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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총론

젊은 소크라테스는 일찍이 늙은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듣고서, 소위 소피스트의 대중적 철학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공리주의의 이론을 펼쳤다(“다른 종류의 결과를 낳지 않는다면 모든 것들은 쾌락을 낳는 한 좋고, 고통을 낳는 한 나쁘다.”). 저 오래된 소크라테스의 시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주제는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다(p. 10).

 

도덕철학: 1원리의 수립이 필요하다

1원리들과 학문의 상관관계는 기초와 건물의 관계가 아니고, 뿌리와 나무의 관계와 같다. 뿌리는 비록 그 밑바닥까지 캐내려가 거기에 빛을 들이대지 않아도, 땅속에서 제 기능을 잘 발휘하기 때문이다(p. 11).

 

학문에서는 개개의 구체적 진리가 일반 이론에 앞서서 정립되지만, 도덕이나 법률 같은 실천적 기술의 경우에는 정반대로 일반 이론이 먼저 정립되고, 그 다음에 개개 진리들이 따라 나온다(p. 11).

 

사상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의 도덕적 능력은 도덕적 판단의 일반 원리들만 제공해준다. 그 도덕적 본능은 도덕의 추상적 원리를 파악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뿐, 구체적 상황 속의 도덕을 인식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p. 12).

 

선험과 경험: 도덕 법칙의 두 바탕

직관 학파는 도덕학에서 기본 전제가 되는 선험적 원리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나아가 그런 다양한 원리들을 제1원리로 압축하려는 노력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p. 13).

 

공적인 제1원리가 없기 때문에 윤리학은 하나의 행동 지침이 되지 못하고, 인간의 실제 감정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런데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인간의 감정은 어떤 사물(혹은 사건)이 그들의 행복에 미치는 효과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리하여 효용의 원리, 혹은 벤담이 나중에 명명한 최대 행복의 원리는 도덕적 이론을 형성하는 데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고, 심지어 공리주의를 경멸하면서 거부하는 사람들의 도덕 이론에도 영향을 주었다

(p. 14).

 

공리주의는 도덕의 제1원리

어떤 행위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도덕률의 여러 세부사항에서 가장 구체적이면서 가장 지배적인 고려사항이다.

 

이 위대한 철학자(칸트)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책(도덕 형이상학)에서 도덕적 의무의 근원이면서 터전이 되는 보편적 제1원리를 주장했다. 그 원리는 이러하다. “그대 행동의 바탕이 되는 법칙이 모든 합리적 존재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 법칙이 되도록 하고, 그 법칙에 따라 행동하라.”

그러나 칸트는 이 원리로부터 도덕의 실제 의무사항들을 추출하면서 인간들이 그런 보편 법칙을 실천할 때 모순사항이 발생하고, 또 그 법칙의 실천이 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거의 기괴할 정도로 보여주지 않는다(p. 15).

 

궁극적 목적이라는 것은 직접적인 증거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언가가 좋다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좋다고 인정된 무언가로 가는 수단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의술-건강 / 음악-즐거움(p. 16)

 

나는 공리주의의 의미에 대하여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완전한 개념이 이 사상을 거부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공리주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공리주의와 공리주의가 아닌 것을 서로 구분하고, 공리주의를 오해하거나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여러 가지 실제적인 반대 의견들을 물리치고자 한다. 이와 같이 사전 작업을 한 후에는, 철학적 이론의 하나로 간주되는 공리주의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p. 17).

 

2장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공리 주의에 대한 잘못된 통념(p. 19-20)

- 공리(utility, 효용유용)를 쾌락의 정반대라는 제한적이면서 구어적인 의미로 사용

- 공리주의란 결국 모든 것을 쾌락의 관점에서 보는 사상

- 공리주의는 구체적 형태의 쾌락, 가령 아름다움, 장식, 오락 등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상

 

쾌락과 행복

도덕의 밑바탕으로 <공리> 혹은 <최대 행복 원리>를 받아들이는 사상(공리주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어떤 행위가 행복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옳은 행동이 되며, 만약 불행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그른 행동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어떤 의도된 쾌락이며, 고통이 없는 상태이다. 반면에 불행은 쾌락 없음과 고통을 의미한다(p. 21).

