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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친족
2장 언어학과 인류학에 있어서의 구조 분석
언어학은 과학임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 과학이고 실증적 방법과 스스로가 분석하는 사실의 본성을 인식한 유일의 사회 과학이다. 사회학과 방법은 매우 유사하며 양자는 협력이라는 특별한 의무를 지고 있다. 고대 가족 제도에 모계제의 잔존이라는 가설은 있을 법하지 않다는 것을 제시한 사람은 언어학자와 서지학자(슈래서, 로즈)이다. 언어학자는 사회학자에게 어원상의 자료를 제공하는데 어떤 종류의 친족(31) 명칭 사이에 직접적으로는 인지할 수 없었던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반대로 사회학자는 언어학자에게 풍습, 규칙, 금지의 존재, 언어상의 특징, 단어, 어군 등의 불안정성을 이해시키는 일도 있다.
그러나 언어학자와 사회학자는 각각 독립해서 길을 가고 있다. 언어학자의 방법은 보다 엄밀하고, 성과는 확실하였다. 사회학자는 “현재 존재하는 종족을 공간으로 고찰하는 방법을 분류상의 기반으로 잡음을 단념한다”는 것에 의해 언어학자가 제시하는 모범에서(32) 착상을 얻을 수 있으나 계기를 예측케 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음운론의 등장은 혁신적인 역할을 했다. 음운론의 방법은 네 가지 기본법에 있다(N.토루베츠코이)
첫째 | 의식적 언어 현상에서 무의식적인 하부 구조의 연구로 이행함. |
둘째 | 항을 독립된 실체로서 다루지 않고 항과 항의 관계가 분석의 기초 |
셋째 | 체계 개념 도입 |
넷째 | 일반적 법칙 발견 목적 |
(33).
친족의 명칭은 음소와 마찬가지로 의미 작용의 요소이다. 체계 속에서만 의미 작용을 가질 수 있다. 친족 체계는 정신의 무의식적 사고의 수준에 있게 된다. 친족 관계의 제 현상은 언어 현상과는 다른 차원의 현실이지만 동일 종류의 현상이다. 역사적인 우연에 바탕을 두는 “개체주의적”,“원자론적” 해석은 토루베츠코이나 야콥슨에 의하여 비판되었던 것인데 친족 문제 있어 흔히 적용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생각이었다. 명칭 체계의 세목 하나하나, 혼인의 특별한 규칙(34) 하나하나가 무엇인가의 결과나 유물로서 각기 다른 풍습에 결부된다. 공시적인 총체로서의 친족 체계가 이질적인 가설상의 몇 가지 제도를 모으는 데서 오는 자의적 결과이며 규칙성과 유효성을 가지고 기능한다는 것에 의문을 누구도 품지 않는다.
음운론적 방법을 원시 사회학에 적용시킬 때 친족 명칭을 언어의 음소와 동일시하는 잘못에 빠진다. 언어학자는 음소를 “사치적 요소”로 분석하는 것이며 그러한 요소를 하나 내지 여러 개의 “쌍을 이루는 대립”으로 조직하는 일이 가능하다. 사회학자는 체계의 친족 명칭을 몇 가지 요소로 분해한다. 체계의 각각의 친족 명칭에 대해 관계 즉 세대, 외연, 성, 상대적 연령, 인척 등등의 관계 각각에 관해 어떠한 내포를 갖는지를 문제로 삼는 셈이다. 즉 “미시 사회학적”인 층에서 인지해 보고자 기대한다. 그러나 음운론의 시차적 요소는 심리적, 생리학적, 물리학적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보아 객관적인 존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요소는 조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음소보다도 수효가 적다. 그것들은 체계(35)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친족 명칭에 있어서 분석적으로 보이는 것은 겉보기일 뿐이다. 실제로 결과 쪽이 원리보다 더욱 추상적이 되기 때문이다. 최종적인 체계는 전적으로 개념적인 것이 되고 만다. 또 이렇게 얻어진 체계가 경험적인 여건보다 훨씬 복잡하고 해석하기 어렵다(데이비스와 워너의 시도). 이 가설은 설명적인 가치를 전혀 갖지 못한다. 체계의 성질을 이해시켜 주지 못하며, 발생 과정을 재생할 엄두도 못 낸다.
친족 명칭은 사회학적인 존재만을 가지지 않는다. 동시에 언어 표현의 요소이기도 하다. 언어학자의 분석 방법을 응용하는데 그것들이 어휘의 일부로서 방법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음운론적 분석은 음소로 분해된 말만을 다룰 수 있다. 어휘의 층에는 필연적인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언어학에 있어서 언어 사회학에서도 참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학의 시도는 음운론적 방법을 확장하면서 그 기초를 잊고 있다. 어떤 언어의 음소 일람표와 친족 명칭 일람표 사이의 깊은 차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36). 언어는 전달이라는 목적에 수단으로 쓰인다. 기능을 자명하지만 체계가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친족 명칭의 체계를 이루고 있으나 이러한 체계가 무엇 때문에 쓰이고 있는지 우리는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명한 바는 입증하고 미지의 것은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친족 어휘 속에 질서를 도입하고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일은 단념하지 않아야 하지만 어휘의 사회학 방법과 언어학 방법과의 관계의 양의적 성격을 인정해야 한다. 양자의 유사성이 단순한 하나의 형식으로 논의를 한정함이 바람직스럽다.
