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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사론과 관료제
6.1.
페테르존은 『천사론』에서 교회도 ‘정치적’‧‘공적’ 성격을 갖는다고 단언했다(p. 307).
“교회의 길은 지상의 예루살렘으로부터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유대인들의 국가에서 천사와 성인들의 국가로 이어진다”
세속적인 정치적 집회들과 마찬가지로 심지어 그리스도교의 ‘집회[교회]’조차 “예배 행위를 하기 위해 모인 완전한 권리를 가진 천국의 시민들의 회합”으로 규정될 수 있다(p. 308).
교회와 천국 사이에 생겨나는 문화적 관계:
“천상의 교회의 예배는, 따라서 또한 당연히 천상의 교회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지상의 교회의 의식도 정치 세계와 본원적 관계를 갖는다(P.309).”
“황제가 호위병들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정치적 지배의 공공성을 표현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천사들의 호위에 둘러싸여 성스런 미사에 현전하는 그리스도는 정치적‧종교적 지배의 공공성을 표현한다.
호위병 | 호위병 | 호위병 | 천사 | 천사 | 천사 | ||
호위병 | 황제 | 호위병 | 천사 | 그리스도 | 천사 | ||
호위병 | 호위병 | 천사 | 천사 | ||||
⇓ | ⇓ | ||||||
정치적 지배의 공공성 | 정치적‧종교적 지배의 공공성 |
6.2.
천사들은 교회와 정치 영역 사이의 본원적 관계를 보증하는 자이다. 즉 ‘집회’에서도 또 천국에서도 행해지는 예배가 ‘공적인’ 것, ‘종교적‧정치적인’ 것임을 보증하는 자이다.
환호나 영광의 노래는 단지 천사들의 수많은 특징 중의 하나가 아니라 천사들의 본질, 따라서 천사들의 ‘정치성’을 규정한다는 것이 이 논고의 결론에서 페테르존에 의해 두말없이 단언된다(p. 312).
만약 집회의 정치적 성격과 진리가, 이 집회가 천사들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는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면 인간들은 오직 천사들을 모방해 천사들과 함께 찬양하고 영광을 기리는 노래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만 완전한 천상의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P. 313).
6.3.
그레고리우스 1세는 천사들에게는 이중적 기능이 있다고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p. 314).
“신을 시중드는 천사들은 인간에게 고지하러 밖으로 나가는 반면 신을 시립해 있는 천사들은 내적 명상에 빠진 채 이런저런 일을 하도록 밖으로 내보내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그레고리우스 1세, 『복음서 성훈』,Ⅱ, 34, 11-12[PL, 76, 125c]).
기준 | 신을 시중드는 천사들 | 신을 시립해있는 천사들 | |
알렉산더 헬렌시스 | 능력의 이중성 | 운영하는 능력 | 신을 모실 수 있는 능력 명상하는 능력 |
파리대학의 총장 빌립보 | 힘의 이중성 | 인간과 관련된 운영력 | 하느님을 모시는 명상력 |
단테 | 지복 상태 | 세상을 다스리는 것의 지복 활동적(즉 시민적) 삶 |
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영광을 찬미하는 명상적 지복 |
중세신학자들의 관심 |
아퀴나스는 통치는 신이 개별적 실행에서 매개자들을 이용할 때 보다 완벽해진다고 주장한다(P. 317).
“따라서 하느님은 어떤 사물들을 다른 사물들을 통치하는 원인으로 만드는 식으로 사물들을 통치한다.”
“신하들의 질서를 통해 왕권이 더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나벤투라: “시중드는 일이나 떠맡아서 하는 일에 제대로 어울리는 질서가 보존되도록 하기 위해 천사들을 필요로 한다.”
아퀴나스는 일곱 개의 문제에서 다음을 상세히 분석해 묘사한다: 위계, 시중, 질서
신체를 가진 피조물들에 대한 천사들의 통치에 관한 논의에서는 천사들의 직무와 대리 업무와 관련된 위계적 원리가 시민적 위계까지 포함된 보편적 법칙으로까지 격상된다(p. 319).
“인간사뿐만 아니라 자연 사물들의 경우에도 특수한 권능은 보편적 권능에 의해 통치되고 다스려진다는 것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 천사들의 경우에도 …… 하위 천사들이 상위 천사들에 의해 다스려진다.”
6.4.
천사론에 위계라는 주제를 도입한 것은 한 위작자(위 디오니시우스)에 의해서였다(p. 322).
그는 『교회위계론』을 쓴 직후 『천상위게론』을 쓴 바 있다. 하나는 천사를 위계화한 후 엄밀한 관료적 질서에 따라 천사 무리를 배치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본질적으로 신성과 관련된 기준에 따라 교회의 위계를 배치함으로써 교회의 위계를 천사처럼 위계화하고 있다(p. 323).
성스러운 것, 신성한 것은 위계적으로 질서 지어져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위 디오니시우스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감추어져 있지 않은 이 전략 ― 삼위일체에서 천사의 3자 체제를 거쳐 지상의 위계까지 내려오는 3자 도식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통해 ― 은 권력의 성화를 겨냥하고 있다(p. 324).