 

인생의 목적을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공리주의 더욱 못마땅하게 보인다. 공리주의는 돼지에게나 어울리는 사상이고, 철학의 아주 초창기 시절에 에피쿠로스를 추종하던 자들의 생각과 같다고 비난한다(p. 22).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돼지의 쾌락이 아니다

정신적 쾌락, 정서와 상상의 쾌락, 도덕 감정의 쾌락 등은 감각적 쾌락보다는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에피쿠로스의 인생 이론은 그런 쾌락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아, 공리주의 저술가들은 신체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을 더 우위에 놓는다(p. 24).

 

어떤 종류의 쾌락들은 다른 쾌락들에 비해 더 바람직하고 더 가치있다는 사실과, 공리의 원리(공리주의)가 서로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와 만족하는 바보

쾌락의 양과 질을 똑같이 알고 평가하고 즐길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더 높은 기능을 필요로 하는 존재 방식을 뚜렷하게 선호하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p. 25).

 

열등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기능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해지려면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며, 남들보다 더 날카로운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여러 지점에서 고통을 받아들일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성인은 그가 보기에 낮은 등급의 존재로 추락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p. 26). 자부심, 자유에 대한 사랑, 개인적 독립 / 품위(위엄, dignity)가 가장 잘 설명

 

우월한 사람은 다른 상황들이 동일하다면 열등한 사람보다 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주 다른 두 가지 개념, 즉 행복과 만족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p. 27).

 

고상한 쾌락 대 저급한 쾌락

고상한 쾌락이 본질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은 유혹에 넘어간다. 인간은 건강이 더 좋은 가치임을 완벽하게 알면서도 신체 건강을 해치는 감각적 쾌락들을 추구한다.

 

인간은 지적 감각을 상실하면 고상한 열망을 잃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지적 능력을 훈련시킬 시간과 기회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열망이 시들기 때문이다(p. 28-29).

 

고상한 쾌락과 저급한 쾌락 중 어떤 것이 더 좋은가, 어떤 양태의 인간 존재가 인간의 감정에 더 호소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하여 그 질문의 도덕적 속성이나 결과는 논외로 할 때, 고상한 쾌락과 저급한 쾌락을 둘 다 아는 사람들이 내린 판결(만약 만장일치가 아니라면 그들의 다수 의견)이 최종 판결이 되어야 한다.

 

그 둘을 잘 아는 잘 아는 사람들이 내놓은 다수결 의견 말고 대체 무엇이 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최종판결: “고상한 기능에서 나오는 쾌락은 인간의 (고상한 기능과는 무관한) 동물적 본성으로 느끼는 쾌락보다는, 그 종류(고상한 쾌락 대 저급한 쾌락)에 있어서 더 선호되어야 한다. 단 여기서 쾌락의 강도는 논외로 한다(p. 30).”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행복

공리주의적 기준: 행위자 자신의 최대 행복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고상한 성품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때 비로소 그 목적을 달성한다.

 

최대 행복의 원리: 다른 모든 것들을 욕망하게(바람직하게) 만드는 궁극적 목적은 (개인 자신의 좋은 목적이든 혹은 남의 좋은 목적이든 불문하고) 가능한 한 고통에서 면제되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즐거운 일이 많은 인생을 누리자는 것이다(p. 31).

 

공리주의 사상에 의하면, 인간 행위의 목적이 되는 행복이 도덕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행복은 인간 행위의 규칙이요 원칙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것들을 잘 준수하면 지금껏 위에서 말해온 삶을 모든 인류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형편이 허용하는 한, 지각을 가지고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도 그런 삶을 허용해야 한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반론

반대자들: “행복은 인생과 인간 행위의 합리적 목표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획득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p. 32).”

 

공리는 행복의 추구뿐만이 아니라 불행의 예방 및 완화도 목표로 삼고 있다.

 

인생의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그 주장은 궤변이거나 최소한 과장이다(p. 33).

 

공리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은 광적인 황홀함의 삶이 아니다. 몇 안 되는 일시적인 고통과 다수의 다양한 쾌락들로 이루어진 인생에서, 긍정이 부정을 압도하고, 전체 삶의 밑바탕으로서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순간들, 바로 그런 순간들을 가리켜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의 비참한 교육과 비참한 사회제도가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삶을 획득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p.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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