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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인종이론
인종이론의 내용
인종이론은 독일 파시즘의 이론적 축이다. 민족사회주의자들은 문화가 몰락하게 된 원인까지도 인종혼합의 탓으로 돌린다. 따라서 ‘혈통과 인종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숭고한 과업이며,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민족사회주의 인종이론은 독일과 독일이 점령한 지역에서 유태인 박해라는 형태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실제로 자행되었다.(123)
히틀러에 의하면 인류는 문명을 창시하는 인종, 전달하는 인종, 파괴하는 인종으로 나뉜다. 이 중 문명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것은 아리아 인종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로부터 ‘인간 창조의 토대와 방벽’ 이 유래했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중국인 같은 아시아 민족은 단지 문명전달자로서 아리아 문명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자신의 형태로 바꾸었다. 이에 반하여 유태인은 문명을 파괴하는 인종이다. ‘열등한 인간’의 존재는 더 고귀한 문명의 성립을 위한 첫 번째 전제이다.(125)
히틀러의 이러한 견해는 자연도태라는 다윈의 가설에서 빌려온 주장이다. 특히 히틀러의 생각은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제국주의적 기능은 은폐할 수도 있다. 만약 아리아 인종이 문명의 유일한 창시자라면 그들은 성스러운 소명에 의하여 세계 지배를 주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히틀러의 주요 주창 중 하나는 ‘동방’, 즉 소련지역으로의 영토 확장이었다. 따라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찬양이 전적으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범위 안에 있음을 볼 수 있다.(126)
우리는 단지 인종이론의 비합리적 기능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인종이론을 반박할 수 있다. 인종이론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의 비합리적 기능을 가진다.
1.제국주의적 경향에 생물학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2.민족주의적 성향의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인 병적 경향을 표출시킴으로써 다른 심리적 경향을 덮어버리는 것
두 번째 기능에 대해서만 논의하려 한다. 원래 근친상간이라는 것은 혈족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성교를 의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아리아인과 비아리아인 사이의 이종교배를 ‘근친상간’ 이라 부르고 있가는 것에 특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127)
이데올로기의 객관적 ‧ 주관적 기능
전반적으로 파시스트의 인종이론과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지배계급의 제국주의적 목표와 구체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위대함’에 호소했는데, 그 이면에는 독일과 프랑스 대기업의 경제적 팽창 경향이 숨겨져 있었다. 이런 경제적 요인들은 그에 상응하는 이데올로기에서 본질적이지는 않지만, 그 이데올로기가 생성되는 사회적 토양이다. 즉 경제적 요인들은 이데올로기 발생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을 만들어준다.(129)
이데올로기를 형성함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재형성한다. 따라서 인간의 물질적 핵심은 그의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탐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는 물질적으로 이중적인 토대를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비합리적 이데올로기의 형성이 인간의 성격을 비합리적으로 구조화 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파시스트들의 성격구조는 형이상학적 사유, 경건함, 추상적 ‧ 윤리적인 이상을 이루기 위한 극기, ‘지도자’의 신적 사명에 대한 믿음 등으로 특정지어진다. 이런 특징은 지도자 이상 또는 민족에 대한 강력한 권위적 유대라는 특징을 갖는 심층과 연결되어 있다. 민족사회주의적 대중들의 입장에서, ‘주인 인종’에 대한 믿음은 ‘지도자’에 대한 유대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지도자들의 노예 같은 신하가 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토대를 이루게 된다.(130)
인종의 순수성, 혈통의 타락 그리고 신비주의
매독에 의한 이러한 대량 오염의 가장 현저한 결과는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나타난다. 특히 아이들은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이 만연된 정신생활의 슬픈 산물이다. 부모의 타락 행위는 아이들의 질병으로 나타난다(나의 투쟁, 271)
위의 인용문구 중 “부모의 타락 행위” 는 오로지 인종적으로 자신들과 다른 혈통, 특히 유대인 혈통과의 혼합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태인의 ‘세계적 전염병’ 이 ‘순수한’ 아리아인의 혈통 속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혈통타락 이론이 어떻게 ‘세계적 유태인 칼 맑스’에 의한 독일적인 것의 타락이라는 정치적 논제와 연관을 맺고 있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독에 대한 비합리적 두려움은 민족사회주의의 정치적 관점과 반 유태주의의 주요 원천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인종의 순수성, 다시 말해 혈통의 순수성에는 추구할 만한 가치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쟁취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132)
히틀러는 논쟁, 증거 지식이 아니라 단지 감정과 믿음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파시스트 신비주의 속의 무엇이 대중들을 그토록 매료했는가? 로젠베르크가 『20세기의 신화』라는 책에서 파시스트의 인종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증거들’을 분석함으로써 그 대답을 구할 수 있다.(133)
로젠베르크- 인종의 역사는 자연의 역사이자 영적 신비주의의 역사이다. 이와는 반대로 혈통 종교의 역사는 민족의 흥망, 민족의 영웅들과 사상가들, 그리고 발명가와 예술가들에 대한 위대한 세계사인 것이다.