위의 두 논고 모두에서 위계는 그 자체가 구원과 신격화라는 사업을 가져오는 원리가 된다. “신성은 …… 모든 합리적‧지적 존재의 구원과 신격화를 위해 위계를 부여했다” 위계는 본질적으로 통치 활동이다.
그리고 이 위계의 기원, 원형은 삼위일체적 오이코노미아다. “이 위계의 기원은 3위성이다. ― 생명의 원천, 선성의 본질, 존재하는 만물의 단일 원인이 그것으로, 그것으로부터 만물과 선이 생겨난다.”
6.5.
이 지점에서 위 디오니시우스의 전략이 분명해지기 시작한다(p. 326).
섭리적 오이코노미아는 위계로, ‘신성한 권력’으로 완전히 번역되는데, 이 권력은 하느님이 다스리는 곳들로부터 지상의 민족과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인간 세게뿐만 아니라 신의 세계를 모두 깊이 파고들어 가로질러 나간다.
“성경은 우리의 위계에 대한 지도를 천사들에게 분담시켜 저 빼어난 미카엘을 유대 민족의 집정관으로 그리고 다른 천사들을 다른 시민의 집정관으로 부른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은 하느님의 천사들에 수에 따라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기 때문이다(『천상위계론』, 260a-b, pp. 34~35).”
이것은 당시까지는 찾아볼 수 없던 규정으로, 그때까지의 전통적 규정들과는 반대로 왕권을 본질적으로 위계적 원리로 이해한다(p. 327).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통치 기계의 공준에 따르면 절대적으로 초월적인 신정, 즉 모든 원인을 넘어선 신정은 실제로는 내재적 질서와 통치라는 원리로 작동한다(p. 328).
신은 말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말할 수 없음과 얼핏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찬송되고 노래로 불려야 한다.
찬송가를 큰 목소리로 부르는 천사는 명상적인 동시에 신을 시중들어야 하는 이중적 본성에 따라 신에 의한 세계 통치를 수행하는 섭리 기계의 본질적 부분을 이룬다(p. 329).
6.6.
천상의 관료제와 지상의 관료제 사이의 병행관계는 위 디오니시우스의 발명품이 아니다(p. 330). 이미 아테나이의 아테나고라스에 의해 천사들은 운영과 관련된 언어에서 유래한 용어와 비유를 통해 규정되는데 이 유비는 앞에서 이미 분석 대상으로 삼은 바 있는 테르툴리아누스의 『프락세아스를 논박함』의 한 구절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p. 331).
아퀴나스는 이렇게 쓴다. “위계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권력은 사제들과 천사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리고 정확히 천사들의 경우에서처럼 교호의 일꾼들의 질서 또한 ‘정화’, ‘계시’, ‘완성’이라는 세 기능에 따라 구별된다.
“위계라는 생각 자체가 여러 가지 다른 질서를 요구한다. …… 나라의 질서는 수없이 많은데, 완전한 공동체에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들 질서를 3개로 축감할 수 있다. …… 최고 서열의 자들, 즉 귀족과 하층민과도 같은 최저 서열의 자들, 그리고 존경할 가치가 있는 인민과 같은 중간 서열의 자들이다. 천사의 위게에서도 질서는 여러 가지 다른 활동과 역무에 따라 구별된다.”
테르툴리아누스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때는 지상의 단일 지배의 운영이 천사들이 시중드는 일의 모델이 되는가 하면 다른 때는 천상의 관료제가 지상의 관료제를 위한 원형을 제공하는 것이다(p. 332).
나라의 운영이나 통치의 용어법이 발전되어 고정되기 훨씬 이전에 이 용어법이 천사론이라는 영역에서 이미 확고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히에로니무스의 서간 자체에서 ‘ministerium’(성무, 지시된 과제)이라는 말이 공무원(functionaries)과 공직자(officers)라는 현대적인 행정적[운영적] 의미를 갖게 되는 식으로 환유적으로 진화하는 것에 대한 최초의 증거 중의 하나를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p. 334).
천사적 관료제가 위계적 완성에서 인간적 관료제에 선행하는 것처럼 ‘천상에서 시중드는 제도’가 지상에서 시중드는 제도에 선행하는데, 후자는 신학적 모델로부터 자체에 비의적인(비밀스러운 종교의식과 같은) 성격을 받아들였다(p. 335).
6.7.
아퀴나스는 … 천사들의 위계와 위계들은 최후의 심판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지를 묻는다(p. 335).
오이코노미아, 즉 섭리에 의거한 세계 통치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심판의 날에 완성될 것이다(p. 337).
“심판의 날 이후에는 천사들의 임무와 질서들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이후에 이어질 왕국은 이른바 철저하게 통치가 없는 왕국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능한 어떠한 통치도 결여된 왕국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아포리아를 해결하기 위해 아퀴나스는 … 위계를 위계의 기능으로부터 구분한다. 군사령관의 기능이 싸울 때와 이후 개선할 때가 다른 것처럼 위계와 위계의 영광은 심지어 이 둘에게 맡겨지는 통치가 끝나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6.8.
