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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관리정치의 탄생 강의는 다른 강의와 다르게 자신과 동시대의 문제인 신자유주의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구 주제로 설정한 특징이 있다. 1975~76년 강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만들어 낸 생명관리권력과 생명관리정치개념에 대해 1977~79년 강의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통치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 세 가지 개념의 관계는 푸코의 사유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본 강의에서 생명관리정치를 명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선 푸코가 정의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구성요소를 살펴봄으로써 생명관리정치에 대한 푸코의 비판을 살펴보면,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과 자유주의의 역사를 논하고 있다는 점, 인간과학에 대한 비판을 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푸코 사유의 변화라기보다는 심화라고 볼 수 있다.

 

1. 통치성과 자유주의

통치성이라는 말은 푸코가 만들어 냈는데, 국가를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통치성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본 강의에서는 그 중 두 가지인 생명관리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절차·계측·전술의 총체와 통치라 불릴 수 있는 권력의 우세한 경향에 근거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미시권력의 장에 대한 분석을 하던 푸코가 본 강의에서는 국가가 어떻게 권력관계를 발생시키며 인구를 통치하는가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뒀다.

생명관리권력=인간의 생명에 행사되는 권력=규율권력(미시권력)+생명관리정치(거시권력)

생명관리정치=18세기 이래 인구로 구성된 생명존재들 전체에 고유한 현상을 통해 통치실천에 제시된 문제들을 합리화하는 방식.(말이 너무 어렵네요.)

통치성은 거시권력에 연관되어 있지만 미시권력의 분석 역시 통치성의 문제에 적용가능하다.

또 다른 문제로 자유주의가 있는데, 푸코는 자유주의를 경제 영역에서 검토하고 경제 이론으로서 연구하기도 하지만, ‘통치술통치의 독트린으로서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 독창적이다.

자유주의의 특징: 통치의 허약성, 시장 강조

17세기까지의 시장=규제의 공간(판매자와 구매자간 공정가격 확보)+ 분배적 정의의 공간(생필품 획득 권리+소비자 보호 공간

18~19세기 초 고전적 자유주의의 시장=자연적 메커니즘에 복종하는 공간(수요와 공급, 즉 교역에 의한 가격 형성)+진실이 현시되는 장소(통치에 관한 진실을 현시하는 시장, 진실진술의 공간)

19세기 신고전적 자유주의: 시장은 교역이 아닌 경쟁의 장소.(찰스 다윈 <종의 기원>이 출간된 시기가 1859년이라는 점이랑 묘하게 일치함)

20세기 신자유주의: 예로 독일의 질서자유주의를 보면,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 주권을 생산해내고, 경제와 경제성상 자체가 국가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정치적 범주는 경제적 범주에 의해 자율성을 상실하고 만다. 케인즈의 복지국가모델과는 달리 시장 원리에 경도된 신자유주의적 통치에선 정치적 심급의 자율성은 파괴되고 경제적인 것에 예속된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경쟁이 자연발생적 현상이 아닌 개인의 활동을 조정하고, 사회를 조직화하는 방식으로 조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쟁은 통합에 의한 구축적 노력의 효과로 산출된 사회 통치의 원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을 통해 사회를 조직할 때, 통치는 자유방임이 아닌 시장 내 경쟁을 구축하기 위한 적극적 개입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2. 경제-사법적 질서 부과를 통한 기업사회의 구축

질서자유주의자들은 계획경제를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데, 그들의 개입과는 무엇이 다른가? 계획경제가 시장메커니즘에 직접 개입하는 것과 다르게, 질서자유주의적 통치술은 시장의 조건에 개입한다. 시장의 존재 조건인 규칙·제도 같은 에 개입함으로써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경쟁 원리를 통해 경제절차를 조정하여 사회를 통치하려는 통치술인 것이다. 예로 정년 보장의 폐지, 성과급의 도입이 있으며, 이로 인해 노동자는 개인별 목표, 자기점검, 개인별 급여 같은 지속적 통제를 받게 되어 노동환경은 구조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불안정해진다. 요컨대 경쟁이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에 경쟁을 촉발시켜 상시적인 통제매커니즘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예로 케인즈주의적 목표인 완전고용을 포기한다. 실업자란 없으며, 노동 이동의 가능성(유연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정 수준 실업을 용인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한다.

세 번째 예로 역시나 케인스주의적 목표인 소득 재분배가 무시된다. 모든 위험의 책임과 부담은 개인에게로 유도된다. 사회보장의 축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공 영역의 축소로도 이어진다.

신자유주의적 통치는 사회의 토대가 되는 기초 구성단위들을 기업으로 간주하고, 사회를 기업의 형식으로 대체하여 사회 전역에 시장·경쟁 원리를 확산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다.

 

3. 인적자본론과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전횡

인적자본론: 경제학이란 서로 배타적 쓰임새를 갖는 희소 수단과 목적 간의 관계로서의 인간행동(노동)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맑스적 노동=생산을 위해 일정 시간만큼 팔 수 있는 노동력

인적자본론 노동=자본(노동자가 가진 적성과 능력의 총체)+소득(적성·능력·자본에 할당된 임금)

노동자는 자신의 능력자본을 소유하고, 이를 투자해 임금을 받는자, ‘자기 자신의 기업자가 된다.