즉 ‘혈통의 투쟁’, ‘삶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직관적 신비주의’, ‘민족의 흥망’, ‘혈통의 타락’, ‘유태인의 세계 전염병’ 등은 ‘혈통의 투쟁’에서 시작해 맑스의 ‘유태인적 유물론’에 대하 잔인한 테러와 유태인 대량 학살로 끝나는 과정의 일부이다.(134)
로젠베르크는 “혈통과 환경, 혈통과 혈통 사이의 충돌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달할 수 있는 현상이며, 그 뒤에는 우리가 찾고 연구할 만한 것이 더 이상 남겨져 있지 않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리는 ‘혈통과 혈통 사이’의 살아 있는 과정을 탐구하여 아무런 감상도 없이 폭로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민족사회주의적 세계관의 본질적인 토대를 파괴할 정도로 무례하다.(135)
로젠베르크는 단지 인종의 영혼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너무나 자의적으로 신들을 두 개의 범주로 나눈다. 하나는 헬레니즘 문화의 긍정적인 발전과정을 대표하는 그리스의 신들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 출신이지만 낯선 신들로 설명되고 있는 신들이다. 로젠베르크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 역사에 대해 오해하게 만든 책임이 헬레니즘을 ‘인종적으로 변조하고’ 잘못 해석한 역사 연구에 있다고 주장한다.(136)
*인종이론의 신비화
파시스트 인종이론의 대표적 이데올로그 로젠베르크는 인종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대 신화 그리스 신화를 끌어들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아리아 인종 계열과 비아리아 인종 계열로 분류했는데 제우스, 아폴론, 아테나 등이 전자에 속한다면, 포세이돈, 디오니소스, 헤르메스 등이 후자에 속한다. 로젠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전자의 신들은 경건함, 숭고함, 질서, 정신력의 상징으로서(이에 반해 후자의 신들은 감각적 쾌락, 황홀함, 무질서, 성적인 것의 상징이다.) 이런 특징은 아리아 인종의 특징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히틀러 역시 고대 신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는 바인데, 그는 수상 관저 곳곳을 고대 신화의 신들과 영웅들을 상징하는 조각상으로 도배했다.(137)
20세기 권위주의 문명의 몰락이라는 관점에서 그리스인의 운명을 상기시키는 한, 로젠베레크는 독일적인 것의 ‘부흥’에 대한 확언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보수주의적 경향의 역사를 편들고 있는 것이다. 반동적 문화철학자들에게는 단지 두 가지 가능성만이 있다. 포기하여 회의에 빠지거나, ‘혁명적 수단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거나.(138)
교회가 과학적 연구를 장악했던 것은 꽤 오래 전 일이었지만, 교회는 여전히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일부일처제적 본성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 강령에 얽매여 있다. 가모장제의 성적 조직은 그것이 완전히 상이한 친족 조직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생활의 자기조절력을 지녔기 때문에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킨다. 최초로 모건이, 그 이후에는 엥겔스가 알게 되었듯이, 가모장제 고유의 토대는 사회적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부재이다.(139)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로젠베르크는 고대 그리스 문화가 가모장제적인 전 단계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디오니소스 단계) 그리스인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낯선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가설을 내세우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오르가즘적 열망을 권위주의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생성된 인간의 성격구조와 분리한 뒤 각각의 인종에 결부시킨다. 즉 북유럽은 영광스럽고, 위엄 있고, 거룩하고, 성적으로 무관심하고, 순수한 반면에 ;근동인;은 본능적이고, 악마적이고, 성적이고, 황홀함에 빠져 있고, 오르가즘적이라는 것이다.
