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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

이번 여행의 숙박지 중 가장 비참한 곳은 캄푸스 노부스였다. 전염병과 굶주림 때문에 빈사상태였다. 이 사람들은 살아갈 능력을 잃고,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기에는 병들어버린, 활동도 욕구도 줄임으로써 육체의 소모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자기들의 참담함을 덜 의식하게 해줄 허탈상태에 빠져들기를 자청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서로 적대 관계에 있는 인디언들은 언제 완력 싸움을 벌이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관계였다.

보통때의 현지조사도 시련의 연속인데, 분위기가 급변했을 경우 여러날 동안 모든 궁금증을 억제하고 근신상태에 살 줄도 알아야 했고, 이들이 하는 주된 일이라고는 이를 잡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것밖에 없는데도 조사자의 일의 성패 여부는 이들의 변덕에 달려 있다.

이럴 때는 으레 자문을 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하러 여기 왔는가? 민족학 조사란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상한 역설이지만 나의 모험생활은 어떤 새로운 세계를 내 앞에 전개시켜주지는 않고, 오히려 이전의 세계를 내 마음속에 소생시켜주었고, 반면에 내가 찾아 나섰던 세계는 점점 내게서 멀어져가는 것이었다. 내가 정복하려고 나섰던 인간들이며 풍경들은 내가 그것들을 손에 넣는 순간부터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의의를 상실해 가는 것이었다. 내가 찾고 있던 민족이나 풍경은 볼 수 없고, 대신 자청해서 떠나버린 프랑스의 시골풍경이나. 한 문명의 가장 전통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음악과 시의 단편이었다. 선율을 듣고 보면 앞의 전개가 갖고 있는 새로운 뜻을, 그런 전개를 추구해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고, 예기치 않은 해결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행이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황야를 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속의 황야를 탐색하는 것이다.

 

38. 럼주 한잔

민족학자가 그의 선택의 환경에 내재하고 있는 모순들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왜 자신이 소속하고 있는 사회를 경멸하며, 이것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 상이한 사회들에 대해서 그의 동향인들에게는 의도적으로 삼갔던 인내와 헌신을 바치려고 결심하는 것일까?

민족학자가 되는 까닭이 한 집단의 성원으로서의 자신과 사회를 조건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조화시키는 하나의 실용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거나 또는 단순하게 다른 사회를 연구하는 데 큰 이점을 주는, 자기 사회에서 초탈한 객관적 태도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가 정직하다면, 이국적인 사회에 그가 부여하는 가치는 그 자체로서는 근거가 없다.

그러나 민족학자가 자신의 집단의 규범들에 집착할 경우, 그는 객관적인 태도를 지닐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회의 진화에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피고석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의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목적들에 대해, 어떤 과정의 활동들을 취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실재로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하나를 희생시키고 다른 하나를 과대평가하게 만든다. 우리들 자신이 어떤 회피할 수 없는 규범의 산물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사회에서는 비판자이고 다른 사회에서는 동조주의자인 민족하가는 하나의 모순적인 위치에 있다 하겠다.

 

완전한 사회는 없다. 각 사회는 그것이 주장하는 규범들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분순물-잔인. 부정. 무감각-을 그 자체 내에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같은 요소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민족학적 조사로 대답을 하자면 적은 수의 사회를 비교하면 서로서로가 매우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조사의 영역이 확대되면 이 차이점들은 점점 소멸된다. 그리하여 어떤 인간사회도 철저하게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식인풍습(695p), 여기에서 나는 우리들의 재판과 형벌의 습관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식인풍습을 실행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중화시키거나 또는 그들을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변모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자기네의 육체 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우리들 사회 같은 유형의 사회는 토해버리는, 축출 또는 배제해버리는 일를 채택하는 사회이다.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여 정반대의 해결을 선택했다.

*697P 식인풍습과 조직화된 경찰력을 지니고 있던 미개민족들은 형벌의 개념속에 함축되어 있는 죄인의 유아화 대신에 그가 어떤 종류의 보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우리는 죄인들에게 형벌을 내림으로써 어린애로 취급하며, 모든 사후적인 위로를 거절하는 점에서 그를 성인으로 취급, 신체적. 도덕적으로 절단시킨다는 이유 때문에 위대한 정신적 진전을 이루었다고 믿을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들을 조사함에 따라 나는 루소의 해답이 이 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루소는 자연상태와 사회상태를 혼동하는 위험은 저지르지 않았다 사회상태가 인간에게는 고유한 것이지만, 그것은 그 자체와 함께 악을 지니고 오는 것이므로, 이 악을 그 자체가 사회상태에 고유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것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점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사회질서가 초래한 악습들의 부정의 증거를 넘어서서 인간사회의 확고한 기반을 발견해야만 한다.

