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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2』 이정우 2021.5.2. 바다사자
10장 본연과 원융의 철학
동북아 사상사 전체를 관류하는 하나의 힘은 유교 지식인들의 저력이다. 한문(寒門) 계층, 서민지주층이 정계에 진출해 사대부 계층을 형성했고 이들의 철학이 성리학이다(691).
§1. 성리학의 탄생
새로운 유학의 요건들
『맹자』는 조선 성리학자들의 핵심적인 성경이었다. 이 책을 참조해서 심(心)·성(性)·정(情) 이론을 전개했다. 성리학의 인성론은 수양론적 부분과 인식론적 부분이 공존한다. 이는 한 이론의 두 측면이다. 둘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이 핵심이다(692).
성리학은 윤리적-정치적 지향에서 출발한 학문이기에 수양은 특히 중요했다. 이 수양론에 함축되어 있는 인식론이 흥미롭다. 수양론의 핵심은 객관적 진실을 잘 보기 위해 주관을 정화하는 데 있다. 깨달음 앞에 앎을 붙인 ‘지각(知覺)’ 개념을 통해 인식론을 표현했으며 이 ‘지(知)’는(693) 깨달은 자체만을 추구한 불교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각’ 또한 불교적 깨달음이 아니라 성리학적 깨달음=인식의 의미를 띠게 된다.
무/공에 해당하는 그러나 유를 새롭게 정초할 수 있는 개념이 ‘리(理)’ 개념이다. 리는 곧 ‘천리’로서 이해되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역』(특히 「역전」)으로 보완하려했고, ‘태극’을 리=천리와 동일시했다. 불교의 무/공은 리=천리=태극으로 대체되어 리/태극은 ‘유’가 아니라 ‘무’이다. 이 무가 세계를 주재한다(694).
무는 반드시 유와 쌍을 이루어야 했다. 유의 철학인 동시에 무의 철학이어야 했다. 리는 반드시 기로서 보완되어야 했고 기는 그 안에 리의 원리를 내장해야 했다. 성리학의 심장은 ‘리기(理氣)’의 구도다(695).
태극을 이해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는데 태극을 무로 이해하여 무=태극→유(=기)→음양으로 보는 것, 태극 자체를 유=기로 보아 태극→음양이라는 이해구도가 있다. 전자가 리기 이원론의 뿌리가 되고 후자가 기 일원론의 뿌리가 된다(695).
성리학자에게 자연철학은 매우 중요했다. 불교적 무의 사유에 대항할 수 있는 교두보였고 역학 연구에도 의리학(도덕형이상학) 못지않게 상수학(자연철학)도 중요했다(696).
유교가 가족 개념을 포기하지 않고 보편주의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은 세상 전체를 아주 큰 가족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성리학도 기존의 보편주의적 지향이 좀 더 강한 윤리학과 정치학을 세우고자 했고 강한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러한 보편주의는 성리학 자체에 장애물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봉건적 질서를 전제로 구축된 사상이었는데 인간들 사이에서의 차등을 인정하되, 치자 계층에 거의 절대적인 도덕성을 가진자 즉 ‘성인’의 상태로 이를 보완하려 했다(697). 성인 개념은 신유학의 초석이었으며 누구나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인간의 보편적 잠재성을 역설했다.
<태극도(太極圖)>의 사상
‘무극’ 개념은 도교와 불교 개념이다. “自無極而爲太極”으로 읽으면, 태극 앞에 무극이라는 상위 원리를 놓게 되고, “無極而太極”으로 읽으면 태극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 무극이 된다. 전자는 ‘무→유’의 구도이고 후자는 ‘무=유’의 구도이다. 전자는 역학의 원리를 도교·불교의 원리에 종속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성리학에서는 “無極而太極”으로서 읽게 된다(699).