파시스트의 인종이론에서는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이 오르가즘에 대하여 느끼는 공포가 ‘순수함’으로, 즉 동물적이고 오르가즘적인 것과 대조되는 그 무엇으로 절대화된다. 따라서 ‘그리스적인 것’과 ‘인종적인 것’은 ‘순수한 것’, ‘성적으로 무관심한 것’의 발산인 반면 ‘인종적으로 낯선 것’과 ‘에투루리아인’은 ‘동물적인 것’이며, 따라서 ‘열등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리아 문명에서 가부장제는 인간 역사의 원천으로 간주된다.(140)
가모장제 후기의 혁명적 과정(모계 씨족에서 족장 가족의 경제적 독립, 부족 사이의 물품 교환 증대, 생산수단 발전 등)의 결과로 나타난 가부장제적-권위주의적 성적 질서는 여성, 아이들, 청소년들에게서 성적 자유를 박탈하여, 성을 상품화하고, 성적 관심을 경제적 예속의 대가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궁극적인 토대가 되었다. 이제 성은 억제되어야 하는 악마적인 것이 되었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사악한 열망’이 되었으며, 가부장적 문화는 그것을 단지 혼란스럽고 ‘더러운’ 것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가부장적 인간은 성적인 것과 더러운 것, 성적인 것과 비천하고 악마적인 것을 분리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이데올로기에 처음으로 묶인다.(141)
저하된 성은 자신을 만들어낸 바로 그 이데올로기를 옹호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성을 야만적이고 더러운 것이라고 비난할 정당한 근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더러운 성이 자연스러운 성이 아니며 단지 가부장제적 성이라는 점은 가볍게 잊어버린다. 자본주의에서 가부장제의 성학은 세속적 관점의 영향 못지않게 이러한 평가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이것은 성이 완전히 쓸모없는 것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민족주의적 파시즘은 성적 욕망을 ‘낯선 인종’ 에게 옮겨놓는 동시에 이들을 열등한 지위로 격하시키고 있다. 이제 ‘낯선 인종’ 에 대한 평가절하는 지금의 가부장적 제국주의와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것처럼 보인다.(142)
기독교 신화에서 신은 항상 ‘지옥의 신’인 악마와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지옥의 신에 대한 성스러운 신의 승리는 바로 인간의 고결함을 상징한다. 이런 대결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오르가즘적인 생물학적 성과 순결함을 요구하는 열망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추상적인 윤리주의자와 신비주의적인 철학자들에게는 이런 대결이 두 개의 ‘실체’ 혹은 두 개의 ‘인간 사상’이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중 하나는 애초부터 저속한 것으로, 다른 하나는 애초부터 ‘참으로 인간적인 것’ 혹은 ‘초인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가모장제적 조직에서 가부장제적 조직으로 발전한 모든 종족들은 새로운 생활 형태에 상응하는 성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구성원들의 성적 구조를 변화시켜야만 했다는 것이다. 권력과 부가 민주주의적인 씨족에서 족장의 권위주의적 가족으로 이동하려면 주로 종족 구성원들의 성적 욕망을 억압해야 했기에 이러한 변화는 필수적이었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성적 억압이 사회가 계급으로 분화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다.
족장의 권력 지위를 촉진시키는 정도에 따라 높은 지위에 있는 씨족 남자들의 물질적 이해는 결혼의 유대를 영속화 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어느 때든 쉽사리 와해될 수 있었던 자연스런 노동민주주의의 단순한 짝짓기는 영속적이며 일부일처제적인 가부장제의혼인 관계로 변화되었다.(143)
이러한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생식적 욕망에 더욱 더 많은 제한을 가하고 그 가치를 낮추는 것이 필요했다. 이 제한은 더 많은 착취에 종속되는 ‘하층’ 계급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에는 도덕성과 성 사이의 균열을 몰랐던 계급까지도 이제는 더욱 심화되는 갈등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강제적 도덕성이 가진 원래의 효력은 그것이 내면화되어 구조적 성억압이 될 때에야 비로소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의 여러 단계는 각기 다른 모순양상의 지배를 받는다. 1.초기단계에서는 성적 욕구가 우세하다. 2.나중 단계에서는 강제적인 도덕적 금지가 우세하다. 3.사회조직 전체가 정치적 대혼란에 빠질 때, 성과 강제적 도덕성의 갈등은 필히 최정점에 이를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적 조직을 발견한다. 상류계층에게는 고급창녀 제도가, 중류와 하류계층에게는 매춘제도가 존재하는 동시에 아내는 노예 상태의 비참한 삶을 살면서 단지 아이를 낳는 기계로 여겨지는 남성 지배의 성적 조직이 그것이다. 플라톤 시대의 남성 지배는 완전히 동성애적이었다.(144)