명칭의 체계 옆에 심리학적-사회학적 성질을 갖는 또 하나의 체계가 존재한다. 이를 태도의 체계라 하자. 태도의 체계가 집단의 통일과 균형을 유지한다는 역할을 추측할 수 있는바. 태도 사이의 결합의 성질을 이해할 수 없으며, 필연성을 인지하지(37) 않는다. 기능은 알고 있으면서도 체계 쪽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친족 명치 일람표가 친족간의 태도의 일람표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는 실례가 많다. 온갖 사회에서 친족 명칭의 체계가 개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주요한 매체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38).
외삼촌의 문제는 태도에 관한 모든 이론의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오직 외삼촌과 조타와의 관계가 미개 사회에서 특기 중요한 발전을 나타내고 있다. 그 까닭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19세기까지 외삼촌의 중요성은 자칫 모계제의 잔재라고 해석되어 왔다. 모계제라는 것은 순전한 가설상의 존재이며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외삼촌의 역할은 모권제의 잔존 또는 결과로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일정한 친족 관계에 결부시키려는 극히 일반적인 경향에 지나지 않는다(39).
개인간의 관계라도 거의 무한정하게 다양한 태도가 가능하다. 사회 집단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매우 풍부한 심리적-생리적 재료를 가지고 있는데도 어떤 종류의 요소밖에는 남기지 않는다. 그것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몇몇 요소는 다종 다양한 문화를 통한 동일화이다. 그래서 이러한 요소가 특별히 선택된 이유와 그 조합의 법칙이 문제가 된다.
래드크리프 브라운에 의하면, 백숙부권이라는 말은 상반되는 두 태도의 체계를 보여준다. 한쪽의 경우, 외삼촌은 일족의 권위를 대표한다. 그는 두려운 존재며, 복종해야 하는 것이고 조카에 대해 권리를 갖는다. 둘째 경우는 조카가 삼촌에게 버릇없게 구는 특권을 가지며, 그를 다소간 업신여긴다. 외삼촌에 대한 태도와 아버지에 의한 태도 사이에는 상관 관계가 있다. 두 경우 태도의 체계는 어느 쪽이든 동일하지만 그것이 역전되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40)계가 친밀한 집단에서는 외삼촌과 조카와의 관계는 엄하다. 아버지가 엄격한 수탁자인 곳은 삼촌 쪽이 버릇없게 대해도 된다. 두 태도군은 두 쌍을 이루는 대립을 형성하고 있다. 부자 관계 쪽이 이러한 대립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이다. 부계제에서는 외삼촌이란 ‘남성인 어머니’로 간주되며, 어머니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모계제에서는 외삼촌이 권위를 몸으로 나타내고 부드러움과 친숙한 관계는 아버지와 그의 혈통 쪽에 놓여진다.
래드크리프 브라운의 문제는 첫째, 백숙부권은 모계·부계 모든 체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아닌 체계에서도 때로 볼 수 있다. 둘째, 외삼촌과의 관계는 사항 관계이다. 남성, 여성, 처남 매부간이라는 형제, 그리고 조카라는 사자(四者)의 존재를 전제한다. 그의 해석은 어떤 요소를 자의적으로 고립시킨 것이다(41).
백숙부권의 다른 형태가 공존될 수 있지만 체계 구성에 필요한 네 쌍의 대립 사이에는 언제나 동일한 기본적 관계를 볼 수 있다. 형제의 자매에 대한 권력이 줄고, 미래의 지아비의 권력이 는다.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결합이 약화되고, 조카와 외삼촌 사이의 결합이 강해진다. 이렇듯 백숙부권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떤 체계 내부의 한 관계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되며, 체계의 구조를 알려면 전체로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구조는 네 개의 항(형제, 자매, 아버지, 아들)을 기초로 하고 있으나 상관적인 2개 조의 쌍을 이루는 대립 관계로 이어져 있고 문제가 되는 두 세대의 각각에 있어, 하나의 + 관계와 하나의 - 관계가 언제나 존재한다. 이 구조는 존재하는 가장 단순한 친족 구조이다. 친족의 기본 단위인 것이다(45).