’무극→태극‘으로 볼 때 이는 ”有生於無“의 구도이고 도가적으로 무극은 ’도‘이고 태극은 ’기‘이다. ’무극=태극‘으로 볼 때 도=기의 구도가 되어 무극=태극=기가 된다. 무극=태극=리의 해석도 가능하다. 이 경우 리가 움직여 양기와 음기를 낳는 것이 되어 비약이 내재하게 된다. 주돈이의 본래 구도는 전자였다. 무극은 아직 극조차도 형성되기 이전의, ”도“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근본 이치 자체이다. 그리고 이 무극에 태초의/근본적인 ’극‘이 생겨날 때 태극이 성립한다. 모든 작은 이치들이 그것을 통해 하나로 꿰이는 이치이다(700).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무극에 뿌리 둔다(/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이는 내재적 인과를 말한다. 역과 기의 사유는 ’作‘의 사유가 아니라 ’生‘의 사유이며 외적이 아닌 내적인 ’생‘ 즉 ’化‘의 사유임을 말한다. 一本과 萬殊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이해되므로 원유한 세계관이 도래한다. 화엄철학의 영향이다. 성리학의 이런 원융함은 훗날 ”理一分殊“의 존재론으로 표현된다.
주렴계는 인간의 본성을 ’誠‘으로 보았고 성은 순수지선하다고 보았다. 자사와 맹자의 성선설을 이었다. 악이란 오성 즉 오행의 각 기의 본성이 減하여 움직일 때 中을 지키지 못하면 발생한다고 보았다(701).
태극이 일반 존재론에서의 중심축이라면 人極은 인간존재론에서의 중심축이다. 전자는 ’리‘이고, 후자는 ’성‘이다. 양자를 함께 사유하는 것이 곧 ’性理學‘이다(702).
객체성과 주체성, 인식론적으로는 객관성과 주관성이 무봉의 경지로 이어 ’천인합일‘의 길을 찾고자 한 것이 성리학자들의 사유였다. 자연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 안에 포함하기에 그 자체가 도덕성을 내재하고 있고 그의 도덕성은 곧 자연의 그것이다. 이런 이율배반적 구도하에서 자연의 도덕성과 인간의 형이상학적 본성은 근본적으로 하나이다. 이것이 ”性卽理“의 의미이다(703). 타자성과 소외를 최대한 증발시킨 세계였다.
§2. 상수학, 기학, 이학
소옹의 상수학
성리학적 사유를 상수학으로 정립한 인물이 소옹(1011〜1077 소강절)이다. 역학을 수에 입각해 재해석하고 갖가지 상들을 그렸다. 출발점은 ’1→2→4→8‘의 구도이다. 소옹의 사유 전체가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이라는 구절의 주석이다. 특히 4라는 수가 중심축이다(704).
태극은 1이고 부동이며, 2를 낳으니 2가 곧 神이다. 신은 수를, 수는 상을, 상은 器를 낳는다. 태극은 절대 잠재성이다. 태극이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신‘으로 음과 양 즉 정과 동이다. 이 신이 수의 체계를 낳고 수의 이치에 따라 갖가지 상(일차적으로 8괘)이 만들어지며 이에 따라 구체적 사물들이 생겨난다(704). 신은 음과 양일 뿐 잠재성으로서 이것이 점점 구체화 되면서 4상, 8괘가 되고 온갖 사물들, 사태들이 발생한다.
이 논리 구조를 시간축으로 구사함으로써 우주사를 전개했다. 우주사를 지배하는 형식적 원리는 수에 있으며 내용적 원리는 역학의 원리이다. 우주사의 단위는 元·會·運·世 인데 원은 해의 경로이고 회는 달, 운은 星, 세는 辰의 경로이다. 1원=12회, 1회=30운, 1운=12세의 관계(1년=12달, 1달=30일, 1일=12시)가 성립하고 그 결과 1원=12회(1×12)=360운(1×12×30)=4,320세(1×12×30×12)가 된다. 비례관계에 따라 1세를 30년으로 볼 경우, 1원은 129,600년이라고 계산했다. 12지의 구도와 64괘의 구도에 상응시켜 우주 달력을 만들었다(705).
이 도식은 역사철학적 도식을 함축한다. 역사는 우주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주사를 수로 파악하니 역사는 우주사의 중간에 표시되고 퇴행으로 접어든 시기에 도래한 것으로 보았다. 정치수준은 황→제→왕→패 즉 무위의 정치=→恩信의 정치→공정의 정치→지력의 정치로 전락해왔다고 본다(706).