능력자본=인적자본=생득 요소(선천적인 것)+획득 요소(교육을 통해 획득되는 후천적인 것)

그러므로 인적자본은 교육, 교육투자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투자는 자본뿐만 아니라 비경제적 영역인 부모의 시간과 에너지도 포함되고, 이는 결국 비경제적 영역에 속하는 모든 행동을 경제적 분석 대상으로 변형시키는 사유와 태도를 만연시켰다.

또한 인적자본론은 이동성을 중시하는데, 이동이란 투자이며, 이동하는 자는 일정한 향상을 얻어내기 위해 일정한 투자를 행하는 자기 자신의 기업가로 여겨진다.

인적자본론에 따르면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향상을 위해 자기에게 투자하고 자기의 비용을 관리하는 자기 자신의 기업가여야 한다. 규범을 내면화해 자기를 통제하는 규율적 주체는 자기를 투자의 대상으로서 관리하는, 요컨대 시장 원리를 내면화해 자기를 통제하는 경제 주체로 예속되고, 호모 에코노미쿠스(자기의 행동을 최대한 합리화하고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인간)로 환원된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통치는 시장화된 자기통치의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자만을 사회 안에서 살게 하고’, 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저항하는 자는 가차 없이 사회 바깥에서 죽게 내버려둔다.’

 

4. 자기해방의 실천과 그 윤리

신자유주의의 예속화를 극복하려면 주체화’, 권력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를 다른 방식으로 재창조하려는 저항적 자기변형이 실천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제기되는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철학적 과제는 국가나 제도로부터 개인의 해방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에 결부된 개별화 방식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다.”(주체와 권력, 1982)

푸코는 우리에게 보편적·필연적·의무적인 것으로 주어진 것 내에서 특수하고 우연하여 자의적이고 강제로부터 기인하는 것의 몫이 얼마인가?”를 묻고 거기에 실천적·저항적으로 답하는 것이 오늘날 비판의 역할이라고 단언한다. 푸코는 이런 비판을 우리 자신에 대한 역사적 존재론혹은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적 존재론이라고 부른다. 푸코는 이 비판의 철학적 에토스를 자유로운 존재로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가하는 자유로운 작업이라고 규정한다.

푸코가 비판하는 대상은 현대성이다. 어떻게 현대의 개인이 역사적으로 구축됐는지를 파악하려는 것인데, 이런 구축과 관련해 인간과학들은 정상적인 개인들과 비정상적인 개인들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공하여 개인의 규율적 정상화, 규범에 복종하는 개인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된다. 그러므로 인간과학들의 고고학을 수행할 필요가 있으며, 현대성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안전, 영토, 인구생명관리정치의 탄생는 인간과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 통치기술로서의 자유주의·신자유주의에 대한 고고학과 계보학이다.

푸코가 통치성에 대한 계보학적 성찰을 통해 시도한 것은 통치성 자체에 대한 연구라기보다는 주체가 독자성을 획득할 가능성의 타진이다. 두 책은 푸코는 자유주의적 통치의 토대를 현시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푸코가 이런 기획을 시도한 이유는 이 권력의 양태에서 주체의 독자성을 보존할 수 있는 최적의 보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성의 역사의 마지막 두 권, 콜레주드프랑스에서의 1981~84년 강의에서 푸코는 이전과는 다르게, 이간을 자기 자신과 화해시키고 규범의 전횡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인간을 예속시키는 권력 작용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미학적·윤리적 대항품행과 대항담론, 저항의 정치전략을 창조하려 시도한다. 푸코는 19세기의 미시권력과 인간과학이 합작한 인간이라는 예속된 주체를 대체할 새로운 주체성을 창조하려고 한 것이다.

푸코는 이런 사유를 체계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 마이너문헌을 읽고 분석하는데, 이를 통해 푸코는 오직 자유인만이 타자를 지배할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인은 우선 자기 자신을 지배해야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자유인은 자기배려를 의식적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자기배려란 당연히 자기 자신에 관심을 갖는 행위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과는 전혀 다르다. 푸코는 자신의 결점에 대한 지난한 점검, 표상의 점검과 수정, 욕망의 제어, 자발적 가난의 실천 등 자기수련에 몰두해 자신을 자족적 주체로 만들려는 주체화, 지속가능한 작품으로서의 주체 생산 쪽으로 배려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으로의 전향이고 여기서 주체는 완전히 자기 자신으로 회귀해 자기 자신에 몰두해야 한다.” 자기배려는 생활의 기술과 불가분한, 자기를 수양하고 교정하는 중요한 가기기술이다. 푸코가 개인의 장기통치, 나아가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공들여 만드는 실천적 작업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푸코가 강조하듯이 제도로서의 정치권력에 관련된 이론은 흔히 권리 주체라는 사법적 개념에 갇혀 있다. 반면에 통치성의 분석, 즉 역전과 변형이 가능한 관계들의 총체로서의 권력에 대한 분석은, 자기와 자기가 맺는 관계를 통해 정의될 수 있는 새로운 주체화 혹은 주체 생산의 테크닉 및 윤리와 직결되어 있다.

권력관계-통치성-자기의 통치와 타자의 통치-자기와 자기가 맺는 관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_옮긴이 해제 발제_윤명_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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