파시스트인 로젠베르크에 따르면, 디오니소스의 시대에 ‘저승적인 것’ 이 ‘아폴론’ 적인 것과 뒤섞여 함께 멸망했다는 것이다. 그는 남근상이 그리스 말기 세계관의 상징이 되었다고도 쓰고 있다. 그러므로 파시스트에게는 자연스런 서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몰락현상, 즉 퇴폐, 음탕함, 성적으로 추잡함으로 여겨진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우리 시대의 반동적인 계층이 벌이는 다양한 가장무도회와 일치한다. 느슨해진 성적 욕망과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된 경험능력 사이의 해소할 수 없는 모순이 이 축제에서만큼 극명히 표출되는 곳은 없다.(145)
*디오니소스 법칙, 즉 끝없는 성적 만족은 아시아의 모든 종족 또는 변종과 그리스 사이의 억제되지 않은 인종혼합을 의미한다(『신화』, 52)
낯선 인종과의 혼합이라는 사고방식의 배후에는 억압받는 계급 구성원들과의 성교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그리고 좀더 깊은 수준에서는 경계선을 그으려는 정치적 반동의 경향이 작용하고 있는데, 이 경계선은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뚜렷하지만 부르주아 계급의 여자에게 성적 제한을 부과하는 성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뚜렷하지 않다. 모든 사회적 질서에서 낮은 사회계층은 권위주의적 질서의 지배자 모두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는 성 관념과 성적인 생활방식을 반전시키기 때문이다.(147)
결국 인종혼합이라는 사상의 밑바탕에 지배계급에 속한 사람과 피지배계급에 속한 사람과의 혼합이라는 사상이 놓여 있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성적 억압이 계급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성적 억압을 억압받는 계급에 대한 물질적 착취에 비유해 기계적으로 연결해서는 결코 안된다. 성적 억압과 계급사회의 관계는 더 복잡하다. 이 중에서 2가지를 강조 할 수 있다.
1. 성적 억압은 원래 상속법과 결혼의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지배계급 자체 내에서 시작된다. 순결이라는 도덕성은 처음에는 지배계급의 여성들에게 더욱 엄격히 적용된다. 이것으로 하층계급을 착취하여 획득한 재산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보증되어야 한다.
2. 초기 자본주의와 봉건적 성격을 지닌 거대한 아시아 문명의 지배계급은 아직 피지배계급의 성적 억압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조직된 노동운동, 사회정치적 성과의 쟁취, 이와 동시에 시작된 폭넓은 국민대중들의 문화적 고양이 일어나자 성적 억압은 시작되었다. 바로 이때 사회의 지배계급은 억압받는 계급의 ‘도덕성’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조직화된 노동계급의 성장과 함께 반대 과정, 즉 지배계급과의 이데올로기적 동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148)
대중들의 성적인 관습은 지배계급에게는 심리적 위험이자 사회적 우험이 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배계급은 자신의 가족제도에 대한 위협을 느꼈다. 경제적으로 강력하고 19세기 중반의 영국 부르주아지처럼 상승 중에 있는한, 지배하는 사회계층이 대중들의 성도덕을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배계급의 통치권이 흔들리는 시기, 특히 20세기 초의 중부 유럽과 영국에서처럼 분명한 위기가 닥친 시기에는 성에 부과된 도덕적 족쇄가 지배계급 자체 내에서 느슨해진다.(151)
소시민계층이 산업노동자와 상류계층 중간의 경제적 지위를 상실하듯이 성도덕적인 태도마저 상실하게 된다면, 이것은 독재자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소시민계층 속에도 ‘커다란 뱀’의 속성이 잠복해 있어서 속박을 분쇄하고 반동적 경향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재 권력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도덕성’과 ‘결혼과 가족의 결속 강화’를 위한 선전을 보완하는 것이다. 소시민계층의 비참한 사회적 상황과 반동적 이데올로기를 연결시키는 다리는 바로 권위주의적 가족이다. 따라서 경제적 위기, 중산계층의 프롤레타리아화, 전쟁 탓에 강제적 가족(구조)가 동요되기 시작하면, 권위적 체제의 구조적인 정착 역시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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