친족 구조라는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아버지를 갖는 관계, 결혼에 따른 관계, 낳은 자와 태어난 자와의 관계가 거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 구조는 삼중의 필요를 최대 경제의 법칙에 딸 충족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추상적이다. 친족의 기본 단위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예외 없이 지켜지고 있는 근친 상간 금지의 직접적 결과이다. 근친 상간의 금지란 사내가 계집을 획득하려면 다른 사내로부터 얻을 수 밖에 없고 후자는 전자에게 양도한다는 것이다. 삼촌은 거기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직접 주어져 있고 그 구조의 조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재래의 사회학은 항을 고찰하면서 항의 관계를 고찰하지 않았던 것이다.
처남 매부라는 형제끼리의 관계가 친족 구조의 필연적 구조의 축을 이룬다면 왜 어린이를 기본 구조에 개입시키는가? 어린이는 결혼을 통하여 친족의 기초를 두는 최초의 수속의 동적-목적론적 성격을 보증하는 데 불가결한 존재이다. 친족 관계는 자기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밖엔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생긴 최초의 불균형은 후세대의 반대 급부에 의하지 않고는 안정된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가장 기본적인 친족 구조조차도 공시적 차원과 통시적 차원에 걸쳐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여성과 그 형제, 후자의 처, 이 결(46)혼으로부터 태어난 딸이 문제가 될 구조의 상정은 제거된다. 인간사회에 있어서는 사내가 계집을 교환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종래의 사회학은 백숙부권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시도하고 있는데, 모친의 형제를 가장 단순한 가족 구조의 직접 여건으로 다루려고 하면서 그 기원의 문제를 제쳐 놓았다. 백숙부권이 언제나, 또 어떤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코 보편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친족 관계가 모든 문화에 있어 같은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친족 체계는 하나의 언어다. 그러나 보편적인 언어가 아니다. 표현과 행위를 위하여는 그것과 다른 수단이 선택되는 일이 있다. 본래의 의미에서의 언어는 최고 수준의 의미 작용의 체계이다. 그것은 의미하지 않을 수 없고 전존재는 의미 작용 속에 있다. 사람이 본래 의미에서의 언어에서 멀어지고 사회 조직이나 예술 등이 의미 작용을 지향하고는 있으나. 그 의미 작용상의 가치가 부분적, 단편적, 혹은 주관적일 수 있는 다른 체계로 변이함에 따라(47) 엄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백숙부권의 네 가지 항의 일정관계의 원자 구조에는 몇 가지 근본적 필요조건이 있으며 이를 충족시키지 않는 한 존재도 생각할 수 없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이 원자는 더욱 복잡한 체계를 구성할 때의 유일한 재료이다. 이 재료의 구성을 통해 더욱 복잡한 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친족 체계도 이 기본 구조가 차례로 연결된 것이든가, 그것이 새로운 요소를 더하여 발전된 것이든가, 그 어느 쪽으론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48).
도식에서 쓴 플러스, 마이너스의 기호는 사실의 극단적인 단순화를 나타낸다. 실제 기본적인 태도의 체계는 네 가지 항을 포함하고 있다. 친숙하고 애정이 충만한 허물 없는 사이, 호혜적 교환에서 결과되는 사이, 상호적 관계에 대하여 하나는 채권자의 태도에 대응하고 다른 하나는 채무자의 태도에 대응하는 두 가지의 일방적인 관계가 있다. 상등성 =, 호혜성±, 권리 +, 의무 - 이다. 이 네 가지 기본적 태도의 상호 관계표는 아래와 같다(49).
친족 관계에 사회적 사실로서의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이 보존하고 있는 자연적 요소가 아니라,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킬 때의 본질적인 방법이다. 친족 체계는 어버이와 자식이라든가, 피를 나눈 형제라든가 하는 개체간의 객관적인 관계 속에는 없다. 인간의 의식 속에 존재하며, 자연적인 상황의 연장이 아니라 표상의 자의적 체계이다. 래드크리프 브라운이 말하는 “기본적 가족”끼리의 관계지음을 존재 조건으로 요구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친족 관계의 본원적 성격이다. 참으로 “기본적”인 것은 고립된 항으로서의 가족이 아니라, 이들 항 사이의 관계이다. 다른 어떠한 해석도 근친상간 금지의 보편성을 설명할 수 없다. 외삼촌의 특수성은 가장 일반적인 양상에 있어 근친상간 금지의 필연적 귀결에 지나지 않으며, 그 귀결은 때로 분명하게 나타나며 때로는 숨겨지고 있는 것이다(50).
친족 체계는 상징의 체계이기 때문에 인류학에 대하여 특권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인류학과 언어학 연구는 상징의 세계에 있다. 그러나 상징에 따(50)르는 사고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연주의적인 해석에 의존함은 정당하며 일단 상징에 따른 사고가 부여되었으면 새로이 출현한 현상이 그것보다 선행하고, 준비한 현상과 근원적으로 다르며, 설명도 또한 근원적으로 그 성질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이 순간부터는 자연주의에 대한 어떠한 양보도 위험한 것이 된다(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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