소옹의 객관성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며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자연에 투영해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주관적 인식이다(706). 그러나 ’心‘은 자연과 인간의 마음을 포괄하는 더 큰 心이다. 이 큰 마음을 깨닫기 위해 개별 인간의 작은 마음을 정화해야 함[洗心]을 역설한다. 이렇게 해서 주관성과 객관성은 더 큰 주관성으로 포괄된다. 소옹에게 이것은 오히려 더 큰 객관성이다.
성리학자들은 자연의 위대한 질서에서 도덕형이상학적 의의를 읽고 그 가치를 자연에 투영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진리를 형성하는 것이 곧 리의 체계이고 인간의 마음을 자연에 투영해 얻어낸 형이상학이며 거대한 유기체철학이다(707). 불교의 영향을 짙게 내포한다.
철학은 세계에 대한 종합적 인식의 바탕 위에 삶의 의미와 가치를 사유하는 행위이기에 과학기술 또한 철학 내에 해석되고 사유 전체 속으로 용해되어야 하며 과학기술과 철학은 비-대칭적 관계를 맺는다. 성리학은 당대 과학기술을 흡수해야 했다. 과학기술의 자연 탐구와 연계하지 않음은 결국 자신들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인식에 사실상 주관적으로 접근하게 만들었다. 소옹의 상수학 사유가 오늘날 별다른 과학적, 철학적 매력을 주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708).
반면, ”마음으로 보지 말고 이치로 보라“는 명제는 정신 속에 들어온 세계에 본연의 마음-애초에 그 理와 하나인 마음[性]-으로 그 세계의 내용을 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즉리‘의 인식론적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소옹은 큰 마음에 끼어드는 작은 마음을 정화할 때에만 우주의 진리가 드러난다고 보았다. 이는 ’객관성‘의 또 다른 의미를 일깨워주는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과 하나를 이루는 자연의 마음이 소옹의 우주이다(709).
성리학의 문제는 불일치, 타자성, 우연성, 불연속성 등과 씨름하는 과정이 생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곧 자연과 인간의 위대한 대위법이 이러한 분투를 내포할 때에만 성립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성리학은 주관성과 객관성의 주관성을 추구했으나 주관성과 객관성의 객관성을 추구하지는 못했다(710).
장재의 기학
성리학은 주-객의 주를 상대적으로 현상학적 수준에서 추구한 사유에서 보다 더 매력적인 성과를 낳았다. 사유의 중심을 ’리‘보다 ’기‘에 두었는데, ’기‘는 상대적으로 경험적인 차원의 사유로서 현상학적 주관성을 추구할 수 있다. 이 길은 장재(1020∼1077,장횡거)에 의해 이루어졌다(710).
장재에게서 무와 유 사이의 존재론적 구분은 없다. 기는 무이면서 유라는 존재론적 지위를 갖는다. ’유→유‘의 구도이며 허공은 사실 기로 꽉 차있다고 보았다. 충만의 존재론이다. 그러나 기는 본체론적으로는 유이지만 만물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무이다. 아직-아무것도-아님이다. 현실적인 것은 아니지만 실재적인 것이다.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을 함께 사유하는 것이 ”幽明之故“며, 존재의 사유이지 무의 사유가 아니다. 기 앞에 무를 놓는 도교의 생각과 만물의 실재성을 공으로 환원하려 하는 불교를 모두 비판한다(712).
”태허가 기의 본체“라는 것은 기의 본래 모습이 태허 상태임을 뜻한다. 기의 본질은 우주에 편재해 있고 또 끝없이 화해가는데 있다. 모두 음양의 이치에 근간한다. 청하여 통함과 탁하여 막힘은 동북아 가치-존재론의 세계를 보는 기본 프리즘이다. 절대적 맑음인 태허의 성격을 ’神‘이라 표현되고 ’신‘은 기의 존재론적 차원을 인간 정신의 인성론적 차원으로 이어주는 통로이다.