아퀴나스가 극복하려는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오이코노미아의 종료와 관련된 것이다. 섭리에 의한 세계 통치 기계에 관심사였던 구원의 역사는 완전히 소진되었다. 그러면 이제 이 기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p. 338-339)?
아쿠아스파르타의 마테우스 『섭리에 대해』
“세계가 마침내 완성되면 피조물들이 함께 일하는 것도 또 어떤 것을 시중드는 일도 허용되지 않게 된다. 하느님이 모든 피조물의 직접적 원리이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피조물의 직접적 목적,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 따라서 모든 운영이 중지된다.”
하지만 통치 기계의 중단은 삼위일체적 오이코노미아 자체에 되먹임된다. 만약 이 오이코노미아가 구성상 하느님의 행동 그리고 섭리에 의거한 세계 통치라는 하느님의 실천과 연결되어 있다면 무위의 하느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p. 340.)?
영광이 인간의 최종적 목적이자 세계의 통치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신적 형상이라는 교의가 신학자들이 오이코노미아의 종료라는 문제에 부여한 대답이다(p. 341).
모든 섭리적 움직임이 소진되고 구원을 위한 운영이 모두 끝을 맞이하면서 오직 노래만 남는다. 의식은 오직 영광송으로만 살아남는다.
6.9.
최후의 심판 이후 시중드는 천사들의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신에 의한 세계 통치가 구조적으로 시간상 제한되어 있으며, 신학적 오이코노미아는 본질적으로 유한함을 증명한다(p. 344).
세계 통치는 최후의 심판과 함께 중단될 것이라는 원리에 대한 중요한 예외가 그리스도교 신학에는 딱 하나 존재한다. 지옥이 그것이다.
최후의 심판과 함께 모든 통치와 시중드는 것의 기능은 중단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맞서 아퀴나스는 악마들은 지옥에서의 형 집행자라는 사법적 기능을 영원히 수행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국의 천사들은 비록 위계라는 공허한 형식은 보존하지만 모든 형태의 통치를 내버리고 더 이상 시중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자에 불과하게 되는 데 반해 악마들은 신의 정의를 집행하는 불후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영원한 형 집행자가 될 것이다(p. 345).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근대 정치의 패러다임인) 영원한 통치라는 이념은 그야말로 지옥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아퀴나스 『신학대전』
“성자들이 지복을 더 기뻐하도록 ……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을 보는 것이 완전히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잔인한 광경에 대해서는 하늘에 계신 성도들도 또 그들과 함께 이 광경을 명상하는 천사들도 모두 연민을 느끼도록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옥에 떨어진 자들에 대한 형벌이 신적 정의의 영원한 질서의 표현이기 때문이다(p. 346).
푸코가 앙시앵레짐 권력과 결탁되어 있음을 입증한 “형벌의 장엄함”은 여기서 영원한 뿌리를 발견하고 있다.
경계영역
천사론은 권력 이론과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는 것, 천사는 세계 통치의 특히 빼어난 형상이라는 것은 천사들의 이름이 지상의 권력의 이름과 일치한다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이미 명백하다(p. 347).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의 유명한 한 구절(15장 24절)에서도 하느님 아버지께 나라를 다시 바칠 때 메시아는 “모든 권위[권천사]와 세력[능천사]과 능력[역천사]의 권신들을 물리치는 데” 이것 또한 얼마든지 지상의 권력을 또 천사들을 가리킬 수 있다. 이 용어들이 천사적 권력을 나타낸다는 것이 명백한 다른 구절들도 존재하지만 여기서도 그것은 양의적이어서 악마적인 힘으로 간주될 수 있다(p. 348).
바울의 천사론은 실제로 그것에 기반한 법 및 권위 비판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p. 349).
케어드의 고찰에 따르면 천사들의 권력이 양의성을 갖는 것은 법이나 모든 권력이 가진 양의성과 마찬가지로 잠정적으로 주어진 것,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법이 분리되어 독립적인 종교 체계로 고양되면 악마적인 것이 된다. 법의 부패는 죄, 특히 독선의 죄의 작품이다. …… 법률 만능주의는 모두 자기주장,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올바름을 정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도덕적‧영적 성취를 통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천사들은 신이 세게를 통치하는 힘을 갖고 있음을 가리키는 암호로, 동시에 하느님의 어두운 악마적 면도 표상한다. 이 측면은 그 자체로서는 간단하게 말소시킬 수 없다(p. 350).
바울의 메시아니즘은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천사들과 인간의 권력이 악마적으로 비대해져버린 것에 대한 완화제로 작용한다. 메시아는 천사들뿐만 아니라 법의 작용을 정지시켜 무위 상태로 만들려 하며, 이런 식으로 양자를 하느님과 화해시키려고 한다.
지상의 권력뿐만 아니라 법과 천사의 권력의 궁극적이고 영광스런 ‘목적’이야말로 작동을 멈추어 무위 상태의 것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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