능과 목적 달성이 금지된 성 본능에 대해 언급하며, 어린이 리비도 발달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사랑의 형태는 어린이가 애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적 충동의 형태로 관찰이 가능합니다. 어린이의 사랑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형태가 일반적이라 합니다. “정신분석은 유년 시절 초기의 성적 결합이 억압된 상태로 무의식 속에 여전히 존속한다는 사실을 쉽게 입증할 수 있다.”(161)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리비도적 집중과 효력이 유지되고 있는지 항상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적 목적을 전혀 갖지 않는 충동의 표현’(162)이 발견될 수 있는데, 이것은 성적 목적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것일 수 있으며, 이런 목적의 전환을 성 본능의 승화’(163)의 가능성으로 포착합니다. “성 본능은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항구적인 유대를 창조하는 데 특히 적합”(163)할 수 있습니다. 성적인 만족을 얻으면 에너지를 상실하고, 다시 리비도가 축정되어 충동이 살아나기를 기다려야 하고 그럴 때에 충동 대상이 바뀌기도 합니다. 따라서 목적 달성이 금지된 성 본능이 때로는 대상이 바뀌어 금지되지 않은 성 본능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감사와 존경에 바탕을 둔 우호적인 성격의 감정관계가 얼마나 쉽게 성적인 소망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163)도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목적 달성이 금지된 성 본능은 내적 혹은 외적 장애에 의해 달성하지 못하는 성적 목적에서 나타났을 수 있습니다. 원시적 군집에서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금욕의 강요, 반면 아버지는 모든 성적 만족을 누린 상태에서 금지된 성 본능이 집단 형성에 관계하는 양상도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4) 성 본능은 집단 형성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성적 결합을 원하는 두 사람은 집단에 저항하고 서로에게 만족을 추구합니다. 이런 애정 관계의 개인적 요소(정애적 요소)가 관능적 요소로 바뀌면, 남들 앞에서의 성교, 혹은 난교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태는 사랑에 빠지는 상태가 아닌, 모든 성적 대상이 동등한 가치로 여겨진 단계 퇴행이 일어난 것으로 봅니다. “버나드 쇼는 사랑에 빠지는 것만큼 한 여자와 다른 여자의 차이를 크게 과장하는 것은 없다는 짓궂은 경구를 남겼는데,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모든 여자가 다 어슷비슷해 보인다.”(165)

사랑에 빠짐은 남녀의 성관계에서 나중에야 나타나는 것처럼, 성애와 집단 결합의 대립도 나중에 생겨난 것이라고 말합니다.(165) 가족 내부의 여자들과 성관계가 금지된 족외혼의 규칙에 따라, “남자들은 낯설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들을 상대로 관능적 욕구를 만족시켜야 했습니다.(166) 또 다른 성격의 집단인 교회와 군대의 인위적 집단에서는 성적 대상으로서 여자의 공간이 없다고 합니다. 이는 리비도적 성격이 동성 혹은 이성애적 성격이 아닌, 성기에 대한 리비도 목적에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집단에 완전히 흡수된 경우에도 지나친 성 충동은 집단 형성을 붕괴시킵니다. 성충동에 따라 사랑에 빠질 때, 여성에 대한 사랑은 민족과 국가 및 사회 계급의 집단적 유대를 깨뜨리는”(166) 상태로 나타나며, 사랑에 빠짐이 문명에서 중요한 결과를 가져옴을 언급합니다. 반면 동성애는 성 충동에 따를 때에도 집단적 유대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경증 증세의 근본 원인이 성 충동의 억압과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제시합니다.(167) “신경증은 사랑에 빠짐과 똑같이 집단을 붕괴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이와 반대로 집단 형성에 자극이 주어지면 신경증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집단 형성을 통한 신경증 치료의 시도들이 다수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67) 혹은 신화-종교의 종파, 철학-종교적 공동체의 유대를 통한 우회적 신경증 치료도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직접적인 성 충동과 목적 달성이 금지된 성 충동의 대립과 관련되어 있다”(167)는 것이 프로이트의 설명입니다.

신경증 환자가 방치되면, 자기가 배제된 집단 형성을 대체할 수 있도록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망상의 체계를 만듭니다. 이런 뒤틀린 재현, 직접적 성 충동이 신경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168)

(5) 마지막으로 리비도 이론의 관점에서 사랑에 빠짐, 최면, 집단, 신경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빠짐>은 성 충동과 그것을 금지하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대상이 자애적 자아-리비도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상태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자아와 대상만이 있습니다. <최면>은 사랑에 빠짐에 비슷하지만, 목적 달성이 금지된 성 충동에 바탕을 두고 대상이 자아 이상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집단>은 이런 과정을 증대시키고, 집단적 결속은 최면과 성격이 일치하는 것을 보입니다. 하지만 집단은 다른 개인들과의 동일시 관계가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최면과 집단 형성에서는 목적 달성이 금지된 성 충동이 성 충동을 대신할 때 자아와 자아 이상의 분리를 촉진한다고 합니다.(168)

<신경증>은 사랑에 빠짐이 배제된 퇴행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성 본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나타납니다. 신경증은 자아 속 본능과 억압된 무의식 본능의 <갈등>을 나타내는 상태입니다. 신경증은 자아와 대상의 관계에서, 대상이 존속 혹은 포기 혹은 자아 속으로 들어가는 관계를 포괄하고, 자아와 자아 이상의 대립 관계도 포괄하여 내용이 풍부하다는 설명으로 논문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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