민족학이 이 같은 조사에 이바지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민족학은 그 기반이 우리들 자신의 문명속에서는 발견될 수 없다는 것을 밝혀준다. 한편 우리들로 하여금 대부분의 인간사회들에 공통되는 특성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민족학은 우리가 하나의 모델을 구성하는 것을 도와준다. (루소는 그 모델이 신석기시대였다고 생각했다. 신화적 심상을 소유했던 시대에 인간은 자연에 대해 제한된 통제력만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꿈이라는 완충장치에 의해 자신을 보호하기도 해방시키기도 했다. 이같은 꿈들이 지식의 형태로 바뀌어감에 따라 인간의 힘은 증대, 자연계와의 투쟁에서 이김으로써 얻은, 인간의 힘이란 인류와 물질계의 융합에 대한 주관적 의식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민족학의 연구가 현실에서 관찰할 수 있는 어떤 사회와는 일치하지 않는, 하나의 이론적 모델을 구성하는 데 우리를 도와준다. 인간의 현재상태에서 원초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이런 요소들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관습들을 개량하는데 응용될 수 있는 사회생활의 원리들을 구별해낸다. 요컨대 우리의 주장은 사람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과업을 수행하였고, 동일한 목적을 부과하였으며, 오직 그 변천 도중에 방법만이 변했다는 것이다.

 

40. 차웅(불교 사원)방문

이슬람, 그것은 동양의 서양이다. 오늘날 프랑스의 사상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을 헤아리기 위해서 이슬람을 대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회교도 세계에서 나는 같은 서적 편중적인 태도며, 같은 공상적 이상주의적인 사고법이며, 또 문제를 종이 위에서 풀기만 하면 그것으로 그 문제에서 금방 해방이 된다고 여기는 완고한 생각 등을 확인할 수가 있다.

우리는 양쪽 세계에서 다 마찬가지로, 법적이고 형식주의적인 합리론을 내세워 세계와 사회에 대한 영상을 우리 마음대로 만들어내곤 한다. 그리고는 세계가 이미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것들로써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를 못한다.

이슬람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대혁명을 성취한 프랑스는 회개한 혁명가들이 따르게 마련인 길, 즉 자기들이 바꾸어 보겠다고 생각했던 사물의 질서를 회구지정으로 도로 유지시키는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버린 것이다.

또한 우리의 종속 하에 놓여 있는 민족과 문화에 대한 관계에서도 이슬람이 그 피보호 민족이나 여타의 세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순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 자신들의 번영을 보증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갖가지 원칙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나머지, 마침내 그들이 그런 원칙들의 활용을 포기하기에 이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마땅히 고맙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모순점은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민족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데다가 우리 쌍방 모두에 문화적 활력소가 되고 있는 획일주의적 정신이 서로 간을 대립시키지 않기에는 너무나도 공통적인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이곳 탁실라의 불교사원에서 나는, 일찍이 구세계가 통합될 수도 있었던 가냘픈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평온, 이슬람은 몇가지 배제-생활로부터의 여성의 배제, 정신적 공동체로부터의 비신도의 배제-를 담보로 해서 그것을 손에 넣었다. 이에 반해 불교는 그 평온을 하나의 융합, 여성과의 융합, 인류와의 융합으로서 그리고 신격의 무성적 표상 속에서 포착하려 한다. 붓다와 마호메트, 둘 다 신은 아니다. 그리고 좀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양자의 종합을 시도할 수 있었을지 모르는 기독교가 너무 때이르게, 두 극한적 상황이 빚어내는 결과의 절충으로서가 아니라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옮아가는 이행과정으로서, 중간항으로 출현했다. 이는 서양의식의 불행이었다.

인간은 사자(死者)로부터 받는 학대, 저승에서 받을 악독한 처우, 주술에서 오는 불안감 등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세 가지 커다란 종교적 시도를 하였다.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그런데 각 단계가 진보를 이룩하기는커녕 후퇴를 보이고 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삶의 근원적 비판으로 환원, 비판을 이룰 수만 있으면 사물과 인간의 의미에 대한 거부러서의 길을 열어준다. 그리스도교는 내세를 다시 설정하고 동시에 희망, 위협, 최후의 심판도 새로 다듬었다. 따라서 이슬람교는 현세를 내세로 이어주는 길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현세는 정신세계와 합병돼버렸다.

이슬람은 우리 유럽인의 생각과 매우 흡사한 인도의 교리 사이에 끼여들어와 동양과 서양이 한데 어울려서 손에 손을 잡은 손들을 풀어 헤쳐버리는 방해자같다. 이슬람에게 현재오 여겨지는것은 이미 지나간 시대에 속하는 것이며 천년 간의 오차 속에서 살고 있다.

서양은 자신의 분열의 근원으로 올라가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이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끼어듦으로써 서양이 십자군에 말려들어 이슬람에 대항하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 이슬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서양은 기독교와 불교와의 완만한 상호 삼투작용으로 더욱 기독교적이 됐을 것이다. 서양이 여성으로 남을 기회를 상실한 것도 바로 이때이다.

사람들이 진실을 발견하고 공식화한 이후로 2500년이나 흘렀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새로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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