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배경에서 제기된 질문은 젠더가 어떻게 규제되며, 그런 규제는 어떻게 강제되고, 또 그 규제는 그것이 강제된 주체들에게 어떻게 결합되어 삶이 되는지를 묻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젠더가 규제된다는 것은 젠더가 규제에 선행하여 존재한다는 가정을 필요로 하는데, 정말 젠더 규제에 앞서 존재하는 젠더가 있는가? 아니면 젠더화된 주체는 규제에 복종하면서 생겨나고, 그 특정한 복종 형식 안에서 또 그 복종 형식을 통해서 생산되는 것인가? 복종은 규제가 젠더를 생산하는 과정 아닌가? 푸코 계열의 연구에서 비롯된 복종과 규제에 대해 적어도 두 가지 주의사항만큼은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1) 규제 권력은 이미 존재하는 주체에게 작용할 뿐 아니라 그 주체의 형상과 형식을 만든다. 게다가 권력의 모든 사법적 형식은 권력..
3장. 누군가를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것 : 성전환과 트랜스섹슈얼의 알레고리 주체의 의미와 경계가 이미 정해진 이런 세계에서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질문하기 시작할 때 나는 어떤 규범의 제한을 받을까? 그리고 내가 만일 주어진 진리 체계 안에 있을 여지가 없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로 이것이 푸코가 “진리의 정치학이 (...) 작동하는 가운데 주체의 불복종”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97) 머니의 연구소는 정상화라는 명목하에 트랜스섹슈얼들을 동원해 브렌다를 여성적으로 자라게 한 반면, 내분비학자들은 자연이라는 명목하에 데이비드에게 유전적 운명을 되찾아주는 트랜스섹슈얼리티의 성전환 절차를 처방한다. (109) 말하자면 유연성은 강제적으로 부과된다. 또한 자연스러움은 ..
가끔 여성 억압의 역사라는 우연성을 만들어준 상상의 관점을 제시한 ‘가부장제’라 불리는 것 이전의 시대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부장제 이전의 문화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은 가부장제의 자기물화를 폭로하려는 의도였지만, 그런 가부장제적 기획 자체가 또 다른 종류의 물화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가부장제’라는 개념이야말로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 놓인 명백한 젠더 불균형을 간과하거나 축소하는, 보편적 개념이 될 위협을 받았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상상 속 과거에 기댈 때에는 다소 주의가 요구된다. 남성적 권력의 자기-물화된 주장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여성적 경험의 물화를 발전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엥겔스의 이론이나 사회주의 페미니즘 같은 구조주의 인류학에 뿌리를 ..
젠더트러블 / 2.금지, 정신분석학, 그리고 이성애적 모태의 생산 / 주디스버틀러 / 2016.11.13.(일) /닥홍 3. 프로이트와 젠더 우울증 프로이트는 에고 형성과 성격에 우울증 기제가 핵심적이라고 구분은 하지만, 젠더 형성에서 우울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암시하는 수준에 그친다. 프로이트는 사랑했던 사람의 상실을 경험하면서 에고는 그 타자를 에고 자신의 구조로 합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이 욕망하고 사랑하던 타자의 상실은 바로 자아구조 안에 타자를 은신시키려는 특별한 동일시 행위를 통해 극복된다. 이러한 동일시가 정체성의 새로운 구조가 된다. 프로이트는 상실한 대상의 내면화와 유지과정은 에고의 형성과 대상 선택에 있어 결정적인 요건이라고 밝힌다. 한편 상실한 사랑의 내면은 젠더 형..
2016. 11. 06 작성자 안녕(윤채영) 5. 정체성, 성, 그리고 본질의 형이상학 버틀러는 정체성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젠더 정체성’ 논의인데 왜냐하면 ‘사람’이란 ‘젠더의 인식 가능성(gender intelligibility)'이라는 합의된 기준에 따라 젠더가 될 때에만 비로소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철학적 설명에서 개인의 정체성의 구성에 대한 질문은 개인의 어떤 내적 자질이 자기 동일성이나 연속성을 확립하는지를 거의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정체성이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을 통해 확보되는 한 ’비일관적‘이고 ’불연속적‘인 젠더 존재의 문화적 등장은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심을 품게 만들며, 이런 젠더 존재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문화적 인식 가능성이..
개정판 서문(1999) 10년 전 이 원고를 쓰면서 나는 나 자신이 특정한 형식의 페미니즘에 적대적이거나 호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당시 나는 페미니즘 문학 이론에 널리 확산되어 있던 이성애적 가정을 비판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젠더의 의미를 남성성/여성성이라는 기존 개념으로 한정짓는 관점을 반박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한 관점의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안에 배타적 젠더 규범을 설정하므로, 그것이 때로 호모포비아를 낳는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즉 나는 페미니즘이 새로운 위계와 배제 형식을 만들어 내는 특정 젠더의 표현물을 이상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보았다. 특정 종류의 젠더 표현물은 거짓과 변종이며, 진짜와 원본은 다른 데 있다는 식의 진리체계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
화니짱. 1. 버틀러의 주요 개념들.1) 사법적 모델 : 인류학이나 정신분석에서 인간 문명의 기원점으로 꼽는 금기나 금지는 사실 금지해야 할 어떤 욕망이 이미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푸코나 버틀러가 말하는 사법적 모델, 법적 모델은 그런 욕망이 있다고 이미 전제하고 조작해둔 것이 법이나 권력이라는 설명모델을 의미한다. 2) 생산적인 권력 : 권력은 주로 억압적이라고만 말해져왔지만, 푸코나 버틀러에게 권력은 억압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반복된 법에 대한 복종 행위를 통해 법은 스스로 자가증식하면서 개인에게 내면화되기 때문에 법 자체가 생산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법은 그 반복 복종을 통해 언제나 조금씩 다른 의미로 재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내적 전복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역담론’이 발생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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