장재에게 ’性‘은 천리지성과 기질지성 두 측면으로 이해된다. 세계를 기일원론으로 파악하면 기는 이원적으로 파악될 수 밖에 없다. ’본연‘의 성은 천리지성이다. 기질지성은 객형·객감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성이며(’質‘ 개념은 이런 의미를 띤다. ’形‘ 개념도 동일하다. ”형이 있은 연후에 기질지성이 있다“). 지각과 감정을(714) 내포하는 성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이성과 감정을 함께 가진다(”心統性情”)
장재에게 감정은 욕심이다. ’물화/물상화’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인욕을 버리고 천리로 나아감을 뜻하며 천리와 인욕의 이미지가 상응하고 ‘存天理去人慾’은 성리학의 기본 테제가 된다. 이 길의 추구에서 중요한 것은 ‘궁리’와 ‘진성’이다. 인간은 궁리를 통해 그 밝음에 달할 수 있고 진성을 통해서 그 성실함에 달할 수 있다. 명과 성에 도달해야 ‘命’(천명)에 닿아 中正의 경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재는 인간에게 형이상학적 잠재력을 부여했기에 윤리와 정치의 문제에도 이상주의적이었고 그 이상주의는 복고주의였다. 미래에 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과거 이상을 동경했고 종법제(순혈주의)와 봉건제의 부활(분권)을 통해 송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보았다(715).
장재의 ‘理一分殊’사상은 동일성과 차이의 동일성이라는 구도를 집약하고 있다. 차이들의 위계적 체계와 그 전체의 동일성을 동시에 주장하는 존재론이다. 전체는 위계화된 통일체이다. 황제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세계 전체를 계속 뻗어가는 동심원들의 방사상으로 파악하는 사유이다. 이는 동북아 국제질서의 특징인 책봉과 조공의 체제를 함축한다. 차이들은 외부로서 남지 못하고 하나의 중심을 가진 전체로 내부화된다. 이는 완벽한 차이배분의 체제이다(717).
정호(1032∼1085,정명도)·정이(1033∼1107,정이천)의 이학
진정한 도덕형이상학을 세우려면 자연의 차원인 기를 넘어 형이상의 차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보았다. ‘천리’를 기의 차원을 초월하는 형이상자로 보았음을 뜻한다. 이정은 천리 개념에서 물질성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했다. 초월성을 부여하고자 했고 장재의 일원론을 이원론 구도로 전환했다(718).
모든 것은 천리를 온전히 부여받은 존재들이다. 이 온전함은 가능태이지 현실태는 아니다. 핵심은 선/악에 있다. 성 자체는 순선하나 현실 속에서 활동하는 순간 이미 악이 섞이게 된다. 인간은 기와 정에 함축되어 있는 악과 대결해 선한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천리에 다가갈 수 있고 천리는 인간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719).
성 자체는 리이지만 기의 차원에서 발현되는 순간 즉 ‘정’과 연계되는 순간 이미 악도 함께 작동하므로 ‘본연’의 차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본질로 되돌아감의 이상을 함축한다. 대비적으로 현실은 계속 퇴락해왔다는 순환의 과정이 계속되면서 전체적으로는 퇴락의 흐름이 이어져왔다고 보았다. 만물의 영고성쇠는 결국 리 자체의 변화 과정이다. 그러나 개념상 리는 변화할 수 없고 변화하는 것은 기이다. 그래서 리가 기와 맞물려 변화해가는 과정이고 기의 변화를 통해 리 자체도 변화해간다고 생각했다(720).
퇴락의 원인으로 인간이 전체의 조화를 깨면서 전체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해 내려하는 것으로 보았다. 성리학자들은 달걀의 튀어나온 부분을 두들겨 세계(720)를 다시 원으로 만들고자 했고 이것이 분리를 극복하는 천-인 합일 이상이었다. 합일의 경지로 가는 길을 仁·誠·敬 등의 가치에서 찾았다.
이정에게 현상세계의 존재론적 위상은 극히 낮아지고 본체세계의 위상은 극히 높아져서 리·기 이원론의 구도가 등장한다. 기는 器 즉 형이하의 존재이며 리가 형이상의 존재이다. 기가 사용되어 소실되면 그대로 소멸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디서 기가 발생하는가 해명은 불분명하지만 리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미 생겨난 기가 사용되어 소실될 경우 다시 소생하는 일이란 없다. 오로지 새로 생긴 기가 다시 사용될 뿐이다. 리에서 계속(721) 생겨나는 것이다.
이정에게 초월적 차원은 정신적인 것이며 도덕적인 것이다. 마음은 무여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것을 비추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모든 것을 보듬는 성리학적 구도는 마음에 선험적 도덕성이 ‘본연’으로서 갖추어져 있는(722) 도덕형이상학으로 특징짓게 한다(723).
이정은 안과 바깥의 구분을 무화한다. 세계를 공으로 보기보단 엄연한 실재로 봄으로써 불교의 주관주의를 비판하지만 그 세계를 ‘심’에 귀결시켜 이해함으로써 주관주의적 색채를 띤다. 존재론적 정신주의와 인식론적 공부 방법론이 착종된 형태인데 전자는 『중용』의 성·경의 가치이고 후자는 『대학』의 격물·치지와 연계된다(723). ‘격’을 ‘궁’으로 보았고 ‘물’을 ‘리’로 보아 사물의 이치를 궁리한다. 모든 사물에는 이치가 있고 만물은 一理 즉 천리에 의해 주재되므로 세계는 크고 작은 이치들의 유기적 체계라 할 수 있다. ‘물’은 모든 존재자들을 가리키며 ‘심’에 포섭되어 이해되는 ‘물’이다. ‘궁리’와 ‘盡性’과 ‘至命’은 하나다. 이런 사유구도는 정치적 문제에 대해 이들을 보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천리가 현실을 설명하고 바꾸어 나간다기 보다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천리로 파악된 것이라는 사유가 근본 이유였다. 성리학은 유불도를 통합해 차원 높은 형이상학을 제시했지만 그에 걸맞은 정치철학을 제시하지는 못했다(725).
§3. 주자의 종합
북송의 철학자들에 의해 전개된 성리학은 남송의 주희(1130∼200, 주회암, 주자)에 의해 종합되었다(725).
주자에게 리는 사물 이치이다.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으로 만들어준, 모든 ‘물’들의 충족이유율=소이연이다. 그래서 ‘性’ 즉 각 사물의 본성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기와 구분된다. 기는 구체적인 형·질·색 등을 가지지만 리는 사물들의 까닭 그 자체이다. 구체적인 것들을 그것들로 만들어주는 추상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그 자체만 고려하면 ‘무’의 성격을 띤다(726).
성리학의 무는 규정성들의 총체이다. 우주의 설계도이며 존재의 문법이고 크고 작은 모든 동일성들의 유기적 총체라 할 수 있다. 각 사물의 이상태를 가리키는 ‘極’ 즉 이데아/이념이기도 하다. 존재와 당위가 통합된 도덕형이상학적 개념으(727)로서 소이연이기도 하고 소당연이기도 하다. 바로 가치-존재론의 사유라 하겠다.
주희는 리와 기를 물리적 순서에 따라 논하지만 이는 모순을 내포한다. 리와 기는 개념적/형식적으로 구분될 뿐 실체적으로는 구분될 수 없다. “不相離不相雜‘이란 리와 기가 실체적으로는 떨어질 수 없지만 형식적/개념적으로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함을 잘 표현한다(728).
리는 기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이법이며 이법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리가 없다면 기는 혼돈에 불과하고 기가 없다면 리는 허깨비 같은 것이 된다.
주희의 우주론은 영겁회귀의 사상이다. 129,600년 주기를 기준으로 우주가 영겁회귀를 겪는다고 생각했고 개벽에 의한 사물의 생성을 철저하게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설명한다. 생명체들 역시 처음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으며 그 후에야 번식에 의해 증식한다고 본 것이다.
개별화의 원리에 대해서는 각각의 리에 있다했으나 때로 만물에 태극이 내재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태극/리는 개별적 리들의 총체가 되나 태극/리의 전일성으로 보면 후자에 가깝다. 각 사물의 성들은 각각의 기에 상관적으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기의 청탁에 따라 각각 드러나는 리 또한 차이가 난다(729).
인간이란 생=기의 측면에서 다른 동물과 같지만 성=리의 측면에서는 다르다고 보았다. 인성과 물성에 대한 논의는 조선 성리학에서 ’인물성동이론‘을 통해 치밀하게 다루어지게 된다. 기 개념은 도덕적 개별화의 원리로서 작동하나 기만 논하면 인간의 근본적 선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리만 논한다면 인간의 근본적 성선은 확보되지만 경험적 차원에서의 도덕적 차이들을 논할 수 없다.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바탕에 선한 리=성을 놓고 기품의 차이를 논했다.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구분의 핵심이다(730). 또한 마음은 기로서 활동하기에 ’情‘을 포함한다. 인의예지가 성이라면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사단)은 정이다. 정은 사단 외에 칠정(희로애락애오욕)도 가진다.
신체는 ’기‘ 개념에 포함되어 추상적으로 다루어졌다. ’지각‘ 개념이 정신적 활동성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存天理去人慾‘의 구도에 맞춰졌다. 그러나 객관세계의 탐구에도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것이 ’격물치지‘이다(731).
주희에게 자연과 역사라는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가졌는데 사학보다 경학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철학 없는 역사는 맹목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리에 대한 탐구 없이 역사를 점철하는 처참한 인간사만 읽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이다(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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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에서 적어도 유교적 맥락에서 정치와 학문은 하나를 이루었으며 모든 정치적 문제들이 고전의 해석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학문과 정치가 일체를 이룬 것이다(736). 왕안석의 신법당과 사마광의 구법당은 날카롭게 대립했으며 부침을 거듭했으나 그 과정에서 본래의 사상적 대립은 증발되고 결국 정치적 적개심만 남게되었다(735).
뛰어난 철학자들이 정치적으로 고루한 입장을 견지한 이유는 도학자들의 이상주의가 곧 복고주의였기 때문이다(738).
주희의 학문은 몇 단계를 거치면서 동북아의 대표적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된다. 뒤를 잇는 뛰어난 학자들이 끊이지 않음으로써 계속 이어졌다. 원대 허형 등을 통해 일반화되어 갔으며, 동북아 주도적 담론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나 점차 관학화되어 갔다. 새로운 왕조의 창건자들이 ’새로운 판‘을 짜는 데에 주자학만큼 유용한 철학도 없었기 때문이다. 14세기 후반 등장한(740) 새로운 왕조들은 모두 주자학을 건국 이념으로 삼았다(741).
주자학은 사대부 지식인들의 정체성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것은 사대부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세계관과 가치관의 패러다임으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새로운 왕조가 건설될 때 우주와 인간을 잇는 웅혼한 규모의 사유, 지식인들의 영혼에 정체성을 불어 넣는 인성론, 봉건사회를 정초해준 위계적 정치철학으로 구성된 높은 경지 때문이었다. 또한 사대부 지식인들의 권력의지 또한 작용(741)했다. 유교는 철두철미 ’천하‘의 철학이다. 세상을 위해 제 몸을 던지는 ’선비‘의 이미지와 ’名‘ 즉 이름-자리로써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실행하는 권력적 모습을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714).
왕이 주희를 존숭한 이유는 스스로를 왕도정치의 체현자로 인정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정치가 정통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 자체가 사대부들의 사상을 따르는 것이었고 양자의 권력의지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었다(743).
명은 어느 왕조보다도 황제 권력이 강화된 경우이다(743). 그런만큼 황제와 신하의 거리는 그만큼 멀었다. 황제와 현실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뜻했다. 이 넓은 틈새에 끼어들어 국정을 농단한 것이 환관들이었다. 사대부 지식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고 주자학 역시 이런 맥락에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사변적이고 개념적, 논리적, 분석적 주자학은 직관적, 정감적인 일본인의 심성에 잘 맞지 않았다. 반세기도 채 못 되어 극복을 대상이 되었다(744).
그 어느 곳보다 굳게 자리잡았고 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발전을 이룬 곳은 조선이었다(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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